212화
“으아아악!!!”
태운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얼굴에 있는 온갖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으윽….”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고통이 잦아들고 얼굴의 구멍에서 나오던 피도 멎기 시작했다.
돌검에서 흘러나오는 에테르가 태운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윽….”
태운은 그 사이에 자신의 몸을 회복시켰고 돌검에 에테르를 흘려보내며 자신의 몸을 지속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해두었다.
“크윽… 이게 도대체 무슨….”
던전 외벽 너머에 있는 칠흑의 세상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데미지를 입다니,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앞에 떠오른 알림창이 눈에 들어왔다.
태운은 그곳에 적힌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신들의 세상’을 목도하였습니다. 인간이 버틸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어 목적으로 몸에 흘러들어오는 에테르 덕분에 충격을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에테르가 소모되기 전까지 ■■■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신들의 세상’을 목도해 인지의 범위가 늘어났습니다.]
[스탯 ‘지력’이 10 늘어납니다.]
[‘신들의 세상’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견뎌냈습니다.]
[신체 관련 스텟이 모두 ‘10’씩 늘어납니다.]
“이게 뭐야….”
단순히 던전 외벽 너머의 세상을 보았을 뿐인데도 자신의 몸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림창의 단어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신들의 세상이라는 단어였다.
“저 너머가 신들의 세상이라고…?”
태운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이런 걸 생각하고 던전 외벽을 부순 게 아니야…. 이게 무슨….’태운은 아무 생각 없이 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부숴본 것뿐이다.
이런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들의 세상을 본 것만으로 지력 스탯이랑 신체 관련 스탯이 10씩 높아졌어.”큰 충격을 받아 환각이라도 보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지력 스탯이 높아져 눈앞이 또렷해지고 정신이 맑아진 것이 느껴졌으니까.
게다가 근육이 조금 더 활성화된 느낌도 들었다.
“후….”
태운은 자신의 몸의 변화를 눈치채고 한 가지 고민을 했다.
‘한번 제대로 들여다볼까…?’
고작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벽 너머의 세상을 보았을 뿐인데 이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조금만 더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특성이라도 하나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태운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끔찍하네….”
주변의 몬스터들이 모두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죽어 있던 것이다.
“이놈들은 너머의 세상을 직접 본 게 아닌데도 이렇게 됐다는 건데….”태운은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믿어보기로 했다.
[방어 목적으로 몸에 흘러들어오는 에테르 덕분에 충격을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에테르가 소모되기 전까지 ■■■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 이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방어 목적으로 몸에 흘러들어오는 에테르’ 덕분에 방금 같은 충격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 돌검에 새로 만들어진 특성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던 거겠지.’돌검이 변화하지 않았어도 에테르가 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남았겠지만 말이다.
“후… 한번 해보자.”
태운은 돌검에 에테르를 지속적으로 보충해주면서 던전 외벽에 나 있는 균열을 향해 나아갔다.
방금 느꼈던 엄청난 공포와 고통이 몸이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참고 나아갔다.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공포였지만 스탯 용기 덕분에 발을 앞으로 옮길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뒤로 도망치고 싶어.’
사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정신이 나가 버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운에게는 그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정신력이 있었다.
어느새 태운은 던전 외벽에 가까이 도달했고 태운은 침을 삼키고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무렇지 않아.”
에테르의 소모가 더욱 빨라진 것 같기는 했지만 이 정도 속도면 10분은 족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던전 외벽이 스스로 회복되고 있어. 10분이면 완전히 닫힐 것 같아.’태운은 던전 외벽이 빠른 속도로 증식하며 부서진 곳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이네. 이 던전을 봉해야 하나 싶었는데.’에테르를 가지고 있는 태운이라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바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태운은 던전 외벽에 너머에 있는 칠흑의 세상을 보던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그저 칠흑의 세상, 무(無)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후… 어쩔 수 없는 건가?”
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던전 너머의 세상에 손을 내밀었다.
태운의 손가락이 던전 외벽을 넘어 신들의 세상에 들어간 그 순간, 손끝의 감각이 없어지며 알림창이 미친 듯이 떠올랐다.
[필멸자의 몸으로는 신들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즉시 이곳을 나가길 경고합니다!]
[에테르가 필멸자의 존재를 신들의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습니다!]
[필멸자의 몸으로는 신들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즉시 이곳을 나가길 경고합니다!]
[에테르가 필멸자의 존재를 신들의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습니다!]
…….
같은 알림창이 수십 개씩 떠올랐다.
태운은 그 알림창에 놀라 급하게 손을 빼냈다.
“이게 무슨….”
태운의 몸에 있는 시스템은 지금까지 정보를 알려주었을 뿐 무언가를 경고하거나 태운에게 행동을 권유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시스템이 ‘즉시 이곳을 나가길 경고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신들의 세상이라는 장소가 태운에게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는 뜻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내 앞에 나타나는 시스템의 정체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어.’그냥 단순한 정보창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보고 그런 생각은 버렸다.
‘시스템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다. 아니면 그런 존재가 만든 것이 분명해.’그 존재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태운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태운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태운은 시스템상의 경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왜냐면 지금 내 감이 이 안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지금까지 시스템과 태운의 감이 어긋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태운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잘못된다고 해도 내 선택으로 그렇게 된 거라면… 납득할 수 있어.’그게 태운이 자신의 감을 믿는 이유였다.
스윽.
태운은 다시 손을 들어 천천히 그곳으로 들어갔다.
다시 천천히 손의 감각이 없어지고 경고창이 미친듯이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태운은 멈추지 않았다.
던전 너머의 세상에 태운의 손이 모두 들어가고 팔이 들어가고 어깨가 들어갔다.
결국, 머리까지 신들의 세상에 들어가자 태운의 눈앞에 시끄럽게 떠오르던 알림창이 뚝 끊어졌다.
에테르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긴 했지만 3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후… 생각한 것보다 별일은 없….”
태운이 나머지 몸을 완전히 이쪽 세상으로 옮기려던 그 순간.
보고야 말았다.
태양만큼이나 거대한 하나의 ‘눈동자’를 말이다.
“…….”
태운의 사고가 멈췄다.
어느 상황에서나 빠르게 움직이던 태운의 생각이 멈춘 것이다.
그때, 아무 소리 없이 태운이 본 눈동자가 태운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눈을 마주쳤다.
“…….”
태운은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이 어째서 그렇게 신들의 세상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는지를.
그리고 신은 고작 한 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
처음 본 눈동자보다 수십 배는 거대한 수천 개의 눈동자가 태운을 동시에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때, 태운의 머릿속에 엄청난 크기의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환청이 아니었다. 마치 신들의 대화와도 같았다.
[필멸자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것이지?]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잖는가. 영웅이라고 불리던 인간이 이곳에 들어와 세계를 돌려내라는 둥 난리를 치지 않았나.]
[마물에게 멸망당한 그 세계에서 온 인간 말인가.]
[그 녀석은….]
“커억!”
단순한 대화였지만 태운의 몸은 버틸 수 없었다.
그들이 내뱉는 거대한 한마디 한마디가 압축되어 태운의 뇌에 박혀왔으니까.
태운은 피를 토해내는 고통에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가야 한다.’
‘이곳에 조금이라도 더 있다가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그 생각과 공포감이 태운의 뇌를 지배했고 태운은 빠르게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필멸자여.]
그 말을 끝으로 태운은 다시 신들의 세상을 나와 던전으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태운은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던전 외벽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잠시라도 이 던전에 발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태운은 빠르게 달려 던전 출입구에 도달했고 던전 밖으로 나왔다.
“허억… 허억….”
태운은 신들의 세상에서 본 것들에 엄청난 긴장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버렸다.
하지만 던전에서 나오고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자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태운은 자신이 본 것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그게 신이야.’
순식간에 납득할 수 있었다.
보는 순간 아니, 그 존재는 인지하는 순간 자신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
태운은 천문학자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거대함을 실감하는 순간 자신이 한 줌 먼지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태운은 신들의 세상에서 신들을 보자마자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에테르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자아와 존재를 잃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후… 앞으로 절대 던전 외벽을 부순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겠어. 일단 이 정보는 전대섭 선생님과 허덕륜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비밀에 부쳐야겠네.’이 사실이 대중에게 퍼진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테니까.
태운은 생각을 정리하고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확인했다.
[일부의 신들이 필멸자 ‘강태운’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일부의 신들이 필멸자 ‘강태운’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에테르의 총 보유량이 1,000만큼 늘어납니다.]
[필멸자의 몸으로 ‘신들의 세상’에 들어가고도 살아남았습니다.]
[스탯 ‘용기’가 5 늘어납니다.]
[특성 ‘죽지 않는 자’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잠깐… 죽지 않는 자라고…?”
과거 아수라와 싸웠던 용사의 몸에 있던 특성 중 하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 효과를 알 수 없었던 그 특성의 실마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