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10화 (210/379)

210화

‘이야, 간도 크네. 어떤 범죄 조직이 사무실을 헌터 협회에서 300m밖에 안 떨어진 곳에 잡아?’태운은 강판덕과의 대화에서 조직의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Z 본인은 조직의 이름을 만들지도 않았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있어.’하지만 Z가 부하의 이름으로 만든 법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FP, Fill people의 준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식품 회사인 것 같네.’

태운이 몰래 휴대폰으로 확인해 보니 어묵이나 맛살, 냉동식품들을 파는 회사였다.

마약 조직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세워놓은 회사치고는 굉장히 활발한 활동도 하고 있었다.

매년 중소기업이 내기 쉽지 않은 큰 금액을 기부하기도 해 아는 사람들은 아는 착한 기업이었다.

‘이러니 찾기 어렵지….’

그런 착한 기업을 누가 마약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게다가 Z의 성격상 굉장히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짜놨을 것이다.

누가 보면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은폐하는 데 집중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계약금은 얼마나 생각하고 오셨나요? 제가 전에 있던 길드에서는 3년에 13억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강판덕은 계속해서 입을 놀렸고 충분히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한 태운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법을 해제했다.

“하하… 제가 말이 좀 많았나요?”

“괜찮습니다.”

강판덕은 갑자기 말을 하다가 멈추고는 머쓱해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상대방을 조종하는 마인드 마리오네트에 자유 의지 부여 마법을 같이 쓰면 정신 지배에 걸린 당사자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정신 지배가 가능하지.’태운은 덕분에 본인에게 걸리지 않고 정신 지배를 사용해 녀석을 조종할 수 있던 것이다.

태운도 아주 쉽게 거기까진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다음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하룻밤을 새워야만 했다.

암호를 만든 것이다.

태운은 마인드 마리오네트와 브레인 스캐닝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강판덕의 머릿속에 암호에 대해 집어넣었고 그것을 활용해 조직의 정보를 말하게 만들었다.

‘암호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지.’

수준이 높은 암호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계약 미팅 때 나올 법한 말들을 Z의 정보로 나올 법한 말로 치환할 뿐인 암호였다.

게다가 이 암호의 보안성은 완전 꽝이다.

이것이 암호라는 것을 알고 풀려고 한다면 고등학생도 금방 알아챌 정도였으니까.

‘급조한 암호라서 그런지 굉장히 허술하지….’게다가 암호를 직역했을 때 어순도 엉망이라 바로바로 알아채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태운은 강판덕이 말한 것을 녹음해놓고 집으로 돌아가 직접 해독해서 어순을 바로 잡은 후 제대로 정보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보도 충분하고 들키지도 않았을 거야.’태운과 강판덕이 만난지 약 20분이 지났다.

슬슬 계약 사항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저희가 제안할 금액은 3년 계약에 11억입니다.”

“흠… 조금 아쉽네요.”

“저희 입장도 있어서 말입니다. 재정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아서요. 소속 헌터 복지 비용으로 돈이 굉장히 많이 나가는 중이라서 말이죠.”“음… 그래도 너무 적게 쓰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저는 나름 B급 헌터 중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사람입니다.”자연스러운 연기였다.

그들에게 태운이 주는 계약금 같은 건 관심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계약금에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 태운도 그걸 이용해 조금 연기를 해주기로 했다.

“명운 길드의 복지는 여타 대형 길드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정도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규모가 커지고 수익이 늘어날 때마다 복지의 수준은 점점 높아질 것이고요. 게다가 강판덕 헌터님은 거의 5년을 헌터로 일하시면서 실력 또한 절정에 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량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은 적을 텐데 이 이상의 돈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크흠….”

태운의 매몰찬 말에 강판덕은 침음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3년 11억으로 계약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 중으로 정리를 마친 뒤 계약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살짝 웃어주며 강판덕과의 대화를 마쳤다.

* * *

태운은 전대섭과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일단 이야기를 마치고 왔습니다.”

-잘했어. 정보들을 정리해서 직접 와서 전해주게. 할 이야기도 많으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강판덕과의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대섭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사일런스 헬멧 마법을 사용해 태운의 말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뭐가 말이지?

“녀석의 조직원이 저희 길드에 가입 신청을 했고 그것을 제가 봤다는 게 참….”-듣고 보니 그렇군. 자네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녀석들의 뜻대로 됐을 테니 말이야.

태운이 알아낸 정보 중에는 강판덕이 길드 안에 들어와 명운 길드를 마약 밀매의 중심지로 삼을 계획도 있었다.

그것을 보니 계획이 굉장히 세심하고 철저하게 세워져 있어 까딱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내 귀와 눈을 가리고 마약 거래의 장을 만들 계획을 했다는 게 정말 끔찍하네.’태운이 이상함을 느끼면 빠르게 조사 후 척결했을 테니 오래가지는 못했겠지만 잠깐이라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길드의 이미지가 크게 망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주동자인 Z 녀석은 금방 눈치채고 도망갔겠지.’태운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허덕륜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이유는 뭐지?

태운은 허덕륜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허덕륜이 이 일에 가담해준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도 없을 텐데 태운은 특별히 비밀로 해달라고 한 것이다.

“어… 물론 허덕륜 선생님이 있으면 누군가 다칠 일은 없겠죠. 하지만… 조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뭐가 위험하다는거지? 그런 조직에 너는 물론이고 허덕륜을 위협할 녀석은 없을 텐데 말이야.

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위험이 아닙니다. 허덕륜 선생님은 이미 녀석들에게 얼굴이 팔려 있으니까요.”-아, 그런 이야기였나.

허덕륜은 그동안 뒷세계를 박살 내고 다니며 많은 범죄자들에게 얼굴이 팔렸다.

허덕륜이 박살 낸 조직 중에는 과거 Z가 몸담았던 조직도 있었으니 Z도 허덕륜의 얼굴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허덕륜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Z를 비롯한 조직 자체가 숨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 알겠네. 그래도 허덕륜 대신 믿음직한 사람 하나 붙여줘도 되겠나?

“누구를….”

-자네도 잘 아는 사람일세.

“혹시….”

-아마 맞을 게야. 김현우 헌터 말일세.

“아, 현우 형은 믿을 만하죠.”

김현우도 나름 유명하긴 하지만 허덕륜만큼 뒷세계에서 설치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력도 뛰어나고 악인을 상대할 때 매우 강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번 사건에 매우 적합한 사람이다.

-알겠네. 그럼 헌터 협회에 미리 전해두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한 명 더 빼주실 수 있으십니까?”-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누굴 원하지?

“그게….”

태운이 그의 이름을 말하자 전대섭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흐음… 일단 알겠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운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다들 간만에 만나겠네.”

둘 중 한 명은 스스로 태운의 제자를 자처했던 사람이다.

태운도 제자로 받아주었지만 최근 굉장히 바빠져 신경 써주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좋아. 일단… 오늘은 시간도 좀 있으니 ‘그곳’에 가봐야겠네.”태운은 휴대폰으로 던전 앱을 열었다.

주변에 등록되어 있는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이었다.

“내가 샀던 던전이… 여기였지? ‘말라 버린 늪지’, 이름도 참 뭐 없을 것 같네.”태운은 D-급에 불과한 던전인 말라 버린 늪지라는 던전을 구매했다.

길드 차원에서 공략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태운은 택시를 잡았고 바로 말라 버린 늪지의 입구로 향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20분 만에 도착했고 던전 입구는 헌터 협회 소속 헌터가 통제하고 있었다.

“수고들 하십니다~.”

태운은 능청스레 연기하며 지나가려 했지만 그 앞을 협회 소속 헌터들이 막아섰다.

“헌터증 부탁드립니다.”

“예?”

협회장은 태운이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두었다고 했는데 그들은 태운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 마스커레이드….’

태운은 마스커레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다.

찌이익.

태운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환각 마법으로 특수 분장을 뜯어내는 것처럼 연출하고 마스커레이드를 풀었다.

“어…?”

그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태운이 빠르게 설명해주었다.

“아, 제가 무슨 임무를 하나 하고 왔는데 특수 분장을 풀지 않고 왔었네요. 헌터증은 여기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들은 태운의 말에 의심을 거두고 헌터증을 확인한 후 들여보내주었다.

태운은 던전 입구로 들어갔고 그 안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몬스터 말고 정말 아무것도 없네.”

말라 버린 늪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늪지처럼 우중충한 분위기는 있었으나 살아 있는 나무나 식물은 단 하나도 없었고 죽어 있는 초목과 말라비틀어진 나무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딱 좋아. 비상의 룬.”

태운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비상의 룬을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고 안에서 나오는 전리품의 가치도 낮은 이곳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에테르 익스플로전.”

에테르의 위력을 확인하기에는 제격이었으니까.

퍼-.

삐이이-.

태운은 저멀리에 에테르로만 메테리얼을 만들어 익스플로전을 시전했다.

“크으윽….”

폭발음이 어찌나 거대한지 순간 태운의 고막을 찢어버릴 뻔했다.

“후… 사일런스를 시전하지 않았으면 정말 고막이 찢어졌겠는데…?”태운이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시전한 장소는 약 1km가 떨어진 거리였다.

그럼에도 이 정도 폭발음이 태운을 덮쳤다는 것은 그 폭발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핵폭발 수준 아니야…?”

핵폭발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는 모르겠으나 폭발력 자체는 그 어떤 폭발 마법과도 비교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건 일반 익스플로전의 수식을 그대로 에테르에 적용시켰을 뿐이야.’즉, 에테르에 최적화되어 있는 수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맙소사… 이걸 내가 얻어서 망정이지… 적이 얻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네….”물론, 지금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사용하느라 최대 에테르의 절반을 소모했다는 게 조금 흠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엄청난데…?”

태운은 하늘을 날며 천천히 던전을 둘러보았다.

태운이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시전한 장소에서 1km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모두 내장이 파열되어 죽어 있었고 그 밖에 있던 몬스터들도 얼굴의 온갖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후… 이거 던전 밖에서는 봉인해놔야겠는데…?”태운은 그날, 에테르의 위험성과 유용함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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