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전대섭 선생님, 그 마약 조직의 꼬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아, 예전에 말했던 그 조직 말인가?
“네, 마정석 안의 세상과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현실 세계에서도 마약 조직은 분명히 존재한다.
게이치로가 인간으로 만든 몬스터들을 조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
‘그 마약 조직이 없었다면 게이치로가 그런 일을 벌일 수는 없겠지.’마약 조직의 우두머리인 Z가 만든 마약은 부작용이 굉장히 심하다.
그 부작용들은 모두 Z가 의도해 만든 부작용들이었다.
폭력성 증폭, 분노 조절 장애, 집중력 저하 등등 엄청난 부작용들이 많지만 그중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부작용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괴물화지.’
Z표 마약에는 지속적인 투약 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태운은 마정석이 만든 세계 안에서 그 모습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에 그 끔찍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리고 허덕륜이 뒷세계를 청소하면서 모았던 자료를 정리하던 중 녀석들의 정보를 좀 찾을 수 있었네.
“그게 뭡니까?”
-잠시만 기다려보게.
휴대폰 너머로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전대섭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넘겼던 자료 같구나.
“무슨 자료죠?”
-음… 5년 전쯤에 뒷세계를 꽉 잡고 있던 조직 하나를 허덕륜이 박살 낸 적이 있다. 그때 조직원들에게서 기술자라고 불리던 녀석을 한 명 놓쳤었네.
“음….”
-조직원들에게 들은 바로는, 녀석은 성격이 굉장히 소심하고 말도 별로 없다고 하더군. 어차피 조직의 뿌리까지 다 뽑아서 태워 버렸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네. 말단 조직원 하나둘 놓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긴… 허덕륜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조직 5개는 박살 내야 할 정도로 바쁜 적이 있었다고…”-음, 맞네. 그때가 아마 그렇게 바빴을 때일 거야.
약 5년 전, 그때는 뒷세계가 굉장히 어지러웠으며 슬슬 조직들이 양지로 올라오려고 수를 쓰던 때였다고 한다.
아마 허덕륜이 없었다면 그때 대한민국의 치안은 완전히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바빴다면 말단 조직원 하나 놓친 것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었겠지.’게다가 조직 내에서도 천대받던 놈이라고 했으니 무슨 일을 벌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자료, 메일로 부탁드립니다.”-알겠네. 바리를 시켜서 보내놓도록 하지.
바리는 전대섭의 비서 역할을 하는 고성능 인공지능이다.
“감사합니다.”
-별말을 다 하는군.
전대섭은 그렇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놈들 슬슬 잡아야지….”
드래이그 고흐를 잡으랴 몸을 회복하랴 길드를 만들고 에테르의 사용법을 연구하랴.
지금까지 굉장히 바빠 마약 조직을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꼬리를 잡은 지금 녀석을 잡아야 해.’워낙에 조심성이 큰 녀석이라 이번 기회를 놓쳤다가는 다시 잡기 위해 어떤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판매책들의 머리를 뒤져도 정보를 찾을 수 없던 놈이니까.’그는 판매반 간부에게도 자신의 얼굴은커녕 조직의 구조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놈이다.
‘하지만 자신의 경호반에게 만큼은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지….’녀석은 힘없이 살았던 만큼 자신에게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기 과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때문에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가장 오래 있던 경호반의 조직원들은 Z에 대해 비교적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경호반들이 체포당할 정도면 조직을 갈아엎어야겠다고 생각할 녀석이니까. 도망갈 루트도 잘 짜놨겠지.’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휴대폰을 들어 가입 신청 서류에 적혀 있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안 받는 건가? 흐음….’
태운은 그 마약 조직의 조직원이 자신의 길드에 가입 신청을 한 이유를 대충 두 가지로 예상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 신청을 하려는 것, 쉽게 말해 스파이라는 것이다.
태운은 이 가설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조직에서 경호일을 하다가 모종의 일로 잘리고 돈을 벌어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심성이 많은 놈이 필요 없어진 놈을 조직에서 내쫓을 리가 없으니까. 죽였으면 죽였지.’자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놈이라면 모를까 경호원 정도로 가까이 두던 놈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 경우의 수에서 빼놓은 건데….’어쩌면 태운이 사람을 착각한 것이거나, 마정석 안의 세상과 달리 이곳의 강판덕이 그 조직에 발을 들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때, 묵묵부답이던 휴대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강판덕 씨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태운은 그가 전화를 늦게 받은 이유를 대충 짐작해보았다.
‘역시 조직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하려는 게 맞는 것 같아.’시스템이 잡혀 있고 정보력이 뛰어난 대형 길드보다 아직 작은 명운 길드를 뚫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게다가 우린 앞으로 더욱 커질 거라는 게 거의 확실시됐고… 슬슬 양지로 손을 뻗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네.’녀석들의 계획은 명운 길드를 마약 판매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잘만 뚫어놓으면 한국의 뒷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녀석의 목표, 헌터를 괴물로 만들어 제거하는 것.’세상에 헌터가 없어지거나 적어져 던전을 관리하거나 처리하는 게 불가능해지면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찾아갈 것이다.
헌터를 없앴으니 다시 만들거나 그에 준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테니까.
‘혹시 벌써 그런 방법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르지.’그가 인류 멸망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명운 길드의 길드장인 강태운입니다. 저희 길드에 지원해주신 것에 감사하며….”태운은 침착히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하하… 감사합니다.
“현재 B급 이상의 지원자들은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제가 직접 만나 스카우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락드렸습니다.”-아… 언제쯤 만나고 싶으신가요?
“혹시 언제 가능하신가요?”
-내일 오전 11시에 홍대 부근에서 가능하신가요?
“네, 좋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태운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좋아… 걸려들었어.’
내일 강판덕은 이런저런 장치를 하고 약속 장소에 나올 것이다.
도청 장치는 물론이고 다른 조직원에게 감시를 받을 수도 있다.
강판덕을 납치해 직접 신문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최후의 방법이다.
꼬리가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빠르게 도망칠 것이다.
게다가 강판덕에게 협박을 해놓았을 것이기 때문에 절대 본인의 입으로는 말하지 않겠지.
‘하지만 약속 장소에 나온 순간 이미 끝난 거야.’강판덕은 내일 태운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Z는 물론, 강판덕 본인조차도 자신이 조직에 대해 털어놓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 * *
태운은 약속 장소에 20분 정도 미리 나와 육감을 활용해 주변 지리를 확실하게 파악해놓았다.
그 과정에서 수상한 사람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시선은 휴대폰을 향해 있지만 계속해서 태운을 신경 쓰며 어디론가 태운의 동향을 문자로 보내고 있었다.
태운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태운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도 쓰고 있어 태운을 알아보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스커레이드도 써서 인상을 바꿔놨으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지.’지금 태운이 인상착의를 알려준 사람은 강판덕뿐, 태운을 보고 수상하게 구는 사람은 그 조직의 조직원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저놈이 강판덕과 나를 감시하러 나온 놈인 게 분명한 것 같네.’그때, 누군가 태운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강판덕 씨 되십니까?”
“네, 반갑습니다.”
강판덕의 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평범한 길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헌터의 인상이었다.
얼굴에 흉터가 좀 있긴 했지만 이 정도 흉터는 헌터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흠… 조직 내에서 가장 평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니 이런 임무를 맡은 거겠지.’강판덕은 사람 좋게 웃으며 태운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런 차림으로 만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인지도도 있으니 어쩔 수 없죠.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사지 않아 좋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군요.”
태운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연기력이 좋지만… 나한테는 안 통하지.’
육감을 통해 녀석의 맥박과 심장 박동, 숨소리 등등 여러 요소로 거짓말을 탐지하고 있었으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네.’태운은 그에게 몰래 거짓말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에테르를 얻지 못했다면 이런 방법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감 차단류 마법을 제외한 마법은 마나 감지기로 마법을 감지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판덕의 몸에 마나 감지기가 없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몰래 마법을 쓸 수 없었겠지만 태운은 아니었다.
태운에게는 에테르가 있었고 에테르의 특성으로 마법을 사용할 때 조금의 마나도 흘리지 않아 마나 감지기에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강판덕의 기색을 보니 태운이 마법을 쓴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태운은 일단 천천히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저희 길드에 가입 신청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어… 그냥 끌렸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저런 복지가 굉장히 끌렸습니다. 그 어떤 길드와 비교해도 복지만큼은 훌륭하니까요.”
“감사합니다.”
태운은 대답을 하면서 걸어놓은 마법을 통해 강판덕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판단해보았다.
‘약 70% 정도의 확률로 거짓말인가….’
상정해놓고 연습한 대답이라서 그런지 긴장을 덜 해서 확실히 거짓말이라고 판단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태운은 에테르를 섞은 마나로 메테리얼을 세 개 만들었다.
‘브레인 스캐닝, 마인드 마리오네트, 자유 의지 부여.’태운은 직접 만든 세 가지 마법을 모두 강판덕에게 시전했다.
“감사하긴요. 명운 길드의 길드장님께서 직접 제게 찾아온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인걸요. 제가 헌터 일을 하기 시작한 지…”강판덕은 갑자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운을 주시하고 있던 사람의 인상이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의 강판덕과는 달랐지만 대화의 내용에서는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태운은 아니었다.
‘오호… Z 녀석 그런 곳에 사무실을 차려놨다 이거지?’태운은 강판덕의 말에서 Z와 조직의 정보를 알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