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놈들이 거짓말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나.”
“그렇죠…. 강태운 헌터가 거짓말 탐지 마법을 쓰고 있었으니까요.”“녀석들이 단체 세뇌를 했을 가능성은….”
“브레인 스캐닝으로 보는 건 정보가 감각 기관에서 뇌에 들어갔을 때의 그 순간을 보는 겁니다. 세뇌가 되었다고 해도 브레인 스캐닝으로는 통하지 않아요. 뇌를 열어서 정보를 바꿔치기하지 않는 한….”그렇게까지 할 거라면 차라리 기억을 지워 버리는 편이 더 쉬울 테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흐음….”
몽타주를 그린 덕분에 녀석들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진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농락당한 것 같은 기분이겠지.’
태운이 아니었다면 72명의 몽타주를 그려냈다고 해도 이렇게 정확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녀석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 모두 큰 특징이 없는 무던한 인상의 소유자들이었으니까.
“후…. 72명이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수사했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군요.”“그러게 말입니다. 다행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군요.”하지만 태운은 그것 때문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녀석이 생각보다 머리를 쓸 줄 아는 놈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렇다면… 그걸 항상 생각해야겠어.’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말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진실이 순식간에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
“일단 녀석들의 함정 하나를 간파해낸 거라고만 생각해라. 덕분에 72명 잡겠다고 고생했을 걸 생각해봐라. 난 그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
“그래, 강인철 헌터님 말씀이 맞다.”
가장 높은 직급을 가진 형사가 강인철 헌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고생했으니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어라.”
“““수고하셨습니다!”””
형사들은 물론 헌터들도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다들 각성자면서 엄살들이셔.’
헌터들은 물론이고 형사들도 각성자다.
보통 헌터가 되지 못한 각성자들이 각성계 형사가 된다고들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헌터가 돈을 많이 벌긴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은 아니다.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서너 달 동안 돈을 벌지 못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다.
물론, 한 번에 1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는 우습게 버는 일이기도 하니 수익 면에서는 비빌 수는 없다.
그렇다고는 하나 각성 범죄가 횡행하기 시작한 이후 각성계 형사의 월급이 굉장히 높아졌다.
생명의 위협이 종종 있긴 하지만 사람의 사지 정도는 가볍게 뜯어 버리는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월급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사는 걸 원하는 사람은 헌터가 되는 걸 포기하고 원래 지망하던 직업으로 가기도 하니까.’하지만 대부분의 각성자가 중학생 때 각성을 하니 헌터라는 직업의 유리한 부분만 보고 헌터 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다.
그렇게 생각 없이 헌터 학교에 진학했다가 피 보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서 자퇴하는 학생들처럼 말이지….’각성자가 되기만 해도 웬만한 병은 걸리지 않는 몸이 되니 건강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도 종종 있다.
‘의사나 변호사나 대기업 회사원 중에서도 각성자가 종종 있는 걸 보면 헌터가 그리 좋은 직업도 아니야.’돈을 충분히 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헌터라는 직업을 택해서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각성계 형사가 되는 건 헌터보다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게 다 매스컴에서 내비치는 상위 등급 헌터들의 모습 때문에 생긴 좋은 선입견 때문이지.’하지만 이런 선입견이라도 있어야 헌터의 수가 유지될 것이다.
그만큼 헌터의 현실은 각박한 법이다.
“자네도 집에 가서 쉬게. 아, 자네 집은 북한산 근처라고 했지?”이곳은 경기도 안성이다.
차가 없는 태운이 대중교통을 통해 가려면 족히 3시간은 걸리는 거리다.
밤도 늦었으니 그곳까지 가기는 좀 애매하다.
내일도 이곳에 와야 하니 더 애매해졌다.
“그냥 이 주변에서 모텔 잡고 자면 됩니다.”“이번 작전의 에이스가 그렇게 자게 둘 수는 없지. 우리 집으로 오게. 나름 협회에서 인정받는 몸이라 봉급이 낮지는 않아서 모텔보다는 훨씬 편할 거야.”“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히 가겠습니다.”
“이런 건 거절하지 않아서 참 좋구만.”
강태운은 밖으로 나와 바로 강인철의 차에 탔다.
“집은 여기서 30분이면 도착한다.”
“어? 그렇게 멀지는 않네요?”
과거 서울에 있는 던전에서 봤었기 때문에 강인철 헌터도 그 부근에서 사는 줄 알았다.
강인철 헌터 정도라면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게 어렵지도 않을 텐데 왜 이곳에 사는지 궁금했다.
“나 정도면 서울에 아파트 정도 사는 게 어렵지는 않지. 지금은 이야기하기 좀 그렇구나. 나중에 이야기해 주마.”
“예. 알겠습니다.”
태운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말을 아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30분을 달려 강인철 헌터의 집에 도착했다.
그냥 조금 여유 있는 가정이 살 법한 평범한 아파트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거실 하나에 방은 4개, 화장실은 2개인, 혼자 살기에는 꽤나 큰 집이었다.
하지만 딱히 같이 사는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 사시나 봐요? 그러기에는 집이 좀 큰 거 같은데….”“예전에는 조금 부대꼈지만 지금은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들이 죽은 후로는 나 혼자 살고 있다네.”
“어… 음…. 죄송합니다.”
갑자기 무심한 듯 튀어나오는 무거운 대답에 태운은 숙연해졌다.
강인철은 그런 태운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까지.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혼도 3년은 넘었고.”
“그래도….”
“앉게. 밥이나 같이 먹자고.”
“알겠습니다.”
강인철은 냄비에 담겨 있던 김치찌개를 데우고 몇 개의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렸다.
익숙한 솜씨였다.
“맛있네요.”
실제로 먹어보니 맛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정말 맛있으니까요.”
태운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조금 간은 세지만요.”
“집에 들어와서 하는 말들을 보고 순둥한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할 말은 하는 놈이로구나.”“그러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편이라.”“그래도 선은 지키는 걸 보니 넌 참 난 놈이야. 그런 놈 중에서 예의 없는 놈들을 참 많이 봤거든.”
“그런가요?”
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반찬과 함께 밥을 떠먹었다.
이런 집밥을 먹은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최근에 윤아가 차려준 밥을 먹긴 했지만 뭔가 다른 종류의 집밥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서 강인철은 사과를 깎아오더니 태운에게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음…. 이 아저씨의 주책맞은 이야기 좀 들어줄 수 있겠나? 숙식 비용이라고 생각하고.”“그렇게 말하면 안 들어줄 수 없죠. 애초에 흥미도 있었구요.”“참…. 이렇게 보고 있으면 첫째 아들 놈이랑 똑같은 놈이란 말이지…. 능글맞아가지곤….”강인철의 얼굴에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아들놈들 말이다. 모두 헌터가 되고 처음으로 들어간 던전에서 죽었다. 그것도 내 눈앞에서.”
“…….”
“참….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는 말하지만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녀석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죽을 때까지도 아른거릴 것 같단 말이지.”태운은 강인철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죽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주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첫째 아들놈은 이름 없는 헌터 아카데미를 나와서 유명 길드에 들어갈 정도로 유망한 녀석이었어. 둘째 아들놈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능력이 있었고 나의 추천으로 헌터 협회에 들어왔지.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좋았는지….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며 좋아했었어. 아내만 빼고…. 아내는 아들들이 헌터가 되는 걸 싫어했으니까.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그러셨을 것 같아요…. 강인철 헌터님이 헌터 일을 그만두시길 바라기도 하셨으니까요.”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강인철 헌터는 잠깐 작게 웃었지만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사건은 그때 터졌다. C급 던전의 몬스터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헌터 협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그래서 길드에 도움을 요청했어. 그 길드 중에는 첫째 아들이 소속되어 있는 헌터 길드도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나의 공격대에 둘째 아들놈도 포함되어 있었지.”
“…….”
“그 뒤로는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 위험한 던전 안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고…. 아들 두 놈을 모두 잃었지. 그 이후로 폐인처럼 살다가 결국에는 이혼까지 가게 되었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저승 가서 죽은 아들 두 놈한테 왜 먼저 갔느냐고 따질 낯이 없겠다 싶더구나.”강인철 헌터는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강인철 헌터님에게 그런 일이….’
태운은 강인철 헌터가 마냥 강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을지언정 언제나 강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이혼을 당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생각나는 게 셋째 아들이더구나. 그래서 염치없지만 아내에게 연락했네. 잘살고 있다고 연락이 왔어. 그 뒤에 꼭 붙는 말이 ‘헌터는 절대 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이었지. 그 말이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혔단다.”
“…….”
“셋째는 각성을 하지도 않았는데 꼭 그 말을 붙였어야 했는지…. 참 짓궂은 여자야….”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태운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강인철 헌터가 아직도 전 아내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도 전 아내를 아내라고 부르기만 하지 전 아내라고 부르지는 않으니까.’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혼을 하기는 했어도 스킬 공유를 끊지 않았으니까.
던전에서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게다가 현실에서 강인철 헌터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아내분이 오셔서 날 그렇게 살벌하게 쳐다보셨으니까….’태운은 그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그 말을 꺼냈다가 그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으니까.
태운은 이 세상에서도 둘이 재결합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강인철 헌터의 아내는 이미 강인철 헌터의 한심한 모습을 보았고 아들을 둘이나 잃는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둘이 같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안타깝네요.”
“그래도… 아내한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해. 덕분에 죽음을 벗어난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내가 폐인처럼 살 때 2년이나 옆에서 버텨줬으니까…. 그런 사람을 미워하면 난 사람도 아니지….”마치 술에 취한 듯 말끝을 흐리는 강인철 헌터였다.
‘둘이 재결합하는 일은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이 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한번 만나러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