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생각보다 녀석들의 덩치가 더 큰 것 같습니다.”강인철 헌터와 태운이 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방금 저희가 잡은 녀석들은 조직의 말단 인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 것 같더군요.”“일단 들어가겠네.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강인철 헌터는 태운을 놔두고 심문실에 들어갔다.
태운도 별말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따랐다.
괜히 들어가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형사님?”
“네?”
태운은 옆에 있는 형사에게 말을 걸었다.
“저 녀석들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 그럼 저기 앉으시죠.”
태운과 형사는 옆에 있던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태운을 무시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지만 이 사람은 아닌 듯했다.
물론, 방금 태운이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을 살렸으니 더 이상 무시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녀석들에게서 알아낸 게 뭐죠?”
“뭐… 아까 들으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조직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녀석들이 뭐라고 했나요?”
“단순합니다. 녀석들이 알고 있는 조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좀 캐냈습니다. 굉장히 체계적이더군요. 한 명의 판매책이 알고 있는 동료 조직원은 8명으로 모두 동일하더군요. 맡는 역할도 똑같고요. 그런데도 알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겹치질 않았습니다.”
“흐음….”
지금 우리가 잡은 사람들은 모두 21명이다.
단순히 마약을 사기 위해 온 사람을 제외하면 9명‘녀석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겹치지 않았다면 판매책을 포함한 조직원은 최소 81명, 하지만 판매책이 얼굴도 보지 못한 간부도 있겠지. 그럼 최소 100명은 있다고 봐야겠는데….’한 팀에 판매책이 한 명일 정도로 조심스러운 녀석이다.
태운의 예상대로 아마 녀석들을 모조리 일망타진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 일로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 더욱 몸을 사릴 거야.’형사도 그것을 알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녀석들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겠죠?”“예, 최면 마법은 통하지 않았지만 거짓말 탐지 마법은 통했으니까요.”“그렇군요…. 거짓말 탐지는 스킬이나 특성이 아니고 보통 사용되는 ‘라이 디텍터’ 마법인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녀석들이 말한 것과 사실이 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
“강인철 헌터님 좀 불러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네, 알겠습니다.”
라이 디텍터라는 마법은 거짓말 탐지기와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진 마법이다.
대상의 맥박과 뇌파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파악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기계로 만들어진 거짓말 탐지기와는 수준이 다른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지?”
“뭐, 알아낸 건 있으신가요?”
강인철은 고개를 저었다.
“참…. 생각이 복잡해지더구나. 너도 대충 들었을 거다. 녀석들의 규모가 상당한 것과 조직 대가리가 상당히 치밀한 놈이라는 것 정도 말고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말단 판매책이라 그런지 마약 공장의 위치도 모르더군. 사무실 같은 곳도 없었다고 하고…. 간부를 만날 때에도 길에서 납치되듯 끌려가 폐공장 같은 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물론 돌아갈 때도 똑같이 집에 배달돼서 그 위치도 알지 못하더군.”“참…. 과할 정도로 치밀하네요. 일말의 힌트도 주지 않겠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날 부른 이유는 뭐지?”
“잠시만요. 이 마법을 써본 적은 없는데 시험 한번 해봐도 될까요?”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메테리얼을 만들었다.
“정신 장악류 마법인데 괜찮으시죠?”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
“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태운은 자신이 직접 만든 정신 장악 마법인 ‘브레인 스캐닝’ 마법을 사용했다.
그 마법을 사용하자 강인철의 눈에 밝은 빛이 들어왔다.
“음…? 정신 장악류 마법이라고 하지 않았나?”
“잘 걸렸나….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태운은 그 상태로 강인철에게 질문했다.
태운의 질문이 시작되자 강인철의 눈이 뒤집혔다.
하지만 강인철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운의 질문을 경청했다.
“아까 저 조직원들 잡을 때 있던 방에 탁자 위에 있던 컵 개수가 몇 개였죠? 그리고 거기에 담겨 있던 음료의 종류는?”굉장히 디테일한 질문이었다.
게다가 문을 열고 전투가 일어나자마자 테이블이 엎어져 컵이 죄다 깨졌었다.
그 위에 있던 컵의 개수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15개, 13개의 컵에는 종류는 모르겠지만 위스키가 담겨 있군…. 나머지 2개에는 맥주가 담겨 있어.”
“정확하겠죠?”
“그럼. 맥주가 담겨 있던 컵 중 하나는 거의 다 마셨고 하나는 가득 담겨 있네. 위스키도 말해줄까?”
“됐습니다. 마법은 잘못되지 않았네요.”
태운은 강인철에게 건 마법을 해제했다.
그러자 강인철은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방금까지 자신이 했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잠깐,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는 거지?”“제가 만든 브레인 스캐닝이라는 마법입니다. 말 그대로 머리에 남아 있는 기억을 그대로 스캔해서 구체화하는 거죠.”“…대단하군. 하지만 대답의 강제성은 없었던 것 같은데….”강인철의 말대로였다.
브래인 스캐닝은 대상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구체화하는 마법일 뿐, 조금의 강제성도 띠지 않는다.
심지어는 조금의 저항만 있어도 일반인에게조차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다.
“정신 장악 류 마법을 동시에 두 개나 사용하면 정신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강제성이 없어도 충분히 대답시킬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가….”
강인철은 한번 빙긋 웃고는 말했다.
“그럼 한번 맡겨봐도 되겠나.”
“당연하죠.”
* * *
태운은 가장 고분고분하게 입을 열었던 조직원 하나를 데리고 따로 심문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별말 없이 녀석을 의자에 앉혀놓았다.
“참…. 하다 하다 고삐리 새끼한테까지….”형사들에게 들은 바로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녀석이었다고 했는데 태운을 보니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나이가 어린 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런 점은 참 안타깝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만으로 무시를 당하니 말이다.
‘적의’
태운은 최근에 파견을 다니면서 다시 얻은 스킬인 적의를 사용했다.
적의를 사용하자 녀석은 당장이라도 지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지금 너에게 마법 하나를 걸 거야. 조금도 위험하지 않아. 단순히 네 기억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깨워주는 마법일 뿐이다. 네가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풀리니까 이렇게 다 말해주는 거야.”
“그걸 말하면 내가 참도 가만히 있겠….”
“저항할 생각하지 마.”
태운은 그 상태로 녀석의 귀를 잡고는 끌어당겼다.
“난 경찰도 아니고 헌터도 아니니까 실수로 널 죽여도 잘릴 걱정은 없어. 그리고 저기에는 널 대신할 친구들이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녀석은 그 순간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꼴에 자존심은 있나 보네. 죽인다니까 겁은 먹어도 말은 안 하네.’여하튼 이 정도 이야기했으니 겁이 많은 녀석이라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브레인 스캐닝.’
태운은 녀석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의 이펙트가 나오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녀석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 마법은 대상에게 질문을 해야 효과가 나온다.
“네가 간부를 만난 순간을 기억해 봐라.”
태운의 질문이 끝나자 녀석의 눈이 돌아가더니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녀석에게 거짓말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거짓말 탐지 마법은 단순한 탐지 마법일 뿐, 정신 관련 마법이 아니기 때문에 큰 위험이 없다.
태운이 녀석을 죽이겠답시고 난리를 치긴 했지만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혹시 더 얻어낼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리고 거기서 만난 녀석들의 인상착의와 얼굴을 자세히 묘사해 봐라.”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신호를 보내 몽타주 전문가를 불렀다.
녀석을 계속해서 얼굴을 묘사했고 새로 들어온 사람은 몽타주를 그렸다.
이제 남은 문제는 녀석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었다.
‘브레인 스캐닝은 그냥 단순히 판단력을 조금 흐리고 당시의 기억을 머리에서 재생시키는 거니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그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거짓말을 하겠다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태운이 사용한 거짓말 탐지 마법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거짓말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몽타주는 완성이 되었고 태운은 마법을 해제하고 녀석을 깨웠다.
“이게 뭐야….”
그는 강인철처럼 마법이 해제되어서야 상황을 판단했다.
태운은 당황해하는 녀석에게 다짜고짜 몽타주를 들이밀었다.
“네가 방금 봤던 녀석들 맞아?”
“어…. 그래….”
녀석은 몽타주에 그려진 얼굴을 한 번 싹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모르고?”
“이름은…. 오른쪽부터 이정용, 정신주, 강철주….”이름은 브레인 스캐닝을 사용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 번 본 것치고는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데…? 좀 이상한데….’태운은 일단 녀석을 내보내고 다음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전에 심문했던 사람과 똑같이 심문했다.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했고 태운은 72개의 몽타주를 얻을 수 있었다.
“근데 마지막에 그놈은 소리는 왜 지른 거야?”
“그냥… 깜짝 놀래켰어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하….”
마지막 녀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치다가 태운에게 손목이 부러지긴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심문은 끝이 났다.
밖에서 보고 있던 형사들이 눈치채기 전에 바로 고쳐주었으니까.
“후…. 손목 부러질 것 같네요….”
“그래도 퀄리티 높은 몽타주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다행입니다.”“다 태운이 덕분이지. 여튼 이거 전부 깔아 봐. 얼굴 한번 보자. 나중에 스캔 떠서 다들 카톡으로 보내줄 테니까 저장해놓고.”“휴…. 몽타주를 한 번에 72개나 저장하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한 사람이 잠깐 본 여러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어렵고 묘사는 더 어려운 일이니까.
지금껏 이렇게 많은 수의 몽타주를 한 번에 받아든 적은 없었을 것이다.
막내 형사가 탁자를 치우고 바닥에 몽타주를 쫙 깔았다.
“흐음…. 잠깐만요….”
“야, 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랑 같은 생각하고 있지.”
“그런… 거 같은데요?”
녀석들의 묘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몽타주가 조금 다르게 나와 알아보지 못했지만 분명했다.
“이거 72명이 아니라 8명인데요?”
“이 새끼들…. 이름도 다 다르게 해놓고… 무슨….”몽타주에 그려져 있던 사람들은 8명이었다.
즉, 8명의 같은 사람이 다른 이름을 걸고 판매책을 만나 자신들의 규모를 숨기고 있던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더 미친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