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82화 (182/379)

182화

태운은 뉴스의 소식을 듣고는 마나 실을 길게 늘어뜨리고 직감을 활성화한 채로 집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서울이 작은 마을도 아니고 태운의 주변에 테러범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별일 없이 집에 도착한 태운을 윤아가 반겨주었다.

최근에 명운 아카데미에서 받아주는 의뢰를 해결하고 돈을 받아 윤아에게 용돈을 많이 주었더니 많이 살가워졌다.

“네~ 반가운 건 알겠는데요. 일단 씻고 싶어요.”“오케. 밥해 놨으니까 얼른 나와서 먹어.”

“음…… 알겠어.”

태운은 이렇게 말하는 게 굉장히 어색했다.

대화 자체가 어색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밥을 해놨다는 윤아의 말에 알겠다고 말하는 자신이 어색했다.

‘원래는 엄청나게 끔찍한 음식들만 만들어왔는데…….’그 요리들이 윤아가 연금술에 관련된 특성을 각성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거라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지금 윤아는 연금술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서 음식 실력이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원래 버릇을 버리지 못해 아직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윤아는 오히려 음식을 잘한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음식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윤아의 연금술도 칠죄종에 관련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윤아가 연금술 특성을 각성할 키인 최악의 요리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이유가 없지 않는가.

태운은 윤아의 연금술 특성도 어쩌면 칠죄종의 저주에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현실과 이 세계가 다른 것은 칠죄신교의 유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것 말고도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태운이 알고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태운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 도중에도 윤아에 대한 고민이 지워지질 않았다.

칠죄신교가 없어지고 칠죄종의 저주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윤아의 연금술 특성이 사라졌다.

그것 때문에 태운의 고민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실의 윤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칠죄종의 저주에서 비롯된 거라는 건가…?’힘의 출처가 칠죄종이라는 것은 조금도 께름칙하지 않다, 걱정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만약 힘의 출처가 칠죄종이고…… 그것 때문에 윤아가 마기에 잠식된다든가… 다른 방법이라도 잘못된다면….’윤아의 각성을 축하하고 특성 개발을 종용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가서 윤아의 특성 개발을 멈춰야겠어. 윤아의 특성의 출처가 분명해질 때까지만 이라도….’태운은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후 윤아가 차려놓은 밥상 앞에 앉았다.

‘와…… 그런데 음식 진짜 잘하네.’

국물이 뽀얗게 올라온 소고기 미역국에 짭짤한 명란젓을 가운데에 넣은 계란말이,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김이 폴폴 올라오는 흰 밥.

한국인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조합의 밥상이었다.

고민과 걱정과는 별개로 집에 돌아오니 이런 밥상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앞으로 밥 자주 차려줘야겠네.’

요즘 바빠서 윤아를 집에 혼자 둔 시간이 많았다.

연정아가 자주 가서 같이 있어 주기는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정석이 보여주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따뜻한 밥상을 받아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윤아에게도 이런 밥상을 오랜만에 차려주고 싶었다.

태운은 맛있게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현실에 혼자 있을 윤아의 생각에 쉽게 잠이 들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 * *

또다시 한 달이 지났다.

태운은 장현수와의 연구를 계속했고 600개 정도였던 그의 룬 버프 마법을 간추리고 강화해 100개 정도로 정리했다.

그편이 사용하기도 더욱 편하고 연구하는 데에도 필요한 일이니까.

600개 정도의 룬 버프 마법을 전부 메모하고 정리하긴 했지만 가장 효율과 성능이 좋은 룬 버프 마법을 우선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100개를 먼저 정리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간추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태운이 지금까지 버프 마법을 만들어온 노하우와 경험을 곁들여 개량도 했다.

덕분에 더 나은 버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장현수는 지금까지의 수고를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우선 순위로 정해놓은 100개의 룬 버프 마법을 전부 개량하는 데 성공했다.

“후……!”

장현수는 어느새 태운보다도 더 이 연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피곤하다며 조금 칭얼거리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태운보다도 더욱 집중해서 연구했다.

“드디어 끝났네요.”

태운은 끝났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장현수는 깜짝 놀라며 태운에게 되물었다.

“끝이야?”

“네. 더 이상 형 괴롭힐 일은 없겠네요.”

장현수는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라면 분명히 남은 500개의 룬 버프 마법도 정리하고 개량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다음 해 1월 1일이 되는 순간 태운은 이 마정석을 클리어하고 현실로 되돌아가게 된다.

지금은 9월이다.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연구의 목표는 완수했으니 더 이상 이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계속 연구한다면 얻을 게 없지는 않겠지만… 남은 3개월 동안 할 수 있는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거야.’태운은 룬 연구를 시작하고 1개월 동안 이 연구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전하와 같이 발도술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고 이설아와 얼음 마법을 겨루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태운도 배운 것이 있었지만 이설아와 공전하는 엄청난 실력 향상을 보였다.

태운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 효학반의 효과가 여기까지 미치는 것 같았다.

‘현실의 특성이긴 하지만 내 성격이 바뀐 건 아니니까.’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정보는 많이 얻었어요. 고마워요.”

“허…… 조금은 아쉽네.”

“저도 아쉬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계속하고 싶거든요.”“그래, 근데 그땐 지금의 절반만 열심히 하자.”태운은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하게 된다면 저도 시간이 많지는 않을 거라 지금처럼 하지는 못할 거예요.”

“다행이네.”

“그럼 전 가볼게요.”

“그래, 수고하고.”

태운과 장현수는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헤어졌다.

“간만에 지하 훈련장에 가볼까…?”

근 한 달 동안 룬에 대해 연구한답시고 지하 훈련장에 간 적이 없었다.

‘연구가 아니더라도 의뢰받아서 파견 다니느라 훈련장에 못 갔지.’그렇게 훈련까지 내팽개치면서 한 연구인 만큼 성과는 확실했다.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 말하는 룬이 아닌 실제로 장현수가 사용하는 룬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말이다.

사실 태운이 알아낸 룬의 정체를 말하면 실망할 사람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았다.

‘룬의 정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자세히 말하면 룬은 장현수가 고난이도의 버프 마법을 시전하면서 사용하던 ‘상징’에 불과했다.

고난이도의 버프 마법을 사용하려면 굉장히 수준 높은 수식을 풀어야 하는데 장현수는 특성의 힘으로 그것을 생략하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라는 것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복잡한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시전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그 이미지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룬이라는 가상의 문자인 것이다.

‘그러니까 장현수가 사용하던 룬 버프 마법은 단순히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고난도인 버프 마법이었던 거지.’그것을 깨닫자 룬 버프 마법 개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장현수가 룬 버프 마법을 만들면 태운은 그것을 수식으로 변환했고 그것에서 보이는 단점을 장현수가 고치는 방식으로 개량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막히는 일은 없었다.

‘조금 아쉽긴 하네. 룬 버프 마법을 대중화할 수는 없으니까.’고난도의 마법일 뿐이긴 했지만 일반 마나의 가변성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만약 룬 버프 마법을 대중화할 수 있다면 헌터 계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사건이 되었겠지만 그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태운은 룬 버프 마법을 구현할 수 있었다.

변이된 마나의 가변성과 활용도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변이된 마나의 가변성은 정말 사기적인 특성이야.’지금까지 이걸 모르고 활용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쉬웠다.

태운은 아카데미 밖으로 나서자마자 마나 실을 길게 늘어뜨리고 직감을 활성화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나왔기 때문이다.

논산에서 큰 테러를 일으키고 서울로 넘어온 테러범이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는 정보가 말이다.

태운이 다니는 루트에는 귀신같이 나타나지 않아 아직 태운이 잡지 못했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서도 마스터 등급 학생 세 명을 파견 보냈지만 녀석의 발자국도 찾지 못했다.

‘도망 다니는 건 정말 잘하는 놈이야.’

태운은 혹시나 해서 매일 다니던 루트를 살짝 틀어 걷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직감을 활성화하고 다니니 직감의 레벨도 상당히 많이 올랐다.

이건 나름 좋은 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정석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는 하나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녀석이 이곳을 엉망으로 만들기 전에 꼭 잡고 싶었다.

그렇게 5분이나 지났을까.

태운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뭐지……?’

태운의 마나 실을 모두 태워 버리는 강렬하고 폭력적인 기운이 마나 실로부터 태운에게 전해졌다.

‘녀석인가?’

태운의 직감이 녀석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녀석의 힘이 C급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A급은 될 것 같은데……?’A급이면 지금의 태운도 방심할 수 없는 적이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마나 실로 느껴지는 녀석의 상태는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불안정했으니까.

“하이 부스트.”

태운은 하이 부스트를 사용하고 바로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녀석은 건물 사이의 그늘에서 쭈그려 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떨고 있는 이유는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 떨림은 쾌락에서 비롯된 떨림이었다.

“맞네.”

몽타주와 인상착의가 똑같았다.

태운은 녀석의 힘의 크기가 상당함을 느끼고 방심하지 않고 즉시 제압에 나섰다.

그때, 녀석이 천천히 일어나 태운에게 손을 뻗었다.

“음……?”

그 순간.

퍼버버버벙!!!

양쪽 건물이 모두 무너져 버릴 듯한 폭발이 태운에게 쏟아졌다.

“이런 무슨…….”

태운은 성벽 갑주를 사용해 공격을 막아냈지만 양옆의 건물들은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A급 헌터 수준의 힘을 가졌다고 해도 초장부터 이런 범위의 공격이라니.

제정신이 아닌 건 분명했다.

“크흐흐흐…….”

녀석의 표정과 웃음소리.

그리고 녀석의 팔에 뚫려 있는 주사 자국 수십 개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