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태운이 마스터 등급으로 승급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4달 동안 해외 파견만 15번이나 나간 걸 제외하면 별일 없긴 하지.’말이 15번이지 국내의 자잘한 사건에 파견 나간 것까지 따지면 40번이 넘을 것이다.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도 했지만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았다.
국내외 일류 헌터들과 만나서 그들의 노하우와 능력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힘의 크기가 작아지니 이런 디테일에 신경 쓰게 되더라….’과거의 태운은 더 나은, 더 좋은 마법을 만들고 스킬을 얻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고 스킬과 특성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약해지자 더욱 폭넓은 힘을 추구하게 되었다.
덕분에 많은 스킬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구현할 수 없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변이된 마나의 활용성을 바탕으로 구현할 수 있을 거야.’그들의 스킬이 어떤 방식으로 발동하는지 알아보니 힘들기야 하겠지만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아카데미 되게 오랜만인 거 같네.”
지금 태운은 2주일 동안 3개의 파견 의뢰를 빠르게 끝마치고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발을 들였다.
태운이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익스퍼트 교사에 들어갈 수 있게 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같은 아카데미의 학생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다른 단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허가증이 필요했다.
‘이런 걸 보면 참 융통성이 없단 말이지.’
태운이 익스퍼트 교사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태운은 헌터들로부터 스킬의 힌트들을 얻으면서 아카데미 내에서 한 분야라도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현시점에서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가진 분야가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시저도, 정일준도, 구찬영도 아니었다, 오히려 본신의 힘만으로는 여기 있는 그 누구와도 비등하게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태운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의 교실로 걸어갔다.
‘아마 지금 시간이면 동아리실에서 수업 전 연구를 하고 있겠지?’그는 익스퍼트 내에서도 약한 편에 속하는 학생들이 많은 동아리를 본선에 올려보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런 실력을 가지고도 매일 같이 동아리실에서 자신의 특성과 스킬을 갈고닦는 사람이다.
“여긴가?”
태운은 월령의 동아리실 문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너무 집중해서 들리지 않는 건가?
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태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을 감고 아주 깊게 집중하고 있는 월령의 수장, 장현수의 모습이었다.
룬의 주인이라는 특성을 타고나 특별한 버프를 걸어줄 수 있는 그는 태운보다도 뛰어난 버프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작 익스퍼트 1년 차인 브론즈 C반 학생의 스탯을 골드 B반의 수준까지 올려줄 수 있다.
‘물론 단순히 스탯을 높여주는 것으로만 보면 나도 꿇리진 않겠지만 장현수의 진짜 장점은 그게 아니지.’룬의 주인이라는 특성은 고작 많은 스탯을 올려주는 버프를 사용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마나로 구현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버프를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특성이다.
‘룬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힌트가 있겠지.’만화나 소설에서는 흔히 말하는 룬이라는 것을 고대 문자로서 마법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장현수가 룬의 주인이라는 특성을 각성한 후 수많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룬 문자와 마법의 연관성은 전혀 찾지 못했다.
그리고 태운은 연관성을 찾지 못한 이유가 마나의 활용도에 있다고 보았다.
‘룬을 사용하기에는 일반적인 마나는 가변성이 부족한 거겠지.’그렇다고는 하지만 태운도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음…. 일단 놔둬 볼까,”
태운은 집중하고 있는 장현수를 딱히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훈련을 방해해 반감이라도 샀다가는 그가 태운의 일을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웬만하면 도와주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라도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을 가지고 왔으니까.
“그러고 보니 상당한 집중력이네.”
장현수는 태운이 눈앞에 서서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도 깨어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일어날 테니 조금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어차피 어제 의뢰를 빨리 끝내서 오늘까지는 아카데미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니까.”하루 종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태운이 옆에 의자를 꺼내 앉아 기다리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던 장현수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어…? 너 뭐야?”
장현수는 눈을 뜨자마자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어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잠깐, 너… 강태운 아니야?”
“절 아네요?”
“아카데미에서 널 모르면 간첩이지. 스타지에르에서 한 번에 마스터 승급한 사람인데.”
“오호… 나 생각보다 유명하구나….”
현실에서 워낙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끌고 있어서 이 정도 관심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나름 많은 관심을 끌고 있었지만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조금 빠른 속도로 던전을 공략하거나 테러범들을 제압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현실에서는 고렘을 만들고 칠죄신교의 원로들을 처리하고 거대 몬스터들을 잡고 다녔으니까.
전 세계의 관심이 태운을 향하고 있었다.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그 관심이 분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관심이었다.
“그나저나 왜 들어온 건데?”
태운은 장현수와 같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온 것일 뿐이지만 장현수의 입장에서 태운은 훈련 중 갑자기 쳐들어온 불청객에 불과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뭔데?”
“저와 버프에 대해서 연구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하….”
장현수는 태운의 뻔뻔함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난 나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아. 돈이라도 줄 거야?”장현수가 돈 얘기를 꺼냈지만 천금을 꺼내놔도 그는 태운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장현수의 특성을 연구하고자 수많은 기업들이 천금을 내놓았지만 장현수는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장현수는 오성 기업 회장의 손자니까…. 재벌 3세가 뭐가 아까워서 그 돈을 받고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겠어?’태운은 장현수가 바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연구에 참여한다면 저는 당신이 룬의 주인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해줄 수 있습니다.”
“무슨 자신감이지?”
오성 기업에 소속된 실력 있는 연구원들이 수많은 연구를 했음에도 밝혀낸 것이 없는 특성이다.
그런데 고작 성인도 되지 못한 녀석이 뭘 안다고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인지.
장현수는 그의 행동에 거부감까지 느꼈다.
“난 너 같은 놈이 제일 싫어. 조금 잘났다고 모든 사람들을 자신보다 아래인 것처럼 생각하는 놈들 말이야.”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요.”
“싫어할 줄은 알았나 보네?”
장현수는 태운의 말에 조금도 밀려나지 않고 맞섰다.
‘한마디를 안 지네….’
장현수가 태운에게 이렇게나 반감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프라이드였다.
그도 태운의 힘과 실력은 알고 있었고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헌터도 자신의 버프 능력은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버프는 사실상 저성능의 특성을 하나 붙여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 저성능이지 특성 비슷한 걸 붙여주는 것은 사실 혁명 수준의 버프다.
하지만 장현수는 모르고 있었다.
태운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장현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태운이 이것을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장현수는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태운이 실력을 보여주는 쪽이 더 나았다.
“하이 부스트”
태운은 바로 장현수에게 하이 부스트를 사용했다.
“뭐 하는 거야? 신체 강화류 마법…. 성능이 상당하긴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나보다 뛰어나다고 할 거였다면 당장 꺼져.”
“그럴 거였으면 오지도 않았어요.”
고작 이 정도였다면 태운은 장현수를 꾀어낼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태운은 오버 서플라이의 원리를 활용해 하이 부스트의 강도를 높게 끌어올렸다.
“크윽…! 무슨… 이게 무슨 짓이야!”
장현수는 온몸이 달아오르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고 태운은 멈추지 않았다.
태운이 하이 부스트의 성능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오버 서플라이로 하이 부스트에 마나를 극한으로 불어넣은 적이 있었다.
수식으로 정해놓은 한계를 넘어 마나를 주입하자 마나는 과열을 일으키며 몸을 달궜다.
결국에는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에 사로잡혔고 결국에는 실험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든 마법이 바로 오버 부스트다.
수식을 변형해 몸의 부담을 주는 대신 수식으로 정해놓은 마나양의 한계를 지운 것이 오버 부스트였다.
마나 과열로 인한 고통과 데미지가 근육 파열보다 더욱 심각했으니까.
차선책으로 이걸 만든 것이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까요?”
“크으윽….”
장현수도 이런 적이 있을 것이다.
마나 과열은 실험자라면 분명 겪을 법한 흔한 사고니까.
“이 개자식이…!”
장현수는 자신의 마나로 태운의 마나를 밀어내며 마나 과열에서 벗어났다.
“고작 그렇게 끝내겠죠. 하지만 저는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보기로 했습니다.”마나 과열도 결국에는 과열이다.
하지만 그게 일반적인 열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마나 과열로 인해 생기는 열은 표현이 열일 뿐, 실제의 열이 아니다.
“마나가 과부하를 일으켜 열을 발생시키고 그것이 마나 회로를 타들어 가게 한다….”태운은 자신의 몸에 하이 부스트를 사용하고 마나를 주입했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저였다면 이 과부하된 마나를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마나의 열기를 활용, 실제 열을 발생시킬 겁니다.”치이익….
태운은 마나의 열기를 활용해 간단한 수식으로 진짜 열을 발생시켰다.
태운의 몸에서 수증기가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장현수는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다음 태운이 할 일은 간단했으니까.
“아이스.”
마나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사실 해낸 사람도 없을뿐더러 가능한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마나의 열기를 낮추는 방법만 생각했다.’하지만 태운은 마나의 열기를 활용해 실제 열을 발생시키고 그것을 식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장현수는 그런 발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생각보다 효율은 안 나오네요.”
태운은 마나의 열기를 해결하고 신체 강화를 온전히 유지한 채 서 있었다.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도움이 될 것 같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