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24화 (124/379)

124화

“아…. 알겠어.”

칠죄신교의 계획을 알려주고 부탁과 제안을 하러 온 연정아는 태운의 말에 반대로 설득당했다.

연정아는 태운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 평가는 아직 학생 시절에 그쳐 있었다.

그녀는 헌터가 된 강태운을 많이 만나지 못했기에 학생 시절과 달라진 그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나도 항상 녀석들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고 있어.”태운이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절대 아니었다.

잠시 시야를 돌려 그들의 계획을 망가뜨릴 장치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태운의 최종 목표였으니까.

“그래도 정보는 고마워.”

칠죄신교의 최종 목표가 데블스 에이지의 재림이라는 것을 확실히 확인했고 그 계획의 진행도가 어느 정도인지까지 알 수 있었다.

그 정보만 해도 매우 귀중한 정보였다.

하지만 연정아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키메라 기억하지?”

“기억하고 있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 그 골목길의 마법사 원로와 함께 짝을 이뤄 움직이고 있던 그 거대한 생명체를.

“칠죄신교의 교단이 곧 녀석들을 풀 것 같아. 그것도 수천 마리를.”

“뭐…?”

전투력 자체로 보면 B급 헌터들도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이지만 문제는 전투력만이 아니었다.

상처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기.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어떤 고통에도 주눅 들지 않는 괴물들이기 때문이었다.

‘B급 헌터 20명이면 키메라 녀석들을 수십 명은 막아낼 수 있겠지….’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B급 헌터들은 체력과 마나 고갈에 허덕이며 하나둘씩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수는 수천. 파도처럼 쏟아지는 녀석들을 막을 수 없다.

“아마 그 일도 1년 내로 일어날 거야. 전 세계적인 혼란을 야기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데블스 에이지를 일으키기 위해서겠지.”하지만 태운은 그 말을 듣고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차분하게 식히고 혼잣말을 하며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자재… 시스템… 인챈터의 수준… 생산 성공률… 흠…. 오케.”태운은 몇 초간 혼자 중얼거리다가 연정아에게 말했다.

“6개월 내로 1,000기의 골렘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면 막아낼 수 있을까?”

“뭐…?”

물론, 혼자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특허를 내는 이유도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골렘의 힘은 B급 상위. 물론, 움직임이 어색해서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건 무리겠지만….’그래도 녀석 정도면 칠죄신교가 자랑하는 키메라를 뭉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골렘을 활용하면 인명 피해도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다.

“고마워. 앞으로도 이런 정보가 있다면 알려줘. 혹시 알아? 내가 해결법을 찾아낼지도 모르잖아.”

“어….”

연정아는 어느새 어엿한 헌터의 모습을 풍기는 태운을 보면서 내심 놀랐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있었을 당시의 태운도 어른스럽고 단단한 느낌을 가지고 었지만 그것과는 무엇인가 달랐다.

그때는 ‘헌터를 하면 잘하겠다’라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엄청 의지가 되었다.

마치 거목과도 같이 의지가 되었다.

‘약간 유치하지만 전대섭 선생님이 풍기는 영웅의 기운이….’

“그럼 난 이제 갈게.”

연정아는 뒤돌아가는 태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전대섭이 강한 힘을 휘두르는 것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면 태운은 악에 맞서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게 될 거라고.

* * *

“자하르 선생님 저 왔습니다.”

태운은 어두운 표정으로 자하르의 연구실로 들어왔다.

“특허 내고 왔나?”

“예, 근데 쉽지 않네요.”

태운은 헌터 협회의 헌터 물품 특허 관리부에 찾아가 특허 신청을 했다.

그들은 태운이 내민 제품 기획도를 보고는 깜짝 놀라 관리부 단독으로 결정할 안건이 아니라며 윗선으로 보고를 했다.

“그래도 골렘 정도의 성능을 가진 물품에 특허를 허가해주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엄격하더군요.”오히려 골렘의 뛰어난 성능이 특허를 내는 과정에서 발목을 잡고 말았다.

“성능이 너무 뛰어나서 심의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할 것 같다네요.”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골렘 수준의 성능을 가진 자동 전투 기계. 그 특성을 생각해보면 국민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수년 후 골렘이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스며들었을 때 골렘을 만든 사람이 악의를 품고 골렘에 무언가 장치를 해 테러를 한다면?

그건 배반자들의 테러보다도 더욱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었다.

“일단 저에 대한 것도 검증을 해야 하고 골렘에도 구동을 하기 위한 장치 이외에 다른 마법이 사용되었는지도 확인을 해야 한답니다.”“음…. 어쩌면 당연한 거지. 일을 꼼꼼히 하는구만.”“생각해보니 골렘에 보안 마법을 좀 걸어놔야겠습니다. 누군가가 마법으로 해킹을 해서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니까요. 사실 그걸 해킹할 정도의 실력자가 굳이 골렘을 해킹해 테러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요.”골렘에 걸린 마법들의 수는 무려 48개다.

그것을 전부 해킹해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너무 가성비가 떨어진다.

해킹할 마력으로 광역 마법을 서너 개 정도 사용하는 게 더 큰 소란이 벌어질 거다.

“그래도 수고했다. 어제 골렘을 보고 생각이 깊어지더군. 고작 20살밖에 되지 않는 네가 만든 이 골렘이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텐데 나는 지금까지 뭘 했나 싶더군.”

“아닙….”

자하르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발명품의 기본이 되는 원리들을 밝혀냈었다.

태운은 그것을 예로 들며 자하르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마치 20대 초반의 스포츠 선수, 자하르의 눈빛은 그들의 눈빛과 비슷했다.

태운이 지금 그를 위로한다면 그건 위로가 아닌 단순히 기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입을 다문 것이다.

“그럼 오늘의 마정석은 뭔가요?”

“우중충한 늪에서 나온 마정석 3개일세. 처음은 몸풀기로 하급 마정석 먼저 흡수하게나.”

“알겠습니다.”

태운은 캡슐에 누워 자하르가 쥐어준 마정석을 흡수했다.

* * *

“으음….”

태운은 숲 한가운데에서 눈을 떴다.

여행 중에 야영을 하고 지금 막 일어난 듯했다.

활활 타오르진 않지만 온기가 남아있는 모닥불과 따뜻하지는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 모포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후… 이번에는 동료 같은 건 없나 보네.”

태운이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그때.

“저기다!”

“잡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쫓는지 확인할 단서는 없었으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쫓는 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몸의 주인은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녔기에…!”태운은 자리도 정리하지 못하고 바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태운의 머리에 몸 주인의 기억이 들어왔다.

[도둑 겔릭은 평소 욕심이 많은 귀족들의 물품을 훔쳐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명 의적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겔릭이 귀족의 물품을 훔쳐 팔고 쌀을 사서 작은 마을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하지만 한 탐관오리에 의해 겔릭의 동선이 발각되어 도움을 받은 마을의 사람들은 모조리 처형당하고 맙니다. 겔릭은 죄책감과 복수심에 불타 그 탐관오리의 목을 베고 도주 중입니다. 숲을 빠져나와 도주에 성공하십시오.]

“후….”

배경이 중세 시대인 사람들의 사연은 언제나 끔찍했다.

‘가장 처음으로 중세 배경인 인물의 몸에 들어갔을 때가… 가도였나.’가도의 사연도 굉장히 기구했다.

혈육을 살리기 위해 은인과 그 국가를 배신했음에도 돌아온 것은 동생들의 시체였고, 그 운명이 자신의 부하에게도 똑같이 반복되었으니까.

‘레오도… 평생을 바친 국가의 왕에게 죽임을 당했고….’자신은 중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태운이었다.

‘생각보다 빠른데…?’

태운은 생각보다 날랜 겔릭의 몸과 그를 상회하는 추적자들의 속도에 놀랐다.

이대로라면 금방 따라잡힐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몸은 마법 고자 같은 특성은 없으니까….’태운은 바로 하이 부스트를 사용해 다리의 속도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번에 태운이 사용한 하이 부스트는 평소의 하이 부스트와 달랐다.

‘겔릭은…. 마나가 적은 몸이니 아껴 써야 해.’겔릭의 상태창으로 그의 마나양이 10만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하이 부스트를 즉석으로 개량했다.

하반신의 근육과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코어근만 강화하고 상반신은 그대로 두는 방식이었다.

마나 소모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일부 근육에 강화 효과를 집중할 수 있었기에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뭐, 뭐야!”

“저 녀석… 저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다니!”하이 부스트의 개량이 성공해 빨라진 직후, 추적자들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

그들은 아까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추적자들은 모두 복면을 입고 있었는데 그 복면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색에 완전히 동화되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도 은신 기술이 뛰어난 추적자들이 그 복면을 입고 있으니 그 기척을 더욱 읽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태운에게는 그들의 위치가 쉽게 파악이 가능했다.

‘이 몸으로는 육감을 시전할 수 없으니까….’태운은 달리면서 주변 나무에 얇은 마력 실을 만들어 두었다.

마력 실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마나가 많이 들지만 10초에서 30초가량 짧게 유지하는 것은 소량의 마나로도 충분했다.

투-둑.

태운은 만들어 놓은 마력 실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냐…!’

태운은 아이스 윔블을 사용해 녀석의 가슴에 정확히 적중시켰다.

“크악!”

“하트 2!”

“젠장!”

‘하트 2…? 코드네임인가.’

중세 시대에도 은밀 집단의 보안은 중요했던 모양이다.

이름이 아닌 트럼프 카드의 번호로 코드네임을 지을 정도이니 말이다.

‘한 명을 부상을 입히긴 했지만 다른 추적자들은 나를 계속 쫓아오겠지?’귀족들의 암살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임무를 중시하라고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는다.

몇 년을 동고동락한 동료를 잃는다 해도 임무가 최우선일 것이다.

“크윽….”

“젠장…. 일단 녀석의 추적은 미룬다. 치료를 준비해!”하지만 그들은 태운의 예상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누군가가 남아 치료를 하고 나머지는 계속 추격하는 행동을 취할 줄 알았는데 한 명이 부상을 당하자마자 모두가 동시에 멈춰 섰다.

귀족의 암살자들이라면 절대 취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어떤 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에 실패한 것 같네.’그때, 태운의 귀에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엄마…. 오빠 괜찮겠지…?”

쓰러져 있는 추적자의 옆에 서 있던 다른 추적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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