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 *
찬영이 처음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었을 당시에는 제어가 불가능해 단순히 무기를 던지는 것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무기를 던지고 자신의 마나를 한계까지 끌어쓰는 탓에 최후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제어력을 최대한 단련하는 것으로 두 번째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기를 휘둘러 마나만 쏘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양의 마나를 필요로 했기에 최후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사용한 완성형에 가까운 마나 블레이드.
위력을 다소 낮추고 필요한 마나를 줄인 방법이다.
이 마나 블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번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흐아아!”
쾅!
찬영이 검을 휘두르자 그 방향으로 큰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케이지를 박살 냈다.
“방어벽 내려!”
충격파가 케이지를 뚫고 관중석으로 날아가기 전에 현장에 있던 b급 헌터 10명이 설치되어 있던 방어벽을 활성화했다.
하지만 찬영과 태운은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패배하는 경기였으니까.
‘예상대로 한 번에 안 끝나…. 그렇다면!’
태운은 찬영의 마나 블레이드가 한 번에 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움직임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다행인 것은 찬영이 마나 블레이드를 힘겹게 휘두르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찬영은 마나 블레이드에 주입한 마나를 섬세하게 제어하지 못하고 붙잡아두고만 있어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찬영은 마나 블레이드가 마치 거대한 물풍선처럼 터질 것만 같아 자신의 실력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그 틈을 노린다.’
반면, 태운은 돌검에서 뜨거운 열기만을 느끼고 있을 뿐, 제어가 어렵지는 않았다.
콰가가각!
태운은 검을 휘둘러 폭풍을 쏘아냈다.
찬영도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러 충격파를 쏘아내 맞섰다.
‘이대로면 승부가 안 날 게 뻔하다. 그럼 과감하게….’태운은 검을 두 손으로 쥐고 찬영에게 전력으로 달렸다.
“흐아압!”
찬영은 검을 휘둘렀고 태운은 그것에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제어하기 힘든 마나 블레이드를 휘두르느라 동작이 커진 찬영의 빈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이런…!”
“끝이다. 찬영아!”
찬영은 검을 회수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태운은 뜨겁게 타오르는 검으로 찬영의 옆구리를 베었다.
“크헉!”
검이 찬영의 옆구리에 닿는 순간 강력한 열기와 함께 마나로 만들어진 칼날이 찬영에게로 쏟아졌다.
찬영도 어떻게든 반격을 해보려 했으나 힘도, 마나도 담기지 않은 그의 주먹은 태운에게 닿지 못했다.
“마나 캐논.”
태운은 움직이지 못하는 찬영에게 마나 캐논을 사용했다.
[구찬영 선수!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 이때 심판이 KO를 선언합니다! A블록의 패자는 강태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와아아아!!!”””
태운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찬영을 보며 무언가 비어 버린 듯한 감정을 느꼈다.
“뭔가…. 아쉬워….”
찬영의 마나 블레이드가 조금이라도 더 완성형이었다면 태운에게로 승기가 확 기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뛰어넘었어. 찬영이를.”
태운은 찬영을 상대하면서 어느 정도 여력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었다.
찬영이 두 번 덤벼서 두 번 연속으로 패배한 정일준과의 경기가 말이다.
* * *
[B블록 경기는 케이지 수리를 이유로 30분 후에 실시됩니다.]
“하….”
찬영은 다친 곳은 없었지만 의무실의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후….”
의식하지 않아도 한숨이 계속 나왔다.
따라오고만 있다고 생각한 강태운이 사실 자신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올해 초만 해도 정말 약했었는데….”
찬영은 태운과 했던 첫 대련을 떠올렸다.
태운이 대뜸 찾아와 창술 대련을 하자고 해 막대기 하나만 들고 했던 그 대련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태운의 공격을 전부 맞아주어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컸다.
자신이 태운의 선생이 되어주겠다고 생각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강해졌고 결국에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까지 성장했다.
신장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뛰어넘는 태운의 성장 속도를 보니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질투도 할 수 없었다.
태운이 하는 노력을 옆에서 계속 봐왔으니까.
찬영이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노력하는 것밖에 없었다.
“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진 것도 아니다.
찬영도 태운에게 여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드르륵.
찬영의 머릿속을 복잡한 생각들이 점거하고 있는 그때, 누군가 의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괜찮아?”
서혜연이었다.
그녀는 찬영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뭐…. 태운이 강하더라.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많이 약해서 내가 도와주고 그랬는데….”그녀는 구찬영의 말의 속뜻을 이해한 듯이 말했다.
“그렇지…. 엄청 빨리 강해지더라. 나는 이제 태운이가 얼마나 앞서가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아.”서혜연도 입학 3년 차에 챌린저 골드 B반까지 올라갔다.
충분히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혜연은 태운과 구찬영을 매일 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기준에 자신을 대입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도 강해. 3년 차에 익스퍼트 골드 A반 2위까지 올라간 사람은 너 말고는 없어. 처칠 할아버지도 그러셨잖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라고, 부서지지 않고 꾸준히 단련하면 그 무엇도 벨 수 있는 검이 될 거라고 하셨잖아.”찬영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너, 나 위로해주려고 온 거였어? 날 누구로 보고 그러는 거야? 나 구찬영이야.”
“참나…. 생각해줘서 왔더니….”
파악!
서혜연은 찬영의 팔뚝을 치며 말했다.
“멀쩡하면 일어나. 문밖에 너 기다리는 애 있는 거 같으니까.”
“알고 있었어?”
문밖에서 태운이 갑자기 등장했다.
“흠…. 기척 잘 숨겼는데….”
태운은 머쓱해하며 찬영에게로 왔다.
하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으니 찬영이 말을 꺼냈다.
“2년만 기다려.”
“응?”
“익스퍼트 1년, 마스터 1년. 그 안에 널 따라잡는다.”찬영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호승심이 떠올랐다.
태운은 그제야 자신이 찬영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럼 그래야지.”
찬영은 오늘은 기점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케이지 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선수들은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곧 경기 시작하겠네.”
다음 경기는 정일준과 시저의 경기였다.
“그럼 난 보러 갈게. 푹 쉬고 나중에 보자.”
“어, 그래.”
태운은 정일준과 시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의무실에는 TV가 없으니 말이다.
“어, 태운아 방금 경기 시작했어.”
대기실에 들어오자 신동연이 태운에게 말했다.
“다행이네요.”
둘 중 한 명이 결승전의 상대다.
사실 정일준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시저가 상대라면 그의 전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할 테니 꼭 봐야 하는 경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쾅!
[아! 시저 선수! 정일준 선수가 시전한 거대한 화살에 맞고 단번에 KO 당합니다!]
“뭐라고…?”
시저가 단번에 KO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 * *
“정일준이 그렇게나 강했다고…?”
시저도 적사단이라는 우승 후보를 이끌만큼 강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교내 최고의 탱커다.
체력과 방어력만큼은 명운 헌터 아카데미 내에서도 최고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첫 공격에 KO를 당했다?
쉽게 믿기지 않았다.
‘영상을 돌려본 결과 그 공격은 영가를 활용한 공격이 분명한데….’유령 기사, 유령마, 유령포, 유령검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인 어두컴컴한 녹색을 가지고 있었으니 확신해도 될 것이다.
영가의 활용도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봐도 좋았다.
“대충 분석은 이 정도면 됐고….”
태운은 정일준의 분석을 마치고 대기실을 나와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젠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걷다 보니 경기장에 도착했고 건너편에는 정일준이 태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영가에 손을 턱 올려놓고 있었고 태운은 돌검을 점검했다.
정일준이 먼저 경기장에 올랐다.
그가 경기장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5년 연속 우승 동아리인 기사단의 인기는 대단하네.”태운은 감탄하며 경기장에 올랐다.
그 순간, 정일준이 경기장에 올랐을 때보다 더욱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워우….”
태운은 그제야 알았다.
언더독의 인기는 그 어떤 동아리에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긴장되네.”
결승전만큼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운전의 토너먼트 결승전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의 모습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태운은 손가락을 풀고 돌검을 잡아 몇 번 휘두르곤 다시 차분해졌다.
‘몇 명이 보고 있든 신경 쓸 필요 없어. 이긴다는 생각만 해라.’
[3! 2! 1! 경기 시작!]
경기가 시작되자 정일준은 영가에서 유령포를 꺼냈다.
‘성가셔.’
연정아는 유령포 때문에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지 못하고 패배했다.
“인페르노, 폭풍, 블레이드.”
그렇게 되기 전에 찢어 버린다.
“지옥의 칼날 폭풍.”
뜨거운 칼날을 쏟아내는 폭풍이 정일준을 덮쳤다.
[아아! 강태운 선수 시작부터 큰 공격을 시전합니다!]
이대로 KO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정일준은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서 있었다.
하지만 태운의 목표는 이뤘다.
‘찢었다.’
유령포는 정일준을 보호하느라 모조리 찢어져 있었다.
“하이 부스트.”
유령포가 찢어져 있는 이 타이밍에 빠르게 결착을 내야 한다.
“빙결.”
태운은 돌검에 마나를 주입하고 빙결 인챈트를 했다.
‘마나를 잘 받아들여서 그런가 인챈트의 성능도 봐줄 만하네!’돌검은 차가운 냉기를 품고 정일준을 노렸다.
카앙!
쩌저적!
정일준은 검으로 공격을 막았지만 검을 든 팔이 얼어 버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유령포가 회복되기 전에…!’
정일준의 유령포가 천천히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태운은 그를 더욱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전격.”
카앙!
“폭발.”
퍼엉!
“화염.”
화-륵.
태운은 다양한 속성력 인챈트를 하며 정일준을 몰아붙였고 유령포를 잃은 정일준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승기를 잡았…. 잠깐….’
이 기세로 끝을 내려 했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태운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명색이 기사단장이다. 유령포가 없어졌다고 해서 이렇게 약해졌을 리가 없잖아.’그때, 태운이 공격하던 정일준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