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태운은 다시 한번 아이스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고 자리를 떴다.
마이클, 조강현, 태운은 세팅조였고 김현우, 공전하, 정일준, 허덕륜은 수색조였다.
“수색조는 보스룸을 찾으면 바로 돌아오는 겁니다.”
“알겠다.”
수색조는 천리안을 가진 정일준을 필두로 보스룸을 찾으러 떠났다.
“저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세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거대한 공동.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수많은 리자드맨들.
그들에게 걸리지 않고 천장에 광란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블라인드, 사일런스 필드.”
태운은 마정석을 상당히 많이 소모해 넓은 범위에 블라인드 필드와 사일런스 필드를 사용했다.
“키트 하나에 광란의 씨앗은 5개입니다. 이걸 최대한 균일하게 심어야 합니다.”
“이 마나 화약은?”
“마나 화약은 무색무취이기 때문에 걸릴 걱정하지 않고 모든 입구에 뿌려두면 됩니다.”
“그리고 발화석은….”
세팅조가 착실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때 수색조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동굴 내부를 수색하고 있었다.
“이 개…! 크억!”
종종 숨어 있던 배반자 녀석들을 처리하긴 했지만 리자드맨과의 충돌은 없었다.
“후…. 위험한데.”
그들은 극한의 긴장 속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한번 잘못 걸리기라도 하면 수백 수천 마리의 리자드맨이 몰려올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리자드맨에게 걸려 리자드맨이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번번이 허덕륜에게 저지당했다.
허덕륜이 그런 위용을 연속으로 보여주니 공전하와 김현우가 쑥덕거렸다.
“허덕륜 선생님…. C급 헌터였다고 하시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가 지금 보이는 힘은 절대 C급 헌터의 것이 아니었다.
“후….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후끈하구만.”허덕륜은 리자드맨과 싸우며 몸이 풀리는지 점점 더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까.
천리안을 사용하며 이동하면 정일준이 보스룸을 찾았다.
“보스룸 찾았습니다. 그런데…. 보스가….”정일준은 보스룸을 찾고 보스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일준이 본 보스는 다름 아닌 약 15m의 크기를 가진 거대 리자드맨이었다.
어떻게 리자드맨이 집단을 이뤘는지 알 것만 같은 크기였다.
“일단 돌아갑시다.”
수색조도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연정아가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다니….”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 술집에서 한 소녀와 청년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소녀는 어딘가 소름이 돋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청년은 온몸을 붕대로 감싸고 청바지와 가죽 자켓을 입고 있었다.
“벨, 이 미친놈아, 왔으면 문제였지. 분노의 좌께서 연정아는 아직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15살이나 됐을까?
굉장히 어려 보이는 모습으로 족히 25살은 되어 보이는 청년에게 욕을 하며 삿대질을 하는 소녀의 모습은 상당히 이상하게 다가왔다.
“밀레, 잘 들어라. 그건 우리의 수준을 먼저 신경 쓰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다. 연정아를 데리고 하늘섬으로 가면 우리도 상위 원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미친놈아, 그러니까 우리의 수준을 먼저 생각하자고.”“상위 원로가 되면 새로운 마기를 주입 받을 수 있어. 이것만큼 빨리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미친놈아…….”
둘의 말다툼이 한창일 때 누군가가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벨과 밀레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태세를 갖췄다.
“누구야?”
“….너도 칠죄신교군.”
“뭐야, 교인이었나.”
벨과 밀레는 경계를 풀고 그를 맞이했다.
“흐음…. 마기 수준을 보니 하위 원로 동지 같은데…. 술이나 한잔 어때?”
“검을 뽑아라.”
“허어?”
술집에 들어온 의문의 남자는 갑자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벨에게 겨눴다.
“뭐 하는 짓이지?”
“뽑아라.”
“하…참…. 오늘 싸울 기분 아니야. 술 마실 거 아니면 꺼져.”서걱!
의문의 남자는 순식간에 다가와 벨의 팔을 잘랐다.
“미친놈이 맞군.”
벨의 상처 부위에서 실이 나오더니 잘려 나간 팔을 다시 끌어와 붙였다.
“우리 술집은 미친놈은 안 받아.”
벨은 오른쪽 팔의 붕대를 풀었다.
그곳에는 수십 갈래로 갈라진 작은 팔들이 뭉쳐 있었다.
붕대를 풀자 그의 작은 팔들은 커지고 커져 하나하나가 근육질의 팔이 되어 있었다.
서거거걱!
의문의 남자는 그 팔을 전부 잘라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재생했다.
그러나 의문의 남자는 자신의 검과 벨의 상처를 번갈아 보더니 검을 검집에 넣고 의자에 앉았다.
“써는 맛이 없어. 그냥 아까 주려던 술이나 줘 봐.”의문의 남자의 이름은 김상연.
제주도의 술집에서 명운전을 주제로 토토를 하던 사람들을 몰살한 그 배반자였다.
“하…. 기가 차는군.”
벨은 자신의 팔로 김상연의 팔다리를 모두 잡았다.
“본인은 열심히 썰어젖히고 재미없으니 그만하자?”벨은 김상연의 사지를 비틀어 버릴 기세로 팔에 힘을 주었다.
“네가 재미를 본 만큼 나도 네 팔 하나 정도는 뽑아야겠다.”
“놔라.”
“싫….”
촥!
단 한 번의 소리였다.
단 한 번 검을 휘두른 소리가 났으나 벨의 팔은 곤죽이 되어 있었다.
“이, 이 무슨….”
김상연은 벨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푸흣…. 하하하하!!!”
“미친놈…….”
김상연은 한참을 웃다가 벨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부터 그런 표정을 지어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더 재밌게 잘라줬을 텐데.”벨은 곤죽이 된 팔에 마기를 주입해 재생한 후 붕대로 감았다.
“나는 벨이다. 원로회에 들어온 지 1년쯤 됐지”
“그래.”
“…자기소개 좀 하지?”
벨은 의자에 앉으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 이름은 김상연이다. 원로가 된 지는…. 1년쯤 된 것 같군.”“동기였나…. 그런데 이 정도로 힘의 차이가 난다라…. 자괴감이 드는군.”
“힘의 차이가 아니라 실력의 차이다.”
“그게 그거지.”
벨은 대충 바에 있는 술병을 하나 집어 김상연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술을 받아 까서 한 모금 마셨다.
“너는 왜 한국에 있는 거지?”
“흠…. 어쩌다가 재밌는 녀석을 찾아서 말이야.”
“누군데?”
“강태운…. 구찬영…. 서혜연…. 그놈들에게 관심이 좀 생겼다.”“강태운? 혹시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그 녀석 말하는 건가?”
“호오, 너도 아는군.”
“그 녀석, 지금 내가 파놓은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텐데.”타악.
김상연은 바로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곳이 어디지?”
“왜?”
그는 벨의 대답에 두 눈을 부릅뜨고 그에게 다가가 다시 물었다.
“그곳이 어디지?”
“…저 산 중턱에 동굴이 있을 거다. 그곳을 던전화해서 던져두었지.”
“그렇단 말이지….”
김상연은 그 말을 끝으로 술집을 나가 버렸다.
“뭐, 뭐야.”
벨은 누군가의 얼굴에 그만큼의 환희가 차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섬뜩해질 정도였다.
* * *
태운은 조강현의 거인화된 신체를 타고 천장에 광란의 씨앗을 심거나 입구 쪽에 마나 화약을 뿌려두는 등의 준비를 갖췄다.
“태운아, 보스룸 찾았다.”
세팅조의 준비가 거의 끝나갈 때쯤 수색조가 돌아왔다.
“보스룸 위치는 어디죠?”
“저 입구로 들어가면 걸어서 5분 거리야.”
“오케이….”
태운은 마지막 세팅을 마치고 조강현의 몸에서 내려왔다.
“그럼 가장 마나양이 많고 발이 빠른 공전하 형이 이곳에 있다가 리자드맨들이 이곳에 가득 차면 작전대로 하는 겁니다.”
“알겠어.”
“그럼 갑시다.”
태운은 공전하를 제외한 모두와 함께 보스룸으로 향했다.
5분 정도 걷자 보스룸이 나왔다.
“와…. 미친….”
마이클은 보스의 크기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거 잡을 수 있는 거 맞아?”
“말했잖아요. 못 잡으면 죽는 겁니다.”
확실히 보스의 모습은 태운의 예상 밖이었다.
힘들 것이라고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블라인드 수트.”
태운은 모두에게 블라인드 수트를 씌우고 보스룸으로 들어갔다.
15m에 달하는 리자드맨은 커다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3~400마리에 달하는 리자드맨이 서 있었다.
‘다행히 우두머리를 지키는 모양새는 아니야. 그 정도 집단성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모양이군.’15m짜리 리자드맨의 명령으로 이곳에 있는 것뿐이겠지.
태운과 일행은 방 안의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블라인드 수트를 해제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스 에이지.”
태운은 가방에 담긴 마정석을 흡수하고 아이스 에이지를 시전했다.
그러자 천천히 보스룸의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큰 공간이어서 그런지 마나 소모가 엄청나네…!’태운은 마정석의 마나를 계속 흡수해 시전한 아이스 에이지에 오버 서플라이를 사용해 계속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보스룸의 온도는 점점 떨어졌다.
[크르르….]
[크륵….]
리자드맨이 강력하다곤 하나 태생이 변온 동물이다.
기온에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뜻.
그때 보스룸의 입구에서 따듯한 바람이 들어왔다.
[크륵…?]
[크륵크륵!]
리자드맨들은 본능처럼 그곳에 이끌렸고 천천히 보스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던전의 보스는 보스룸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보스를 지키는 병사들은 나갈 수 있지.’그것을 활용해 보스를 고립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또 도마뱀 같은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알맞은 기온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지. 리자드맨도 마찬가지야.’태운은 3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던 이론 공부를 써먹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드디어 9할 이상의 리자드맨들이 모두 보스룸 밖으로 나가 태운이 많은 세팅을 해둔 거대 공동으로 향했다.
그 거대 공동에는 공전하가 수천 마리의 리자드맨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후…. 긴장되네.’
태운이 블라인드 수트를 씌워주고 가긴 했지만 들킬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 긴장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조금 기다리자, 꾸준히 공동으로 들어오던 리자드맨들의 발길이 끊겼고 공전하는 그것을 확인하고 바로 천장에 있는 광란의 씨앗에 그로우 마법을 사용했다.
쿠구구….
광란의 씨앗은 굉장히 격정적으로 덩굴을 뻗어나갔다.
[크르?]
그 모습이 리자드맨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광란의 씨앗을 시선 끌기 따위에 쓴 것이 아니다.
광란의 씨앗의 진짜 역할은 ‘땔감’이었다.
화륵!
태운이 천장과 벽 사이에 박아두었던 발화석에 덩굴이 닿자마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로우.”
공전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그로우 마법을 사용했다.
불타는 와중에 땔감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 나갔다.
[크르르!]
[크륵!!!]
리자드맨도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가거나 조치를 취하려 했지만 태운이 그것을 계산하지 못한 게 아니다.
“지금!”
공전하는 총 9개의 출입구 중 자신이 도망칠 한 곳의 출입구를 빼고 모두 폭발시켰다.
[크륵크륵!]
도망칠 곳조차 없어진 리자드맨들은 당황해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런다고 살 방법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 이게 되네….”
공전하는 태운의 작전에 혀를 내두르며 출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그 출구도 폭발시켜 막고 보스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