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 *
공진영을 포함한 달리기 종목의 대표들은 모두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
어제만 해도 깔끔한 평지였던 스타디움의 경기장이 지금은 미로 같은 바위산의 협곡으로 변해 있었다.
“처음 맵은 바위산 콘셉트인가…?”
“공진영.”
“음?”
공진영이 출발 라인에서 지형을 파악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언더독 대표…. 너는 내가 책임지고 리타이어시킬 거다.”
“갑자기?”
대뜸 공진영에게 선전포고를 한 사람은 적사단의 대표로 익스퍼트 골드 B반의 학생이었다.
그의 이름은 케빈.
그는 전체적인 능력치가 준수하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공진영은 그가 적사단 소속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오히려 도발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그게 우리 잘못인가? 오히려 너희 간부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숨겨준 은인이라고 봐야 할 텐데.”
“뭐?”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할 수 있으면 리타이어시켜 봐. 재미는 있겠네.”태운에게 훈련을 받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능글맞아진 그의 도발은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케빈은 바락바락 화를 내기 시작했다.
“거기 선수! 조용히 해주세요!”
“아…. 음…. 죄송합니다.”
결국에는 진행위원에게 쪽을 당하고 나서야 멈춘 그는 도끼눈을 뜨고 공진영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넌 나랑 싸우는 거야….’그는 언더독에게 앙심을 품고 자신의 성적과 관계없이 공진영을 막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사실 언더독의 모두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장인 시저의 생각은 성적이 우선이겠지만 팀원의 생각은 복수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실제로 그랬으니까.
[3…. 2…. 1….]
사회자가 천천히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케빈은 공진영을 향해 달려들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2일 차 첫 번째 경기 지금 시작합니다!]
“넌 달릴 생각 마라!”
휘슬이 울리고 케빈이 공진영에게 달려든 순간.
빠-악!
“어…?”
매직 미사일의 추진력을 활용한 공진영의 뒤돌려차기가 케빈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아니, 잠…….”
카가가가가!
그 후, 그의 멱살을 잡고 달리면서 그의 안면을 바닥에 갈아 버렸고.
쾅!
마지막에는 출발점에 있는 벽에 던졌다.
“끄, 끄어억….”
단숨에 리타이어당한 케빈.
그에 관객들을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
“개쩐다! 뭐야!”
“언더독! 언더독!”
공진영은 그 환호성을 들으며 기분 좋게 스타트를 끊었다.
‘골드 B반 주제에 까불고 있네….’
그는 태운에게 훈련을 받기 전에도 A반 21위의 학생이었다.
애초에도 케빈보다 강했던 공진영이었는데 태운의 훈련을 받고 강해진 지금은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신속.”
공진영은 무덤덤하게 신속을 사용하고 선두를 향해 치고 올라갔다.
[정성현이 선두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 누군가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선두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 그것은 공진영 선수입니다!]
“와아아!!!”
공진영은 케빈을 처리하느라고 지체된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거리를 순식간에 따라잡고 선두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성현와 공진영의 속도는 거의 호각.
거리는 좁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씨….”
공진영은 위험 부담을 안고 매직 미사일로 추진력을 걸었다.
아직 컨트롤이 미숙해 실패한다면 원하는 경로로 이동하지 못해 정성현과의 거리가 더 멀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도 거리를 좁힐 수 없을 터.
공진영은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엄청나게 집중했다.
‘성공했…!’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 순간.
공진영의 바로 앞에 바위가 솟아올랐다.
[명운전 달리기의 묘미!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지형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경기장이 울렁거리며 바뀌는 지형에 관중들을 환호했지만 공진영은 속으로 오만가지 욕을 했다.
‘하필이면 내 앞에…!’
꼼짝없이 바위에 부딪히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머리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공진영은 바위에 부딪히기 직전, 몸을 회전해 바위를 감싸듯이 움직여 바위와의 충돌을 피해갔다.
그 후 흔들리는 매직 미사일의 추진력을 다리 힘으로 억지로 잡아낸 후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
화려하게 바위를 피해낸 공진영에게 탄성이 쏟아졌다.
회전해서 바위를 피함으로써 속도의 손실을 최대한 줄인 덕분에 정성현과의 거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걸…?”
정성현은 자신을 맹렬히 따라오는 공진영을 보며 감탄했다.
방금 본 바로는 바로 앞에 바위에 부딪힐 것 같았는데 그 속도로 피한 것도 모자라 매우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견제를 좀 해야겠네.”
왜인지 모를 소름이 돋은 정성현은 뒤쪽으로 번개 트랩을 깔았다.
접촉하면 근육이 경직할 정도의 전기가 몸에 흐르게 된다.
저런 속도로 달리던 도중 근육이 잠깐이라도 말을 안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고꾸라지는 것이다.
“밟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진영은 정성현이 트랩을 깔아놓은 위치에 정확히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 후의 전개는 정성현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흐아아아!!!”
“이런 미친…!”
공진영은 트랩을 밟은 순간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느끼고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걸 포기했다.
그 후 이판사판으로 옥타 미사일을 시전해 자신의 몸을 그냥 앞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덕분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거리를 좁힌 공진영은 근육의 경직이 풀려 다시 균형을 잡고 정상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너도 보통은 아니었네!”
“당연하지!”
둘은 익스퍼트 골드 A반의 학생이었고 이미 서로 안면을 튼 상태였다.
그리고 둘 모두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불타올랐다.
이미 뒤에 있는 학생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까지 멀어져 있는 상태.
태운의 예상대로 공진영과 정성현의 1위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챙!
전기에 둘러싸인 상태로 스케이트를 타듯이 달리고 있던 정성현이 검을 빼 들었다.
공진영도 주먹을 쥐어 들어 올렸다.
“뇌검.”
“화권.”
정성현의 검에서 전기가 피어올랐고 공진영의 주먹에서는 붉은색의 마나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 대결에서 이기는 자가 1인자가 되고 지는 자가 2인자가 된다.
파-칙!
화-륵!
[다른 경쟁자들이 저 멀리 떨어지자 선두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회의 한 종목, 그 안에서도 둘만의 전투에 스타디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작년까지 달리기 종목은 딱히 큰 인기가 없는 그저 그런 종목이었다.
그 때문에 1등을 했을 때 주는 점수도 높지 않았고 1등을 노리는 동아리가 아니면 출전하는 선수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압도적인 1인의 독주 혹은, 고만고만한 선수들의 루즈한 게임 운영이 이어졌던 게 전년도까지의 달리기 종목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현실이 바뀌었다.
쾅!
정선현이 공진영을 향해 쏘아낸 번개가 벽에 부딪혀 큰 소음을 만들어 냈다.
공진영은 정성현이 검을 휘둘러 생긴 틈 사이로 주먹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정선현은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선두의 공진영 선수와 정성현 선수! 속도도 힘도 호각입니다!]
‘호각은 개뿔이….’
겉보기에는 호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미치겠네….’
공진영은 발을 땅에 대고 달리고 있지만 정성현은 전기를 활용해 땅에서 떨어진 상대로 날고 있었다.
덕분에 정성현은 훨씬 더 안정적으로 공격과 방어, 회피를 하고 있었다.
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매우 빠르게 달리면서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는 아주 큰 차이였다.
공진영은 조금만 균형이 망가져도 달리는 속도가 느려지는 데 비해 정성현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정성현은 마음대로 공격을 하고 있지만 공진영은 몸의 균형을 신경 쓰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뇌참.”
“염권.”
다시 한번 큰 기술의 충돌이 일어났다.
충돌의 반발력으로 균형을 잃은 공진영은 정성현의 팔을 잡고 같이 넘어졌다.
쿵!
얼떨결에 공진영과 같이 벽에 처박힌 정성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이 씨….”
한 타이밍 늦게 달리기 시작한 공진영은 욕지거리를 하며 그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돌멩이에 맞고 움츠러든 정성현은 잠시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고 공진영은 다시 정성현에게 몸을 던졌다.
[공진영 선수! 필사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투지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공진영과 충돌하고 바닥에 뒹군 정성현은 집중력을 잠시 잃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공진영은 그의 명치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커…. 커윽….”
공진영이 승기를 잡기 위해 마운트 포지션을 잡고 파운딩을 하려는 순간, 정성현은 고통을 참으면서 공진영에게 검을 휘둘렀다.
대충 휘두른 공격이었지만 몸에 닿는 순간 전기로 변해 몸을 태워 버릴 마나가 잔뜩 담겨 있었다.
“신속…!”
순간적인 반응속도로 신속을 활성화한 공진영은 뒤로 크게 물러났다.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진영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드디어 역전, 이대로 순위를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1등인 것이다.
하지만 정성현이 그것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파지-직.
정성현은 전류에 잡아먹힌 검을 쏘아냈다.
“읏….”
다행히 빗나갔지만 맞았다면 단번에 리타이어를 당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공진영은 머릿속은 안도나 놀람이 아닌 의문으로 가득 찼다.
‘검을 버려…?’
주먹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검 없이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순간, 공진영은 머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지금 리타이어 시켜버리자는 생각이.
[어어…? 공진영 선수가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안 달리냐?”
공진영은 그의 속도를 경계해서 선택한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은 정성현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몬스터 잡기에서 달리기로 좌천된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정성현의 주변 기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싫어하는 것을 넘어 병적으로 집착한다.
그는 공부에 딱히 재능이 없었다.
그랬기에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차남인 정성우에게 후계 자리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폐인처럼 지내다가 각성 판정을 받고 꽤나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훈련을 열심히 했었다.
덕분에 자존감도 올라가고 집안에서의 입지도 점점 높아져 가고 있었다.
후계 자리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자신에게 눈길을 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년 후, 자신보다 5살 어린 동생, 정성우도 각성 판정을 받았다.
각성 판정을 받은 정성우의 재능은 가히 탑이라 할 수 있었고 부모님의 눈길은 정성현을 떠나 다시 정성우에게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느끼고 피해망상에 빠질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일준을 만난 이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 공진영의 행동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파스스스….
두 번째로 지형이 바뀌었다.
이번 지형의 테마는 숲이었지만 정성현의 주변에는 어떠한 식물도 자라나지 못했다.
자라나기도 전에 모두 타서 없어져 버렸으니까.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뭐, 상관없지. 이젠 나도 전력으로 갈 거니까.”공진영의 주변에 솟아오른 풀과 꽃들도 천천히 불타기 시작했다.
태운의 훈련을 받으면서 각성한 능력인 ‘염군(炎君)’의 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