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 *
“태운아 방금 무슨 일이야?”
“진짜야?”
“근데 공방에서 일하는 애랑 친분이 어떻게 있어?”대기실에서 나온 태운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언더독들의 멤버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태운이 갑자기 무대 위에 올라가 경매를 진행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지는 바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다 거짓말이었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드릴게요.”
“거짓말…?”
태운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 것을 염려해 간단하게만 말해주고 다시 언더독 멤버들에게 다음 경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경기는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겁니다.”명운전 2일 차의 하이라이트는 보나 마나 ‘깃발 빼앗기’다.
‘깃발 빼앗기’는 각자 팀의 영역을 배분받고 그 안으로 다른 팀의 깃발을 빼앗아오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다.
다른 팀의 깃발은 빼앗아 자신 팀의 영역으로 가져오면 점수가 플러스 되고 빼앗기면 마이너스가 되는 점수 시스템도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팀은 8팀.”
남아있는 팀의 수는 깃발 빼앗기 종목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다.
깃발 빼앗기의 핵심은 ‘동맹’이기 때문이다.
“일단 적사단과 기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전부 동맹할 거예요.”
“그럼 우리도 거기에 끼는 건가?”
“아니요, 그건 최악입니다.”
“그래?”
다른 동아리들은 명운전에서 적사단과 기사단을 상대로 몇 년 전부터 동맹해왔던 동아리들이다.
그런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같이 싸우던 중 한 동아리를 잘라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들은 가차 없이 언더독을 버릴 것이다.
“그럼 기사단이랑 동맹하는 거 어때? 네 친구도 거기 있으니까….”
“그것도 안 좋아요.”
태운의 김기열의 의견을 단숨에 묵살시켰다.
적사단의 전력에 큰 타격을 입은 기사단의 입지가 매우 올라가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 신인인 언더독이 기사단과 동맹을 맺으면 언더독의 이미지가 확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태운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
“그럼….”
“저희는 적사단이랑 동맹할 겁니다.”
“뭐…?”
현재 적사단은 태운에 의해 큰 타격을 입고 1위를 노리기는커녕 2위의 자리도 위태로운 상태다.
그런 적사단이 태운이 우두머리로 있는 언더독과 동맹을 한다?
동맹을 받아준다고 해도 언제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를 일이다.
“걔네가 동맹을 해줄까…?”
“제 생각에는 동맹 맺을 수 있을 거예요.”
태운은 시저가 자신의 동맹 신청을 받아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태운이 봤을 때 시저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적사단 단장이었으면 몰라도 시저가 단장인 이상 우리가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면 받아줄 겁니다.”
“우리가 필요하면…? 그건 무슨 소리야?”
“동맹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서로 이용해먹는 관계일 뿐입니다.”사실 말이 동맹이지 팀의 이익을 위해 잠깐 써먹고 버리는 패일 뿐이다.
감정이 개입하지 않은 철저한 손익 계산을 토대로 만들어진 관계.
그리고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시저는 동맹을 받아들 터.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본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뭐…. 알겠어.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지?”“그냥 푹 쉬세요. 오늘 많이 지치셨을 텐데 쉬어두는 게 컨디션에 좋을 겁니다.”태운은 깃발 빼앗기가 시작되기 전 세 종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이 세 종목 중에 하나라도 1등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달리기, 격파, 과녁 맞히기.
이 세 종목은 비록 주는 점수가 높지는 않지만 언더독에게는 그 종목에서 1등을 할 이유가 있었다.
“일단…. 제가 배정해준 거 다들 기억하시죠?”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은 한 명당 한 번씩 밖에 참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태운은 각 멤버마다 종목을 배정해줬다.
달리기는 무조건 공진영, 격파는 홍유리, 과녁 맞히기는 김기열이었다.
“우리는 인원이 적어서 두 번 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알고 계시죠? 그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꿀 수 있게 할 겁니다.”명운전은 예선일을 제외하고 총 3일 동안 15종목의 경기를 한다.
대표전 12종목, 단체전 3종목
예선 통과자들이 12명보다 적은 팀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두 종목을 뛸 수 있게 한다.
그래도 한 사람이 3종목 이상의 경기를 뛸 수는 없다고 한다.
과거에 어마어마한 천재 학생 한 명이 혼자 명운전을 제패한 이후로 정해진 룰이다.
“오늘 다들 잘해줬어요. 내일부터가 진짜니까 잘해봅시다.”태운의 말을 마지막으로 언더독의 명운전 1일 차가 마무리되었다.
* * *
[명운전 제2일 차! 어제 있던 예선전에서 엄청난 반전이 있었죠!]
태운과 언더독의 멤버들은 대기실에 비치되어 있는 TV로 명운전의 중계 채널을 보고 있었다.
[공성전의 유력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화송’이 언더독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언더독의 팀원들이 본대에 의해 위험에 빠졌을 때 팀장인 강태운 학생이 주력 멤버인 신승우 학생을 처리하면서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전 그것보다 강태운 선수가 처음부터 적사단의 팀 체력을 모두 깎은 후 간부 세 명을 처리하고 다른 팀의 공격을 유도해 적사단의 인원을 확 줄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 정도로 뜨거운 이슈였으니까요.]
“태운아, 네 얘기 많이 한다?”
연정아가 다가와 태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게.”
그녀의 말대로 명운전 중계진들은 태운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었다.
물론 태운이 보여준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태운을 띄워주어 화제를 만들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음…. 마음에 안 드네.”
하지만 태운은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멤버들도 충분히 활약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멘트조차 받지 못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 아침 중계는 다를 거야.”
오늘 태운이 나가는 종목은 깃발 빼앗기 단 하나.
다른 종목에는 공진영, 홍유리, 김기열이 나간다.
장담하건대, 이들의 이름 중 적어도 하나는 다음 날 아침 중계진의 이름에 오를 것이다.
* * *
[국내 최대의 능력자 대회 명운전! 그 두 번째 서막이 드디어 열립니다!]
“와아아!!!”
대회 시작을 알리는 특유의 음악이 들려왔다.
과거에 엄청 유명한 게임의 대회 음악으로 쓰인 노래라는 것 같은데….
흥미진진한 음악이었고 긴장감을 고조시켜주어서 태운의 마음에도 들었다.
[2일 차의 시작을 알리는 경기는 바로! 달리기입니다!]
달리기라고 하면 뭔가 육상 경기의 달리기를 생각할 테지만 명운전의 달리기는 평범한 달리기와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테마와 지형이 바뀌는 경기장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간단한 룰이지만 그 속 내용은 전혀 달랐다.
경기장 안에서는 모든 공격이 허용됐고 시스템으로 책정된 HP를 모두 소모하면 경기장 밖으로 역소환된다.
즉, 탈락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진영이 형은 걱정 안 해요.”
공진영은 언더독 내에서 가장 빠르기도 하지만 언더독 내에서도 강한 편이니까.
태운, 연정아, 라일렌, 홍유리 다음으로 강한 사람이 바로 공진영이었다.
“후, 긴장되네.”
전년도 명운전에서도 달리기의 대표로 나간 적은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긴장감 자체가 달랐다.
그 당시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언더독의 모든 동료들이 자신이 1등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1등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기대를 가볍게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다녀올게.”
공진영은 언더독 유니폼을 입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다녀오세요.”
“올 때 금메달”
“흐…. 내가 다 긴장되네….”
언더독의 멤버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공진영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었다.
공진영은 그 말을 곱씹으면서 천천히 경기장으로 나갔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이 귀를 때렸다.
[명운전의 달리기 선수들이 한 명씩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경기장의 스텝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선수들의 체력 스탯을 측정하고 다녔다.
체력 스탯을 HP로 환산해 탈락 기준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천장에 달린 커다란 모니터에 그들의 HP가 게임 인터페이스처럼 빨간 막대로 나타났다.
“진짜 게임 같네.”
“그러게.”
태운이 중계 화면을 보고 말했다.
인터페이스를 게임처럼 만든 것에는 딱히 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만든 것뿐이겠지.
그때 모니터에 떠오른 의외의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는 기사단의 대표였다.
‘정성현?’
한국 3대 기업 중 하나인 ‘이신’의 후계자인 정성남의 장남.
능력을 각성하고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와 익스퍼트 골드 8위를 유지 중인 능력자다.
외모까지 뛰어나 다양한 매체에서 그를 스타로 다루고 있다.
재력에 외모에 능력까지 엄친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저 사람이 왜….”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가 달리기 종목에 출전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특성은 ‘뇌전’.
뇌전이라는 특성은 달리기 종목에서도 엄청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3일 차에 진행되는 ‘몬스터 잡기’에서 더욱 압도적인 위용을 보인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몬스터를 오랫동안 많이 잡는 것으로 점수가 올라가는 몬스터 잡기에서 그는 전년도에도 1등을 했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몬스터 잡기 종목에 나가면 1등이 확실한 정성현이 달리기 종목에 나왔다?
그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보니 그가 달리기 종목에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구찬영이라는 훌륭한 대체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찬영이가 마나경을 얻은 게 그 이유겠지.’마나경은 태운이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마나를 활용하는 스킬의 이름이었다.
몬스터 잡기는 오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참가하는 것이 좋다.
그런 것 때문에 정성현의 대체제로 구찬영이 발탁된 것이다.
기사단을 포함해서 학교 내에서 가장 오래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구찬영일 테니까.
“흐…. 이러면 곤란한데….”
기사단이 유일하게 약한 종목이 달리기였다.
하지만 그 종목에 정성현이 나오면서 그 단점이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기사단이 1등을 해버리면 기사단이 최종 우승할 확률이 너무 높아져.’태운은 공진영이 안정적으로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런 변수가 나타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믿는 수밖에 없나….”
올해의 달리기 종목은 공진영과 정성현의 1위 쟁탈전이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