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드디어 끝이네.”
태운은 마지막으로 대기실을 올려보았다.
잭은 놀란 표정으로 가도를 바라보고 있었고 라온은 양팔을 흔들면서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대충 ‘어떻게 한 거냐고 알려줘~.’같은 말이겠지.
레일로프는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는 걸 보니 뭔가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럴 이유는 없는데. 나는 3년 동안 죽도록 이것만 했고 오히려 너의 성장 속도에 놀라고 있는 건 난데….’가장 느리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레일로프는 태운의 예상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빠르게 성장했다.
덕분에 태운의 계획이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간단히 대처할 수 있었다.
역시나 가장 고마운 사람은 잭이었다.
많은 노력을 쏟긴 했지만, 자신을 믿어주었고 동생들을 잃은 충격에도 굴하지 않고 잘 따라와 준 것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라온도…. 참 대단한 녀석이지.’
스스로 마법을 깨우친 것만 해도 대단하지만, 그녀의 과거 환경을 돌아보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마법을 스스로 깨우친 만큼 그만큼 원리에 대한 고정관념도 많고 편견도 많았을 텐데 그것을 쉽게 깨고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고마웠다.
자신이 수년간 연구한 끝에 얻어낸 결론을 틀렸다고 인정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다들, 고마웠다.”
태운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앞으로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게 정을 더 가져봐야 더 답답하기만 할 테니까.
“흡수할게.”
[흡수를 진행합니다.]
챠르르륵.
태운이 서 있던 세계를 구성하던 요소들이 하나하나 망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다음에는 경기장을 비롯한 건물들, 다음은 산, 강, 바닥까지.
마침내 빛마저도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자신과 눈앞의 알림창뿐이었다.
“뭐지…?”
지금까지 마정석 흡수를 하면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세상 속에 홀로 남아 있는 느낌은 상당히 새로웠다.
그 감각에 익숙해져 갈 때쯤 태운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가도?”
그건 바로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거의 3달이라는 시간 동안 몸을 빌렸던 가도였다.
“그래, 나일세.”
방금의 가도의 몸을 빌린 태운과 똑같이 묵직한 목소리였지만 그 분위기가 달랐다.
대충 몸에 맞는 정장을 입은 것과 맞춤 정장을 입은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고맙다네. 정말….”
가도는 태운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는 최대한 자신을 낮췄음에도 비굴해 보이지 않고 당당해 보였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정말이었다.
태운도 이번 기회를 통해 경험한 것이 있었고 그것으로 얻은 것이 여러 마법을 하나의 거대한 마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연비만큼은 안 좋지만, 이것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B급 헌터는 떼놓은 당상일 것이다.
그때 가도가 감상에 빠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세라오니를 사수하는 데에만 성공했었다네.”
“성공했다고요?”
그 전투에서 마법을 쓸 수 없는 가도가 수성에 성공했다니?
거의 10배가 넘는 병력 차이를 극복하고 수성에 성공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게다가 가도는 기회가 단 한 번밖에 없었을 것 아닌가?
“그래, 지형을 활용한 게릴라 전투를 주로 활용해 어찌어찌 적의 도주를 이끌어냈지.”
“와….”
가도는 괜히 명장이라 불린 것이 아니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감하게 게릴라 전투를 벌여 승리까지 이끌다니….
태운은 그런 생각을 머리에서 꺼내는 것도 무리였다.
“하지만 5년 뒤에 마법 병단을 끌고 온 헤온 왕국군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네.”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10배의 병력 차이를 극복했던 가도라지만 수십 개의 불덩이를 쏘아내고 활을 튕겨내는 방어막을 소환하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나는 헤온 왕국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었고 레일로프, 잭, 라온 모두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됐지.”그 당시 헤온 왕국에 원한을 가지고 있던 가도와 잭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다.
“내 한을 풀어주어서 정말 고맙네. 답례로 내 힘을 조금 나눠주겠네.”
‘그렇지!’
현실 시간으론 1주, 이 세계에서의 시간으로는 거의 3달이라는 시간 동안 고생하면서 얻게 될 능력은 뭘까?
태운은 기대하면서 가도가 내민 손을 잡았다.
파-앙!
[특성 ‘선봉장’을 얻었습니다.]
[특성 ‘대담한 전략가’를 얻었습니다.]
[특성 ‘효학반&스승’을 얻었습니다.]
[위 세 개의 특성이 상위 특성 ‘명장’으로 하나가 됩니다.]
‘상위 특성!’
현재 전 세계에 상위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A급 최상위 7명뿐으로, 이것은 매우 희귀한 것이다.
상위 특성은 큰 틀, 그것만 얻으면 조건을 갖추는 것으로 하위 특성들을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전대섭은 ‘마나의 왕’이라는 상위 특성의 주인으로 마나의 주인, 마도왕, 마나 폭격 등등 다양한 특성을 개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태운은 바로 상태창을 열어 스킬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특성 명장
선봉장: 무리의 맨 앞에 설 때 무리의 규모에 따라 모든 스탯이 상승한다.
대담한 전략가: 수많은 전략이 머리에 들어온다. 위기의 상황에도 쉽게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효학반&스승: 자신의 실력과 제자의 재능을 계산한 한계치까지는 제자의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또한, 제자의 성취가 높아질 때마다 제자의 능력을 습득하게 된다.
“대박인데…?”
사실 학생 신분인 지금 당장은 필요 없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공격대 대장을 맡을 수 있는 수준의 헌터가 된다면 어마어마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답례는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충분합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흠…. 나도 모르겠군. 한을 풀었으니 소멸하거나 사후 세계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네.”“그럼 잠시 제 질문을 좀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당연하…… 후…. 미안하지만 안 될 것 같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직감이지만 내 직감은 딱히 틀린 적은 없어서 말이야.”그의 말대로 가도의 몸은 천천히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럼 한가지 질문만…. 당신은 어떻게 마정석을 통해 저에게 임무를 전달한 건지….”가도는 흐릿해져 가는 와중에 태운의 질문에 답했다.
“…허공을 걷고 있었네. 내 한을 되뇌면서…. 수십 년 아니, 수천 년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한을 품고 걷고 있으니 네가 나타난 게다. 그리고 너는 내 한을 풀어주기 위해 움직였다네.”
“그리고? 더 뭔가 없습니까?”
거의 사라져가는 가도.
이미 그의 목소리조차 희미해졌다.
“…그게 내가 아는 전부일세.”
“그렇군요….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그 마음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이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가도의 목소리가 빈 공간을 맴돌았다.
“잭, 레일로프, 라온의 원한도 나 못지않게 심하다네.”
“…….”
가도가 제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운의 제자이기도 했으니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꼭 해내겠습니다.’
이미 사라진 가도에게 약속한 태운이었다.
* * *
우우-웅.
태운이 눈을 뜨자 뇌파를 스캔하는 캡슐이 작은 진동 소리를 내며 열렸다.
캡슐에서 나오자 엘레나가 태운에게 다가와 물었다.
“태운아, 성공했어?”
“네, 성공했습니다.”
“흐아…. 드디어 나도 쉴 수 있겠네….”
사실 이 작업이 끝난다고 해서 쉬는 건 아니었다.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야, 이 작업에서 다른 연구로 넘어가면 그게 쉬는 거지.”그녀의 말에서 태운과 마정석의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약 2,000시간의 자료를 정리하는 거니까.
태운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연구원들의 입장에선 다른가 보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 중에 몇몇은 진짜 각성자 검사를 한번 받아봐야 할 것 같다.
특히 자하르는 더더욱.
“흐아….”
태운도 캡슐에서 나와 옆 소파에 가 드러누웠다.
일주일 동안 목표로 해왔던 것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지니 긴장이 확 풀려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후…. 진짜 피곤하네. 내일 학교 지각 안 할 수 있을까. 한 12시간은 풀 수면할 수 있을 거 같은데.”지금 시간은 저녁 8시, 당장 집에 가서 자도 시간에 맞춰서 일어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뭐, 별수 있나. 빨리 가서 자자.”
태운은 다음날부터 있을 익스퍼트 수업을 기대하면서 연구소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때 연구소 골목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운”
“음? 누구야?”
“나야.”
“연정아?”
태운은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 연정아를 보고 주머니에 있는 마정석을 흡수해 메테리얼을 만들었다.
연정아의 상태창에서 본 엄청난 스탯과 밤늦게 태운을 찾은 이 상황.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해. 공격 안 할 거야. 그리고 너도 대충 내 상태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럼 내가 너 못 해치는 건 알 텐데.”
“…그건 어떻게….”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해줄 테니까 메테리얼 좀 풀어봐.”연정아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말했다.
태운은 일단은 메테리얼을 풀었다.
지금 그녀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연정아 (LV.100)
마나양: 500,000
체력(1/50) 근력(1/84) 민첩(1/65) 유연성(1/32) 지력(1/130) 살기(1/10) 직감(15/15)
특성
???(LV.M)
스킬
??마법(LV.M)
??검술(LV.M)
??
??
??
…….
그녀의 스탯은 직감을 제외하고 모든 스탯이 1로 약화되어 있었다.
“알았어. 일단 장소 좀 옮기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혹시 보안 확실한 곳 있어? 우리가 허락하지 않은 사람은 출입할 수 없는 곳.”
“어…. 있긴 한데….”
“어디야?”
“여기, 연구소. 방금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야 하나.”
“어…. 일단 들어가자.”
태운은 연정아를 데리고 다시 연구소로 들어갔다.
“누나, 나 다시 왔어요.”
“뭐야, 뭐 놓고 간 거 있어? 그리고 그 여자애는 누구야?”“연정아라고 반 친구예요. 혹시 방음실 같은 곳 있어요? CCTV 없는.”“있긴 해. 근데…. 우리 태운이…. 뭐 하려고 그런 데를 여자랑 단둘이 가?”
“이상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칫, 재미없어. 저기니까 알아서 기어들어 가.”
“네, 감사합니다.”
태운의 유창한 러시아어를 보고 있던 연정아는 놀란 표정으로 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뭐야. 러시아어 왜 잘해? 배웠어?”
“그냥 심심해서.”
태운은 대충 얼버무리고 엘레나가 알려준 방으로 갔다.
확실히 방음은 잘 되는 것 같았다.
태운은 혹시 몰라 그 안에서 사일런스 배리어를 사용해 자신과 연정아를 감쌌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너 내 정체가 뭔지 대충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