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허, 허억…… 제발…. 살…려…주세요….”약 30분 동안 검 면으로 두들겨 맞은 세트가 드디어 무릎을 꿇고 레일로프에게 빌기 시작했다.
그도 항복을 외치려 할 때마다 사일런스 마법을 써서 항복을 못 하게 하자 잠깐 발악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살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체력이 완전히 소진되니 바로 지금 상황, 레일로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상황이 된 것.
레일로프는 더 패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고 뒤를 돌아 태운이 있는 대기실을 바라보았다.
태운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항복해라.”
“하, 항복!!!”
레일로프는 검을 다시 허리춤에 차고 경기장을 내려갔다.
그 시각, 벨자하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진 것도 모자라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빌빌 기는 모습을 수천의 관중에게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모자란 놈…. 저런 것을 수제자라고…. 시온, 네가 가서 보여줘라.”
“알겠습니다.”
시온은 다재다능하고 사고가 유연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행동을 순식간에 해내는 그런 제자였다.
“다음은 너다. 잭.”
“알겠습니다.”
잭은 경기장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레일로프를 만났다.
“형, 연기 진짜 못하네요.”
“…지켜본다.”
레일로프는 고개를 숙이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야! 레일로프! 너 연기 진짜 못한다. 크크큭.”
“…조용히 하십쇼. 제발.”
“시작한다.”
사전 조사를 해본 결과, 벨자하의 제자 중 가장 성과가 뛰어난 자가 바로 시온이었다.
벨자하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80%는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제2의 벨자하라고 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래 봤자, 잭이 매직 미사일만 사용해도 이길 수 있을 테지만.
“잭은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나….”
“그래도 제일 머리 좋은 놈이니까 멋있는 거 보여주지 않을까요?”레일로프는 처음 공격 이후 검에 불을 피워 불길을 만들고 검에서 빛 입자들을 퍼트려 검이 지나간 길이 보이게 하는 등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덕분에 부정적이었던 관중의 반응이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물론 선동꾼이 있는 라인의 관중은 여전히 야유를 던지고 있지만.
“다음 경기는 시온 님과 잭 님 입니다!”
“와아아아!!!”
잭과 시온은 서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방금처럼은 되지 않을 겁니다.”
시온은 멀리 있는 대기실에서 대결을 바라봤기에 레일로프와 세트의 대결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단지 레일로프의 공격이 굉장히 화려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저는 그렇게 길게 끌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만만하시군요.”
시작종이 울리자 시온은 손에서 얼음을 쏘아냈다.
“예상대로입니다.”
잭은 바닥에서 흙벽을 솟게 하여 공격을 막아내고 시온에게 돌덩이를 쏘았다.
당연하게도 시온은 쉽게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이 굉장히 조잡하시네요.”
“그쪽이야말로 특기가 얼음이라고 하더니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설마.”
시온은 살짝 자극받았는지 바로 3갈래의 얼음 기둥을 솟게 하여 잭을 공격했다.
잭은 신체 강화로 그 기둥의 최대 높이보다 높게 뛰어올라 피해냈다.
“고작 3미터 정도…? 실망이네요.”
“…진짜를 보여 드리죠.”
시온은 중구난방으로 얼음을 쏘아냈다.
얼음 기둥을 솟게 하고 그 얼음 기둥에서 얼음 가시를 소환하고 고드름을 쏘아내는 등.
잡히는 대로 물건들을 던지듯이 자신이 쓸 수 있는 얼음 마법을 전부 소환했다.
잭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경기장 전부를 돌아다녔고 경기장은 얼음으로 가득 찼다.
그때 타이밍을 보고 진행을 맡은 연설가가 입을 열었다.
“아아! 시온 님이 상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잭 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에 맞춰 선동꾼들도 소리를 질러댔고 일부 관중들도 그것에 동조했다.
하지만 잭은 그것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고개를 돌려 시온을 바라보았다.
“공격이 안 오는데요? 지치셨나 보네요.”
“허억…. 허억….”
“좋은 판을 깔아주신 답례로 좋은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무슨….”
잭이 손가락을 튕기자 얼음 기둥이 전부 산산조각이 나며 얼음 조각들이 하늘에 흩날렸다.
“무슨….”
“속이는 게 생각보다 재밌네요.”
잭은 도망치는 척하며 얼음 기둥 하나하나에 자신의 마력을 심어두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한 번에 폭발한 것이다.
얼음 기둥들이 산산조각이 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인 광경을 뽐냈지만, 잭의 퍼포먼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우웅-.
잭이 일으킨 바람에 얼음 조각이 올라탔고 그것은 하나의 얼음 폭풍이 되어 잭의 제어하에 놓였다.
육안으로 보이는 거대한 얼음 폭풍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잭의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재미는 있었습니다. 피하기 놀이하는 거 같고 좋았어요.”
“이…놈….”
잭이 손짓하자 거대한 얼음 폭풍은 시온을 향해 날아갔고 그 차갑고 사나운 기세를 버티지 못한 시온은 경기장 밖으로 날아가 장외 패배를 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레일로프는 깜짝 놀라면서 태운에게 물었다.
“장군님.”
“왜”
“홍보를 꼭 말로 안 해도 되는 거였습니까?”
“…….”
질문에 비해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 중일 때.
“이 멍청아, 말로 하는 홍보는 너무 구식이잖아!”“누님,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왜 말을….”“난 네가 모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애초에 홍보를 누가 그런 식으로 하냐?”
“하….”
라온이 나서서 나무라자 레일로프는 저절로 쭈그러들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흑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니까.
“하…. ”
“난 다녀올게~.”
라온이 레일로프를 툭 치고 문을 열자 홍보를 마치고 돌아온 잭이 들어왔다.
“잭…. 얘기 좀 해주지 그랬나.”
“저도 형님이 그런 식으로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
“앉아서 라온이 어떻게 하는지나 봐라.”
태운은 뒤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잠재운 후 그들을 자리에 앉혔다.
사실 가장 기대되는 차례였다.
3명 중 가장 화려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라온이었으니까.
“제 말 잊지 않으셨지요?”
“무슨 말?”
“여자라고 봐 드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
라온과 테일러는 경기장에 들어서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 대화는 라온의 마음에는 썩 좋지 않았다.
“그 말 진짜 구려. 겁나 재수 없다고.”
“뭐…?”
“너 연애해본 적 한 번도 없지? 그런 거 제발 하지 마. 얼굴도 그러면서 멘트도 그러면 어떡하냐?”
“…절대 용서 안 합니다.”
“맘대로 해.”
라온은 작은 도발을 건네고 종이 울리길 기다렸다.
시작종이 울리자 테일러는 특기인 불과 폭발 마법을 난사했다.
폭음이 경기장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수의 마법이 쏟아졌다.
“역시 재미없어.”
폭음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뜨겁게 달궈졌던 경기장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딱히 마법을 사용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 경기장의 분위기를 끌어내린 것이다.
“너무 예상과 똑같이 별거 없어서 놀랍네.”그 말과 동시에 테일러가 일으킨 폭발이 멎고 불길이 사라졌다.
테일러의 불길이 압도적으로 강한 불의 주인 앞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타올라라.”
라온이 드디어 첫 마법을 개시했다.
그러자 고개를 든 라온의 불길이 테일러가 마법을 시전할 때 온전히 연소하지 못하고 남은 마력들을 집어먹고 매우 거대해졌다.
“윽!”
“뜨거워!”
그 불길의 뜨거움은 경기장을 넘어 관중석까지 전해졌고, 당연히 테일러는 불타 죽기 직전까지 갔다.
그때 태운은 뿌듯함을 느꼈다.
“이젠 온도 조절을 숨 쉬듯 할 수 있게 됐구나.”라온은 홍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불길을 거대하게 키웠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게 온도를 조절한 것이다.
“끝났네.”
라온은 거대한 불길을 불러들이고 테일러를 발로 툭툭 쳐서 생사를 확인했다.
간신히긴 하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라온은 태운 측 대기실을 향해 소리쳤다.
“얘, 살아 있어요!”
“그래.”
태운은 고개를 끄덕여준 뒤 경기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다치지 마십쇼.”
“그래.”
태운은 대기실 밖으로 나갔고 대기실로 돌아오는 라온과 마주쳤다.
“다치지 마.”
“…날 얼마나 무시하는 거냐.”
“그도 그럴게…. 마법 못 쓰잖아? 온몸의 마력 회로가 망가졌다며.”
“오른팔의 회로는 남아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경기 후에 말해주지.”
태운은 라온을 대기실로 올려보내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벨자하가 있었다.
“…네놈의 교육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개인 무력만큼은 이겨야겠다.”“보이지 않았나? 내 제자들의 실력, 네가 직접 덤벼도 못 이길 수준이란 게 보였을 텐데.”
“하지만 네놈은 마법을 못 쓰잖나?”
“못 쓴다고 누가 그랬지?”
“뭐…?”
세라오니 수성전 당시 태운은 막혀있는 가도의 마나 회로를 강제로 뚫고 마법을 사용해 온몸의 마나 회로가 망가졌었다.
‘오른팔’의 마나 회로만 빼고.
‘애들을 가르치기만 한 건 아니야. 그사이에 남아 있는 오른팔의 마나 회로를 회복시키고 그걸 가슴에 있는 마나통과 연결했지.’고작 1,000에 가까운 수치의 마나지만 눈앞에 있는 벨자하라는 수준 낮은 마법사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거짓말 마라!”
벨자하는 5개의 메테리얼을 꺼내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마법은 나가지 않았다.
“무슨….”
“뭐가 일어난 건지도 모르겠나?”
태운은 벨자하의 메테리얼에 적은 양의 마나로 간섭해 메테리얼의 제어권을 빼앗았다.
이 방법은 벨자하처럼 마나의 순도도 적고 수준이 낮은 마법사에게만 통하는 방법이었다.
‘명운 아카데미 브론즈 A급 정도만 돼도 이 방법은 안 통하지.’이것이 마법이 발견된 지 20년이 넘은 세계와 1년이 안 된 세계의 차이였다.
‘역시…. 고작 파이어볼 같은 마법을 쓰는 데 소모되는 마나가 3000이 넘는다니…. 연비에 관한 연구는 안 하는 건가?’하지만 덕분에 태운은 5개의 메테리얼을 빼앗았을 뿐인데 15,000의 마나를 얻을 수 있었다.
태운은 그것으로 현실에서 시도했던 5 융합 마법을 시전했다.
“전격, 중단, 폭풍, 화폭, 가속”
“전격의 파편 폭풍”
주문이 끝나자 허공에서 화폭이 폭발했고 그곳을 진원지로 폭풍이 생성됐다.
그 폭풍은 전격 속성이 담긴 화폭의 파편을 쏘아냈다.
태운은 들고 온 대방패로 온몸을 방어했고 메테리얼을 생성할 틈이 없던 벨자하는 태운의 공격에 온전히 노출되었다.
“으가가가각!!!”
전기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바르르 떨고 있는 벨자하를 방패로 툭 쳐준 태운은 그대로 양손을 하늘로 높이 올렸다.
관중들은 물론 태운의 제자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더 놀랐을 것이다.
태운이 마법을 못 쓰는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원리도 알고 있었으니까.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정말”
그들이 놀라고 있을 때 태운은 눈앞에 떠오른 알람 때문에 감상에 빠졌다.
[헤온 왕국의 마법 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테렌 왕국이 헤온 왕국을 무너뜨릴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정석이 내어주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흡수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