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 *
테렌 왕국의 수도
잭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성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흠….”
“뭘 그리 고민하고 있어?”
“어, 라온 누님.”
라온은 수도에 온 김에 맹활약 중이라는 잭과 만나러 왔다.
하지만 잭은 맹활약 중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뭔데 얼굴에 그렇게 근심이 가득해.”
“레일로프 형님이 속국 회유하러 갔다가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뭐야, 그거였어? 걱정하지 마. 걔가 진짜 잡혔겠냐?”“그건 알고 있는데…. 그걸 빌미로 레일로프 형님을 내치자는 말이 나와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태운의 설득으로 속국 회유 허락은 받았으나 사신이 감금을 당했다는 말에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꼬리를 자르려는 것이다.
“…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장군님 세력을 위축시키려고 형님을 내치려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그렇겠지. 하여간 권력에 미친놈들은 멀리 보질 못해요. 방해만 안 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살게 될 텐데….”마법 교육 기관을 먼저 설립해서 10년만 독점해도 대륙을 정복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조국의 미래를 망가트리지 못해 안달인 걸까.
“그래도 그런 생각은 많이 없앨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마법의 효과가 좋으니까요.”라온은 수많은 도적을 소탕하고 간부를 생포해 우두머리의 위치까지 알아냈다.
잭 또한 농업을 통한 생산량을 두 배 가까이 올렸고 유능한 인재들을 마법을 활용해 많이 발굴하는 등 마법의 유용성을 충분히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자신의 권력에 문제가 생길까 봐 마법 교육 기관 설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레일로프 형님 괜찮을까요….”
“걱정 마. 너희 형님 어디 가서 다칠 사람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때 레일로프는 테렌 왕국과 헤온 왕국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인 벨 공국의 지하 감옥에서 다친 곳 하나 없이 편하게 누워있었다.
“하…. 참…. 마법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벨 공국의 알레한드로 공작에게 속국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웬 남자가 튀어나와 레일로프에게 달려들었다.
마법으로 간단하게 제압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몸에 변이를 일으켜 강해졌기에 레일로프는 상황을 보기 위해 일단 항복했다.
‘아니, 애초에 그걸 마법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마치 사람이 늑대처럼 변해 버린 듯한….
환각 마법이라기엔 마나의 흐름이 배운 것과 많이 달랐고 짐승처럼 변한 이후의 힘과 속도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일단 갇혀 있긴 하는데….”
사실 결박도 안 되어있고 저 나무 창살도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면 쉽게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안 나가는 데에는 딱히 큰 이유가 없었다.
나가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뿐이었다.
‘흐음…. 그냥 정면 돌파밖에는 답이 없으려나.’레일로프가 누워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을 때, 벨 공국의 병사 두 명이 다가와 그를 자극했다.
“얘가 진짜 레일로프라고?”
“그렇다니까.”
“쯧쯧, 어쩌다 우리 장군님한테 걸려서….”“그러니까. 아무리 날고 기어도 페일 장군님한테는 안 되는데.”레일로프는 그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하…. 하다 하다 저런 애들한테까지 무시를 당하네.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뭐?”
터-억.
그 말을 들은 병사 하나가 창살에 팔을 기대고 레일로프에게 말했다.
“밖에선 네가 이름있는 장군이고 대단한 놈일지는 모르는데 거기 갇혀 있으면서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하….”
레일로프는 여기서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눈앞의 주제 파악 못 하는 병사 하나의 행동 때문에 그 고민이 해결됐다.
“에스피토.”
정신계 마법의 기초에 해당하는 에스피토.
정신력이 어느 정도 강하거나 마력을 조금이라도 다룰 수 있다면 쉽게 저항할 수 있고 지속시간도 길지 않지만 이런 눈치 없는 병사 하나 부려 먹기에는 충분했다.
“으어…….”
“야, 너 왜 그래?”
방금까지만 해도 레일로프에게 소리치며 그를 모욕하던 사람이 갑자기 지능이 떨어진 것처럼 멍한 얼굴로 있으니 옆에 있던 병사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 레일로프의 말이 들려왔다.
“문 열어.”
“으…….”
철컥, 철컥.
“야, 미쳤어?”
“으어…….”
레일로프의 한마디에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허리춤의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려고 하자 옆에 있던 병사가 말렸다.
레일로프는 그 병사에게도 마법을 하나 걸었다.
“너도 가만히 있어.”
“윽!”
레일로프는 경직 마법으로 남은 병사 하나를 움직일 수 없게 한 후 다시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감옥의 문은 부술 필요도 없이 병사의 허리춤에 달린 열쇠로 풀리게 되었고 레일로프는 아주 편하게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난 강제로 나온 거 아니다? 너희가 열어준 거지.”병사들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준 후 말했다.
“그게 무슨….”
“그러니까 난 잘못 없다고 너희가 열어줬고 난 나왔을 뿐이고. 알겠어?”퍼억! 퍼억!
병사 둘 제압하는 데에는 마나를 쓸 이유조차 못 느낀 레일로프는 간단하게 주먹 두 번으로 병사들을 기절시켰다.
“이제 문제는 그 페일이라는 놈인데….”
짐승 인간처럼 변할 수 있으면서 전투력도 무시 못 할 만큼 강한 페일이라는 장군을 어떻게 손봐야 할지가 레일로프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이 상황은 급변했다.
삐이이이이-!
마치 사이렌과 같은 음성이 성내를 가득 채웠다.
눈치가 아무리 없어도 자신의 탈옥이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는 상황.
“흠…. 어쩔 수 없네. 담판 지어야지.”
레일로프는 지하 감옥의 계단을 올라 성 밖이 아닌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다!”
“잡아라!”
그 과정에서 수십의 경비병과 마주치긴 했지만뚝.
“그로우.”
복도를 장식한 식물 중 덩굴 식물의 줄기를 뜯어 그로우 마법을 시전했고.
“으아아악! 이게 뭐야!”
“검으로 끊어내!”
“너무 질깁니다!”
순식간에 자라난 덩굴에 엉켜 하나가 된 경비들은 레일로프에게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 공작의 방에 도달한 레일로프는 탈옥범답지 않게 노크를 했다.
똑똑.
“전하, 이 레일로프, 전하와 대화를 하고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예고 없이 찾아온 것을 용서해주십시오.”레일로프는 대답을 기다리면서 문 건너의 기척을 읽었다.
‘공작을 제외하고도 8명….’
그중에 익숙한 기척도 섞여 있었다.
속국 얘기를 꺼내자마자 달려들었던 페일의 기척이었다.
“역시…. 들어오게.”
안에서 작은 눈빛 교환이라도 있었던 걸까.
잠깐의 시간 후 공작의 허락이 떨어졌다.
레일로프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일대의 마나가 흔들렸다.
“허…. 당황스럽군요.”
테렌 왕국 외에도 마나를 활용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랐지만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했던 그림이다.
스스스스스-.
그 자리에 있는 알레한드로 공작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짐승 인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슬슬 세상에 공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네.”“테렌 왕국을 상대할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요.”“자네도 보지 않았는가? 이 늑대인간들의 힘을. 이들은 수백 명의 병사 중 가혹한 실험 끝에 살아남은 8명의 전사야. 홀로 기백의 병사들을 도륙할 힘을 가지고 있지.”“수백 명 중에 겨우 8명…. 확률이 별로군요.”공작의 말로 추측하건대 수백 명의 병사들을 데려다가 실험을 했고 그 결과 짐승화 할 수 있는 능력자 8명을 만들었다는 건데….
“불쌍한 사람들이네요. 가만히 있었으면 재능있는 사람들은 부작용 없이 힘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의미지?”
“저 사람들 수명 10년도 안 남았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죠.”가만히 있었다면 테렌 왕국의 마법 교육 기관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차출해서 가르쳤을 텐데.
좀 느리긴 했어도 안전하게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네가 뭔데 우리보고 불쌍하다고 하는 거냐!”“우리는 이 실험으로 극강의 힘을 얻었다!”이미 두 발로 서 있는 늑대의 모습이 된 8명의 장수가 레일로프에게 야유를 쏟아냈다.
레일로프는 그에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극강의 힘? 웃기네.”
“뭣들 하느냐! 저 녀석을 쳐라!”
공작의 말 한마디에 고삐를 풀린 듯 달려드는 늑대들.
사방에서 달려드는 탓에 도망칠 곳도 없고 막을 수도 없었지만 레일로프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부스터, 발도.”
서-걱
투-욱
검을 뽑는 동시에 정면에서 달려오던 페일의 목을 날렸다.
페일이 죽음과 동시에 생긴 빈틈으로 빠져나가 나머지 공격을 피해냈다.
“편법으로 강해져 놓고 극강의 힘이라니 웃기지도 않네.”일이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죽어라.”
후우우-웅.
그의 검이 바람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드드드-.
바람의 힘에 검신이 떨릴 때까지 바람이 모였을 때.
“폭검 풍(風).”
그 힘을 반동을 이용해 휘둘러 쏟아냈다.
촤자자자작!!
그러자 수십 갈래의 칼바람이 날아가 늑대인간들을 난도질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늑대인간은 수조 각으로 갈라져 절명했다.
“편법의 한계다.”
“아아….”
살아남은 늑대인간들은 압도적인 힘에 덜덜 떨었다.
알레한드로 공작도 하얗게 질려서 말했다.
“괴, 괴물….”
레일로프는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공작에게 다가갔다.
“괴물은 무슨. 우리 왕국엔 나보다 강한 놈들이 두 명이나 있어. 앞으론 더 많아지겠지.”그렇게 벨 공국에서의 헤프닝은 레일로프가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으로 끝이 났고 그 사실은 테렌 왕국을 포함한 대륙 전역에 퍼져 나갔다.
그 소문을 들은 태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1대 수천이라면 잭과 라온이 훨씬 더 강하겠지만, 어느 정도 강한 사람 여러 명과 싸우는 거라면 레일로프가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실제로 잭과 레일로프를 1대1 대련을 붙여보면 10에 7은 레일로프가 이겼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일이 빨라지게 생겼네.”레일로프 덕분에 벨 공국을 속국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왕국 내 마법 지지율도 많이 올랐다.
마법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아니, 깨달은 건 아주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체감된 것뿐.
“뭐 준비할 게 왜 이리 많아….”
수도로 상 하나 받으러 가는데 준비할 것이 뭐가 이리 많은지….
이런 허례허식 하나씩만 줄여도 얼마나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지 상상해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아니, 그리고 잘한 건 레일로픈데 왜 내가 상을 받아?’참, 이해 안 가는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게 구시렁구시렁하며 수도로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정보부 담당관이 다가와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잔뜩 흐르고 있었고 어찌나 놀랬는지 동공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장군님! 신문에 좀 이상한 내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