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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1화 (31/379)

31화

“흥, 마법도 못 쓰는 게.”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너에게 조언을 해줄 수는 있을지도.”끼-익.

태운은 철창을 열고 들어가 라온의 목에 손을 대고 맥을 짚었다.

“역시 마나 회로 상태가 엉망이군.”

“마나 회로….?”

“사용하는 수식도 너무 원시적이잖아.”

“뭐라고!”

가만 놔뒀더라면 마법의 창시자가 될 뻔했던 라온이었지만 태운의 지식을 뛰어넘는 건 한참 이른 이야기다.

‘돌팔매질로 소총 이긴다고 하는 꼴이지.’

태운은 수십 년간 연구된 마법과 지식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연구를 개척하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상대되면 이상한 것이다.

라온은 자존심이 심하게 상한 듯 벌떡 일어나며 태운을 밀쳤다.

“뭐라는 거야!”

“그러지 말고 이거나 봐.”

태운은 미리 써온 마법 수식을 내밀었다.

지금 그녀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최고 난도의 마법을 적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봤자 강화 파이어볼 정도지만.

“이게 뭐…. 잠깐….”

그녀는 수식을 잠깐 보고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목표로 해왔던 경지가 작은 종이에 적혀 있었기 때문.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지?”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태운은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뿐만이 아니야. 잭, 들어와라.”

“예, 장군.”

라온이 잭보다 재능있는 마법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라온에게 없는 게 잭에게 있었다.

“이 친구는 내가 직접 마법을 가르쳐준 친구지. 마법에 대해서는 너보다 재능이 좀 떨어지긴 한다만, 지금이라면 자네를 10초 안에 제압할 수 있을 거야.”

“…그럴 거 같네….”

라온은 빠르게 수긍했다.

사실 부정하며 달려드는 시나리오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고분고분하다.

“뭐…. 이 수식을 쓴 사람이 당신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테렌 왕국 소속이라면 척지지 않는 게 현명하잖아? 그리고 네 제자란 놈이 준비하고 있는 마법을 봐. 살벌한데?”갑자기 달려들 때를 대비해서 화폭과 프로텍트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해두라고 했다.

잭은 아직 화폭의 숙련도가 낮아 속성력을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라온이 만든 수준 낮은 방어 마법을 파괴하기에는 충분하다.

태운의 시그니처 마법인 만큼 연구에 연구를 가한 마법이었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내 밑으로 들어오면 내가 알려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

“상당히 파격적이네. 다른 조건은 없나?”

“일단 그 전에 도와줄 게 있다.”

태운은 감히 자신을 위협한 귀족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잭, 모든 귀족에게 초청장을 보내둬. 마법의 유용성을 홍보한다는 식으로. 헤이런 백작은 꼭 오라고 해두게. 안 오면 암살자를 보낸 걸 퍼트릴 거라고.”태운은 라온을 불러내 따로 작전을 설명했다.

이 작전의 핵심이 될 새로운 마법과 함께.

* * *

“장군, 헤이런 백작이 왔습니다.”

“그럼 작전대로.”

태운은 세라오니 내에 있는 가장 큰 연회장에서 왕국 귀족

대부분을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헤이런 백작은 태운의 계획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귀족이었다.

마법을 국가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 백성에게도 기본적인 수학을 가르쳐야만 했다.

그것을 반대하는 귀족의 주축이 바로 헤이런 백작.

‘골칫거리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겠네.’

그때 라온이 다가와 말했다.

“바로 갈까?”

“마음대로.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라온은 파티의 참가자인 양 자연스럽게 손님들 사이에 섞여 헤이런 백작에게로 다가갔다.

“백작, 조용히 따라 나오지 않을래?”

상당히 무례한 말투였지만 아는 목소리였기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잠시 실례하도록 하겠소.”

헤이런 백작은 라온을 따라 테라스로 나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헤이런은 직접 라온의 얼굴을 보고 실력까지 봤기 때문에 그녀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입 좀 다물어 봐. 나도 짜증 나니까.”

“네년 때문에 나에게 피해가 온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게다.”

“조용히 하라고.”

“후…. 일단 설명해 보아라.”

라온은 테라스 문을 닫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입을 열었다.

“상황은 설명할 것도 없어. 당연히 실패했지. 나는 그것 때문에 가도 녀석한테 쫓기고 있는 신세고.”

“그런데 이 파티에는 왜 온 거지?”

“살고 싶어서 왔지. 도움이 필요해.”

“도움?”

헤이런 백작이 라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라온이 화를 내며 설명했다.

“일단 가도 세력이 약해져야 내가 살 거 아니야. 그래서 가도한테 누명을 좀 씌우려고.”

“자세한 계획을 말해라.”

“연회장을 테러할 거야.”

“뭣!”

라온의 입에서 나온 파격적인 발언에 헤이런 백작의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귀족의 파티장을 테러하겠다는 말은 국가전복죄를 저지르겠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확인해.”

라온은 어떤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거울을 내밀었다.

“뭐지?”

헤이런은 거울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거울 속 자신이 가도처럼 비쳤기 때문.

“마법으로 당신과 당신 기사들의 얼굴을 가도와 그의 부하로 보이도록 바꿀게. 가도는 늦게 등장할 테니 그의 등장보다 빨리 테러를 하면 꼼짝없이 가도가 귀족들을 죽인 것이 되겠지.”“호오…. 이 정도면 아주 완벽하군…. 만약 작전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계획은 있나?”“계획이 마음대로 안 되면 내가 마법으로 안개를 만들 테니 연회장 밖으로 탈출해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합류해. 그 정도 얼버무리는 건 알아서 할 수 있지?”“흐음…. 좋아.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지.”왕국 내 영향력이 큰 만큼 적도 많은 헤이런의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가도를 역적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동안 거슬리던 귀족들을 싸그리 정리해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그리고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마법을 쓰는 암살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또 있나?”“아…. 알겠네. 그럼 그들 먼저 빨리 처리하도록 하지.”

“눈치가 빨라서 좋네.”

헤이런은 자신이 마법을 사용하는 암살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백작 몇과 자작 몇 명에게 알려준 바가 있었다.

그들이 입을 열면 곤란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그들은 빨리 처리하라는 뜻이리라.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항상 숟가락만 얹으려 드는 그들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해 한번 물갈이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종종 했으니까.

“그럼 가서 빨리 준비해. 가도가 오려면 30분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까.”“만약 연회장에 무장이 있으면 어떡하지? 우리 기사들이 실력이 좋긴 하지만 시간이 금이니만큼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참, 손이 많이 가네. 신체 강화 마법도 걸어줄 테니까 어떻게든 해봐.”

“그 정도면 충분하네.”

“그럼 빨리 가서 준비해.”

라온은 그 말을 끝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 태운에게로 돌아갔다.

태운은 연회장과 제일 가까운 방 안에 레일로프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제대로 넘어갔어.”

“그래, 타이밍 잘 보고 신호 잘 줘.”

태운의 계획은 간단했다.

라온이 헤이런 백작 일행에게 걸어줄 마법은 환영 마법이 아니라 최면 마법이다.

자신과 몇몇 사람의 얼굴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즉,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얼굴이 그대로 보인다는 의미다.

‘아주 죽어 봐라.’

잭은 따로 연회장에 배치해 가도에게 호의적이고 헤이런과 연관되지 않은 귀족들의 보호를 맡겼다.

그것이 아직 마법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는 레일로프보다는 잭에게 훨씬 잘 맞는 역할이니까.

“온 것 같습니다.”

문틈으로 보니 헤이런 백작 일행이 칼을 뽑아 들고 연회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참 가관이네.’

헤이런 백작을 제외한 기사들은 긴장은커녕 살육을 즐기는 살인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신나 보였다는 것.

레일로프도 그 표정을 보고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볼수록 마음에 안 드네요.”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약간은 기대되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저들의 말로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그 상태로 약 5분 정도 기다리자 등잔의 불이 켜졌다.

저게 바로 라온에게서 온 신호다.

“돌입한다.”

“알겠습니다.”

벌컥!

태운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수십의 귀족이 죽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내가 헤이런 백작인걸….”시체 수십 구와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헤이런 백작,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헤이런 백작! 이게 무슨 일인가!”

나와 레일로프는 연기를 시작했다.

“백작! 나를 암살하려 한 것을 봐주었더니 겁을 상실했구나! 감히 귀족들의 연회에서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다니!”

“아…. 아니…. 이게 왜….”

헤이런 백작은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패닉에 빠졌다.

“뭐 하고 있나! 저들을 제압해 감옥에 넣어라!”

“예!”

당황한 것은 백작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백작의 밑으로 들어간 그들은 이번 사건에서도 아주 적극적 움직였으니까.

‘두 당 수당을 챙겨주게끔 유도했으니 신나서 죽여댔겠지.’하지만 헤이런 백작과 기사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웃기지 마!”

“어떻게든 탈출해 보자고!”

“여기서 죽을 순 없지!”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쩌-억!

철-퍽

“어….?”

잭의 마법이 기사 하나의 어깨를 강타했고, 그 기사의 팔은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뭐…. 뭐야!”

서걱!

그다음은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해 순식간에 달려 나간 레일로프가 다른 기사의 다리를 잘라냈다.

“안녕~.”

다음은 라온의 차례였다.

“네…. 네 이 년…. 감히….”

“왜 욕을 하고 그러실까.”

화-륵

“끄…. 끄아아악!!!”

라온이 손짓하자 불꽃이 다른 기사의 가슴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해 전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직 온도 조절이 미숙해. 빨리 꺼줘. 그러다 죽겠네.”

“칫, 알겠어.”

남은 건 헤이런 백작 하나뿐이었다.

“포기 안 하나?”

포기할 리가 없었다.

여기서 죽든 잡혀서 재판 후에 죽든 똑같았기 때문이다.

“개 같은…. 감히…. 백작인 나를….”

“이렇게 된 마당에 이제 작위 같은 건 의미 없지 않나?”

“죽어라!”

헤이런 백작이 기사 출신이고, 과거 명성을 떨쳤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수백 번의 전장에서 선봉을 맡고 살아남은 가도에게는 장난과 다름없는 실력이었다.

터-억

쾅!

백작이 휘두르는 칼의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흘리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그의 안면을 움켜쥔 후 우악스럽게 힘을 사용해 강제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장군님, 방금 마나 안 쓰신 거 맞죠?”

다소 자조적인 레일로프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그 밤의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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