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그럼 어떻게 하죠? 언제가 됐든 헤온 왕국은 다시 쳐들어올 겁니다.”
“그렇겠지….”
테렌 왕국과 헤온 왕국의 국력 차이는 확연하다.
경제 규모만 해도 거의 두 배 차이.
게다가 거대한 혈연으로 이루어진 헤온 왕국과 달리 테렌 왕국은 귀족의 10%만이 혈연이다.
전쟁이 나면 고민도 하지 않고 내뺄 사람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실제로 헤온 왕국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영지를 팔아넘기고 도주한 귀족들도 있었다.
‘테렌 왕국이 헤온 왕국을 무너뜨릴 기반이라면…… 진짜 마법밖에 생각이 안 나.’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마법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려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잭, 내가 알려준 화폭은 사용할 수 있나?”
“성공률이 높지는 않지만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그래, 그럼 틈틈이 연습으로 성공률을 올리고 수업 시간에는 다른 마법을 알려주겠다. 이건 레일로프도 같이 듣도록.”국가적인 수학 교육을 건의하러 왕도에 갔던 일주일 동안 레일로프도 메테리얼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마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앞으로 너희가 배울 건 생활 마법이라고 불릴 것들이다.”물론 성능은 이름답지 않게 화려하겠지만 말이다.
* * *
“휴…. 얼마 전의 전쟁 때문에 손이 확실히 많이 줄긴 했나 보오….”“그러게 말이오…. 손발 멀쩡한 청년들이 200명 넘게 다치고 죽었으니….”쉽게 끝낸 전투긴 했지만 세라오니의 백성에게 남은 상처는 전혀 작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수많은 청년을 잃은 세라오니의 농지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노부부가 바라보고 있는 땅에는 전쟁 전에 심어둔 농작물과 잡초들이 뒤엉켜 같이 자라고 있었다.
이 상태로 밭을 방치하는 것은 잡초가 있으면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잡초를 뽑을 인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영지의 장정들이 나서보았지만 뜨거운 햇볕에 일사병이 걸려 픽픽 쓰러지고야 말았다.
영지민 모두가 이렇게 올해 농사를 망치나 싶었을 때“어르신, 제가 대신 밭 관리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태운에게 3주간 혹독한 훈련을 받은 잭이 노부부의 감자밭에 섰다.
“정염.”
잭이 마법을 사용하자 감자밭이 가장자리부터 시작해 천천히 불타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것을 본 노파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어르신, 고정하시고 기다려 보세요.”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냔 말이야! 영감도 뭐라고 좀 해봐요!”
“할멈…. 저것 좀 보게.”
노파는 자신의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도 못한 채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밭의 가장자리로, 가장 먼저 불이 붙어 이미 불이 지나간 자리였다.
그 자리에 있던 감자 줄기에는 아무런 그을음이 없었고, 빼곡히 자라있던 잡초들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 무슨….”
“이건 마법이라는 겁니다. 가도 장군님께서 직접 만드신 기술입니다.”
“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때 영지 내 가장 큰 농지에서 레일로프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영지 내에서 가장 큰 공동 농지인 만큼 관리가 잘되어 있는 유일한 농지였다.
“지금부터 제가 할 일은 절대 신의 가호가 아닙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바로 마법이라는 것입니다.”
레일로프는 사람이 충분히 모인 것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 후 뒤를 돌아 메테리얼을 만들고 농지의 수많은 농작물들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로우.”
스스스슥!!!
“배, 뱀?”
“아니야! 저거 감자 줄기잖아!”
눈에 보일 만큼 빨리 자라는 농작물들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일로프는 뿌듯한 표정으로 뒤돌아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절대 신의 가호나 기적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는 기술입니다.”레일로프는 잭만큼의 수리 능력은 없었지만, 잭보다 우월한 마나통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약 23만.
찬영과 비교되는 마나량이었다.
측정 기계가 없어 정확하게 잴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바로는 그랬다.
그로우 마법은 지력을 상당히 많이 소모하는 마법이기 때문에 농작물을 키우는 데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수식을 건드려 마나 소모를 높이면 지력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잭보다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우월한 마나량 덕분에 이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이틀 만에 농사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잭과 레일로프는 다음날에는 대장간으로 가서 불 온도를 높여주고, 의료소에 가서 환자를 치료해주는 등 수많은 활약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재능 있는 사람이 배우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는 기술’이라는 말은 절대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세라오니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갔고 2주 만에 테렌 왕국 내에서 소문이 자자해졌다.
“어떻게 전쟁 이후에 저렇게 성장할 수 있는 거지?”“마법이라는 신기한 기술을 쓴다고 하던데….”
“그걸 영주인 가도가 직접 만들었다지?”
소문은 입에서 입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 나갔고, 태운은 자신의 계획이 먹히고 있다는 생각에 흡족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흐그극….”
태운은 밤만 되면 가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현실의 태운으로 돌아온다.
가도와는 달리 실없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 눕자 잠이 몰려왔다.
태운은 잠이 들기 전 자신의 마나 회로 상태를 점검했다.
‘오른팔의 회로는 어느 정도 살아있지만…. 온몸이 엉망이구만.’그때.
‘자객인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도의 감으로는 확실했다.
‘지붕 위에 누군가가 있다.’
태운은 조용히 침대와 벽 사이 공간에 놓아둔 방패로 몸통을 보호했다.
그때 자객도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의 크기를 생각하며 자객의 몸집을 어림잡을 수 있었다.
‘많이 작은데…?’
작은 체구의 암살자라면 노릴 곳은 단 한 군데였다.
태운은 몸통을 보호하던 방패를 올려 목을 보호했다.
카캉!
“음?”
덥썩!
태운은 칼을 든 자객의 손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크윽!”
그러고는 자객의 얇은 팔을 잡고 일어나 그대로 땅에 엎어 쳤다.
기껏해야 50킬로나 될까 싶은 자객의 무게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순식간에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누가 보냈냐고 물어도 대답은 안 하겠지.”
“…젠장”
태운은 자객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여자…?”
가도의 기억에 따르면 이 세계에는 여자 암살자가 상당히 많기는 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태운은 자객을 제압한 상태로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쳐 병사들을 불렀다.
“자, 장군님!”
“놀랄 것 없다. 어서 포승줄이나 가져와.”
추가로 가서 레일로프를 불러오라고 말했다.
지금의 레일로프라면 이 정도 수준의 자객 10명이 달려와도 큰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레일로프가 강해진 것도 있지만, 자객의 수준이 그리 높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수준 높은 자객들도 많을 텐데 굳이 이 사람을 보낼 이유가 있었을까…?’태운은 병사가 가져온 포승줄로 자객을 묶고 레일로프에게 인계했다.
레일로프에게 인계된 자객이 가도의 방문을 넘은 순간 마나의 울렁임이 느껴졌다.
“레일로프! 피해라!”
레일로프도 느리긴 하지만 마나의 움직임을 느끼고 무언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준비가 되었다.
포승줄은 이미 불타 없어져 버렸고 자객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양손으로 불꽃을 쏘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병사들은 전부 몸통 어딘가가 불타 죽어 있었다.
그 광경에 태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있었네.”
굳이 저 여자를 자객으로 보낼 이유가.
* * *
‘마법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 보여.’
마법에 누구에게 마법을 배운 흔적은 없는 걸로 봐서는 스스로 마법을 깨우쳤을 가능성이 크다.
혼자 깨우친 것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마법 실력이다.
“조심해라. 어쩌면 잭과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태운이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손쉬운 상대였겠지만 가도의 몸에 있는 마나 회로는 이미 전부 망가져 쓸 수 없는 상태다.
잭은 오늘 타 영지로 출장을 가 있다.
즉, 레일로프와 둘이 그녀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칫, 하나 처리하고 시작하려고 그 꼴까지 당해줬더니….”
“깨어 있는 걸 알고 있었나?”
“아니, 막혔을 때 생각해낸 거야.”
“두뇌 회전이 빠른 편이군.”
“당신도 만만치 않은 거 같은데?”
부-웅!
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오른손을 휘둘러 불덩이를 쏘아냈다.
목표는 레일로프, 태운은 방패를 들고 레일로프의 앞에 서서 불덩이를 막아냈다.
“조심해라.”
태운은 레일로프에게 짧게 말한 후 앞으로 달려들었다.
‘불덩이 하나 둘….’
양쪽으로 날아드는 불덩이 중 하나는 피하고 하나는 방패로 막아냈다.
피한 불덩이는 레일로프를 향해 날아갔지만 무리 없이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허?”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녀는 작은 불덩이 수십 개를 동시에 쏘아냈다.
“미친!”
태운은 옆에 집히는 가구를 넘어뜨려 그것에 몸을 숨겼다.
그러곤 가구의 다리를 뜯어 자객에게 던졌다.
“이걸로 뭘 하려고!”
펑!
그녀는 태운이 던진 가구 파편에 불덩이를 쏘아 격추했다.
그때 태운은 그녀의 메테리얼이 2개밖에 남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레일로프! 강화!”
“네!”
태운은 가구를 넘어 달리면서 레일로프의 신체 강화를 받고 방패를 던졌다.
쩌-억!
“좋아!”
방패는 자객이 미리 생성해놓은 방어막을 깨부순 후 바닥에 떨어졌고, 태운은 그것을 노렸다.
“이….”
자객은 방패를 버린 태운을 노리고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빠-악!
“나도 무시하면 안 되지.”
레일로프가 뒤에서 가구 파편을 던져 자객의 마법 시전을 방해했다.
자객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좀 자고 있거라.”
퍼-억!
태운의 주먹에 턱을 제대로 맞은 자객은 바로 기절했다.
“두 명이 하나를 공격하는 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일로프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 완성도를 가진 마법사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자는 내가 감시하겠네.”
어쩌면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완벽하게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태운은 출장을 다녀온 잭과 함께 라온을 가둬둔 지하 감옥으로 들어갔다.
“이름이 라온이라고 했나?”
“네, 고용주는 헤이런 백작인 것 같습니다.”
“헤이런 백작이라….”
테렌 왕국에서도 나름의 영향력이 있는 귀족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정도 실력자를 고용할 수 있었겠지.
“이 사람 배경이 수상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잭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전쟁으로 불타 무너진 집 안에 홀로 살아남아 있었고 그 후 맡겨진 고아원에서 불이 나 전부 탈출했을 때도 건물 안에 있었다고 한다.
입양된 후에도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
“그래서 불 마법을 많이 사용했던 거군….”어렸을 적 충격 때문에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이 정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라온이 그런 케이스인 모양이다.
그때 라온이 있는 감옥 안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녀가 손에서 불을 만들어내 사슬을 약하게 만든 후 철구로 내려치려 했을 때.
“그것도 한 번에 못 녹이나?”
태운이 철창 밖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