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9화 (9/379)

9화

* * *

데블스 에이지.

악마의 시대, 불과 21년 전에 시작된 이야기이다.

던전 안에서 나오는 특수한 자원들로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던 인류는 데블스 에이지가 시작된 날, 그날 이후로 완전히 파괴되기 시작했다.

세계 정부에서 가장 크다고 공인한 7개의 던전이 동시에 변이를 일으키면서 입구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여태 이런 일이 없었기에 세계 정부는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원래의 던전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총알에 맞으면 속수무책으로 바스러졌으나 데블스 에이지가 시작된 이후는 달랐다.

그들의 강력함은 차원이 달랐고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해졌다.

피부가 두꺼운 몬스터들은 총알도 효과적이지 못했고, 조금 큰 개체는 미사일을 대량으로 사용해 겨우 처리할 수 있었다.

효과적인 대처법을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인류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그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중 7마리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교만의 루시퍼.

시기의 레비아탄.

분노의 사탄.

나태의 벨페고르.

탐욕의 마몬.

식탐의 벨제부브.

색욕의 아스모데우스.

그들은 자신을 칠죄종이라 부르며 엄청난 수의 몬스터 떼를 이끌고 학살과 파괴를 자행했다.

그들에게는 미사일과 총알이 잘 먹히지도 않았고 전차나 전투기 같은 병기들을 사용해도 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에게는 그저 부수는 맛이 좋은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때 인류의 희망이 나타났다.

힘을 숨기고 있던 능력자들이 나타나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태운과 윤아의 부모님인 지소연과 강철운이었다.

* * *

“대장님! 신의주 전선에서 급한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무슨 일이지?”

“시기의 레비아탄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

한국 지부의 대장인 강철운은 인류의 적, 칠죄종 중 하나인 레비아탄의 등장 소식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마지막이구나….”

참전한 지 11년.

기나긴 전투 중 능력자들은 일곱 악마 중 여섯 악마를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악마인 시기의 레비아탄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신의주 전선에 레비아탄의 도착 예정일은?”“3일 후입니다. 그런데… 레비아탄의 힘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음? 자세히 말해 보라.”

“그게….”

보고의 내용은 정말로 심상치 않았다.

과거의 전투에서 보았던 모습과 비교해서 레비아탄의 덩치가 수배는 거대해졌고 그의 군세 또한 그랬다.

레비아탄은 앞을 막아서는 모든 산을 부숴 버리며 신의주 방어선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후우… 잠시 집에 다녀와도 되겠지?”

강철운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부관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철운에게는 불과 9살인 아들과 7살인 딸이 있었으니까.

“군대는 전부 진군시키게. 나와 내 아내는 나중에 텔레포트로 늦지 않게 가겠네.”강철운은 침음을 삼키더니 명령을 내리고 막사를 떠났다.

* * *

태운은 몇 년 전에 보았던 데블스 에이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상기하며 이를 갈았다.

‘누가 레비아탄이 무서워서 도망을 쳤다는 거야?’인정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의 기억은 지소연과 강철운은 그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했고 또 누구보다도 용감했다고 기록하고 있었기에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웠다는 것만 해도 우상이 되어야 마땅하나 이상하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억울했다.

그렇기에 앞에 있는 이동현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을 넘어 부모님까지 모욕한 그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태운은 이를 갈며 주머니에 있는 모든 마정석을 한 번에 흡수했다.

[흡수한 마정석의 마나를 저장합니다. 총 10,000의 마나를 저장합니다.]

“안 받아주실 건가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말도 못 하고 있던 이동현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감히….”

평소에 무시했던 학생이 갑자기 돌변해 자신에게 도전하더니 이번에는 도발까지 하고 있다.

고작 19살의 학생이 한 도발이었지만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았던 이동현은 참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뭔가를 걸어야겠죠?”이동현은 속이 끓을 대로 끓고 있었다.

“제가 이기면 교직을 버리세요.”

“뭐?”

“설마 교사라는 사람이 학생도 못 이기진 않겠죠? 그럼 진작에 교직 버렸어야지.”E급 헌터는 프로 헌터 중에서는 약한 편이다.

하지만 학생이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막 졸업한 익스퍼트 학생은 F~E급 헌터와 수준이 맞는다.

그 상태에서 몬스터를 잡고 경험을 얻으며 레벨을 올리고 자신의 역량을 키우면서 승급할 수 있다.

학생일 때 안전하게 훈련하는 것보단 헌터로 활동하며 실전을 경험하는 쪽이 성장 폭이 훨씬 컸다.

그렇기에 고작 스타지에르의 학생과 E급 헌터의 사이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그 차이는 이동현과 강태운 사이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대결 규칙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태운에게는 다른 프로 헌터라도, 특히 E급 헌터라면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이 있었다.

“상대에게 먼저 10번의 공격을 맞추는 것을 승리 조건으로 하죠.”이거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정동수, 체육관에 있는 결계석 가져와라.”

“네.”

결계석.

결계의 수식을 기록하고 있는 자그마한 돌이었다.

대결에서 흔히 사용되는 결계는 육체적 피해를 정신적 피해로 넘겨주는 결계이다.

부가적으로 대결의 승패를 판별하는 역할도 했다.

이 결계 안에서 싸우면 아무리 심하게 공격을 받더라도 기절에서 그치게 된다.

이로써 다칠 걱정은 덜었다.

“결계석 가동하는 법은 알고 있겠지? 결계 설정은 체력 10, 모든 마법의 피격 데미지는 1이다.”

“네, 알고 있어요.”

이동현이 정동수에게 결계석 가동을 맡기고 태운의 앞에 섰다.

“쇼크로 죽지나 마라. 일 복잡해지니까.”

저 유치한 도발을 보면 선생을 떠나서 어른이 맞는지도 의심됐다.

“결계석 가동.”

그러자 직경 10m 크기의 반투명한 돔이 강태운과 이동현의 주변을 덮었다.

“긴말할 거 없이 바로 시작하죠?”

태운은 의도적으로 이동현의 속을 살살 긁었다.

아무래도 그래야 승산이 높아지니까.

“이놈이…. 후… 정동수, 3초 세라.”

예상대로 이동현의 참을성은 매우 낮았다.

태운의 예상대로 흘러갈 확률이 높았다.

‘이대로라면 최대한 빨리 승부를 내고 싶어서 방어 쪽은 신경 쓰지 않을 공산이 크다. 어차피 나는 마법을 못 쓴다고 알려졌으니까.’이동현의 최대 메테리얼 생성 가능 수는 4개, 그에 반해 태운은 그의 두 배도 넘는 10개다.

이 정도의 차이는 목숨 서너 개와도 비견되곤 한다.

태운은 흡수해 저장해둔 마나 중 50%를 소모해 메테리얼로 만들었다.

그때 정동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 1… 시작!”

“트리플 샷,”

그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 전투, 그와 동시에 총 9발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왔다.

“프로텍트!”

3개의 메테리얼을 소모,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터터터터텅!

“……!”

태운의 앞에서 튕겨 나가는 매직 미사일들을 보며 모두가 경악했다.

그것은 완벽한 프로텍트 마법의 시전 모습이었으니까.

“이 무슨….”

“트리플 샷!”

태운은 똑같은 마법으로 갚아주기로 했다.

5개의 메테리얼을 트리플 샷으로 전환 후 발사했다.

“프로텍트!”

이동현은 하나 남겨둔 메테리얼로 방어 마법을 시전하여 자신의 몸에 공격이 날아드는 타이밍을 한 박자 늦춘 후, 빠른 속도로 메테리얼을 생성, 프로텍트 마법을 다중 시전했다.

‘그래도 굴러먹은 게 있다는 건가?’

솔직히 여기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당황할 태운이 아니었다.

현재 이동현의 수중에 있는 메테리얼은 0개, 반면 태운은 2개나 남아 있었다.

“화폭, 프로텍트.”

허공에 폭발을 일으키고 그 폭발의 여파로 주변 마나 깨트려 파편으로 만들어 사방으로 발사하는 마법.

공격 범위에 자신도 포함되기에 프로텍트를 시전했다.

위력은 약하지만, 범위와 발사되는 총알의 수는 엄청난 마법이었다.

물론, 태운이 만든 것이다.

‘실제로 죽는 헌터 중에서는 다수의 거충(巨蟲)에게 죽는 경우도 많다지. 그걸 대비해서 만들어본 마법인데 나름 쓸 만하네.’거충(巨蟲)은 던전에서 무리를 지어 헌터들을 공격하는 3~40cm 정도의 큰 벌레 몬스터다.

개체 하나하나는 야구 방망이를 든 일반인도 쉽게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약하지만 보통 10마리에서 많으면 수천 마리씩 나타나기에 꽤 위험한 몬스터 중 하나다.

푸푸푸푸푹!

“매직 스킨!”

터터터턱!

날아오는 마력 총알의 위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아챈 이동현은 단 하나의 메테리얼만을 사용해 온몸을 뒤덮는 얇은 마법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벌써 8대나 맞으셨네요?”

막아내긴 했지만 마법 시전이 늦어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리고 설정한 총 체력의 80%나 깎여 정신적인 피해도 상당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였다.

“이게… 이게 뭐야…. 마법도 못 쓰던 놈한테 내가…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충격이 어지간히 큰 모양이다.

일반 학생도 아닌 명운 헌터 아카데미 희대의 열등생, 강태운에게 패배한 것이니까.

“이제 끝내겠습니다. 생각보다 잘 버티셨어요.”

“이놈…! 프… 프로텍트!”

태운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1,000의 마나를 남겨두고 전부 사용해 두 개의 메테리얼을 만들었다.

2,000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메테리얼 둘은 각각 붉고 푸른 빛을 내기 시작했다.

“파이어 윔블, 아이스 윔블”

쩌적!

불꽃의 송곳과 얼음의 송곳은 이동현이 생성한 방어막을 부수고, 푹! 푹!

이동현의 몸에 박혔다.

그 순간, 그는 기절했고 결계가 사라졌다.

누가 봐도 강태운의 압도적인 승리, 모두 쩍 벌린 입을 닫을 수 없었다.

* * *

태운이 교무실로 불려 가 정황 설명을 하고 교실에 들어오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봤어? 속성 마법 두 개 동시에 시전하는 거?”“그것도 완전 반대 속성이잖아? 그거 거의 익스퍼트급 실력 아니야?”

“익스퍼트는 무슨, 마스터급은 되겠지.”

실기 평가는 하루 뒤로 미뤄졌다.

이동현이 진 관계로 허덕륜이 대신 심사를 맡기로 했다.

태운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는 편견으로 심사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동현은 태운에게 진 이후 바로 퇴근했다.

누구도 모르게 도망치듯이 말이다.

‘시말서도 쓰시겠네.’

태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교실로 들어온 그를 보고는 수군거리던 학생들이 단번에 몰려들었다.

“E급 헌터는 느낌이 어땠어?”

“진짜 미친 거 아니냐? 학생이 어떻게 프로 헌터를 이겨?”

“이기는 방법 같은 건 공유 안 해주냐?”

공유는 해주려면 못 해줄 것도 없지만, 그들이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참고서 하나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그들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그만해 줬으면 좋겠는데….’여전히 태운에게 몰려든 학생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부담스러워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에 이겼다고 해서 내가 더 강한 게 아니라는 걸 왜 모르냐….’실제 전투였다면 이동현은 고작 화폭으로 만들어진 마나 파편으로 피해를 입지도 않았을 것이고 피니시 공격은 가볍게 피했을 것이다.

그 시점에서 마정석으로부터 흡수한 마나를 전부 소모한 태운은 공격과 방어 방법을 상실, 그대로 패배했을 것이다.

여전히 마나양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는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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