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음? 굳이 그럴 필요가….”
“어차피 다른 알바를 해도 마정석을 사는 데 사용할 겁니다. 차라리 여기서 일하고 마정석으로 받는 게 편하지 않겠습니까.”소장에게도 솔깃한 말이었다.
마정석을 알바비 대신 달라고 하는 것은 바로바로 마정석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팔아야 하는 물건이니 별다른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마정석을 어디에 쓰려는 거지?”“마정석과 다른 요소들의 충돌로 인한 대기 중의 마나의 반응 실험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실험이 더 있습니다.”태운은 대충 머릿속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조합해 그럴듯한 실험을 만들어서 말했다.
대충 말해도 마나에 대해서 배우는 게 없는 일반인은 충분히 속일 수 있었다.
“어…음…. 그렇군. 꽤 괜찮은 주제의 실험이야… 그럼 이제 간단한 주의 사항을 전하겠다.”주의 사항이라고 해봤자 별것 없다.
마정석을 잘못 분류해서 생긴 문제는 그 책임을 청구하겠다는 것, 당연하지만 마정석을 고의로 변형시키지 말라는 것, 그 외에는 마나 저울을 사용하는 방법 정도가 끝.
“알겠습니다.”
태운은 자리로 가서 관찰력 스탯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마정석 더미에서 한 바가지 퍼서 가져온 마정석을 책상 위에 펴놓고 한 번에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주시하며 바라보았다.
그러자 생각도 못 했던 게 나타났다.
지이잉….
태운의 오른 손등에 있는 문신이 약하게 진동하면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설마….’
태운은 빠르게 문신을 건드려 상태창을 확인했다.
[스킬 ‘마정석 감정’을 획득합니다.]
“나이…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렇게 필요한 스킬들이 바로바로 나와주다니….’태운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마정석 감정을 사용했다.
그러자 최하급, 하급이라는 글자가 각각 마정석 위에 떠 올랐다.
능력이 분류 기준을 어떻게 사용할 줄은 몰랐지만, 이 세계의 분류 기준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뭐, 상태창 언어도 한글로 나오니까.’
태운이 편하게끔 능력도 어느 정도 변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자, 이제 잡생각 그만하고 시작해 볼까!”
마정석 위에 떠 오른 최하급, 하급의 글자를 보고 분류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하급 마정석을 하나하나 주워 하급 마정석 자루에 담았다.
그러곤 남은 최하급 마정석을 전부 팔로 쓸어서 자루에 담았다.
하나하나 저울에 올려 체크를 하는 다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몇 번이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자 찬영이 찾아왔다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태운이 팔로 마정석을 쓸어 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마정석 분류 중이지.”
“그게 아니라. 너 지금 제대로 분류하고 있는 거 맞아? 저울도 안 쓰고 있는데.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태운은 그제야 아, 하며 핑계를 생각해냈다.
그 핑계는 순식간에 나왔다.
“능력자는 마나를 느낄 수 있잖아?”
“그래도 마정석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은 너무 약해서 차이를 못 느끼잖아.”“나는 마나양이 엄청 적어서 마나에 대해서 엄청나게 예민하거든. 최하급 마정석의 적은 마나양도 느낄 수 있어. 못 믿겠으면 몇 개 집어서 확인해 봐.”하며 태운은 지금까지 분류한 마정석이 들어 있는 자루를 건넸다.
찬영은 미심쩍은지 3개 정도를 꺼내 저울 위에 올렸다.
하나하나씩 확인을 마친 찬영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네? 너 대박이다. 이 속도면 하루에 6~7시간 정도만 일해도 억대 연봉 나오겠는데?”태운은 빙긋 웃었다.
확실히 속도를 비교해 보면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난다.
다른 사람들은 8시간 정도 일하면 6~7천 개 정도를 분류한다.
하지만 태운은 벌써 500개나 분류했다.
2시간하고도 조금만 더 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태운은 이 일이 숙달되면 더 빠른 속도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조금은 느린 감이 있었다.
물론 그의 기준에서였지만.
“그럼 수고해라. 나는 아버지한테 가서 네 얘기 좀 해야겠다.”
“아버지? 설마… 소장님?”
“오, 정답! 아무도 못 맞추던데 너만 맞췄어.”
“와… 대박.”
그때 태운은 소장이 찬영을 부를 때 ‘막내야!’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냥 창고 내에서 가장 나이가 적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아들일 줄이야….
태운은 머릿속에서 소장과 찬영의 모습을 대비했다.
“와… 와!”
어쩌면 저렇게 안 닮은 부자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볼수록 충격적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튀어나온 근육, 뭉툭한 코, 두툼한 입술, 부릅뜬 눈, 비어 있는 앞머리와 정수리.
마정석 창고의 소장은 몸만 빼면 전형적인 아저씨였다.
그에 반해 찬영은 운동부 미남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였다.
적당히 갈색인 피부에 높은 콧대, 부드러운 눈매 그리고 결정적으로 풍성한 머리칼.
‘와… 엄청 안 닮았는데….’
충격이 가시자 뒤돌아가는 찬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시 봐도 안 닮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다이렉트로 익스퍼트 등급까지 올라가 골드 A반 3등까지 먹은 초엘리트의 실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서로의 스탯을 묻는 것은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매우 실례되는 일이다.
하지만 태운은 관찰력 스탯으로 상대방의 상태창을 불러올 수 있다.
태운은 찬영을 바라보며 상태창을 불러왔다.
그러자 본인의 상태창이 아닌 찬영의 것이 나타났다.
“와….”
그의 상태창을 보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구찬영
LV: 38
마나 총량: 241,943
체력(45) 근력(42) 민첩(42) 유연성(14) 지력(12) 마나감응력(14)
특성
신장(LV.M)
마나 친화력(LV.2)
스킬
중급 검술(LV.7)
중급 방패술(LV.3)
중급 창술(LV.9)
초급 마법(LV.4)
피부 경화(LV.3) [S]
신장: 체력, 근력, 민첩이 3배로 빠르게 오른다.
마나 친화력: 마나를 다루는 행위에서 마나의 효율이 늘어난다.
피부 경화: 마나를 이용해 피부를 단단하게 경화할 수 있다. 사용하는 마나의 양이 늘어날수록 단단해진다.
“대박….”
마나양도 한국 능력자 평균보다 10만은 높고 스탯은 신참 프로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바로 프로로 데뷔해도 별문제 되지 않을 정도의 스펙이었다.
그리고 3개의 중급 기술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중 창술은 상급을 앞둔 상태였다.
게다가 피부 경화라는 스킬의 옆에는 시그니처 스킬, 즉 고유 스킬을 의미하는 [S]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스킬이라는 의미였다.
또한 하나를 갖기도 어렵다는 특성이 2개, 특히 신장은 누구라도 탐날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3개의 스탯이 무려 3배의 속도로 오른다니, 그야말로 축복이지 않은가.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그의 괴물 같은 스탯과 스킬의 완성도는 설명할 수 없어. 찬영이는 다른 익스퍼트의 사람보다 적어도 2년, 3년은 늦게 수련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밀리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열심히 했겠지.’태운은 걸어가는 찬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재능을 시기해 그 사람의 노력을 부정하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찬영이의 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어. 앞으로는 더 엄청난 녀석이 되겠지.’하지만 지금처럼 그의 등만 바라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옆에 서서 나란히 달릴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추월하리라.
태운은 마음속으로 또 하나의 목표를 정했다.
* * *
태운은 7시부터 9시까지 총 2시간 동안 일해 약 10만 원을 벌었다.
불과 2시간 동안 10만 원을 번 것이다.
“으그그극….”
스스로 목표했던 양을 전부 채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우 두 시간 동안 앉아서 일했다고 허리며 어깨며 모두 부러질 것같이 우두둑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 일을 8시간이나 한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질 정도였다.
“여기 최하급 마정석 한 박스다. 오늘 수고했다. 보너스로 한주먹 정도 더 넣었다.”
“감사합니다.”
창고 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일하던 도중 태운이 들은 바로는 마정석 분류 속도 때문에 납품이 늦어져 본사 측에 몇 번이나 깨졌었단다.
그러니 혼자서 4~5명의 일을 해내는 태운은 복덩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그래,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
태운은 건네주는 마정석 박스를 받아들고는 집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골목을 걷던 중 갑자기 마정석 박스에 있는 최하급 마정석에 손이 갔다.
“한 번에 10개 정도도 버텼으니 한두 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박스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마정석 한 개를 꺼냈다.
마정석 흡수를 사용했다.
“윽!”
여전히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마정석 흡수의 레벨이 오르기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나아진 고통이었다.
태운은 마정석 흡수의 레벨이 오를 때 나왔던 알림창을 떠올렸다.
“효율이 오른다고 했었지… 비용에 고통도 포함되어 있던 건가.”생각해 보면 마정석 흡수의 레벨이 오른 이후 한결 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덜 아프게 마정석을 흡수할 방법을 찾던 그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과자를 하나씩 까먹듯이 마정석을 하나씩 흡수하며 걸었다.
그러고 있자니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에서 무엇인가 위화감이 들었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태운이었으나 지금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면 신고하고 달리자.’
태운은 휴대폰을 들고 통화 창에 112를 찍어둔 채로 골목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하고 싶었다.
이곳은 빠른 주거시설의 확장 탓에 골목이 지저분하게 생긴 곳.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가는 막다른 길이 나온다.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 같은… 철수다. 쥐새끼가 나타났어.”
태운이 그 쥐새끼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죽이면 된다.”
“하지 마. 능력자야. 허가 없이 죽이면 안 돼.”하나는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였고 하나는 소리가 쩍쩍 갈라지는 괴물 같은 목소리였다.
여기서 그들을 그냥 놓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의 얼굴이라도, 아니면 체형만이라도 알아내야 한다.
위험해질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왠지 그래야만 한다는 직감이었다.
최대한 빨리 골목의 모퉁이를 돌았지만, 그곳에는 방금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웬 키 작은 할아버지 혼자였다.
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묘하게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태운은 힘겹게 말을 걸었다.
“괘, 괜찮으세요?”
“덕분에. 고맙네. 지금은 급하니 사례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네.”
“예?”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태운은 벙찐 얼굴로 그곳에 한동안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뭔가 엄청난 일에 휘말린 듯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