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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5화 (5/379)

5화

* * *

태운은 지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금세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 윤아는 침대에서 휴대폰을 하며 잠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신발을 벗고 있자니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울렸다.

집에 들어오자 허기가 한 번에 몰려온 것이다.

“아, 배고프네. 뭐라도 먹을까. 라면이 남아 있으려나… 아니면….”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현관과 거실 사이에 있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가려는 순간 주방 바닥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태운은 곧장 주방으로 달려갔다.

쓰러져 있던 사람들은 전부 여성, 총 두 명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들 중 윤아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윽…!”

그들에게 다가가자 엄청난 악취가 났다.

맡아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게 시체 썩는 냄새이리라.

태운은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우리 집 주방은 다이닝 키친이야…. 주방에서 쓰러져 있다는 건 식탁에 앉아 있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외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독살…? 아니, 잠깐 설마….’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누군가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 악취!

다시 맡아보니 익숙한 냄새였다.

혹시나 해서 손을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의 코앞에 가져가 보니 둘 다 숨은 쉬고 있었다.

그러자 태운의 오른 손등이 빛을 발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건의 전말을 알아냈습니다.]

[스탯 ‘관찰력’이 ‘1’ 증가합니다.]

상태창으로 자신의 추리가 진실이라는 걸 확인한 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야, 나와라.”

그러자 주방 옆 테라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윤아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헤헤….”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네가 만든 음식 먹이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냐. 충격받고 기절하는 게 그리 어려운 거 아니라니까?”“오빠 늦게 온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좀 놀다가 보내려고 했는데….”지금 주방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윤아의 특제 음식을 먹고는 기절한 윤아의 친구.

썩은 냄새는 윤아가 만든 요리의 냄새였다.

“이제 어떻게 하냐. 얘네 부모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딸이 이 시간이 돼서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

윤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더는 몰아붙이기 싫었던 태운은 아무 말 없이 둘 중 한 명을 안아 들었다.

그러곤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 위에 눕혔다.

그러자 윤아가 기겁했다.

“오빠… 뭐 하려고!?”

“미친… 너 뭔 생각하냐?”

안 되겠다. 얘는 죽도록 맞아야 할 것 같다.

태운은 꿀밤으로 윤아의 개소리를 원천 차단하고 다시 주방으로 가서 나머지 한 명도 자신의 침대 위로 옮겼다.

“설마… 오빠 동시에….”

따악!

“조용히 하라고”

“흐윽….”

‘도대체가 머릿속에 뭐가 든 건지….’

태운은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았다.

그러곤 소파에 있는 작은 쿠션을 베고 누웠다.

“뭐, 여기도 잘만 하네.”

“아냐! 내가 여기서 잘게! 오빠가 내 방에서 자!”자신이 잘못한 건 아는지 불편한 일을 자처하는 윤아였다.

“시끄럽고, 네가 만든 독극물이나 빨리 치워.”음식을 먹다가 그대로 토한 탓에 바닥에는 오물이 늘어져 있었다.

빈속이었던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독한 냄새였다.

‘저녁은 물 건너갔네.’

이 냄새를 맡고는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 *

태운은 소란이 있던 다음날,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윤아에게 대충 들은 바에 따르면 어제 기절해있던 사람 둘 중 한 명은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고 태운과 같은 나이라고 한다.

‘나랑 같은 나이면 지금 챌린저에 있을 텐데.’찬영은 익스퍼트지만 그는 특별한 경우니까.

그녀가 누군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마침 그녀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일어났네.”

“어…. 안녕.”

그녀는 머리가 산발이 돼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러곤 태운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말을 걸었다.

“어? 설마 태운이니?”

“나 알아?”

그녀는 태운을 알고 있던 것이다.

“당연하지! 우리 재작년에 같은 반이었는데!”태운은 재작년의 기억에서 그녀를 찾았다.

“음, 혹시 서혜연이니?”

“기억하는구나!”

기억이 안 날 리가 없었다.

태운과 비슷한 재능의 저주를 안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실력 자체는 같은 스타지에르 등급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마나량이 8만 정도밖에 되지 않아 브론즈 C반에 배치되었다.

어찌 보면 태운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기억에 남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챌린저 등급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2년 새에 얼굴 많이 바뀌었네.”

“고생을 좀 많이 하긴 했지….”

“딱히 늙었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

태운은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침 먹고 가.”

“아침까지 얻어먹고 미안해서 어째.”

“입에 윤아 음식 잔해 남아 있어서 거슬릴 텐데 양치 먼저 해. 칫솔은 따로 꺼내놨어.”“땡큐, 안 그래도 조금 거슬리긴 했는데.”

서혜연은 태운의 말을 따라 화장실로 갔다.

“흐음….”

현재 서혜연은 챌린저 실버 등급에 재학 중이다.

챌린저 2년 차로 치면 평균에 가까운 성적이지만 그녀의 실력으로 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일 것이다.

승급 방법의 하나인 대련 종목에서 서혜연을 만난 상대는 방어에만 힘을 쓰면서 서혜연의 마나가 동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의 마나가 바닥나면 경기를 끝낸다.

실력의 차이가 크면 마나량의 격차도 무시할 수는 있지만, 그녀는 아직 배우는 처지인 학생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딱 그 정도, 다른 학생들을 압도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한다.

“어휴, 내가 누굴 걱정하냐.”

마정석 흡수를 얻기는 했지만 이제 겨우 다른 사람들과 동일선상에 선 것뿐이다.

태운에게 다른 사람을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을 텐데….’최근에 허덕륜 선생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신태연을 제압했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방법을 쓸 수는 없다.

관찰력 스탯을 사용해 부족한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적을 제압한다는 건 사람에게는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 개의 촉수에 거대한 몸을 가지고 온몸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것으로 둘러싸인 몬스터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사람한테도 통하지 않을 거야.’마나가 없으면 같은 스탯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 성능은 차이가 크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 강화 마법을 받을 때 효율도 다르니까.

‘후…. 내가 마법만 쓸 수 있었다면….’

태운은 한숨을 푹 내쉬곤 완성된 김치찌개와 고등어 조림을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김이 풀풀 나는 갓 지은 밥도 함께 올려놓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도 찬기에 담아 내놓았다.

‘일단 마정석 안에 있는 것도 마나도 내가 흡수하는 것도 그것과 관련되어 있겠지.’그렇다면 계속 흡수와 연구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스탯이 늘어날 것을 상상도 못 했고 그게 마정석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는 더욱더 상상하지 못했지.’태운은 지금껏 상상도 못 했던, 지금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 머지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와, 이거 전부 네가 만든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서혜연이 양치를 끝마치고 태운에게 다가왔다.

“고사리나물이랑 김치는 산 거야.”

“그럼 나머지는 전부 네가 만든 거네?”

“응”

태운은 고개를 끄덕거리곤 김치찌개의 뚜껑을 열고 집게와 가위를 들고 와서 통으로 넣은 김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원래라면 김치를 길게 주욱 찢어서 먹었겠지만 그래도 손님 앞에서 그러기는 좀 민망했다.

김치를 전부 자르고 김치찌개를 한번 뒤적이니 익숙한 김치찌개의 향이 한결 더 강렬하게 풍겨왔다.

“와, 진짜 잘 끓인 김치찌개인 듯. 전문집 수준이다.”그녀는 김치찌개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후루룩!

국물이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이 흘러 들어갔다.

어제저녁의 충격 이후 처음 먹어 보는 음식다운 음식이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국물이 뜨끈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공복인 배에 시동을 걸어주었다.

“어때?”

태운이 묻자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그다음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계란말이였다.

전체적으로 노란색인 계란말이, 달걀을 완전히 풀지 않아 하얀색이 보이는 것이 이상하게 식욕을 돋워주었다.

그것을 질근 씹자 씹는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촉감이 이빨을 통해 느껴졌다.

“이야… 너 진짜 요리 잘하는구나?”

“10년이 넘게 하기도 했고 관심도 있었으니까.”그 말을 하곤 서혜연은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따뜻한 어묵볶음은 간장과 물엿이 섞여 기본적이면서도 계속 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고등어는 비교적 평범했지만 잘 지어진 밥과 같이 입에 넣으니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

버섯의 향긋하고 고소한 맛도 일품이었다.

그때 손등의 문신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시식자가 ‘따뜻한 아침 밥상’에 만족합니다.]

[시식자가 일정 시간 동안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원래 상태창이 이렇게 디테일했었나?’

스킬이 생기면서 알려줘야 할 정보가 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태운의 오른손의 문신에서 나오는 상태창은 관찰력 스탯과 연동되어 다른 사람의 능력치를 보여주기도 했으니, 그것의 연장선으로 봐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런데 곧 있으면 챌린저 등급은 특훈하러 가지 않나?”

“다음 달이야….”

서혜연의 말끝이 미묘하게 처졌다.

“특훈 가서는 뭐 해?”

“가서 최하급 몬스터랑 싸우는 것밖에 안 해. 먹고 싸우고 자고. 죽을 것 같다니까… 그리고 또 어떤 일이 있었던 줄 알아?”

“뭔데?”

태운은 그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슬쩍 그녀의 상태창을 엿보았다.

[서혜연]

LV: 18

마나 총량: 82,694

체력(7) 근력(12) 민첩(9) 유연성(3) 지력(35) 마나감응력(28)

특성

마법 영창 속도(LV.7)

스킬

중급 마법(LV.1)

초급 검술(LV.2)

‘오호라….’

운동을 주로 했으면 신체 능력이, 마법을 쓰는 훈련을 많이 했으면 지력이나 그와 관련된 스탯이 증가했다.

하나의 레벨이 오르면 평균적으로 1~2의 스탯이 오른다.

그것을 고려했을 때 서혜연의 지력 스탯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마나를 다루는 센스도 수준급이었다.

챌린저 중 고작 브론즈에 그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문제는 스탯이 아닌 마나양에 있었다.

8만 2천.

대한민국의 평균인 15만의 절반에 불과한 마나양.

애석하게도 그녀는 비교적 마나가 덜 필요한 근접 형이 아닌 원거리 마법 형의 신체를 타고 태어났다.

노력은 하지만 재능이 받쳐주지 않는 케이스 중 하나가 그녀였다.

‘적어도 평균인 15만의 마나양이 받쳐주었다면….’아마 그녀는 챌린저 등급의 톱을 노리고 있지 않았을까.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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