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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화 (3/379)
  • 3화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이, 우리가 일반인도 아니고 무슨 야구공 피하기예요?”“우리 C반이라고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헌터를 목표로 하는 능력자 정도면 야구공 기계에서 나오는 공은 쉽게 쉽게 피할 수 있다.

    일반인도 단련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태운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테스트의 공포를 알고 있었으니까.

    허덕륜은 교내의 야구 연습장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갔다.

    뭔가 이상한 게 있다면 야구 기계는 옆에 치워져 있었고 뒤의 그물은 쇠사슬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1번…. 강기현부터 여기 서라.”

    “선생님 진짜 야구공 피하기 해요?”

    ‘잘 가라 기현아….’

    강기현의 명복을 비는 태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까지 거들먹거리는 그에게 허덕륜이 코웃음을 쳤다.

    “공이 5개 날아갈 테니 전부 피하거라. 집중하고.”

    “예…… 우왁!”

    철커덩!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 위로 야구공이 날아갔다.

    겨우 주저앉은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무슨 속도가… 으억!”

    퍼-억!

    “끄어어…….”

    자세를 다잡기 전에 날아온 공에 복부를 얻어맞은 강기현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야구공을 들고 있는 허덕륜이 있었다.

    “한 번 피했군….”

    “쌤?”

    “선생님이 던지는 거였어요?”

    “당연한 거 아니냐. 너희가 일반인도 아니고 야구공 기계로 할 거라고 생각했나?”

    “저… 그냥 안 하면 안 되나요…?”

    그다음 차례인 2번이 옆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강기현을 보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그도 그럴 게 공이 보이지도 않았으니 피할 엄두도 안 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안 다치게 조절할 테니까. 그리고 이거 소프트 볼이다. 내가 한두 번 던져본 것 같으냐? 선생님이 한창 던전 쏘다닐 때는 돌멩이로 몬스터 죽이고 그랬단다.”

    “그거 죽이겠다는 말인 거 같은데….”

    허덕륜이 책자에 피한 횟수를 적고는 옆에 던졌다.

    “준비해라. 언제 날아갈지 모르니까.”

    “히익….”

    “참고로 지금 익스퍼트 등급에 있는 놈 중에도 내 공 5번 연속으로 피한 녀석은 아직까진 한 손으로 셀 수 있지.”“…보건 선생님 데려올게요. 어, 이미 오셨네요.”“이게 한두 번 일도 아니니 말이다. 하여간….”보건 선생님 입장에서도 참 곤란한 일이었다.

    말린다고 듣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이 아카데미의 보건 선생님은 치유 마법에 일가견이 있으셨다.

    “그럼 재개!”

    퍼-억! 퍼-억! 퍼-억!

    한 명 한 명 쓰러져 그 수가 4명이 되자 드디어 5번인 태운의 차례가 되었다.

    “쌤~ 걔는 할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신태연이 태운을 놀리자 옆의 학생들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태운은 그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허덕륜의 앞에 섰다.

    “태운아, 알지? 네가 약하다고 해서 살살하지는 않는다는 거.”네, 아주 잘 알죠. 2번이나 쓰려졌었는데.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성격상 대충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태운은 허덕륜의 손과 팔, 어깨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것들이 공이 날아오는 궤적과 속도를 정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변 분위기가 평소와 묘하게 달라졌다.

    귀가 멍하게 웅웅거렸고 분명 색이 보이지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억을 회상할 때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허덕륜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그 순간 공의 궤적이 빨간 선으로 나타났다.

    공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궤적은 선명하게 보였다.

    ‘설마 이것도 관찰력 스탯의…?’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공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정확히 자신의 명치를 노린 공.

    태운은 본능적으로 그 궤적에서 몸을 빼냈다.

    몸을 날리게 되면 다음 공을 피할 수 없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야 한다.

    타닥!

    빠르게 사이드 스텝을 밟아 아슬아슬하게 공을 피했다.

    피하고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다음 공이 날아왔다.

    다음 공은 태운의 어깨를 겨냥하고 있었다.

    어깨를 움츠려 피하자 다음 공은 바로 오른쪽 허벅지로 날아왔다.

    다리를 벌리자 공이 다리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그때 다른 공이 몸통을 노리고 날아왔다.

    자세가 좋지 못하다.

    털썩!

    태운은 오른쪽 허벅지에 힘을 주어 앞으로 그대로 넘어졌다.

    등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공이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공…!’

    마지막 공은 바닥에 거의 붙어서 날아오고 있었다.

    구른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저 본능이 시킨 일이었다.

    넘어지면서 저절로 이뤄진 전방 낙법, 그 때문에 두 손이 땅에 붙어 있었다.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두 다리로 튕겨내듯이 땅을 찼다.

    잠깐이지만 태운의 몸이 공중에 떴다.

    철커덩! 털-썩!

    “허억… 허억….”

    마지막 공이 그물에 부딪히는 동시에 태운도 바닥에 쓰러졌다.

    “무슨….”

    해냈다.

    경험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그 야구공 피하기를, 전부.

    “뭐… 뭐야…. 강태운이?”

    5번째 공을 피하자 모두가 말을 잃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엄청난 소란이 일었다.

    “뭐야. 어떻게 피한 거야!”

    “말도 안 돼….”

    “나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허덕륜도 입을 쉬이 다물지 못했다.

    모든 공을 피했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특히 마지막 공을 피한 움직임은 더욱 놀라웠다.

    ‘드디어….’

    허덕륜은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2년간 아무런 발전이 없음에도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그가 드디어 자그마한 떡잎을 피워냈으니까.

    하지만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참아낸 그가 입을 열었다.

    “허허, 드디어 쓸 만한 놈이 하나 나왔구만!”허덕륜은 괜히 큰 소리쳤다.

    그러지 않으면 괜한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 * *

    “슬슬 승급 시험이 오픈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뭐… 알아서 잘해 봐라.”이현은 학생들에게 일말의 기대도 없다는 듯 승급시험의 의미와 진행 방식에 대해 설명도 하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니, 설명도 안 해주고 나가면 우린 어떻게 B반으로 올라가라는 건데?”평소에 이현의 불성실한 태도에 불만이 있던 학생은 그 상황에서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

    브론즈 C반의 학생이라지만 실버반이나 그 이상을 목표로 가지고 있던 학생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니까.

    선생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못한 그들은 다른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할 것이다.

    물론 2년 동안 아카데미를 다닌 태운은 승급 시험의 진행 방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툭툭

    “야, 설명해 봐.”

    신태연이 태운의 의자를 발로 툭툭 차고 설명을 요구했다.

    태운은 그런 신태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대충 알아볼 수 있어. 알아서 찾아봐.”

    “뭐? 이 자식이….”

    태운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신태연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있었다.

    ‘봐도 봐도 놀랍네.’

    방금의 실습에서 관찰력 스탯의 활용에 조금이지만 익숙해진 태운은 신태연의 움직임을 손바닥 내려보듯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느리게 보이는 것도, 자신의 반사 신경이 빨라진 것도 아니고 단순히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능력이 상승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깨 움직임을 보면…. 왼쪽 주먹’

    태운은 공격을 궤도를 읽어내고 피해냈다.

    “뭐야…?”

    신태연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어제 자신의 공격을 구르며 피했을 때와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으니까.

    “알아서 찾아봐. 힘든 거 아니니까.”

    태운은 눈을 바로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 쓰레기 새끼가….”

    신태연은 브론즈 C반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에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자신을 태운과 비교하며 위안하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자신에게 반기를 든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부스트.”

    급기야 신태연은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했고 그것으로 상승한 신체 능력을 태운에게 휘둘렀다.

    “참….”

    태운은 이것까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태운은 빠르게 날아오는 신태연의 주먹을 피한 후 겨드랑이의 급소를 가격했다.

    “크읏….”

    고통스러워 하는 그의 목을 주먹으로 강하게 가격했다.

    쾅!

    그 직후 그의 머리채를 잡고 책상에 내리쳤다.

    “끄으으….”

    태운은 신태연이 시비를 걸기 시작했을 때 그의 상태창을 보았었다.

    어제 마정석 흡수를 열심히 했던 덕에 신체 능력 자체는 엇비슷해져 있었다.

    신체 강화 마법이라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그걸 계산해봐도 어렵지 않게 이길 거라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싸울 때의 움직임을 이론으로 익히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게 2년이 넘었는데 이런 놈도 못 이기면 안 되지.’태운은 지금까지 한 일이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한 후 책을 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지금 펴놓고 공부하는 것은 중급 검술이었다.

    검술을 익히기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학습 방법이었으나, 체력과 근력이 너무나 뒤떨어졌던 태운은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휘둘러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조금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태운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냥 책을 달달 외우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300페이지가 넘어가는 초급 검술의 교본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태운의 머리에 전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검술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기술인 만큼 책상에 앉아 머리만 굴리고 있어서는 진도가 빠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태운은 절대 나태해지지 않았다.

    언젠가 검을 손에 쥐고 수 시간 동안 휘두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희망을 엿보지 않았는가.

    그의 지식이 활약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 * *

    “내가 왜 이 생각은 못 했을까?”

    태운은 며칠 동안 생각을 하다 보니 간단한 마정석의 입수 방법을 깨달았다.

    바로 마정석 창고에서 일하고 일당을 마정석으로 받는 것이었다.

    마정석을 분류하는 기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계를 사용하면 마정석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마정석의 마력 때문에 전산 과정의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마나 저울을 가지고 사람이 직접 분류를 한다.

    하지만 태운은 관찰력 스탯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 빠른 분류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

    태운은 아카데미가 끝나자마자 윤아에게 전화로 늦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바로 마정석 창고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알바 하러 왔습니다!”

    “어, 그래. 얼마 전에 마정석 500개 사간 녀석이구나. 그런데 알바를 하러 왔다고…?”태운의 뜬금없는 말에 창고 소장은 당황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빈자리를 찾았다.

    “마침 빈자리도 있는 거 같아서요.”

    “그래, 요새 사람이 부족해서 말이지.”

    최하급, 하급 마정석 창고는 항상 노동력이 부족하다.

    마침 비는 자리도 많았기에 태운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알바비를 마정석으로 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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