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81화 (181/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8)

    처음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싱크홀을 발견했을 때 나와 내 동료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비록 산골 깊은 곳에서 발생한 싱크홀에서는 시간이 제법 흘렀기 때문에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양이 매우 미미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진화의 ‘원천’을 맛볼 수 있었다.

    이토록 감미롭고 소름이 돋을 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다니!

    더 이상 교수의 지긋지긋한 갑질이나 되지도 않는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어졌다.

    나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국내의 모든 지질학 데이터를 검토하며 싱크홀이 가장 일어나기 쉬운 지형이나 지반을 가진 곳을 찾았고,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작업은 한층 더 수월해졌다.

    우리가 ‘힘’으로써 증명해 보였기 때문에 차츰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이들은 새해 첫날 술집에서 노신사와 농담 삼아 말했던 흑연교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똑똑한 자, 힘 있는 자, 부유한 자, 성실한 자, 사람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싶으면 일단 받아들였다.

    우리가 저들의 위세에 역으로 집어삼켜질 걱정 따윈 없었다. 오히려 저들이 우리에게 감화되어 갔다.

    우리가 얻은 결과물을 보고 우리가 가진 힘을 느꼈으며, 우리가 꿈꾸고 있는 미래를 깨달은 순간, 저들이 우리와 같아지는 것은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인력, 재력, 기술력, 정보력까지 순조롭게 손에 넣었을 무렵, 우리의 활동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대담하게 바뀌었다.

    공무원이나 학자로 위장해 한적한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반 조사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신자들이 바친 돈과 전문 장비로 싱크홀의 전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무식하게 전국 곳곳으로 퍼져서 활동한 것이 아닌, 철저하게 데이터 기반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싱크홀의 전조를 찾아내고, 싱크홀 주위로 모일 수 있었다.

    싱크홀의 전조가 발견된 곳이 작은 동네라면 마을 주민들에게 돈 몇 푼 쥐여 주고 도로 안전을 위해 공사를 하겠다며 중장비를 동원했다. 신자들은 모두 공사 인부나 현장 감독관, 공무원으로 위장하여 슬그머니 모여들었다.

    공사 중에 파편이 주변으로 튈 수 있으니 위험하지 않도록 안전 가림막을 설치해 싱크홀 주변을 감싼 뒤, 중장비를 이용해 충격을 줘서 인공적으로 싱크홀을 발생시킨다.

    그다음은 검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수집하는, 신성한 작업에 몰두하는 일뿐이었다.

    처음 물렁하고 아래가 텅 빈 지반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흙먼지는 1차적으로 걸러내고, 충격으로 인해 땅속 깊숙한 곳,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발밑에 잠들어 있었을 검은 연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검은 연기의 양은 싱크홀의 깊이와 연관이 깊었다.

    싱크홀이 깊으면 깊을수록, 지저 공동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 많은 양의 검은 연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반대로 기껏해야 십수 미터, 흙과 돌을 적당히 채워 넣기만 해도 메꿀 수 있는 얕은 싱크홀은 검은 연기가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 교수에게서 훔친 연구 자료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저 12km와 가까울수록, 고대와 현대를 잇는 연결고리가 크고 튼튼할수록 더 많은 검은 연기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가설 또한 증명되었다.

    그 뒤부터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한반도는 대부분 산간 지형이었기 때문에 퇴적층이 쌓인 곳을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가 싱크홀을 위를 뒤덮었을 가능성도 높았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산이란 산은 다 찾아다니며 싱크홀의 전조를 수색하는 한편, 더 많은 신자들을 확보했다.

    대한민국 신흥종교 세력 중에서도 가장 세가 크다는 통일교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흑연교 역시 전국 어디에서나 신자를 찾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우린 그들과 달라.”

    저들이 추구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안녕과 통합, 평화 기원 등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그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세간에서는 이미 저들을 이단이나 사이비로 규정하고 있으며, 저들이 각종 사업에 진출하거나 이미지 관리를 한다고 해서 그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흑연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도, 교리를 강요하지도, 심지어 남의 영역을 멋대로 침범하지도 않았다.

    활동에 약간의 꼼수나 불법적인 행위가 동반되기는 했지만 싱크홀 외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싱크홀에 대한 용무가 끝나면 제대로 땅을 메꾸고 지반을 다져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싱크홀을 찾을 수 없도록) 사후 처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나 열성적이고 성실하며, 또한 모범적인 우리가 저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승천이나 순교 같은 종교적 구원도 아니었으며, 인간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세계 평화 같은 시시콜콜한 소원을 빌지도 않았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한층 더 높은 격을 가진 존재가 되기 위한 진화였다.

    기존의 인간이 가진 몸은 너무나도 나약하고 쉽게 노화한다. 크게 다치면 회복하기가 매우 힘들뿐더러 나약한 정신까지 더해지면 평생을 병상에서 골골대다가 죽어 버린다.

    딱히 불로불사 같은 대단한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고대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존재들처럼 우리 또한 우월하고 격이 높은 존재가 되길 원했을 뿐.

    흑연교의 세가 점점 더 커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으리으리한 성채 같은 교회나 성당을 짓지 않았다.

    신도 대다수가 각자의 삶에 충실하되, 호출이 있으면 즉시 집결하는 삶을 영위하며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싱크홀을 찾아다니며 나와 함께하는 신도들이 힘을 얻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비효율적이었다. 좀 더 전문적이고, 좀 더 확실한 기술력이 필요했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세간에 사이비 소리를 들으며 은연중에 박해를 당하거나, 정부 기관들로부터 감시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최대한 일반인처럼 숨어 지냈다.

    우리는 오직 검은 연기를 들이마실 때만 흑연교였으며, 한층 더 격이 높은 존재로 진화하기 전까지는 그저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직까지 인간이라면, 아직까지는 인간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흑연교 내에서 암묵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교리였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 우리는 대한민국 곳곳에 눈과 귀를 두었으며, 또한 소식이 끊어지지 않게끔 입과 입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 기관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으며, 이윽고 흑연교에서 가장 먼저 격을 올린 내가 공식적인 교주가 되었다.

    흑연이 온 세상의 하늘을 뒤덮는 그날, 진정 우리의 시대가 도래할 때 흑연교를 이끈다고 하여 ‘흑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20년 전 대학교수의 갑질과 말도 안 되는 시간 외 노동에 시달리며 절망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던 20대 후반 청년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20년 만에 디그러쉬라는 글로벌 기업을 만든 노신사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무려 20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가 이루어 낸 결과물을 보며, 그날 술집에서 나눴던 철없는 청년들의 막연한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 디그러쉬의 기술과 장비를 이용한 미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지저 세계 진입에 성공했어.”

    노신사는 세계 최초로 지저 12km 아래로 내려간 탐사대원들이 가지고 있었다던 디그러쉬제 녹음기를 보여 주면서 말했다.

    녹음기 속에는 탐사대원들과 함께 지저 세계에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직 나만이 평범한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놀랍군. 12km 아래에 지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고대의 존재 또한 실존했다니.”

    “나는 이것이 기괴한 음성처럼 들리는데, 네게는 다른 의미로 들리는 모양이군.”

    “난 알 수 있어. 오랫동안 흑연을 몸에 받아들여 왔으니, 저들과 동화된 나이기에 알 수 있지.”

    “그렇다면 다행이군.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니까. 나도 안심하고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가동할 수 있겠어.”

    노신사는 이미 미국 정부의 간지러운 곳을 최대한 살살 긁으면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상태라고 말했다.

    “누구의 땅도 아닌 지저 세계를 가장 먼저 선점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어. 지저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천연자원과 광물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지. 너도 알다시피 세상 모든 정치인들은 ‘사소한 위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 오직 눈앞에 보이는 돈과 지지율만 신경이 쏠려 있지.”

    “이해하고말고.”

    “물론 이 계획을 함께 준비해 주었던 네게도 우선권이 있어야겠지. 뭘 원하지?”

    “한국에 있는 싱크홀은 이미 우리가 대부분 확인했고 또 감시 중이다. 하지만 저 위쪽 땅, 북한의 지저 세계는 아직도 고요히 잠들어 있지.”

    “북한이라…… 그곳은 독재자가 인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서방세계의 암살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땅굴을 팠다고 들었는데?”

    “저들이 판 건 한낱 개미굴에 불과해. 그곳에 잠들어 있을 수많은 흑연의 가치도 몰라보고 땅을 훼손하는 머저리들이지. 우린 그곳에서 너희 기술력으로 뽑아낸 정제된 흑연을 원해.”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 20년간 유지된 우리의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빌려줘야겠지. 어차피 지저 도시 프로젝트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휩쓸 거야. 강대국들이 가진 감시의 눈은 느슨해질 테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례 없는 경제 호황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겠지. 그들이 행복한 꿈에 익사하는 동안 일을 진행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어.”

    나와 노신사는 20년 만에 다시 만난 그 술집에서 악수를 나눴다.

    노신사는 정말로 북한의 독재자와 비밀스럽게 접선해 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미국보다도 빠르게 북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노신사가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가히 천문학적이었으며, 디그러쉬의 영향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없었으니, 탐욕에 미친 빈곤 국가의 독재자 한 명을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5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나고, 7년이 지났을 무렵. 북한의 땅굴에서 정제된 흑연을 본격적으로 대량생산하기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2027년, 북한의 지저 도시 계획을 외부에 들키지 않기 위해 기만용으로 흩뿌려 두었던 수많은 북한 땅굴 중 하나가 외부 세력에 의해 공격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격을 받았다니?”

    ―다행히 우리가 작업을 진행 중인 땅굴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진 기만용 땅굴이었어. 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커다란 철제 갑옷을 입고 총과 폭발물, 화염방사기로 땅굴의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지옥의 악귀나찰 같은 존재들이었다고 하는군. 미군은 아니야. 미국은 내가 확실히 감시하고 있으니까. 혹시 그쪽에서 짐작 가는 바가 있나?

    “……대한민국 군대에서 최근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중장갑보병이라는 부대가 신설되었지.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좋아, 내가 대한민국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좀 더 로비해서 알아보지. 어쩌면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들도 모르게 북한에 소규모 군부대를 침투시켰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우리도 감시를 배로 늘리지. 불화의 싹이 될 만한 것들이 발견되면 이쪽에서 처리하겠다.”

    지저 도시 프로젝트 완공까지 앞으로 5년. 즉 프로젝트를 시작한 시점에서 12년 정도 지나면 전 인류가 염원하던 지저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흑연교의 꿈이 이뤄지기까지는 5년도 걸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앞으로 1년.

    북한에서 끌어 올린 흑연을 정제한, 고농도 정수가 대량으로 우리 흑연교 손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중장갑보병이 아니었어. 중장갑수색대와 중장갑타격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소규모 대통령 직할 군부대가 신설되었다더군. 그들이 북한에 침투해서 우리 땅굴을 파괴하고 있던 거야.

    ―오늘 또 하나의 땅굴이 파괴되었어. 북한군들에게 무기까지 지원하며 놈들을 막으려 했지만, 놈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땅굴을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데만 집중하더군.

    ―빌어먹을. 놈들은 어째서 그만한 사상자를 내고도 포기하지 않는 거지? 대통령 직할 군부대라 해체할 수도, 작전에 훼방을 놓을 수도 없어. 놈들이 일단 침투하기만 하면 북한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뿐이야.

    ―오늘까지 파괴된 땅굴이 무려 10개야. 놈들의 사상자 단위가 수백에 달하는데, 놈들은 멈추질 않는군. 그중에서도 유독 유능한 자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 간신히 이름만 알아냈지. 박한성이라는 놈이야.

    ―박한성, 박한성, 박한성! 그 괴물을 멈출 방법은 없는 건가?! 우린 놈의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어! 간신히 훔쳐 낸 부대 인원 명단에서 그 이름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냈지. 디그러쉬의 총체이자 의지인 내가 그놈의 얼굴조차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놈이 15번째 땅굴을 파괴했어. 머지않아 우리가 작업 중인 땅굴에 도달할 것 같군. 일단 소량이긴 하지만 정제해 둔 흑연의 정수를 너희들에게 우선 양도하지. 지금 그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놈이 북한에 존재하는 주요 땅굴을 모두 파괴했다. 계획은 실패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군. 대신 한국의 지저 도시는 확실하게 완공해서 너희의 다음 계획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힘써 주겠다.

    흑연교의 원대한 꿈은 박한성이라는, 기껏해야 이름 석 자밖에 모르는 증오스러운 한 청년에 의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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