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인사이드 아웃 (187)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21세기(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사람이 드넓은 창공 위에 존재하는 무한한 우주를 꿈꾸던 시절.
젊은 두 청년은 우주가 아닌 지표면 아래에 자신들의 꿈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독 회색 코트에 회색 정장을 좋아했던 애늙은이 같은 청년은 미국의 어느 건설기업의 후계자였다.
유독 검은 코트에 검은 정장을 좋아했던 혈기왕성한 청년은 한국의 고대생물학과 지질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 21세기가 시작되던 그날 우연찮게도 서울의 한 바에서 만남을 가졌다.
앞으로 부동산 투기가 더 활발해지면 건설업은 미친듯한 호황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될 거라면서, 자신의 일이 늘어날 것이라며 회색 코트의 청년이 배부른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자 건설업이 호황을 맞게 되면 자연히 인간이 아직 파헤치지 않은 영역의 토지도 파헤쳐지게 될 테니, 결과적으로 고대생물학이나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연구 자료가 늘어나 기뻐할 것이라며 대학원생이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서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삶을 살아왔으며, 다른 뜻을 품고 있었지만 죽이 잘 맞았다.
대학원생은 기껏해야 20대 후반, 30대를 아슬아슬하게 넘길까 말까 한 청년에게 너는 너무 애늙은이 같은 성격과 패션을 갖추고 있으니 ‘노신사’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신사라 불린 청년은 안 그래도 미래가 우중충한 학업의 길을 걷고 있는 검은 옷차림의 청년에게 ‘그럼 너는 어둠의 자식이다’ 같은 말로 맞받아쳤다.
모든 이들이 우주에 대해 논의할 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미래 산업이 혁신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떠들 때, 두 사람은 ‘땅’에 대해 질리지도 않고 떠들었다.
그 이야기의 발단이 된 것은 싱크홀이라는 주제였다.
건설업체 입장에서 싱크홀은 굉장히 엿 같은 함정이었으며, 행여나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싱크홀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는 것이 끔찍하다고 했다.
이미 구입한 땅에, 혹은 남이 구입한 땅에 건물을 올리기 위해 토지 측량을 하고 토대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싱크홀이 종종 터져서 일을 다 망친다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대학원생은 싱크홀이야말로 오래전에 끊어진 현대와 과거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패스)’라고 말했다.
누구도 파헤친 적 없었던 지표면 아래에서 갑자기 발생한 싱크홀 내부는 기껏해야 작은 호수 깊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엄청난 동굴처럼 깊고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곳에서 얻어 낼 수 있는 고대생물학적, 지질학적, 혹은 역사학적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장사치들은 모른다며 타박하는 것은 덤이었다.
이에 노신사라 불린 애늙은이 청년은 ‘땅은 그저 땅일 뿐이다’라고 답했다. 땅은 수많은 생명체들을 품어 주고, 또한 아낌없이 자원을 내어주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
장사치 입장에선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 감사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고리타분하고 낡아 빠진 옛날 지식 같은 것들보단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금의 인류만 봐도 이제 막 21세기가 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지구 안이 아니라 지구 바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느냐며 덧붙였다.
“하하. 그건 이 땅, 나아가서 이 지구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몰라보는 무식쟁이들 때문이야. 인류가 지표면 아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한계까지 땅굴을 팠던 거, 알고 있지?”
“알다마다. 러시아 콜라반도에서 인류 최초로 도전한 역사적인 시추 작업이었지. Kola SG-3이라는 그 슈퍼 딥 시추공의 최대 기록이 약 12km인 것도 기억하고 있어. 건설업계 사람으로서 모르면 안 되는 상식이지.”
“그럼 인류가 지저 12km라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 얻었던 데이터가 얼마나 방대했을 것 같아?”
“글쎄, 땅 밑에는 초고열에 의해 액상화된 금속이나 암석 따위가 흐르고 있다는 데이터 정도를 얻었겠지. 아니면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히 쌓인 퇴적층의 색깔 패턴이라던가. 흐흐.”
노신사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인 대학원생은 자신의 미래만큼이나 어두운 검은 옷과 비슷한 색의 흑맥주를 홀짝이면서 말했다.
“당연히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실제로 공식적으로 발표된 시추 결과에도 ‘너무나도 높은 온도와 액상화된 금속이 마그마처럼 흐르고 있어 더 이상 시추를 진행할 수 없었다’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말투를 보니 마치 실제로는 다른 결과가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 말대로야. 전혀 다른 결과가 있었지. 지질학계에서 탑을 달리고 계신 우리 교수님이 얼마 전 러시아로부터 비밀스럽게 공동 연구 제안을 받았는데, 내가 그 연구에 대한 데이터 일부를 빼돌렸거든.”
“세상에, 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사람이 교수의 데이터를 훔쳐본 것도 모자라 빼돌리기까지 했다는 건가? 정신 나갔군.”
“어쩔 수 없었어. 그 양반은 날 부려 먹는 데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나 말고도 쓸 만한 놈들이 많다 이거지. 안 그래도 불투명한 미래에 보험 하나마저 없으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겠어?”
노신사는 맥주를 홀짝이면서 주변을 곁눈질했다. 다행히 전신에 검은 옷과 회색 옷을 껴입은 괴짜들에게 관심을 줄 만큼 주변인들은 오지랖이 넓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 뭘 본 건가?”
“지저 12km 아래에 존재하는 세계.”
“……?”
“지저공동설, 이 친구야. 지표면에서 12km 아래까지 파고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나온다고!”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애초에 지구 지각의 평균 두께가 30km인데 그중 12km만 온갖 암석과 금속, 퇴적층으로 꽉 채워져 있다고.”
“정확히는 12km만 차 있고 18km가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야. 12km와 18km 지각의 틈새, 높이 수백에서 수 킬로미터 정도에 달하는 넓은 ‘공간’이 존재하는 거지. 그걸 소련 시절부터 비밀스럽게 연구해 온 러시아 학자들은 ‘지저 세계’라고 부른다더군.”
“당시 기술에 미쳐 있었던 소련이라면 이미 충분히 조사를 해 봤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웃기게도, 최초의 인간을 우주에 내보낸 소련도 지저 12km 아래로 인간을 내려보내는 건 실패했다고 하더라고.”
“어째서지? 단순히 내려가기만 할 뿐이라면 아주 튼튼하고 잘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만 준비하면 될 텐데.”
“그게 불가능했던 거지. 12km 아래까지 문제없이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건 당대 기술로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던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한 노신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 보니 그렇군. 당시 소련의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을 만큼 폭이 넓고 거대한 구멍을 12km나 파는 것도, 12km에서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튼튼한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것도, 그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24km를 왕복하게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을 테니까.”
“그걸 현대에 소련의 바통을 넘겨받은 러시아가 다시 연구를 시작하려는 것 같더군. 해외 기업들의 투자가 매우 절실했던 한편, 타국에 빚을 많이 지고 있는 러시아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 필요했던 거야.”
“기껏해야 연구 단계에서 사업성을 논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맞아, 나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대신 전혀 다른 걸 발견했지.”
대학원생은 흑맥주를 깔끔하게 비운 뒤, 한 잔을 더 시키면서 말했다.
“지저 세계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온다더군.”
“단순히 매연 비슷한 것 아닌가? 화산에서도 그런 연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나.”
“좀 더 들어 봐. 그 검은 연기를 흡입한 사람은 놀랍게도 뛰어난 신체 능력과 음식을 덜 섭취해도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해.”
“그건…… 놀랍군. 너무 SF적인 얘기라서 현실성이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래서 난 지난 몇 개월 동안 전국 곳곳, 나아가서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싱크홀들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어. 그랬더니 싱크홀의 깊이가 아주 깊은 곳에선 드물게도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그 검은 연기를 독점할 거야. 어쩌면 내가 그토록 매달렸던 고대생물학의 정점이었던 ‘고대인’이 검은 연기 때문에 혹독한 지저 세계 속에서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니까. 그걸 인간인 우리가 흡입한다면 한층 더 뛰어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어?”
노신사는 눈앞의 대학원생이 하도 교수의 갑질과 논문 준비에 시달리다 보니 드디어 미쳐 버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교수의 기밀 데이터를 몰래 빼돌렸다는 대목에서부터 반쯤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에게도 나쁜 얘기는 아니야. 너희 가문이 이끄는 건설기업은 미래의 부동산 투기로 인해 맞이할 엄청난 건설 호황을 기대하고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나한테 나쁜 얘기가 아니라는 거지?”
“세계 최초로 지저 세계 부동산 시장에 진출해. 대신 내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게, 편하게 12km를 파 내려갈 수 있는 지점을 알아봐 주지.”
“미쳤군.”
노신사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말을 일축했지만 대학원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생각해 봐. 지상의 땅은 나날이 부족해지고 있어. 더 이상 신박하지도 않고 별 감흥을 주지도 않지. 그런데 너희 기업이 기술력을 갖춰서 지저 세계에, 누구의 땅도 아닌 곳에 가장 먼저 진출한다면? 전 세계의 돈을 쓸어 담고도 남을걸?”
“그렇게 한다고 치자, 그렇게 해서 너나 네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얻는 건?”
“검은 연기, 보다 완벽한 존재로의 진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실현.”
“진짜 미쳤군.”
너무나도 허황되고 미친 소리 같지만 노신사는 왠지 눈앞의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청년이 꿈꾸는 미래가 마냥 싫지는 않았다.
“만약 그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부동산 버블로 엄청나게 돈을 빨아먹은 다음 집중적으로 기술 개발에 투자해도 15년에서 20년은 족히 걸리겠지. 각 국가의 감시를 피하려면 전 세계에 유령 회사와 유령 사장들을 앉혀 놔야 해. 그밖에도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충성심을 받아 내야겠지. 물론 유능한 이들에 한해서.”
그렇게 중얼거리던 노신사는 어느샌가 자신도 진지하게 지구 바깥이 아닌, 지구 안쪽으로의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가 아니라 지표면 아래라…… 꽤 낭만적이군. 전 세계를 주무르는 비밀스러운 글로벌 기업의 이름은 뭐가 좋을까?”
“땅 아래로 파고든다는 목표와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 봐.”
“디그(Dig)…… 땅으로 나아간다……. 디그러쉬(Dig Rush) 어때?”
“괜찮네. 그럼 검은 연기가 목표인 내가 이끌 집단은…… 적당히 흑연교면 되겠지.”
“꼭 사이비 종교 같은 이름이군.”
“디그러쉬라는 이름도 만만치 않아.”
2000년 1월 1일. 21세기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날, 각자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기꺼이 30년이라는 시간을 내던지겠노라고 두 청년이 다짐한 날이었다.
* * *
“우측 1시 방향, 머리 셋 달린 놈 갈겨!”
탕! 탕! 탕! 드다다다다다다! 펑!
눈이 가렵거나 따끔거릴 때마다 시야 중앙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놈들을 콕 집어서 무전기로 사살 명령을 전달했다.
예광탄이 쏟아지는 방향으로 군대의 화력이 집중되었으며, 그럴 때마다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대상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나이트워치는 가장 먼저 분쇄되었다.
전차는 아예 대인 살상용 산탄포를 발포해서 몰려드는 적들을 원형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어 버렸으며, 장갑차는 고속유탄발사기와 비유도 로켓을 펑펑 퍼부었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달리 쓸데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탄약 보급 차량에서 재보급을 받는 족족 쏴 대고 있었다.
아예 후방에 배치된 박격포반은 자주포 대열처럼 일렬로 쭈욱 자리 잡고 쉴 새 없이 박격포탄을 날려 댔다. 또 다른 포반에선 건물 위에서 무반동총을 조립해 곡사포처럼 갈겼다.
누군가가 좌표를 지정해 주지 않아도 예광탄이나 포탄이 쏟아지는 방향으로 적당히 쏘면 맞는 구조였기 때문에, 숙련된 예비군들은 평소에 숨겨 두었던 힘을 방출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움직였다.
“포탄 다 떨어졌어! 보급병 뭐 해, 씨발 새끼들아!”
“후방에서 탄약 보급 차량이 이제 막 출발했답니다!”
“아오, 씨발! 이 느림보 새끼들, 다 뒈져야 돼, 진짜! 그럼 총이라도 갈겨!”
너무나도 포탄을 빨리 소비해 버린 일부 포병들은 자진해서 총을 들고 전선에 합류했다.
포병이 총을 들고 나서야 할 정도면 일반적으로는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지만, 적어도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사안이었다.
그저 저 증오스러운 적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 버리고 싶다는 군인들의 화풀이일 뿐이었다.
포를 쏘지 못한다면 총을 쏘고, 총을 쏘지 못하면 대검을 휘두르고, 대검을 휘두를 수 없다면 주먹으로 으깨는 한이 있더라도 적들을 찢어 버리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나는 탄약이 먼저 동나는 부대가 나올 때마다 즉시 뒤로 물리고 유탄을 몇 방 쏴 갈겨서 적들을 주춤하게 만든 다음, 다른 부대로 틈을 메우게 했다.
화력을 한 번 퍼붓기 시작할 때는 화력이 끊어지는 일이 없게끔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흩뿌려진 탄피가 수천, 수만 개를 가볍게 넘기고, 총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해도 화력은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전방 빠지고, 후방 들어가!”
재보급, 재정비, 재진입.
이 세 가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를 처음 상대하는 사람들도 차츰 놈들의 사냥 방식에 익숙해졌다.
숙련된 자들이 아니면 절대 놈들을 맨눈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예광탄과 폭발 시 일어나는 섬광을 따라 총구를 움직인다.
먼 옛날 세계대전 당시에는 한 명의 적을 사살하기 위해 수백에서 수천 발의 총알을 무의미하게 흩뿌렸다고 했던가?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탄약의 무의미한 소모를 최대한 줄이되, 적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박멸하기 위해서 총알이라는 레이저 포인터로 하나하나 목표를 지정해 준다.
마치 교관이 훈련병을 성심성의껏 가르치는 것처럼, 인간이 아닌 괴물 사냥에 특화된 우리가 신참들의 킬 스코어를 마구 올려 주고 있었다. 일종의 버스 태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가 지속되면 그만큼 피로가 누적되고 빈틈도 생기는 법. 결국 나이트워치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누군가가 야투경을 벗어 던지며 고통스럽게 제 눈을 파내다가 피를 토하며 사망한다.
화력이 비어 버린 틈을 집요하게 파고든 나이트워커가 대열에 난입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고, 연약한 인간의 살점을 찢어발긴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전조 없이 날아든 작살과 콘크리트, 철근 따위가 문자 그대로 인간을 짓뭉개 버렸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전열에서 이탈하거나 겁에 질려 주저앉지 않았다.
이곳을 사수하면서 적들을 시원하게 갈아 버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묵묵히 전우의 빈 자리를 자발적으로 채워 나갔다.
전쟁에 낭만 따윈 없다.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나는 양손으로 쥔 두 개의 경기관총을 들고 탄약을 흩뿌렸다.
너희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암세포들이다. 그러니 내가 직접 치료(절개)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