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82화 (182/211)

딥 인사이드 아웃 (189)

노신사는 디그러쉬를 움직여 대한민국 정부와 접촉, 서울 아래에 제2의 서울을 만드는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공식적으로 기업의 로비가 금지되어 있지만, 어디 정치인이란 족속들이 로비가 금지되어 있다고 해서 돈을 안 받아먹던가?

다들 아닌 척해도 뒷구멍으로는 다 받아먹는다. 애초에 그걸 위해서 일부러 뒷구멍을 대놓고 열어 두는 놈들이 수두룩했다.

정치인들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 주면서 돈을 찔러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국산 기업들의 반발도 잠재울 수 있었다.

그 뜨내기들이 섣부른 해외 자본 유입과 부동산 투기, 서울의 지반 안전 등을 걸고넘어진다고 한들 디그러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들보다 더 많은 로비를 하면 정치인들이 알아서 콧방귀를 뀌어 주었고, 대한민국의 국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이 또한 세상이 굴러가는 순리라며.

하지만 그중에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은 기업이 하나 있었으니,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미래 그룹이었다. 디그러쉬에 비견할 바는 아니었지만, 악착같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기업이었다.

좌우간 2020년 무렵에 대한민국에 진출해서 한국과 북한에서 동시에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고 믿었건만, 막판에 이르러서 갑작스럽게 방해를 받았다.

그것은 매우 치명적이었고, 통제가 불가능했으며,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같았다.

당시 그가 처음 기만용 땅굴이 공격받았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북한의 독재자가 돈이 더 필요해서 일부러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것이나, 너무 오래된 땅굴이 노후화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만용 땅굴이 공격받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번, 3번, 4번 땅굴이 연달아 공격받자 그제야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해도 뒤탈이 없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는 미국뿐인데, 미국의 움직임은 디그러쉬에 의해 모두 감시당하고 있었다.

애초에 대다수의 선진국, 강대국들이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 대체 왜 북한 같은 작고 비루한 괴뢰국을 건드리려 한단 말인가?

뒤늦게 통일의 필요성을 느낀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국가 전체가 수비적이라서 군사력이 제법 막강해도 결코 강하게 나오지 않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과 대치를 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북한군의 도발에 당해 주기만 할 뿐, 그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에만 급급했다. 그런 국가가 대담하게도 적국에 군인을 침투시켰을 리가 없다.

혹시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공작원이 침투해서 파괴 공작만 벌이고 갔나 싶어 확인해 보니 그건 또 아니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틀림없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었다.

결국 불법적으로 미국의 군수물자를 북한군에게 지원해서 그들의 전투 능력을 대폭 향상시키고, 북한의 독재자에게 경비를 좀 더 철저히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의견을 건의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촌극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테고, 북한은 한층 더 강력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다행히 그 독재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타입이었다.

지원받은 돈과 군수물자로 충성스러운 인민들을 무장시켰으며, 각 땅굴의 배치 병력을 배 이상 늘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독재자 역시 북한이 지저 도시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찬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저 도시만 완공되면 더 이상 지상에서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렇게만 하면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던 내 안일한 선택이, 오점 하나 없던 내 인생의 유일한 실패로 남게 될 줄은 몰랐지. 끌끌…….”

노신사는 주름진 손으로 두꺼운 안전유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안전유리 너머에선 무한 동력 기관에서 뽑아낸 막대한 에너지를,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기술들의 동력으로 공급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슈트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을 보호해 주는 강력한 에너지 막을 생성하는 보호장치라던가,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개인 휴대용 레이저 광선 총이라던가.

디그러쉬의 시작은 미국의 한 건설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선조들의 유실된 기술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기술기업으로 변모했다.

자신들에겐 기술이 전부이고, 기술이야말로 미래 그 자체다.

잃어버린 기술은 억만금을 들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갈아 넣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복구하고, 아직 인류에게 주어지지 않은 미래의 기술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내뻗는다.

선조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처진 나약하고 무지몽매한 현 인류를 더욱 위대하게, 더욱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자신들은 선조들의 눈에 끽끽대는 원숭이처럼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그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문명을 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모든 진보된 기술의 축복이 하늘에서 당연히 쏟아져 내리는 비나 눈처럼 온 세상을 뒤덮어야 한다.

‘여기까지 도달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군. 31년이나 걸릴 줄이야.’

젊고 혈기왕성했던 그 시절을 모두 바친 후에야, 간신히 이 영광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입으로 찬양할 수 있으며, 또한 무지몽매한 인간들의 찬양을 두 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일말의 불안감이 그의 늙은 육신을 바늘처럼 쿡쿡 찔러 댔다.

박한성.

설마 대한민국 지부의 중책으로 앉혀 두었던 그 유능한 박한화의 아들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존재.

지금은 그를 무명으로 만들어 가족과의 연을 완전히 끊게 한 뒤, 그 스스로 아들인 박한성을 죽이게 만들 계획을 관리·감독하게끔 하고 있다.

한때 박한화라고 불렸던 그 무명은 놀랍도록 비정하고 냉혹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설령 디그러쉬를 방해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적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처리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나라의 격언에 따르면 호랑이 아래에서 개새끼가 태어나는 일이 없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 말대로야.’

노신사는 땅굴이 하나씩 파괴되어 가던 4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모든 것을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적인 충성을 약속하며 자신과 함께하기로 선택한 박한화.

모든 것을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파멸적인 결과를 예고하며 자신의 계획을 막겠노라 다짐한 박한성.

대체 어쩌다 이 세상에 이런 부자가 태어났는지 의문이 들 만큼, 노신사는 자신이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박한성이 북부 지구의 수많은 물자와 사람 그리고 미래그룹에게서 지원받은 최신예 장비를 가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지상에 올라간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자신의 31년 지기 친우인 ‘흑천’이 고대인이자 신적 존재라고 믿는 저 검은 존재들을 처리하려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 강력하다는 미국, 러시아, 중국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지저 도시로 숨어들었으니까.

지구 전역의 하늘을 뒤덮을 만큼 엄청난 수, 에너지만 있으면 결코 늙지도, 완전히 소멸하지도 않는 저것을 어떻게 총과 포탄만으로 처리할 수 있겠는가.

강대국들이 지구의 하늘에 대고 핵탄두를 펑펑 터뜨리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상을 뻔질나게 들락날락한 박한성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 괴물 같은 청년은 자신의 31년 지기 친우를 처리하러 간 것이다.

노신사는 자신의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친했던 주변인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갈 때도 결코 흘린 적 없었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아, 답이 정해져 있다면 당연히 결과도 예정되어 있는 법. 그는 박한성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상징하는 액체를.

“이제는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31년 지기 친우마저 잃겠구나.”

노신사는 조용히 중절모를 벗어, 이곳으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누군가를 위해 깊이 애도했다.

누구보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다.

박한화가 인간이 품고 있는 한계의 끝을 보여 준 존재라면,

박한성은 인간이 품고 있는 가능성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의 가능성 앞에서 ‘도태된’ 31년 지기 친우는 버틸 재간이 없으리라.

“너무 원통해하지는 마시게. 내 자네의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류의 진정한 진화로 증명해 보일 테니.”

인간이 육체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 기술력의 정점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것이다.

스스로 창조와 파괴, 진보와 퇴보를 조율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경지…… 아니, 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의 친우는 끝내 도달하지 못할 풍경이지만, 그를 대신하여 자신이 직접 도달해 보이겠노라 다짐했다.

또한 이번만큼은 그 자연재해 같은 존재로부터 방해받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    *

―나이트워치 전멸 확인! 더 이상 나이트워치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때가 됐다!”

나는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기쁜 소식에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둠이 내린 땅에 빛을 밝혀라! 빛을 두려워하고 어둠 속에 숨어지내는 저놈들에게 빛의 찬란함을 보여 줘라!”

내 외침이 전 부대에 전달되기가 무섭게 모든 차량과 군인들이 각자 빛을 밝힐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서 어둠을 물리쳤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빛이 자신들을 강타하자 나이트워커와 사이비 놈들이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발작을 일으켰다.

나이트워커는 다양한 빛 패턴이나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광원에 노출되면 일종의 ‘과식’ 상태가 되어 일시적으로 무력화된다는 것을 롯데호텔에서 배웠다.

사이비 놈들은 나이트워커와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빛을 멀리하게 되었으니, 놈들에게도 충분히 효과는 있었다.

전세가 역전되자 우리는 오랫동안 인내해 왔던 전투 본능을 일깨우며 앞으로 전진했다.

전차와 장갑차의 엔진이 포효를 내지르며 가장 먼저 치고 나가자, 그에 질세라 중장갑보병들이 뒤따라 나섰다.

“뒈져, 이 개새끼야!”

“어둠 속에 숨어서 작살만 던지니까 편했지? ✕같은 새끼!”

강철의 군화가 피륙으로 이루어진 나약한 군대를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섬광탄처럼 순식간에 터져 나온 엄청난 광원에 정신을 못 차리는 놈들을 붙잡아서 주먹으로 으깨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염방사기로 화끈하게 태워 버리는 이도 있었다.

대검으로 사지를 자르고,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놈을 자근자근 짓밟아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치욕과 고통을 안겨 주는 이도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어둠 속에서 추위와 고통을 견디며 기다려 왔던 보상의 순간이었기에,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도, 멈추는 이도 없었다.

타타타타타타타!

놈들을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우르르 둘러싸서 기관총을 갈겨 버리는 미개한 처형식도 진행하고…….

쿠르르르르르르!

수십 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전차가 무한궤도로 놈들을 짓이기고 지나가는 퍼레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희생당한 자들에 대한 복수요, 한순간에 평화로운 삶을 빼앗긴 자들의 정당한 분노였다.

단거리 통신을 통해 줌왈트급 구축함과 개조한 고속정들이 적 함대의 후열을 개박살 냈다는 승전보를 들으면서, 우리는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이 사회의 암 덩어리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을 완전히 치료(박멸)하기까지 앞으로 한 걸음 남았다.

이 세상이 맞이한 종말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바로 너희의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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