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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유적(7) (44/249)
  •  44화. 유적(7)

    “크아아악!”

    “!”

     그렇게나 경계하고 있었는데도 가디언의 등장과 동시에 희생자가 생겨났다.

     갑자기 녹색 줄기가 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후미에 위치한 용병 하나를 후려쳤다. 졸지에 공중으로 떠오른 용병의 몸에 곧바로 또 다른 줄기가 칭칭 감겨들었다.

     줄기는 그 동체를 살짝 뒤쪽으로 구부리더니 본체인 해바라기가 위치한 방향으로 휙 하고 용병을 집어 던졌다. 해바라기가 거대한 입으로 단번에 용병을 받아 꿀꺽, 하고 삼켰다.

     그 광경에 일행 전원이 몸서리를 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유적을 만든 자는 제정신이 아니야. 진짜 미쳤군.”

     플레이나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일행이 미처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가디언이 재차 움직였다. 이번엔 도주로를 봉쇄하는 것이 목적인 듯, 일행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을 그리며 수십 개의 줄기가 솟아 올라왔다.

    콰콰콰콰콰콰-

     흙더미가 솟아오르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줄기들 각각의 길이만도 수 미터, 둘레는 다 자란 나무의 둘레만큼이나 두꺼웠다.

    “살아남기 위해선 무조건 저걸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레인이 핫, 하고 웃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말과는 달리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플레이나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일행에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산개해서 각자 요령껏 가디언을 상대한다! 놈은 땅속에서 이쪽을 노려오니 뭉치는 것은 금물! 웬만해선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해라!”

     그 말에 살아남은 용병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부대주! 마법사를 밀착해서 보호해라! 난 저쪽 소년을 엄호하겠다!”

    “알겠습니다!”

     플로라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전력을 최대한 쥐어짜야 하는 때였다.

     보호해주지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스스로를 지킬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그녀까지 따로 신경 써서 돌봐줄 수는 없었다.

     플레이나가 로엘 쪽으로 발을 떼려는 차에 레인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었다.

    “말해두겠지만 로엘 녀석도 굳이 보호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그 녀석도 제 몸 지킬 능력 정도는 충분하니까.”

    “괜찮은 건가?”

    “이 상황에서 내가 굳이 허언을 할 리가 없잖아.”

    “좋아.”

     존대하기로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반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최대한 전력을 극대화해야 할 때. 보호해야 할 인원이 줄어들면 그만큼 여유가 늘어난다. 레인의 말이 정말이라면 굳이 그쪽에 심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레인은 발밑의 기척을 감지, 보법으로 순식간에 자리를 이탈했다. 그가 사라진 직후에 그 자리에 거대한 줄기가 솟아올라 꿈틀거렸다.

     바로 근처에 있었던 플레이나가 줄기를 향해 곧바로 검격을 뿌렸다. 어느 정도의 강도를 지녔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위력을 조절했다.

     푸욱!

     기합과 함께 휘둘러진 검이 줄기의 절반 즈음까지 파고들다가 멈췄다. 베어진 곳에서부터 정체불명의 액체가 촤악 하고 뿜어져 나왔다.

    “…….”

     그녀가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줄기가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다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방금의 일격은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닐지라도 단번에 바위를 가를 정도의 위력은 되었다. 그럼에도 한낱 식물의 줄기를 절반밖에 베어내지 못했다. 강도는 바위에 못 미치지만, 훨씬 질겼기 때문이었다.

    ‘힘들겠군.’

     플레이나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우선 신형을 날렸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에 바로 몸을 피한 것이다.

     * * *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용병들은 땅속에서 기습적으로 솟구쳐 올라오는 식물 줄기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피해자가 속출했다.

     어떤 식으로든 전투 불능 상태가 되면 그 대상은 곧바로 본체인 해바라기가 있는 방향으로 휙 던져져 버렸다. 해바라기는 던져진 용병들을 족족 집어 삼켜버렸고.

     그나마 검호들은 모두 무사했다. 그들은 초감각을 이용해 거의 모든 공격을 사전에 회피했기에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전투를 수행했다. 동시에 위험에 빠진 이들도 지원했다.

     로엘과 플로라는 서로를 보조하며 안전을 확보하고, 위험에 빠진 용병들을 보조했다. 플로라가 그들을 향해 밀려드는 공격을 허공에 붙잡아두면 로엘이 타격을 입혀 물러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로엘의 지원사격으로 인해 불시의 기습을 받은 용병들이 수없이 목숨을 건졌고, 플로라의 염력으로 인해 제압되었던 용병들이 가디언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구출될 수 있었다.

    “괜찮나요?”

     문제가 있다면, 플로라의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

     안 그래도 무리해서 여기까지 온 그녀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로엘이 바쁜 와중에도 주기적으로 안위를 살피기 위해 신경을 쏟아야 할 만큼 그녀는 식은땀을 폭포수처럼 흘렸다.

    “괘, 괜찮…….”

     로엘의 물음에 답하려던 그녀가 무릎이 풀렸는지 갑자기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로엘은 황급히 소총을 내던지고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안아 들었다.

    “윽.”

     그리고 그 직후, 로엘은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혀를 차며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그녀를 안정시키고 소총을 회수하려 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레인만큼은 아니라도 섬전보라는 최고의 경신법을 익혀 적룡대 초일류 검사들마저 능가하는 기동성을 자랑하는 로엘이었다. 급발진에 놀란 플로라가 저도 모르게 로엘의 목 뒤로 깍지를 둘렀다.

    “꺅!”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식물 줄기가 솟아올라 와 추격해왔다. 거기에 더해 주변 곳곳에서 다른 식물 줄기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솟구쳐 로엘을 포위하듯 날아들었다.

    “아예 이참에 이쪽을 끝장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군.”

     로엘이 인상을 찌푸리며 도약했다. 명백히 이쪽을 노리고 날아드는 식물 줄기 위쪽에 가볍게 안착, 재도약해 또 다른 식물 줄기 위에 안착했다.

    “후읍.”

     아슬아슬하게 도약과 안착을 반복했다. 하늘과 땅이 몇 번이고 뒤바뀌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에 플로라가 연신 꺅꺅 비명을 내지르며 로엘의 가슴에 머리를 깊숙이 파묻었다.

     날아드는 식물 줄기들을 요리조리 피하고 되레 그것들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았다. 마지막 도약 후엔 수 미터에 이르는 식물 줄기들을 전부 발아래로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위치까지 다다랐다.

    “……?”

     플로라가 조심스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이쪽에 명확한 적의를 가지고 꿈틀대는 식물 줄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의 몸이 허공에 언제까지고 떠 있을 수는 없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임은 분명했다.

     그것을 아는 것인지 식물 줄기들은 그 동체를 한껏 오므린 채 로엘이 떨어져 내리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흡사 튕겨 나가기 직전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히익.”

    플로라에게서 질린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레이이인!”

     -로엘의 내력을 실은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알아.”

     이미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레인이 가볍게 대꾸했다.

     로엘은 애초부터 완전히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첫 도약 직전에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레인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미끼 삼아 줄기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그 유인책은 성공을 거뒀다. 현재 여덟이나 되는 식물 줄기가 로엘과 플로라 두 사람만을 노리고 한 군데에 몰려있는 중이었다.

     섬(閃).

     그 기회를 놓칠 레인이 아니었다.

     레인이 양손으로 굳게 붙잡은 검을 뒤로 당겼다. 검 위에 백색으로 빛나는 또 다른 검의 형상이 덧씌워졌다. 막대한 기파가 휘몰아쳤다.

     횡으로 휘둘러진 검에서부터 검강이 폭사되었다. 그 경로에 위치한 모든 것들이 찢어발겨졌다.

     로엘은 외부의 단번에 잘려 나간 반동으로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식물 줄기 잔해들을 발판삼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안전하게 바닥으로 착지했다.

     로엘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레인은 곧바로 그쪽에 관심을 거두고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마침 새롭게 솟아 올라와 이쪽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식물 줄기를 향해 검격을 내질렀다.

     * * *

     로엘은 가볍게 안착하자마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쪽을 노리던 식물 줄기들을 일시적이나마 전부 처리했다. 그런 만큼 지금이 움직이기에 적기였다.

     목표는 식물 줄기들의 본체, 거대 해바라기가 위치한 장소.

     현재 상황은 이쪽이 완전히 열세였다. 그것을 뒤집을 방법이 있다면 오직 하나. 본체인 해바라기에게 타격을 입히는 방법뿐.

     사실 그것을 생각해낸 이가 로엘 뿐인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다만 실질적으로 저 거대한 동체에 괴멸적 타격을 입힐 만한 능력을 지닌 이는 일행 중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전부가 가디언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

     당장 로엘만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저 엄청난 크기의 식물에게 어떤 식으로 타격을 입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저격용 소총을 회수하지 못한 탓에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품속의 권총 하나뿐. 배낭은 기동성을 위해 멀리 던져둔 지 오래였다.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 수단이 없었다. 일단 다른 수가 없으니 무작정 접근하고 보는 것일 뿐.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다음번에도 지금 같은 기회가 찾아오진 않을 터.’

     로엘은 입술을 짓씹으며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그의 품 안에는 여전히 플로라가 안겨있었다. 가진 힘을 대부분 소진한 그녀를 버려두고 움직일 수는 없어 여전히 안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로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와중 또 다른 일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적룡대원의 보호를 받으며 조금이나마 소진된 마력을 회복한 마법사가 화염계 폭발 마법을 사용했다. 굉장히 화려한 폭발이 일어났다.

     접근전에는 약해도 한 방이 강한 것이 마법사였다. 무려 넷이나 되는 식물 줄기를 단번에 불태워버릴 수 있었다.

     퀘에에에엑!

     문제는, 그 화려한 마법이 가디언의 심기를 자극했다는 것.

     가디언은 마법사를 최우선 제거 목표로 인식, 마법사 근방에 추가로 다섯 개의 식물 줄기를 배치해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버렸다.

     이때 만약 마법사의 호위역이 적룡대 부대주였다면 그는 목숨을 건졌을 터였다. 그녀라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억지로라도 견제를 돌파해 자리를 피했을 테니까.

     그러나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던 인물은 적룡대 특기자 대원이었다. 부대주가 위기를 맞은 다른 용병을 지원하러 가면서 그녀에게 잠시간 마법사의 보호를 맡겼기 때문.

     특기자 적룡대원은 분명 뛰어난 실력자였다. 그러나 부대주와 같은 초일류 검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위기를 감지하긴 했으나, 다섯이나 되는 식물 줄기의 견제를 뚫고 자리를 벗어날 능력이 없었다.

    “뭘 하려고……?”

     마법사의 움직임을 제한한 가디언이 거대한 동체를 살짝 뒤로 젖혔다. 그리곤 송곳니가 빽빽이 박힌 입을 한껏 벌렸다.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이 숨을 크게 들이키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 모습에 맹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플레이나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토해냈다.

    “안 돼!”

     그리고 그 직후, 가디언의 입에서 엄청난 크기의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후끈한 열기가 사위로 퍼져나갔다. 격전을 치르던 일행 모두의 시선을 일시적으로나마 강탈할 정도로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불기둥의 경로에 위치한 마법사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브, 브레스?”

     그리고, 화광이 그가 위치한 일대를 통째로 휩쓸어버렸다. 마법사는 물론, 그를 호위하던 적룡대 대원까지 일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들이 서 있었던 대지가 검게 그을렸다. 그 위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두 구의 시체가 툭 하고 쓰러졌다.

    “언니! 안 돼!”

     적룡대 대원의 죽음에 플로라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모든 것을 함께했던 동료, 아니, 가족의 죽음. 안 그래도 용병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녀가 반쯤 정신을 놓고 울부짖으려던 때였다.

    “정신 차려요! 플로라 양!”

     로엘이 그녀의 얼굴과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그 외침에 플로라가 흠칫한 얼굴로 로엘을 응시했다.

    “플로라 양이 지금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잠시만, 잠시만 참아주세요.”

    “…….”

    “플로라 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녀석을 처치해야 해요. 부탁합니다.”

    “…….”

     로엘의 말에 플로라가 솟구치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냈다. 눈물을 억지로 삼키다 보니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지만, 그런 것에까지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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