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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유적(6) (43/249)
  •  43화. 유적(6)

     플레이나가 레인이 알아낸 사실을 일행에게 전했다. 곧바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유적 탐사는 어떤 수준의 전력이 갖춰져 있던지 기본적으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 안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이 자리의 모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적 탐사를 결심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목숨을 아깝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한 것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일행은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현 상황에 상당히 지쳐있던 중이었다. 정말로 모두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고 있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가능성이 높은 길을 찾아냈다는 플레이나의 선언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레인이 발견한 흔적은 일행의 사기를 드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행의 반응을 확인한 플레이나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레인을 치하했다.

    “잘했다.”

    “그다지. 이게 확실한 길이라는 근거도 없고.”

     레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렇더라도 잘한 건 잘한 거다.”

    “······.”

    “이번 탐사를 마무리 지으면 너희 두 소년에게 돌아갈 몫은 확실하게 배분해주마. 기여도가 높은 만큼 다른 용병들도 반대하지 않을 거다.”

    “당연한 말을 하는군.”

     말과는 달리 레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희미하게 만족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방금 전 시큰둥한 반응과는 딴판이었다.

     플레이나는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것참, 당당하게 말하니 뭐라 할 말이 없군.”

    “말뿐인 감사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사실 제대로 배분해주지 않으면 저 녀석과 함께 난동이라도 부릴까 싶던 차였고.”

    “너와 저쪽의 친구가 난동?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나와 로엘을 탐사대에 끌어들인 녀석이 잠자코 따라오지 않으면 무력시위를 하겠다는 협박을 했었지. 딱 봐도 제대로 배분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었고.”

    “…….”

     플레이나와 레인은 그 후로도 함께 전위에서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두 소년의 출신 내력이 궁금했는지 플레이나가 몇 번이고 끈질기게 캐물어 왔다. 레인은 귀찮다는 얼굴로 적당히 답변했다.

     사실 대답해 줄래야 할 말도 없었다.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아까부터 지적하고 싶었던 건데, 계속 반말이군?”

     눈앞을 가로막은 키메라들을 대충 정리한 플레이나가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말했다.

    “불만인가?”

     레인이 그녀를 흘낏 올려다보며 반문했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일단 내가 너보다 한참 연상이니까.”

     레인은 그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살아온 햇수로 치면 내 쪽이 훨씬 위일 텐데 말이지.”

    “뭐?”

     레인이 갑자기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플레이나가 반문했다.

    “원한다면 존대 정도 해주는 건 별로 문제 될 것도 없지.”

     안 그래도 로엘에게서 여러 차례 지적받아오던 문제였다.

     아니, 사실 지적이 거의 잔소리 수준으로 진화한 상태였다. 전생에 먹은 나이가 어쨌건 현재 나이는 십 대 초반에 불과하니 말버릇 좀 고치라고.

     본인의 사정이 어쨌건 다른 이들 모두가 건방지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건방진 것이 맞다고. 성격이 드센 것은 좋으나 그것이 다른 이와의 갈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는 것은 곤란하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

     스스로도 고쳐야 한다고, 로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지금까진 어영부영 넘겨왔지만.

    “좋아.”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엎드려 절받기로 존대를 받아내는 상황에 거부감을 품을 법도 한데, 플레이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작금의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한 제스처. 확실히 그녀는 무언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자, 그럼 바로 들어보자. 우선 누나~ 하고 불러봐.”

     레인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쪽을 동요시키려 하는 게 훤히 보였다.

     안됐지만, 그런 방식에 넘어가 당황하기엔 레인의 정신연령이 너무 높았다.

    ‘애초에 누나란 호칭이 존재와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래서, 조금 강경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싫은데요. 아줌마.”

     빠직.

     플레이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 * *

     결과적으로, 레인이 알아낸 방식으로 길을 찾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저거! 저 건물 아닌가?”

     끝없이 이어진 키메라와 거대 식물들의 공격을 뚫고 나아가던 일행은 결국 컨트롤 룸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건물을 발견해내기에 이르렀다.

     건축 양식이 현시대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이한 건물. 그 내부에 자리 잡고 있을 컨트롤 룸을 장악하기만 하면 이번 탐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게 된다.

     컨트롤 룸(Control Room).

     쉽게 말해 본래 유적의 주인이었던 이가 주거 공간, 혹은 실험실로 사용하던 공간.

     보통 그 내부에 유적의 시스템, 이를테면 입구의 개폐나 함정 발동 등을 총괄하는 장치가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트레져헌터들은 편의상 그 장소를 컨트롤 룸이라고 불렀다.

     컨트롤 룸을 확보했다는 것은, 유적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용병들이 괜히 자꾸만 컨트롤 룸을 언급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성이 높은 장소이기도 했다. 유적의 심장부인 만큼 그 주위에 유적 내 어떤 함정보다도 위험한 함정이 설치된 경우도 많았고, 가디언이 배치되어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일행이 진입한 유적의 컨트롤 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지나쳐 온 곳들과 비교해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피해가 좀 클지도 모르겠군.”

     플레이나가 얼굴을 한껏 구겼다. 그녀가 그렇게 반응할 만큼 눈앞의 광경은 위험천만해 보였다.

     일행이 이곳까지 오면서 마주한 키메라들 중에 가장 위험성이 높았던 개체를 꼽으라면 세 종류를 들 수 있었다.

     첫째가 사슴벌레.

     둘째가 장수풍뎅이.

     셋째가 비행형 곤충.

     로엘과 플로라의 조합으로 어떻게든 대처가 가능했던 비행형 키메라는 그렇다 쳐도,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단단하기 짝이 없는 외피였다. 사마귀의 앞다리나 개미의 외피도 단단하긴 했지만, 사슴벌레, 장수풍뎅이와는 비교를 불허했다.

     그 강력한 외피에는 오라를 실은 검격도, 마법사들의 마법도, 심지어 로엘의 총격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두 개체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압도적인 출력을 자랑하는 검강으로 아예 부숴버리거나, 외피와 외피를 잇는 미세한 틈을 정확히 공격해야만 했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 단단한 외피를 믿고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놈들에게 세밀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후자의 방법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할까. 지금까진 그들이 보이는 족족 네 검호가 번갈아 해치워왔다.

     그래도 지금까진 녀석들의 출현이 그리 잦지 않았다. 간혹 한두 마리씩만 나타났기에 그치들의 출현이 위기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종착점 주변에 상당히 많은 수의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대충 눈으로만 봐도 그 숫자가 상당한데, 거대 식물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개체는 대체 얼마나 될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는 것.

     암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일류 검사 넷이 있다고 해도 저 숫자의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전부 상대할 순 없었다.

    “일단 전진하는 수밖에 없나.”

     돌파를 강행했다간 분명 일행 중 사상자가 나오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 외엔 방법이 없었다.

     소수 정예로 돌입하는 파격적인 방법도, 차근차근 조금씩 유인해 해치우고 안전하게 나아가는 정석적인 방법도. 전부 이 상황에선 옳지 못했다.

     역시 유적의 특성이 문제였다. 전자의 경우 남는 일행이 전력 부족으로 전멸하게 될 테고, 후자의 경우 안 그래도 많이 떨어진 일행의 체력이 전부 소진되어 버릴 터였다.

     결국 플레이나는 입술을 깨물며 일행에게 지시했다.

    “진입한다! 지금부터는 상당히 위험할 테니 최대한 주의하도록!”

     * * *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희생자가 나타났다.

    “크악!”

     장수풍뎅이의 돌진으로 인해 운 없게 진형에서 튕겨 나간 용병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또 다른 장수풍뎅이가 짓밟고 지나가 몸이 으스러진 것이다.

     용병은 신음과 함께 몸을 몇 차례 부르르 떨더니 이내 축, 하고 늘어졌다.

    “웁.”

    “빌어먹을.”

     그것을 목도한 다른 용병들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진형으로 돌진해온 풍뎅이는 적룡대 대원이 처리해 피해가 더 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료가 목숨을 잃은 상황. 그것이 남의 일만도 아닌지라 일행의 사기가 조금 떨어졌다.

     컨트롤 룸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그 피해가 점점 더 늘어났다. 아마 마법사가 일행에 포함돼 있지 않았더라면 피해가 훨씬 더 컸을 터였다.

     마법사들은 로엘의 조언을 받아들여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길 포기했다. 대신 주변에 불기둥을 만들어 대단위의 적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데에만 치중했다.

     수시로 주변에 둘러쳐지는 장벽. 주위의 곤충들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어 준 덕분에 용병들은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와중 레인은 그야말로 맹활약했다. 그는 외피를 넘어 그 안쪽에 직접 충격을 전달하는 기술을 수없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피해는 계속 누적되어 일행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사기가 완전히 떨어져 버릴까 우려한 플레이나는 조금 무리해가며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전방에서 연신 화려하기 짝이 없는 검격을 몰아치며 압도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필요 이상으로 힘을 낭비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녀는 일행의 리더였으니까.

     많아진 것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뿐 아니라 비행형 키메라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이쪽은 로엘과 플로라가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전무했다.

     대신 플로라가 완전히 지쳐버렸다. 로엘의 배려로 조금이나마 회복했던 기력이 다시 바닥을 쳤다.

     그녀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비틀대는 모습을 로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다 컨트롤 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불행한 사고가 터졌다.

     풍뎅이의 돌진에 단번에 절명한 한 용병. 튕기듯 날아간 시체가 하필 중앙에서 열심히 일행을 지원하던 마법사에게 부딪쳐 버렸다.

     워낙 강하게 부딪친 탓에 마법사는 속절없이 진형 외곽까지 밀려가 버리고 말았다. 원래라면 플로라가 염력으로 붙들어 주었겠지만, 하필 그녀의 기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숙련된 용병들마저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것이 고작인 진형 외곽이었다. 그곳에 떨어진 마법사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검사들에게 보호받지 못하게 된 마법사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악!”

     겨우겨우 유지되던 진형이 마법사 한 사람의 죽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두 마법사가 적절히 마법을 사용해 곤충들의 습격을 최소화시키고 있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한 마법사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반동으로 습격의 빈도수가 크게 늘어났다.

     당연하게도 피해 또한 더욱 늘어났다. 결국 목적지인 건물 앞까지 이르렀을 땐 일행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말았다.

     그나마 적룡대원들은 그때까지 전원 무사했다. 아무래도 초일류 전력이 넷이나 되는 일행이 서로를 도와가며 움직인 덕분이었다.

    “오오.”

    “드디어!”

     건물 앞에 일행이 다다르자 식물들과 곤충들이 더 이상 접근해오지 않았다. 키메라를 물리는 모종의 마법적 장치라도 갖춰져 있는 것일까.

     레인은 곧바로 건물 내부로 진입하려 했다. 그런데 그것을 플레이나가 붙잡아 말렸다.

    “?”

     왜 그러느냐는 듯한 시선에 플레이나가 지금까지 중 가장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만한 유적이라면 분명 있을 거야. 곧 나타나겠지.”

    “……?”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레인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번이 첫 유적 탐사인 그로서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레인이 제대로 설명하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

     그의 시선이 홱 하고 돌아갔다.

     기감에 걸려든, 저릿저릿할 정도의 존재감.

     무언가가 땅속을 고속으로 이동해 이쪽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그것은 유적의 여타 다른 생명체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듯한 이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범해 들어와 일행 바로 앞쪽까지 다다랐다.

    ‘아니, 그게 아니지. 이 녀석이 이곳을 침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녀석 때문에 다른 키메라들이 이곳에 침범해 들어올 수 없는 거다.’

     플레이나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존재를 드러낸 이것은 분명 이 유적 내 최강의 생명체. 지금까지 상대해온 식물이나 키메라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

     레인뿐 아니라 초감각을 가진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아챘다. 그들이 긴장으로 얼굴을 굳히자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 기색을 느낀 다른 이들까지 덩달아 긴장했다.

     이내 그것이 나타났다.

     처음엔 바닥에 작은 균열이 생긴 정도였다. 그것이 점차 범위를 불려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집 한 채 정도는 가볍게 상회할 정도가 되었다.

     거대한 균열이 생긴 땅 곳곳이 불룩 솟아오르고 뒤집어 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넓은 공간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마침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크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것’이 흙과 돌을 사방으로 비산시키며 솟아 올라왔다.

     그것은 거대한 해바라기였다. 그냥 거대한 정도가 아니라, 그 크기가 십여 미터에 다다르는 초거대 해바라기.

     다만, 씨앗이 있어야 할 중앙 부분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거대한 송곳니가 원형을 그리며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뿌리까지 지상으로 올라오지는 않는지 줄기 끝은 땅에 박힌 채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거대했지만.

    모두가 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해바라기는 새가 날개를 펴듯 줄기에 매달린 거대한 잎사귀들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사위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의 포효를 내질렀다.

     모든 트레져헌터가 기피하는 상대.

     유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유적 내 최강의 존재.

     유적의 심장부를 지키는 수호자.

     가디언(Guardian).

     일행이 진입한 유적 내 모든 생명체들 중 최정점에 위치한 최강의 키메라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며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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