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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유적(8) (45/249)
  •  45화. 유적(8)

     지금까진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이 부족했다. 그런데 방금 전, 그 부족한 조각을 찾아냈다. 저 거대하기 짝이 없는 키메라를 쓰러뜨릴 방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마법사와 적룡대원이 목숨을 잃은 것은 애석한 일이었지만, 그들 덕분에 생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로 움직여야 했다.

     로엘은 우선 잠시 플로라를 내려놓고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탄창을 분리, 탄환 두 알을 꺼내 따로 갈무리했다.

     다음으론 일행이 여기저기에 내던져둔 배낭을 뒤져 몇 개의 가죽 주머니를 꺼내 챙겼다.

     그 후 재차 가디언이 위치한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 그 방향에서 레인이 한창 검격을 뿌리며 식물 줄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레인 또한 어떻게든 본체인 해바라기에 접근하려고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행 중 가디언과 가장 근접해 있었다.

    “레인! 날 녀석의 얼굴 앞쪽까지 날려 보내!”

     로엘이 막 줄기들을 정리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던 레인에게 외쳤다. 그 외침에 레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두 소년의 시선이 일순 교차했다. 곧바로 레인이 검면을 위로한 채 자세를 잡았다.

     로엘이 신형을 날려 레인의 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레인이 전신의 내력을 단숨에 끌어모아 양손으로 그려 쥔 검을 휘둘렀다.

     단순히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레인이 진각을 밟은 반동까지 이용했다. 뒤이어 신형을 휘청일 정도로 강렬한 휘두르기.

     거기에 로엘 본인의 경신법이 더해짐으로써, 플로라와 로엘 두 사람은 엄청난 기세로 솟구쳐 오를 수 있었다. 초거대 해바라기가 발아래에 위치할 정도로.

     기척을 느낀 가디언이 로엘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예의 숨을 크게 들이쉬는 자세를 취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한 바.

     로엘은 지체하지 않고 미리 챙겨뒀던 가죽 자루들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키메라의 입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연속으로 격발했다.

     탕! 탕! 탕! 탕!

     가죽 주머니들에 구멍이 뚫렸다. 주머니 속의 내용물이 키메라의 입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정체는 밀가루. 일행이 식량으로 챙겨온 물품 중 하나였다.

     로엘은 곧바로 따로 챙겨두었던 탄환 두 알을 내던지고 플로라에게 지시했다.

    “플로라 양! 저것을 염력으로 조종해 녀석의 입안에서 서로 부딪치게 해야 합니다!”

    “부딪치게?”

    “예! 부싯돌처럼!”

     플로라는 로엘의 지시에 의문을 표하지 않고 곧바로 염력으로 두 탄환을 조종했다. 탄환은 밀가루가 가득한 키메라의 입 안쪽에서 맞부딪치며 불씨를 토해냈다.

     * * *

     화염 브레스가 작렬했던 그때.

     로엘은 그 브레스가 키메라의 신체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만일 키메라가 체내에 그만한 염화를 생성하고도 견디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열 내성을 지닌 개체였다면, 마법사의 마법에 줄기가 타들어 가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키메라가 내뿜은 브레스는 화염 브레스가 아니라 가연성 가스 브레스라는 것.

     체내에서 가연성 가스를 생성해 분출, 체외에서 모종의 방법으로 불씨를 생성해 접촉시킨다.

     그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가디언의 몸 내부는 가연성 가스가 가득 들어차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래서, 로엘은 그것을 이용해 폭발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밀가루가 가득 부유하는 공간에 불씨를 놓으면 분진폭발이 일어난다는 건 전생에 로엘이 살았던 세상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잘 알려진 만큼 떠올리기도 쉬운, 상식 중의 상식.

     그럼에도 로엘이 지금까지 밀가루를 이용한 분진폭발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이유는 그 실효성에 있었다.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 이유야 차고 넘쳤다.

     우선 암만 분진폭발을 일으켜도 이만한 키메라에게 충분한 타격을 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첫째 이유.

     유적 내부가 건조하지 않아 제대로 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것이 둘째 이유.

     그리고, 분진폭발은 원래 일으키기가 힘들다는 것이 셋째 이유였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면 모를까, 밀가루에 불씨를 갖다 대는 정도론 폭발이 일어날 확률이 희박했다. 십중팔구 밀가루 표면 입자에 연소 반응이 일어나는 정도로 그치고 말 터였다.

     그러나, 가연성 가스가 가득 들어차 있는 공간에 퍼진 밀가루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폭발의 위력도, 폭발 성공 여부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

     따닥. 딱.

     두 탄환이 맞부딪치며 불씨를 토해냈다.

     불씨가 밀가루 입자에 충분한 열을 가했다. 밀가루 입자가 연소되며 기체가 생성되었다.

     연소 반응은 부유하는 밀가루 입자 전체로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동시다발적인 연소 현상은 기체 팽창과 열팽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기하급수적인 기체 팽창은 이내 엄청난 규모의 폭발로 이어졌다.

    쾅! 콰쾅! 콰과과과광-!

     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쉼 없이 이어지는 폭음. 그리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비명 소리.

     주변 공간이 통째로 불길에 휩싸였다. 강렬한 화마(火魔)가 넘실거리며 주위 공기를 후끈하게 달궜다.

     일행을 포위하고 계속해서 괴롭혀왔던 수많은 식물 줄기가 흐느적거리며 다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본체인 해바라기가 온몸을 뒤틀며 고통에 괴로워했다.

    “크윽!”

     로엘과 플로라는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생성시킨 염력 장벽 덕분에 폭발의 여파에 말려들어 목숨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충격으로 튕겨 나갔다.

     두 사람은 중심을 잡을 틈도 없이 대지를 향해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내렸다.

     플로라가 조금만 남겨둔 힘이 있었다면 염력으로 비행해서 안전하게 착지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염력 장벽을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소진하고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이대로는 속절없이 바닥에 추락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로엘은 플로라를 꽉 하고 끌어안았다. 무슨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바닥이 순식간에 확장되어 망막에 비쳐 들어오고, 저도 모르게 뒤따라올 고통을 상상해버린 로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폭.

    “……?”

     갑작스레 느껴진 포근한 감촉에 그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적룡대 대주가 자신과 플로라를 안아 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위기를 눈치챈 그녀가 곧바로 달려와 떨어져 내리는 그들을 공중에서 낚아채 구한 것이었다.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공중제비를 넘었음에도 여력을 완전하게 해소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발을 딛고 선 대지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괜찮나?”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플로라는?”

    “모든 힘을 소진해서 혼절한 것 같은데……. 일단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잘해줬다.”

    “고마우면 나중에 저희 몫이나 좀 넉넉하게 챙겨주시죠.”

    “레인 녀석과 똑같은 반응이군. 물론 그럴 생각이다.”

     플레이나는 자못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 밑에 진 그늘은 그녀가 진심으로 즐거워하진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아마 적룡대원 한 사람이 전사한 탓일 터였다.

     * * *

     로엘이 분진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 한참 분전하던 때, 레인은 레인대로 긴장감 넘치는 시간을 가졌다.

     일행 중 가장 화려한 전투를 행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브레스에 맞아 절명한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그는 가디언의 제일 표적이 되었고, 집중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화려한 전투를 행한 이가 바로 레인이었다.

     찬란하게 백열하는 검강만 해도 상당히 눈에 띄는데, 휘두르는 기운의 난폭한 성질에 더해 그 본인의 귀신과도 같은 몸놀림까지. 그 모두가 가디언을 여러모로 자극했다.

     이미 한 차례 마법사를 집중 공격하는 것으로 재미를 본 가디언은 제이 목표를 레인으로 잡았다. 레인은 하필 로엘을 올려보내 주기 위해 자세가 무너진 타이밍에 급습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초일류 검사라고 해도 상황이 여기까지 내몰리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레인은 갑작스레 기감에 걸려든 여러 기척에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을 짚고 여러 차례 굴렀다.

    “젠장.”

     무너진 자세를 회복하고 차분하게 맞서기에는 너무 무리를 했다. 상태가 굉장히 좋지 못했다. 레인이 욕설을 내뱉었다.

     연속해서 솟아올라 온 거대한 식물 줄기들이 레인을 덮쳤다. 그 숫자가 무려 다섯. 아주 작정을 하고 몰려오고 있었다.

     무리한 운용으로 들끓는 내력을 가라앉히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레인의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내력 조절 능력을 감안했을 때 아주 잠깐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문제는 그 짧은 시간조차 주어지질 않는다는 것. 식물 줄기들은 쉴 새 없이 레인을 몰아쳤고, 레인은 그것을 피하거나 흘려보내는 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레인이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식물 줄기를 회피하는 광경이 단 몇 초 동안 수차례나 반복되었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 아래쪽에서 사선을 그리며 위쪽으로. 시차를 두고 연속해서 휘둘러져 오는 식물 줄기들.

     레인의 옷이 바닥을 구르느라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가 재차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피하는 것도 잠시,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들끓던 내력이 결국 순환하지 못하고 동결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경신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윽.”

     식물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레인은 저도 모르게 팔로 얼굴을 가리며 충격을 대비했다. 그리고 이어질 고통을 대비해 이를 악물었다.

    ‘저건 못 피한다. 쓸데없이 피하려다 더 큰 부상을 입느니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부상을 입더라도 치명상만 아니면 된다. 웬만한 부상이면 포션으로 치료할 수 있을 테니.’

     레인은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분명 그 상황에서 옳은 판단이었다. 그러나 일종의 체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가슴 속에서 울컥, 하고 치미는 것이 있었다.

     전생의 자신이었다면 이러한 상황 정도는 가볍게 타파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조차 않았을 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몰려왔다. 현재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 마음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도 ‘왕년의 나였다면’이라는 서두로 갖가지 말을 쏟아내는데, 화려한 이력을 가진 레인은 어떻겠는가.

     말이 ‘이전에 한 번 지나간 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시간이지. 실상은 답답함과 막막함이 마음을 온통 좀먹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고 그 압도적인 차이에 절망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아니, 압도적인 차이라고 말하기도 뭣했다. 전생의 자신이 천신이었다면 현재의 자신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였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도, 발을 한 걸음 내디딜 때도 그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받아온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지.

     머리는 전생의 그것인데 육체는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 괴리감으로 인해 쌓여온 울분이, 억눌려 제어되고 있었던 무언가가 폭발했다.

     으득.

     감정의 홍수가 이성이라는 둑을 허물고 단번에 쏟아져 나왔다. 레인이 이를 악물었다.

     현재 이쪽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거대한 동체. 그것을 막아낼 여력이 지금의 자신에게는 없다. 그것이 미치도록 화가 났다.

     한낱 미물 따위를 상대하는데 체념을 해야 할 상황이 오다니. 그 미물의 습격에 목숨을 잃지 않기를, 치명상을 입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니.

     분통이 터졌다. 그저 운 따위에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한다는 현실에. 너무나도 무력한 자신에. 현재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에.

     그 격렬한 감정이, 깊은 잠에 빠져있던 ‘그것’을 일깨웠다. 그것은 식물 줄기가 레인의 한 치 앞까지 다다랐을 때, 갑작스레 움직였다.

     그것은 그림자 속에 지금껏 자신을 숨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존재. 계약을 통해 레인과 심령으로 연결된 정령.

     변질된 탓에 정령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소환자가 살아가는 세계에 매여 있는, 온몸이 어둠으로 뒤덮인 어린아이.

     계약자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은 흑아(黑兒).

     정령은 본디 주인에게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 존재. 그 성장의 트리거(방아쇠)는 각각의 개체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흑아의 경우엔 그 트리거가 소환자의 감정이였다.

     지금 이 순간, 레인의 마음을 뒤흔든 감정의 격랑이 암흑정령을 일깨웠다. 소환된 날로부터 지금까지 잠들어 있기만 했던 레인의 동반자를.

    쉬릭-!

     레인의 그림자로부터 검은 줄기가 뻗어 나와 식물 줄기를 휘감았다. 식물 줄기가 레인의 코앞에 고정된 채 움직임을 멈췄다.

     각성한 암흑정령에게 주어진 힘은 ‘물리력’.

     본디 정령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종의 기운을 빌려서 사용한다.

     반면 흑아는 실체를 형성해 그것으로 주변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능했다. 암흑정령이 되면서 이 세계의 존재로 거듭난 존재이기에.

     힘을 발현하는 형태는 레인의 영향을 받았다. 레인이 감정을 폭발시킨 원인인 식물 줄기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작금의 상황이 자신으로부터, 정확히는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흑아와 심령으로 연결된 레인은 알 수 있었다.

    “…….”

     솔직히 말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레인은 놀란 얼굴로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뻗어 나온 검은 줄기를 응시했다.

     그리고.

     콰아아앙!

     막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위쪽으로 날려 보낸 로엘이 분진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이 울렸다. 갑작스레 일어난 화마가 그 범위를 더해가며 사방으로 붉은빛을 토해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위협적인 공격을 가해왔던 식물 줄기들이 발광하듯, 절규하듯 마구 꿈틀대며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완전히 정리되었다.

     일행이 이곳저곳에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이는 동료의 죽음에 눈물지었으며, 어떤 이는 뒷수습을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어기적어기적 움직였다.

    “…….”

     레인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사색에 잠겼다. 그는 다시 원래의 평범한 형태로 되돌아간 그림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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