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46화 (46/227)
  • < 제 14장 #3 <- 유료 연재 시작 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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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체 진화.

    서로 다른 두 개체를 하나로 합치는 행위.

    아마도 세 번째 뿔이 생기면서 진화의 권능 자체가 강해졌기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일.

    용호는 이번에도 진화의 권능을 이해했다.

    락 스켈레톤 워리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저 합체 진화는 스컬과 락 골렘을 하나의 존재로 결합시키는 진화였다.

    진화의 권능은 용호의 힘이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만능의 권능인 것은 아니었다.

    진화를 위해서는 진화 숙련치를 모아야 하듯이 제약과 한계가 존재했다.

    합체 진화도 다르지 않았다. 분명 몇 가지 제한이 있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사역마들끼리도 가능할 것인가, 서로 다른 두 사역마를 합치면 과연 어느 쪽의 의지가 남을 것인가 등등 각종 의문점들 역시 떠올랐다.

    하지만 일단 스컬과 락 골렘에게만 집중한다면 이야기가 제법 간단해졌다.

    스컬은 언데드였다. 이미 죽은 자의 영혼을 마법의 힘으로 해골 육신에 붙잡아둔 상태였다.

    그리고 락 골렘에게는 자아가 없었다. 둘을 하나로 합친다 하여 스컬의 자아가 훼손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락 골렘의 단단한 육신과 괴력을 가진 스켈레톤 워리어.

    제대로 된다면 분명 지금까지 이상의 전투력을 보여줄 것이 분명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합체 진화를 하면 락 골렘은 그걸로 안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전투로 클레이 골렘을 잃은 마당에 락 골렘까지 잃어버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스컬이 중요했다. 더욱이 애당초 울며 겨자 먹기였지만 ‘소수정예’를 표방하고 있는 마몬 가의 던전이 아니었던가. 망가져서 써먹지 못할 병력 둘 보다는 제대로 쓸 수 있는 정예 하나가 나았다.

    “준비 됐지?”

    용호가 말했다. 스컬은 여부가 있겠냐는 듯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답했다.

    “스컬컬!”

    시원했다. 비로소 마음을 확실히 정한 용호는 양손을 각각 스컬과 락 골렘 위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락 골렘의 얼굴을 돌아보는 것으로 마음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털어냈다.

    합체 진화.

    락 스켈레톤 워리어.

    용호는 둘 모두에게 마력을 주입했다.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처음에 일어난 것은 빛.

    새하얀 빛이 스컬과 락 골렘을 뒤덮었다. 연이어 순백은 초록이 되었고, 스컬과 락 골렘을 하나로 이었다.

    마력이 주입됨에 따라 더 거대하고 강렬해진 빛은 이내 용호의 시야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그렇게 몇 초.

    용호는 거친 숨을 토했다. 양손에 전해지던 스컬과 락 골렘의 감촉이 사라졌다.

    허공을 움켜쥔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고, 초록빛이 가신 자리를 바라보았다.

    락 골렘의 잔해로 보이는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스켈레톤 워리어가 오롯이 서 있었다.

    진한 회색 몸체는 과거의 락 골렘보다도 단단해 보였고, 락 골렘처럼 과하지 않은- 우람하면서도 날렵한 체구는 스켈레톤 워리어보다 훨씬 더 강한 느낌을 주었다.

    용호는 긴장된 얼굴로 락 스켈레톤 워리어의 얼굴을 보았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자 텅 빈 해골의 안쪽에서 초록빛 안광이 피어올랐다.

    “스컬컬!”

    이전보다 더 우렁차고 중후한 목소리에 용호는 안도의 숨을 토했다. 이내 활짝 웃으며 스컬과 함께 기뻐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스컬스컬?”

    용호는 재차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켜 스컬을 보았다. 새로운 진화 정보들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이름 : 스컬 (-)]

    [종족 : 락 스켈레톤 (혼성마)]

    [분류 : 스켈레톤 워리어]

    [속성 : 대지 1레벨]

    [개체 천성]

    [기발함 / 우직함]

    [개체 적성]

    [기량 / 체력]

    [진화 숙련치 : 0/100]

    전에 없던 속성이 생겨난 데다가 개체 천성과 특성도 추가 되었다. 카타리나와 마찬가지로 ‘혼성마’라는 단어가 생긴 것 역시 눈에 띄었다.

    절로 흐뭇한 얼굴이 된 용호는 나머지 항목들 역시 읽어 보았다.

    [뼈 강도 특화 2레벨 | ★★☆ (2.5)]

    [힘 특화 1레벨 | ★★ (2)]

    [체격 특화 2레벨 | ★★☆ (2.5)]

    [지력 특화 0레벨 | ★☆ (1.5)]

    [기량 특화 1레벨 | ★★☆ (2.5)]

    [현재 승급 가능 종족/직위]

    [락 스켈레톤 나이트] /  [락 스켈레톤 버서커] / [락 스켈레톤 아처]

    자동으로 레벨이 오른 항목도 있었고, 아예 새로 생겨난 힘 특화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눈에 띈 것은 새로운 승급 루트들이었다.

    하나가 아닌 셋.

    이름만 봐도 각각 어떤 특성을 가진 승급들일지 유추가 되었다.

    스켈레톤 나이트는 방어력을 보강한 중갑 보병, 스켈레톤 버서커는 공격에 좀 더 치중한 상위 전사, 스켈레톤 아처는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직종.

    각각의 특성을 상징하듯 승급 후의 실루엣 역시 조금씩 달랐다.

    나이트는 뼈 자체가 갑옷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고, 버서커는 팔이 좀 더 길어지고 두꺼워졌다. 아처는 지금과 외형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배가 불러오는 스컬의 변화였다. 락 골렘이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 성과라면 감내할 만 했다.

    스컬은 바닥에 떨어진 무기와 방어구들을 하나하나 다시 장비했다.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을 투구를 머리에 떡 하니 쓴 뒤 용호의 명을 기다렸다.

    그리고 딱 때맞춰 던전의 영혼이 말했다.

    [예속 사역마 카타리나와 엘리고스가 오고 있습니다.]

    아마 용호가 깨어났을 때 바로 두 사람에게 연락을 해둔 모양이었다.

    던전의 영혼이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한 보람이 있는지 간단한 먹을거리들을 든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고블린들이 마왕의 방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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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가주님.”

    용호를 보자마자 엘리고스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이 되었다. 카타리나 역시 이번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귀가 날개처럼 펄럭이고 꼬리가 파닥이는 게, 지금이라도 두 팔을 벌리며 당장 달려와 품에 안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용호는 자중했다. 두 팔을 벌리는 대신 카타리나의 배에 시선을 두었다.

    예의 전투복 차림이었던 터라 짧고 꽉 끼는 가죽 옷 아래로 맨살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일 것 같은 복부는 평상시 그대로였다. 달콤한 밀크 초콜릿을 녹인 것 같은 연한 갈색 피부 역시 그랬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토했다. 카타리나의 복부를 침식하던 포라스의 냉기는 사라졌다. 저 파닥거리는 꼬리가 증명하듯 카타리나는 건강했다.

    “가주님?”

    너무 빤히 쳐다봤기 때문인지 카타리나가 눈을 살짝 깜박이며 물었다. 용호는 새삼 천성 항목에 있던 엉큼함을 인정한 뒤 헛기침을 터트렸다.

    전투시에 그러했던 것처럼 침착하게 대응했다.

    “걱정했는데 이제 다 나은 것 같네.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카타리나가 귀를 쫑긋 세우며 대답했다.

    “가주님의 마력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그때 카타리나 덕분에 살 수 있었어. 역시 최고의 호위기사야.”

    칭찬이 바로 먹혔는지 카타리나가 귀를 파닥이며 헤헤 웃었다. 약간 바보 같았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귀여웠다.

    “가주님. 저도 완치되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어느새 상의를 벗어 재낀 엘리고스가 포라스에게 얻어맞았던 부위를 드러내며 말했다.

    체력 진화를 했기 때문인지 여전히 노인의 얼굴이었지만 몸 하나는 건장하기 짝이 없었다.

    어쩐지 모르게 보디빌더 같은 자세를 취하는 엘리고스에게서 용호는 시선을 돌렸다. 엘리고스에게는 늘 감사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용호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 사역마들 모두를 눈에 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돌연 카타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용호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시야에 스컬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스컬?”

    덩치가 좀 더 커진데다가 결정적으로 색이 바뀌었기 때문에 카타리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깜박였다. 반면 엘리고스는 스컬을 돌아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고, 고블린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커진 스컬을 올려다보며 감탄을 토했다.

    “스컬컬.”

    스컬은 투구에 이어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을 전투망치를 가볍게 흔들었다.

    어쩐지 모르게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카타리나와 스컬이었지만 애당초 적이 아닌 동료였다. 카타리나는 활짝 웃었고 스컬 역시 너스레를 떨듯 다시 한 번 망치를 흔들었다.

    한편 이 와중에 용호는 새삼 진화의 권능을 재차 발동시켜 보았다. 지금 당장 카타리나를 비롯한 사역마들을 살펴보겠다기 보다는, 혹여 합체 진화의 여지가 보이는 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합체 진화 관련 정보가 뜨지 않았다. 아마 처음에 예상한대로 이미 죽었거나 의지가 없는 사역마에게만 가능한 모양이었다.

    “좋아,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스컬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이야기 해 줄게.”

    진화의 권능을 해제한 용호가 말했고, 고블린들이 작게나마 환호했다.

    언제나처럼 마왕의 방 카펫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엘리고스는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올려놓았다. 주로 훈제해둔 고기와 빵 같은 보존식품들이었다.

    마침 사역마들도 아직 식전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단체 회식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다. 애당초 매일같이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는 마몬 가의 사역마들이었지만 말이다.

    합체 진화에 대한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진화의 권능은 용호의 마력과 영혼에 그 근본을 둔 능력이었지만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고, 완벽히 용호의 통제 하에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완전히 용호의 것이 될 능력이었다.

    본래는 색깔 있는 연기 정도 밖에 보이지 않던 진화의 권능의 정보 창이 마치 RPG 게임의 정보 창처럼 변한 것은 용호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서였다.

    보다 명확한 분류.

    용호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의 설명.

    합체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용호는 식사를 하며 엘리고스에게 각종 세부 사항들을 보고받았다.

    일단 던전 통로에 방치된 시체들은 계속 치우는 중이라 했다.

    포라스의 시신은 만약을 대비해 따로 보관하였고, 나머지 오크들의 시신은 대충 입구 근처 빈방에 모아둔 상황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던전 밖으로 들고 나가 매장해야 할 듯 했다.

    던전의 영혼도 언급했던 포라스의 전투 마차들은 모두 던전 입구 방에 자리했다.

    하나하나가 양품이었기에 마몬 가에서 쓸 한 두 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파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엘리고스의 의견이었다.

    물론 미래를 위해 전부 다 남겨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장기적인 안목이었다.

    개발을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는 마몬 가에는 나중에 쓸지도 모를 전투 마차보다는 지금 당장 개발에 쓸 돈이 더 필요했다.

    금전 문제 쪽으로는 엘리고스와 뜻을 같이하는 용호였기에 고개를 끄덕여 수락했다.

    다음은 포로들의 처분 문제.

    감옥에 가둬둔 오크들은 의외일 정도로 얌전히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이래저래 상황이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감옥의 수용 능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애당초 임시로 만든 감옥이었다. 지금까지 감옥신세를 진 코볼트들이나 공주개미와 달리 오크들은 덩치가 큰데다가 숫자까지 많았다.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계속 가둬두기에는 식사 추진이나 용변 처리 등이 문제였다.

    용호는 반쯤 먹은 빵을 내려놓고 엘리고스에게 물었다.

    “놈들이 이쪽으로 회유될 가능성은?”

    “무척 높습니다. 애당초 그럴 생각으로 얌전히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로 중의 리더인 리쿰이란 오크가 꽤 노련한 전사인데, 이미 넌지시 마몬 가의 사역마가 되고 싶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자유 사역마들- 특히 전사들은 용병에 가까운 존재들이니까요. 고용주인 포라스도 죽은 마당이니 당연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고용주가 죽었으니 미련 없이 항복하고 새 고용주를 찾는다.

    약간 꺼림칙하면서도 반가운 이야기였다.

    오크들은 용호가 진화의 권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던전 사역마로 회유할 수 없다면 죽여서 입을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짓 항복이라든가… 배신 같은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포라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든가.”

    [거짓 항복이면 던전 사역마 등록 자체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쪽으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기라도 했는지 던전의 영혼이 바로 답했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용호는 다시 엘리고스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식사를 끝내는 대로 오크들을 만나러 가보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침 오는군요.”

    말을 마친 엘리고스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용호가 따라 시선을 돌리니 방정맞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코볼트와 공주개미가 보였다. 공주개미 손목에 걸어둔 밧줄을 코볼트가 쥐고 있었다.

    개가 개목걸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라 시각적으로 꽤나 충격적이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주개미가 감옥 밖에 있었다.

    엘리고스가 설명했다.

    “감옥이 너무 좁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현재 딱히 전투능력도 없고, 성격도 온순한 듯 하여 코볼트에게 감시를 맡겨두고 사역마 생활관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가주님의 허락 없이 일을 진행하여 죄송합니다.”

    분명 가주의 허락 없이 월권행위를 한 것은 분명했지만 용호는 개의치 않았다.

    용호 자신은 지난 31시간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고, 그 사이에 엘리고스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더욱이 엘리고스의 직위는 마몬 가의 집사장.

    마몬 가의 던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도 행동은 오히려 유연한 업무처리로 봐줄 수 있었다.

    엘리고스에게 괜찮다는 뜻을 전한 용호는 코볼트와 공주개미에게도 손짓을 했다.

    가만히 용호의 눈치를 살피던 코볼트는 공주개미와 함께 돗자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코볼트가 쥐어주는 먹을 것들을 얌전히 먹는 공주개미의 모습을 보니 조만간에 던전 사역마로 등록시켜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우선시해야 할 것은 오크들의 처리였다.

    식사를 마친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스컬과 함께 오크들이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목표는 포로 회유와 포라스 가의 정보 획득.

    오늘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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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4장 #3 <- 유료 연재 시작 화입니다.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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