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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26화 (26/227)
  • < 제 8장 #2 >

    &

    “현재 상태는?!”

    침투 소식을 접하고 달리기 시작한 지 겨우 수십 초.

    용호가 달리며 물었다. 던전의 영혼이 빠르게 응답했다.

    [현재 남은 적은 오크 다섯에 임프가 하나!]

    [적들이 함정 지대를 거의 다 돌파했습니다. 함정으로 적의 임프 셋을 격파했습니다.]

    [트리엔트가 아군 코볼트 들과 함께 적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용호는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놈들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무리였다.

    “마왕의 방으로 후퇴하라고 해! 최대한 전투 시간을 늦춘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다리가 짧은 고블린들과도 약간이지만 거리가 벌어졌다.

    [불가능합니다!]

    [전투가 시작되었어요!]

    이쪽은 코볼트 넷에 트리엔트가 하나.

    저쪽은 오크 다섯에 임프 하나.

    복도 끝에 마왕의 방이 보였다. 용호는 생각했다. 이미 시작된 전투에 미련을 갖는 대신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해 정보를 모으고 분석했다.

    오크 다섯.

    리더로 보이는 하나와 부하로 추정되는 넷.

    던전의 영혼이 보여준 영상대로라면 거의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깨, 가슴, 팔을 가리는 부분갑주. 리더는 검은 투구와 갑옷.’

    용호는 복장이 같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종의 유니폼. 지급받은 장비. 그것은 놈들이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음을 의미했다.

    앞서 달려 나간 카타리나가 마왕의 방문을 열었다. 용호는 계속 달렸다. 저만치 정문 너머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장은 칼이나 도끼 같은 근접 무기. 이렇다 할 원거리 무기는 없어!’

    [아군 코볼트 두 마리가 사망했습니다!]

    비명과 같았다. 카타리나가 다시 중앙로로 이어지는 정문을 열었다. 거짓말처럼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색이었다.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코볼트 두 마리의 시체만이 아니었다. 오크가 거칠게 휘두른 도끼에 코볼트 한 마리의 머리가 끊어졌다. 피가 솟구쳐 올랐고, 한 순간이지만 허공을 붉게 물들였다.

    “구오오오오오오-!”

    덩굴이 몇 개나 잘려나간 트리엔트가 괴성을 질렀다. 원통함과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놈들도 용호와 카타리나를 보았다.

    “가주?!”

    검은 갑주를 입은 리더가 소리쳤다. 코볼트들을 학살한 오크들이 일시에 용호를 돌아보았다. 개중에 한 놈이 용호를 향해 손도끼를 집어던졌다.

    빠르고 정확했다. 용호의 이마를 향해 손도끼가 날았다. 용호는 보았다.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돌진하며 왼팔을 들어올렸다.

    피는 튀지 않았다. 손도끼는 용호의 팔을 끊어놓지도, 그 진격을 멈추지도 못했다.

    손끝에서 일어난 왜곡의 권능이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손도끼를 튕겨냈고, 용호는 아몬을 짧게 쥐었다. 허공에서 손도끼가 튕겨났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오크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기합은 토하지 않았다. 그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크 놈의 복부에 아몬을 찔러 넣었다. 짧고 굵게 불꽃을 내뿜은 뒤 아몬을 뽑았다. 연달아 놈의 복부를 찔렀다.

    복부를 찔린 오크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오크들 역시 용호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워낙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도 하였지만, 그들 사이로 카타리나가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용호와 교차하듯 공간을 가로지른 카타리나가 연달아 손쇠뇌를 발사했다. 첫 발은 용호 때문에 당황하던 오크 하나의 뺨을 꿰뚫었고, 다음 한 발은 검은 갑주의 리더를 노렸지만 리더가 급히 들어 올린 방패에 튕겨나갔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카타리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단검을 뽑아들었다. 용호와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스컬컬!”

    용호의 다섯 번째 찌르기가 오크의 복부에 작렬한 그 순간 다소 뒤쳐져 있던 스컬이 전투에 합류했다. 크게 괴성을 토하며 오크 하나에게 망치를 휘둘렀다. 워낙에 큰 동작이었고 괴성으로 예고까지 했기에 맞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크는 스컬을 피해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다.

    고블린 레인저들 역시 마침내 도착했다. 네 마리 고블린 가운데 홍일점이자 리더인 준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고블린 레인저는 넷이 하나가 되어 오크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전투 개시로부터 몇 초.

    다섯 번의 찌르기 끝에 아몬을 회수한 용호는 바로 다음 수를 준비했다. 검은 갑주의 리더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몸을 뒤로 뺐다. 복부를 다섯 번이나 찔린 오크가 컥컥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그 다음에 용호가 하고자 하는 것.

    이미 결정했다. 생각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웠다. 다시 아몬을 길게 잡은 용호가 전방을 향해 아몬을 크게 휘둘렀다. 불꽃의 파도로 대기를 불태웠다!

    츠콰아아아아아!

    용호의 정면에 자리한 것은 오크들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용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오크들은 당황했다.

    카타리나는 불꽃을 받아들였다. 예속 사역마인 그녀는 자신의 주인을 믿었다. 탐욕의 불꽃이 등 뒤를 뒤덮는 그 순간에도 적을 노려보았고, 당황한 놈의 목줄기를 단검으로 갈랐다. 쏟아져 나온 피가 용호가 일으킨 불꽃과 충돌했다.

    “스컬컬!”

    스컬은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등 뒤에서 불꽃이 일어난 것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망치를 휘둘러 눈앞의 오크를 박살냈다.

    고블린들은 카타리나와 스컬처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이 움츠린 그 때 오크 역시 움츠렸고, 용호가 일으킨 불꽃의 파도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불꽃으로 적을 모조리 불태우려 했는가?

    아니었다. 아직 그 정도의 불길은 일으킬 수 없었다.

    용호가 유도한 것은 적의 당황.

    그리고 동시에 시야의 차단!

    고블린들이 상대하던 오크를 향해 용호가 달려들었다. 불꽃의 장막이 사라진 직후 나타난 용호의 모습에 오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크게 도약한 용호는 놈의 쇄골에 역수로 쥔 아몬을 박아 넣었다. 그대로 놈을 뒤로 자빠트렸고, 그 입안에 왼손을 쑤셔 박았다.

    오크의 턱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입을 꽉 다물면 손이 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용호가 더 빨랐다. 용호가 왼손에, 정확히는 카이완의 반지에 마력을 주입하였다.

    왜곡의 권능!

    오크의 목구멍 속에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좁아터진 공간에서 일어난 대참사에 오크의 목이 박살났고, 용호의 왼팔은 거칠게 밀려났다.

    피가 튀었다. 용호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리고 용호는 매몰되지 않았다. 입안에 왼손을 찔러 넣은 그 순간 용호는 이미 다음 적을 생각하고 있었다.

    용호와 검은 갑주의 리더가 서로를 보았다. 시선이 교차했다.

    “크허어어어엉!”

    리더가 토한 함성이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단순한 고함이 아니었다. 강력한 마력이 실려 있었다.

    ‘오크 족의 전투함성!’

    카타리나는 그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전투함성의 효과가 카타리나의 정신에 침투했다.

    고블린들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카타리나는 순간이지만 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코볼트와 트리엔트 역시 공포로 몸을 떨었다.

    오크족의 전투함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언데드인 스컬 뿐이었다.

    “가라!”

    검은 갑주의 리더가 돌연 외쳤다. 전투에 합류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적- 임프를 향한 명령이었다.

    임프가 돌아섰다. 리더가 흉포한 웃음을 토하며 지면을 박찼다. 스컬이 급히 리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용호는 생각했다. 정보를 하나로 이었다.

    모두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던 오크들. 굳이 임프 한 마리를 도망치게 한 리더.

    이미 전투에서 패했음을 깨닫고 임프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어림없는 소리였다. 자기 편인 임프들을 던져가며 함정을 확인하던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카타리나!”

    경직 속에 용호가 외쳤다. 추적해라. 저 임프가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차단하라!

    검은갑주의 리더가 커다란 사각 방패를 거칠게 휘둘렀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스컬을 통째로 튕겨낸 뒤 용호와 카타리나에게 시선을 내쏘았다.

    카타리나가 필사적으로 지면을 박찼다. 임프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용호 역시 달렸다. 카타리나에게 돌진하는 검은 갑주의 리더를 가로막고자 공간 사이로 질주했다.

    “쿠오오오!”

    “우오오오!”

    리더와 용호가 동시에 외쳤다. 서로를 노려보았다.

    불꽃이 비산했다. 대형도끼가 벼락처럼 쏟아져 내렸다.

    왜곡의 방패는 대형도끼를 완전히 튕겨내지 못했다. 내려치는 힘이 워낙에 강력했기에 용호의 왼팔이 사정없이 꺾여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자 했다면 왼팔에 손상이 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막지한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 일격이 용호의 공격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아몬은 허공을 찔렀고, 불꽃은 허무하게 대기만을 불태웠다.

    “스컬컬!”

    스컬이 집어던진 망치가 용호의 목숨을 구했다. 검은갑주의 리더는 급히 몸을 뒤로 빼 망치를 피했고, 덕분에 추가 공격에 노출되지 않은 용호는 자세를 수습했다. 그리고 이번엔 트리엔트가 나섰다.

    “구오오!”

    트리엔트가 뿌리를 일으켜 세웠다. 지면에 못 박히는 대신 일어나 리더와 용호를 향해 전진했다.

    무척이나 느렸다. 하지만 위압적이었고, 트리엔트에게는 덩굴이 있었다.

    덩굴 네 개가 송곳처럼 자신을 향해 찔러오자 리더는 급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용호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트리엔트의 덩굴이 뻗어오는 상황이었건만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다시 한 번 아몬을 뻗었다.

    “구오?!”

    트리엔트가 급히 덩굴을 거뒀다. 리더가 방패를 세워 용호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철벽.

    거리가 가까웠기에 커다란 사각 방패는 마치 커다란 벽과도 같았다.

    하지만 용호는 개의치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 치듯 방패를 찌르는 대신 아몬을 아래로 뻗었다. 애당초 노린 것이 놈의 하반신과 가까운 허공이었기에 조금의 무리도 없었다.

    용호를 쳐다보는 놈의 눈에 아주 잠깐이지만 의문의 빛이 어렸다. 용호가 즉답했다.

    쿠화아아아!

    아몬의 창끝에서부터 일어난 불길이 리더의 하반신을 뒤덮었다. 이런 식으로 불꽃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마력의 소모가 심했지만 용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리더를 노려보았다.

    검은 갑주가 전신을 뒤덮은 것은 아니었다. 노출된 녹색피부는 불꽃의 뜨거움을 무시할 수 없었다.

    “크앗!”

    리더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며 도끼와 방패를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용호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수단이었다.

    용호는 차가운 눈으로 그 동작을 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다시 한 번 그러모았다.

    “카악!”

    괴성은 리더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전투함성의 효과에서 자유를 되찾은 존이 도끼로 리더의 등을 강타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오크의 무기를 회수한 스컬이 리더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던졌다.

    이번에는 명중했다. 투구에 도끼를 맞은 리더가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차갑게 지켜보던 용호가 마지막 한 창을 찔러 넣었다. 갑주로 보호받지 않는 목을 꿰뚫었다. 창끝이 무언가를 꿰뚫는 느낌이 들자마자 마력 전부를 쏟아 부었다.

    탐욕의 불길이 솟구쳤다. 목구멍 안쪽에서 폭발하듯 일어나 걸리는 모든 것들을 사정없이 집어삼키며 불태웠다.

    리더는 비명조차 토하지 못했다. 꺽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틀 거렸고, 그러다 나자빠졌다. 용호의 손에서 떨어진 아몬은 더 이상 불꽃을 토하지 않았지만 이미 너무 큰 부상을 입었다.

    용호는 거친 숨을 토했다. 이제 곧 죽을 리더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대신 카타리나가 달려간 방향을 돌아보았다.

    던전의 영혼이 카타리나를 대신해 답해주었다.

    [예속 사역마 카타리나가 적 임프를 생포했습니다!]

    용호는 비로소 안도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대신 손을 뻗었다. 리더의 정수를 탐식했다.

    &

    < 제 8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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