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6화 (6/227)
  • < 제 2장 #4 >

    &

    용호의 눈동자 색이 초록빛으로 변하였다. 아버지처럼 귀화가 피어오를 정도로 눈에 띠는 변화는 아니었지만, 주의 깊게 쳐다본다면 금방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변화임에는 분명했다.

    용호는 숨을 천천히 골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력이 소모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소모되는 마력 자체는 적었지만, 현재 용호의 마력 상황이 워낙 좋지 못하다보니 그 작은 소모조차도 민감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서두르진 말자.’

    아직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용호는 고개를 들어 스크린 속에 들어 있는 고블린을 살펴보았다.

    [종족 : 고블린 (남)]

    [힘 특화 | ☆]

    ‘어?’

    처음 본 고블린에게 떠오른 빛의 문자와 상자는 각각 하나씩뿐이었다. 카타리나나 엘리고스를 봤을 때와는 정보량을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고블린이 카타리나나 엘리고스에 비하면 열등한 몬스터라서?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보다 타당하고 그럴싸한 이유가 떠올랐다.

    ‘내 사역마가 아냐.’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용호의 사역마였다. 그것도 보통 사역마가 아닌, 문자 그대로 영혼과 육신이 모두 예속된 ‘예속 사역마’였다.

    두 사람이 고블린보다 고등한 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사역마와 비 사역마 간의 차이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라 다행이네.’

    긍정적인 부분을 포착한 용호는 비교 분석을 위해 연달아 고블린 두 마리를 살펴보았다.

    [종족 : 고블린 (남)]

    [힘 특화 | ★ (1)]

    [종족 : 고블린 (남)]

    [힘 특화 | ☆ (0.5)]

    [체력 특화 | ☆ (0.5)]

    차이점이 존재했다. 그것도 단번에 비교 분석이 가능한 분명한 차이가 말이다.

    ‘같은 종족이라고 해도 개체마다 진화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다 이거지?’

    타당했다. 같은 종족이라 하여 전 객체가 모두 똑같을 수는 없었다.

    ‘별의 개수는 잠재력을 의미하는 걸까? 똑같이 진화를 시켜도 성과가 같지는 않을 테니.’

    용호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진화의 권능의 사용법이 머릿속에 어느 정도 잡히니 마치 게임을 공략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카타리나도 완전 허당은 아니었네?’

    똑같은 고블린 임에도 어떤 녀석은 진화 가능한 루트가 하나뿐이었고, 어떤 녀석은 두 개였다.

    그런데 카타리나는 진화 가능한 루트가 무려 다섯 개나 되었고, 별의 숫자 역시 가장 적은 것이 세 개나 될 정도로 잠재력이 높았다.

    현재 상태만 보면 카타리나와 동급이라 할 수 있을 엘리고스가 진화 가능한 루트가 세 개, 별의 개수가 두 개 정도였던 걸 고려한다면 카타리나의 재능은 확실히 뛰어난 편에 속했다.

    ‘잘 키우면 막 혼자서 무쌍난무 펼치는 게 아닐까?’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 조자룡이 있었던 것처럼.

    울상 짓고 있는 카타리나의 얼굴을 생각하면 과연 가능한 미래인가 싶었지만,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즐거운 망상을 이어나가던 용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통신비와 권능 유지비 명목으로 마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고블린의 모두 서른 마리. 용호는 빠르게 서른 마리 전부의 정보를 확인했다. 진화 루트의 개수가 많거나 별의 숫자가 많은 녀석들을 추려보았다.

    [No 04.]

    [종족 : 고블린 (남)]

    [힘 특화 | ★ (1)]

    [체력 특화 | ★ (1)]

    [No 17.]

    [종족 : 고블린 (남)]

    [힘 특화 | ★☆ (1.5)]

    [No 22]

    [종족 : 고블린 (남)]

    [체력 특화 | ★☆ (1.5)]

    ‘와, 진짜 고민 되네.’

    저 중에 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마리뿐이었다.

    결국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은 다양성이냐 특화이냐의 차이.

    ‘정보가 너무 부족해.’

    힘 특화로 키운 고블린과 체력 특화로 키운 고블린 중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사실 고작 일꾼 한 명일 뿐이었으니 괜한 고민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엘리고스 말대로라면 나중에는 못해도 일꾼을 수십 마리는 부려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무렇게나 막 고를 수 없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지금은 극초반이었다. 일꾼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어떤 일꾼을 고르느냐에 따라 초반 발전 속도에 큰 격차가 발생할 수 있었다.

    갈등하던 용호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고블린 가운데 한 마리를 만졌다. 그리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용호의 손이 진화 가능 영역을 표시하는 박스에 닿은 순간 고블린의 모습이 변했다. 정확히는 고블린의 모습 위에 반투명한 실루엣이 덧씌워졌다.

    용호는 직감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손을 뻗어 상자를 하나하나 건드려 보았다.

    힘 특화 고블린은 어깨가 우람한 역삼각형 체형으로 변했다. 민첩 특화 형은 전체적으로 팔 다리가 길쭉길쭉해졌고, 체력 특화 형은 전체적으로 몸이 건장해졌다.

    실루엣뿐이었지만 충분했다. 진화 후에 어떤 모습이 될 지 짐작하기에는 차고도 넘쳤다.

    ‘카타리나랑 엘리고스도 건드려 볼걸.’

    하지만 두 사람은 이곳에 없었고, 지금 용호에게 필요한 것은 일꾼 두 마리였다. 힘 특화와 체력 특화 고블린을 번갈아 건드려보던 용호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No. 17과 No. 22를 선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배달에는 1~2일 가량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스크린에 떠오른 지극히 홈쇼핑스러운 멘트에 용호는 결국 다시 웃고 말았다.

    용호가 택한 것은 힘 특화 고블린과 체력 특화 고블린 각 한 마리.

    최고 효율을 노릴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지금은 진화의 권능에 관한 표본을 모으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상품 거래를 끝마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이미 소진한 마력이 어마어마했다. 거래까지 끝난 마당에 괜히 통신비를 소비할 이유는 없었다. 용호는 주저 없이 ‘예’를 눌렀고, 약간의 경련 후에 눈을 떴다. 온통 하얀 공간 대신 황량하기 짝이 없는 가주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거래는 잘 마치셨는지요?”

    엘리고스가 딱 적당한 거리에서 용호에게 물었다.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 처음 들어간 가상 공간이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가상 공간에서 고블린 쇼핑을 위해 소진한 시간은 무려 한 시간이 넘었다. -

    용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고블린 두 마리를 구했어. 내일, 늦어도 모레면 온다는군.”

    “오오… 드디어 이 던전에 다시 일꾼들이… 함정도 보강하고 이런저런 시설도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눈물을 줄줄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용호는 엘리고스의 감격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전대 가주가 자결한 것도 벌써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몰락에 몰락만을 거듭해온 마몬 가의 던전이었으니 ‘반등’을 시작한 지금 순간이 무척이나 감격스러울 터였다.

    “그런데 그 배달이란 건 어떤 식으로 오는 거야?”

    용호의 물음에 주름진 눈가를 손등으로 훔친 엘리고스가 즉답했다.

    “던전 상회에 소속된 택배 기사가 배달을 올 겁니다. 신속 정확한 친구들이죠.”

    “택배 기사가 반가운 건 인계나 여기나 똑같겠네.”

    택배가 직접 손에 들어온 순간보다 오기 직전 택배를 기다리는 순간이 더 기대되고 즐거울 때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여기에 좋은 소식이 하나 더해졌다.

    “가주님! 가주님!”

    잔뜩 흥분한 카타리나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기에 용호와 엘리고스는 동시에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3초나 지났을까? 문자 그대로 문을 박차고 카타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냘픈 몸 어디에서 힘이 솟아났는지 양 어깨에는 척 보기에도 험상궂은 멧돼지 한 마리를 지고 있었다.

    “멧돼지 잡았습니다! 멧돼지 잡았어요!”

    환희와 의기양양함과 하여간 여러 가지 감정이 잔뜩 섞인 밝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얼마나 해맑고 밝았는지 용호와 엘리고스가 바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두 사람에게서 바로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그제야 무안함을 느꼈는지 카타리나는 얼른 멧돼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애써 쿨한 표정을 지어보려 노력했다. 너무 뒤늦은 노력이었지만 말이다.

    용호는 결국 크게 웃고 말았다. 옥좌에서 일어나 그 긴 귀를 축 늘어트린 채 민망해하는 카타리나를 칭찬했다.

    “잘했다, 카타리나. 진짜 잘했어. 역시 호위 기사답네. 우리 던전 최고의 전력다워!”

    원색적인 칭찬에 카타리나는 여전히 쿨한 표정을 유지하며 예를 표하려 했지만 기다란 귀가 마치 강아지 꼬리마냥 펄럭거렸다.

    이럴 때는 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 걸까?

    엘리고스는 잔잔하게 웃었고, 용호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역시나 호구 기사다운 호위 기사를 다시 한 번 칭찬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마몬 가의 가주로 즉위하고 이틀 째.

    용호는 처음으로 마계의 고기를 맛보았다.

    제 2장 - 마계 인력 시장 끝, 제 3장 - 진화의 권능으로 이어집니다.

    < 제 2장 #4 > 끝

    ⓒ 취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