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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7화 (7/227)
  • < 제 3장 - 진화의 권능 >

    제 3장 - 진화의 권능

    가주 즉위식이 있던 날 용호는 변화를 경험했다.

    그것은 단순히 각성이란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인간에서 마족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연히 많은 것들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일단 첫 번째 변화는 육체의 강화였다.

    하루가 다르게 체격이 좋아지고 있었다. 헬스장에서 나름 죽어라 운동했을 때도 생기지 않았던 식스팩이 복근에 선명했고, 팔과 다리의 근육 양 역시 눈에 띠게 증가했다.

    마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족, 그중에서도 마왕의 육신은 마력의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육체의 성능 역시 강화된다는 것이 엘리고스의 설명이었다.

    ‘엘리고스는 물 뜨러 나갔고.’

    카타리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망토에 파묻힌 채 숙면 중이었다. 잠시 그런 카타리나를 깨울지 말지 고민하던 용호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옥좌로 이동했다. 진화의 권능을 발현해 스스로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름 : 천용호 (남)]

    [종족 : 반인반마 - 마왕]

    [주속성 : 불꽃 / 어둠]

    [힘 특화 | ★ (1)]

    [체력 특화 | ★★ (2)]

    [마력 특화 | ★☆ (1.5)]

    [매력 특화 | ★ (1)]

    [민첩 특화 | ★ (1)]

    [기량 특화 | ★★ (2)]

    [7대 죄악 | ???]

    진화 가능한 루트가 많은 것 자체는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별의 숫자가 적었다. 그래도 마왕인데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 진화의 권능에 대해서는 모르는 점이 많았다. 당장에 진화로 볼 수 있는 효과가 적더라도 진화 횟수 자체가 많아서 나중에는 크게 강해질 수도 있고 말이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7대 죄악인데.’

    7대 죄악 가운데 하나인 ‘탐욕의 마왕’이었던 마몬의 권능.

    마몬의 후예라 하여 모두가 ‘7대 죄악’의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호에게서 7대 죄악의 힘이 발현했을 때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물론이고 시트리마저도 놀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전대 가주는 아예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용호 자신에게는 있었다. 비록 지금은 잠들어 있었지만 언젠가는 깨어날 힘이었다.

    저도 모르게 실룩실룩 거리는 입 꼬리를 정돈한 용호는 괜한 헛기침을 한 번 터트린 뒤 던전의 영혼과 의식을 연결했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그러니까 여기가 마계의 남쪽 끝이라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사실상 변두리 지역이라고 할 수 있죠. 과거 마몬님의 시대에는 남쪽 일대가 전부 마몬 가의 땅이었습니다만…….”

    말 꼬리를 흐리는 엘리고스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무슨 놈의 마족이 이리 눈물이 많은지 원.

    용호는 전형적인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는 노인 - 이라지만 엘리고스는 마몬의 시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 이 된 엘리고스로부터 시선을 돌려 마계 전도가 출력되어 있는 빛의 창을 보았다.

    ‘넓어.’

    그냥 넓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넓었다.

    정확한 정보 없이 단순 느낌만으로 짐작하는 것이긴 했지만, 적어도 아메리카 대륙보다는 넓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용호의 던전인 마몬 가의 던전이 자리한 곳은 남쪽 끝자락. 엘리고스의 말처럼 변두리라 할 수 있었다. 삼국지 같은 게임으로 치자면 주변에 공백지가 넘쳐나는 변방지역이랄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엘리고스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마계는 여섯 개의 거대 세력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인 마계의 왕들이라 할 수 있죠.”

    드넓은 마계 전도 위에 몇 개인가 되는 국경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전도 전체가 일곱 개의 색으로 분할되었다.

    과거 마몬 가의 소유지였지만 지금은 주인 없는 땅 투성이인 남쪽 황무지.

    휘하에 여러 가주들을 거느린 강력한 마왕들의 지배를 받는 여섯 개의 땅.

    마계 자체가 워낙에 넓다보니 가장 가까운 ‘왕의 땅’까지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솔직히 이제 예속 사역마 두 명 데리고 시작하는 용호 입장에서는 과연 마주할 날이 있을지도 의문인 거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정세를 파악해두는 것은 중요했다.

    용호는 던전을 지금 상태로 내버려둘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차곡차곡 힘을 키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싫어도 마주해야만 하는 날이 올 터였다.

    더욱이 시트리가 했던 순혈주의자들에 대한 경고.

    무엇인지 추가 설명을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용호 자신은 순수한 마족이 아닌 반인반마였다. 순혈 마족 가주들 입장에서 보면 이레귤러도 이런 이러귤레가 없었다. 아마도 용호 자신의 존재 자체를 눈에 거슬려 할 가능성이 높았다.

    ‘엘리고스도 그래서 날 숨겼고.’

    가주 즉위식을 위해 다른 가주급 마족이 아닌 던전 상인 시트리를 부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로 딱히 부를 마족이 없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용호가 가주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를 한동안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크림슨 오우거 한 마리 들어온 것만으로도 멸망의 위기에 몰렸을 만큼 엉망진창인 던전이었다. 지금 시점에 다른 순혈 마족 가주가 공격이라도 해온다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첩첩산중이었다.

    마계 가주보다 치킨집 사장님이 역시 더 전도유망한 미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용호는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괜한 호기- 아니, 객기일지 몰랐지만 상황이 안 좋은 만큼 오히려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런 용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엘리고스가 다시 설명했다.

    “우선 일차적인 목표는 마몬 가 던전 기능의 회복입니다.”

    빛의 창에 펼쳐져 있던 마계 전도가 사라지고 던전 조감도가 나타났다. 거의 대부분의 구역이 비활성화 되어 있거나 붕괴되어 있는 마몬 가의 던전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7대 죄악 중 하나셨던 마몬님 이후로 마몬 가의 가주님들 가운데 단 한 분도 마몬님의 던전을 완벽히 부활시키지 못하셨습니다. 붕괴 구역 어딘가에 숨어 있을 과거 마몬 가의 시설들을 찾는 것만으로도 여간한 던전을 공략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집안에 공략할 던전이 있다는 소리였다.

    ‘어째 좋은 것 같으면서도 구린 것 같은데.’

    역대 가주들이 ‘탐욕의 마몬’의 힘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한 것을 보면 앞마당 공략(?)이라 하여 만만히 볼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용호의 의중을 짐작한 엘리고스가 추가로 설명했다.

    “일단 처음에는 비교적 안전한 상층을 차근차근 발전시키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방의 잔챙이 가주들을 격퇴하며 힘을 쌓으셔도 좋고요.”

    ‘이 근방에서 제일 잔챙이는 현재 나인 것 같다만.’

    마계는 약육강식 강자존의 세계. 다른 가주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고스, 넌 힘 타입이랑 체력 타입 중에 뭐가 좋냐?”

    “예?”

    난데없는 물음에 엘리고스가 눈을 껌벅였다. 용호는 설명하는 대신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첫 임상실험을 엘리고스에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어떤 모습이 될 지 확인해볼 요량이었다.

    [이름 : 엘리고스 (남)]

    [종족 : 레드 데몬]

    [주속성 : 불꽃 / 어둠]

    [주요 종족치 : 레드 데몬 - 힘 / 체력]

    [진화 숙련치 : 62/100]

    [힘 특화 | ★★ (2)]

    [체력 특화 | ★★ (2)]

    [마력 특화 | ★ (1)]

    용호는 허공에 손가락을 놀렸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빛의 상자를 가볍게 어루만지자 엘리고스의 육신 위로 흐릿한 실루엣이 연달아 나타났다.

    “오오.”

    어느 쪽으로 진화시키든 지금과는 달리 꽤나 ‘육체파’로 변모하는 엘리고스였다. 지금은 실루엣 뿐이라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주름이 잔뜩 진 얼굴도 변할 지 몰랐다.

    “가주님?”

    영문을 모르는 엘리고스가 걱정스런 얼굴로 용호를 불렀다.

    “아니, 아무 것도.”

    대충 얼버무린 용호는 진화의 권능을 해지했다. 그리고 바로 연이어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딱 때를 맞춘 것 같은, 잔뜩 신이 난 카타리나의 목소리였다.

    “택배! 택배 왔습니다! 택배 왔어요!”

    역시나 인계나 마계나 택배가 오면 신나는 건 똑같았다. 용호와 엘리고스는 환한 얼굴로 문 쪽을 돌아보았다.

    &

    현재 마몬 가의 던전은 크고 네모난 돌방 여덟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택배를 받기 위해 용호는 굳이 줄잡아 백 미터 이상을 달려 던전의 입구까지 나갈 필요가 없었다. 마왕의 방문이 열리자마자 바퀴 달린 수레에 커다란 상자 두 개를 싣고 있는 카타리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주님! 택배 왔어요!”

    평소에는 쿨한 ‘척’이라도 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기쁨을 감출 수 없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기다란 귀 역시 날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카타리나는 순식간에 수레를 옥좌 앞까지 끌고 왔고, 옥좌에서 일어난 용호는 저도 모르게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는 박스가 작은데?”

    수레 두 개가 꽉 찰 정도니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말 그대로 생각보다는 작았다. 부두 같은데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상자는 가로 세로 모두 1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고블린들은 작으니까요. 그리고 저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어서 그렇답니다.”

    “저 안에 웅크리고?”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생물을 저런 나무 상자에 넣어서 배달한다는 것부터가 넌센스이기는 했다.

    하지만 카타리나나 엘리고스나 그게 당연하다는 얼굴이었기에 용호는 괜히 말을 늘이지 않았다. 카타리나에게 눈짓으로 상자를 내릴 것을 명했다.

    무늬만 호위 기사인 것은 아닌지 카타리나는 가느다란 팔로 손쉽게 박스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개봉하겠습니다.”

    “그래.”

    용호가 허락하자 엘리고스는 상자 이음새 부분에 붙어 있는 던전 상회의 봉인을 뜯어낸 뒤 쇠지레로 상자 뚜껑을 열었다. 어떤 장치가 되어있기라도 했는지 그 순간 상자 전체가 해체되어 내용물을 드러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의 말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고블린이었다. 녹색 피부에 커다란 머리, 길쭉하고 큰 코와 마디가 불룩불룩 튀어나와 있는 손과 발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냉동보관 된 생선처럼 꼼작도 하지 않고 있는 고블린들을 용호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자 엘리고스가 설명했다.

    “던전 사역마로 등록해서 마력을 주입해주면 활동을 개시할 겁니다. 지금은 던전 상회의 마법에 의해 동결된 상태죠.”

    [고블린들을 던전 사역마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마치 꼬리를 잇듯 던전의 영혼이 용호에게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 두 개체를 던전 사역마로 등록합니다.]

    던전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고블린들의 민머리 위에 붉은 색 오망성이 그려졌다.

    용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고블린들에 대한 기대 때문만이 아니었다.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용호 자신에게서 던전에게로, 다시 던전에서 고블린에게로.

    순간 고블린들이 몸을 떨었다.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커다란 눈을 뜨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멍한 눈으로 용호를 올려다보았다.

    키는 120cm 남짓이나 될까?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와 비슷한 크기였다.

    “덩치는 작지만 고블린들은 타고난 일꾼들입니다. 적게 먹고 많이 일하는 가성비 최고의 사역마들이죠.”

    ‘아동착취가 아니라?’

    쓸데없이 푸근한 엘리고스의 얼굴을 마주한 용호는 이내 다시 고블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블린들은 여전히 멍했다. 동결에서 깨어난 후유증이 아니라, 취급 설명서에 써져 있는 대로 본래가 멍한 모양이었다.

    “가주님, 첫 명령을 내려주시겠습니까? 아무 거나 좋습니다.”

    엘리고스가 말했고, 카타리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블린들과 용호를 번갈아 보았다.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데 그렇다고 바로 말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용호는 그런 두 사람 대신 여전히 고블린들을 보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안 돼. 이대로 부려먹으면 아동학대 같잖아?”

    “가주님?”

    엘리고스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당혹스런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용호는 답하는 대신 숨을 크게 골랐다.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 제 3장 - 진화의 권능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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