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98화 (98/204)
  • 98화

    북콘서트 행사장은 신라문학 1층 카페.

    막 신라문학 건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지훈이 대뜸 내 앞을 막아섰다.

    “형은 시작하기 전까지 오는 거 금지예요.”

    “뭐?”

    “준비될 때까지 출입 금지. 건물 후문 쪽에 있는 별벅스 있죠? 거기 가 계세요.”

    “앞으로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혼자 뭐 하라고.”

    “별벅스 가면 친구 있으니 일단 가세요.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해야죠. 자, 빨리 가요. 훠이― 훠이―”

    “친구? 무슨 친구?”

    “아, 가세요. 얼른.”

    지훈은 새라도 쫓듯 손짓을 해 댔다.

    황당했다.

    생일파티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뭐람.

    나는 얼결에 터덜터덜 별벅스로 왔다.

    그리고 매장을 둘러보고야 알았다.

    “작가님!”

    …저깄구나, 내 ‘친구’.

    “…김미소 작가님.”

    나는 그녀의 앞에 풀썩 앉았다.

    “송지훈이랑 한 패였어요?”

    “송 평론가님의 진두지휘에 따랐을 뿐인데요. 북콘서트 시작할 때까지 작가님 붙잡아 두는 게 제 임무.”

    됐다.

    내가 이들을 어떻게 이기겠나.

    그나저나 지훈 혼자 그 준비를 다 할 수 있으려나.

    “떨리지 않아요? 북콘서트.”

    “떨리진 않고, 기대돼요. 작가님은 요샌 뭐 해요?”

    “아… 저, 다음 학기에 강의 맡기로 했어요. 학부 강의.”

    “학부 강의요? 잘됐네요.”

    “네. 원래는 제 순서가 아닌데….”

    순서라.

    대학원엔 암묵적 규율이 있다.

    강의를 받는 건 능력보단 연차.

    그러니 얌전히 순서를 기다려 강의를 맡는 게 관례.

    “이상 작가님 유럽 갔을 때, 제가 대신 강의 들어갔잖아요.”

    “아, 그랬죠.”

    “심 교수님이 그 강의가 좋으셨나 봐요. 저한테 학부 저학년 강의를 맡기셨어요. 창작 강의라서 가능했죠.”

    “한국대 대학원에 작가는 저랑 작가님 둘밖에 없지 않아요? 그럼 순서 기다릴 입장은 아니실 텐데.”

    “아시잖아요, 대학 문화. 안 그래도 강의 맡은 거 때문에 선배들 사이에서 말 많아요.”

    김미소 작가가 눈을 찡긋했다.

    등단을 해도 학계는 쉽지 않군.

    “남들 시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요. 어차피 평생직장도 아니고, 강사 목숨 파리 목숨이라 다음 학기에 잘릴 수도 있으니 눈치 안 보려고요.”

    김미소 작가가 빙그레 웃었다.

    얼굴이 좀 폈다 했더니, 강의 때문이었구나.

    작가에겐 경제적 안정이 이렇게 중요하다.

    “아, 작가님 이번 신작 있잖아요.”

    “<등>이요?”

    “네. 사실 저는 <내외인>이 더 취향이긴 하거든요.”

    솔직하긴.

    “그런데 저희 이모는 인생 소설 찾았다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럴 수 있죠. 취향이라는 게.”

    “저희 이모, 화가거든요.”

    김미소 작가가 씩 웃었다.

    “이모가 그러더라고요. 미술가들이 <등>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뭐랄까… 자신들이 은근히 꿈꾸던 그런 이상을 충족시켜 주나 봐요.”

    나는 <등>에 나름의 예술관을 담았다.

    그 예술관이 다른 예술인에게 영향을 줬다니.

    보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느껴졌다.

    “기쁘네요. 이모님께 꼭 전해 주세요. 감사하다고.”

    “사인 받아다 달라고 귀찮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죠. 아, 지금쯤이면 대한문학상 시작했겠네?”

    김미소 작가가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내게 슬쩍 물었다.

    “유튜브 라이브로 볼 수 있긴 할 텐데… 혹시 궁금하시면 잠깐 보실래요?”

    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래요. 상관없어요.”

    “저도 상관은 없는데… 좀 궁금하달까요.”

    김미소 작가는 유튜브에 접속했다.

    ‘대한문학상 실황’을 검색하니 정말 라이브 방송이 나왔다.

    “정말 틉니다? 중간에 기분 나쁘면 바로 끌게요.”

    “트세요. 기분 나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웃기기만 하겠지.

    김미소 작가는 영상을 터치했다.

    한국프레스센터의 거대하고 높은 홀.

    그곳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문학계 원로들, 교수들, 출판사 관계자들….

    단상에는 한 원로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 대한문학상 협회장이에요.”

    “음… 그렇군요.”

    ―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뜻깊은 상을 이어 갈 수 있게 해주신 영광을 한국 문단에 돌립니다. 올해만큼 문단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적도 없지 싶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단 내에도 세대 차이가 생기고… 그로 인해 생긴 불협화음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말을 묘하게 하는군.

    그럼 올해 있던 많은 일들,

    단적으로 심사위원을 압박한 일도….

    단순히 ‘세대 차이’라고 규정하는 건가?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문단이 이런 위기에 봉착한 만큼, 우리 ‘한국 문단’의 내부적 힘을 길러야 한다고요. 외국의 인정, 외국의 상… 그런 사대주의에 매몰되어 본질을 흐리지 않고.

    “그만 봅시다. 괜히 보자고 했네.”

    김미소 작가가 불쾌한 듯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영상을 꺼 버렸다.

    “왜요?”

    “작가님 멘탈 진짜 장난 아니네요. 전 짜증 나서 못 보겠어요.”

    “그럼 그만 봐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김미소 작가가 물었다.

    “…저런 말들, 신경 쓰이지 않아요?”

    김미소 작가가 굳이 짚어 말하진 않았지만… 사대주의니 뭐니 하는 소리 말이지?

    유로문학상을 겨냥한 유치한 공격.

    “저런 거 신경 쓰느니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낫죠.”

    김미소 작가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제 성격이 작가님 반만 닮았어도 삶이 평안했을 텐데.”

    나라고 아무 생각이 없겠는가.

    영상 속 한국프레스센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문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기 모였으니, 북콘서트 인원에 대해 확실하게 체념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오겠다 약속한 이들이면 충분하다.

    “만약에 정말 수상을 하시면… 소감은 어떻게 해요?”

    “지훈이가 스카이프로 연결한대요. 방송국 쪽이랑 얘기는 해 놨다고.”

    “떨려….”

    김미소 작가가 중얼거렸다.

    유로문학상 얘기가 나오자, 어째 나보다 거 긴장하는 것 같다.

    잠시 후.

    지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 형, 바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김미소 작가와 나는 신라문학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문은 아까와 달리 닫혀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

    카페는 물론이고.

    카페 앞 건물 로비에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물론이며.

    얼굴만 알던 작가와 평론가들도 몇몇 보였다.

    나는 얼어붙어 버렸다.

    고작해야 서른 명쯤이나 올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달려 나와 웬 꽃다발을 안겨 줬다.

    김미소 작가가 슬쩍 물러나 박수를 쳤다.

    “아, 알았어요?”

    “송 평론가님한테 살짝 들었어요.”

    “하… 참….”

    박수를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난 좀 얼떨떨한 기분으로 로비를 가로질렀다.

    카페는 접이형 통유리창을 모두 거둔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트여 로비와 연결될 수 있도록.

    카페 안쪽에 단상이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많은 얼굴을 보았다.

    신라문학 관계자들, 현민상 시인, 한지온 작가, 강인춘 PD, 조인후 감독, 차 조교, 그리고 혜경의 부모님까지.

    나는 단상에 섰다.

    사회를 맡은 현민상 시인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의 주인공 이상 작가님께서 오셨습니다. 작가님, 이렇게 멍한 얼굴은 처음 보는데 괜찮으신가요?”

    “예? 아, 예… 너무 갑작스러워서….”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웃음소리를 듣자 그제야 정신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자, 상황파악 끝나셨으면 인사 좀 해 주시죠?”

    “어… 예, 이상입니다. 초대장을 먼저 드린 주제에 이렇게 당황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즐겁게 이번 신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 맛있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가 흘러나왔다.

    현민상 시인은 나를 단상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분위기를 풀기 시작했다.

    현민상 시인은 한 마디로 재담꾼이었다.

    왜 지훈이 아닌 그가 사회를 맡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 이상 작가님. 작가님이 등단하신 지 딱 1년이 되셨는데… 벌써 세 권의 책을 내셨어요. 1년간의 소회를 좀 들어 봐도 될까요?”

    “음… 작가로서 좋은 출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을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드네요.”

    혜경의 부모가 뿌듯한 미소를 보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혜경의 기억보다 조금 더 나이 들고 지친 모습.

    하지만 어딘지 따뜻한 인상.

    …역시, 모시길 잘했구나.

    “사실 아직 제가 뭐가 된 건 아니지만, 또… 뭐가 된다는 게 그리 중요하지도 않습니다만, 여러분의 관심 없이는 북콘서트도 열지 못했겠죠. 특히… 부모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사람들이 두 분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혜경의 어머니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분위기가 너무 말랑거린다고 생각했는지,

    현민상 시인이 바로 장난을 쳤다.

    “어? 이상 작가님, 보기보다 효자시네요?”

    “대체 절 뭐로 보셨기에….”

    현민상 시인이 뒤집어져라 웃는다.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자, 북 콘서트이니만큼, 신작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죠. <등> 말입니다.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작가의 말을 덧붙이는 게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설명을 좀 더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뭐에 대한 설명을 하면 좋을까요?”

    “음… 소설의 작의를 좀 듣고 싶은데요. 집필 동기 말이에요.”

    사람들의 눈에 흥미가 차오른다.

    <등>에 관해선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지.

    궁금한 게 많았을 거다.

    사실 이런 질문이 올 줄 알았다.

    책을 쓴 이유.

    북콘서트의 단골 질문이 아닌가.

    원래는 파리에서의 일화를 말하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아까 김미소 작가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작의까지는 아니고요, 글을 쓸 때 내심 떠올렸던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호. 어떤 바람일까요?”

    “예술가들은 인간의 감정을 대변해 주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예술가들의 감정은 누가 대변해 주죠?”

    “음… 또 다른 예술가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예술가란 인간들은 조금 독특해요.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좀 더 설명을 들어 봐도 될까요?”

    “예술은 인간의 생존에 전혀 도움을 안 주거든요. 돈은 예술이 가져다주는 결과물이지 동기로선 약해요.”

    현민상 시인이 아주 잘 알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완전히 공감해요. 막말로, 돈 벌 생각으로 시 쓰는 사람들 없으니까요. 시를 쓰고 싶은데, 그걸로 돈도 벌고 싶은 거죠.”

    “맞아요. 예술은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에요. 무용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리고 그 무용한 일을 하는 게 예술가잖아요. 그래서…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예술가의 마음을 파고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술가를 위한 소설. 뭐 이렇게 보셔도 좋고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술가를 위한 예술이죠.”

    예술가를 위한 예술이라.

    시인은 시인이구나.

    “아, 이상 작가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후속작을 벌써 쓰신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오오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지훈이구만.

    난 지훈을 물끄러미 보았다.

    녀석은 미안하다는 듯 양손을 보았다.

    안 봐도 뻔하다.

    현민상 시인이 능구렁이같이 구워삶았겠지.

    “네. 쓰고 있습니다.”

    “역시! 와~ 벌써 기대되는데요? 어떤 글인지 물어볼래요. 대답해 주세요. 어떤 글이에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놀라게 해 버리자.

    “스릴러예요.”

    “스릴러요?!!”

    놀란 건 현민상 시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도 동그래졌다.

    “아니, 어째서… 와하하…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에 재주가 있으시네요.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다면요?”

    “굳이 말하자면… 가족 스릴러예요.”

    그때, 자리에 앉아 있던 강인춘 PD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만 말하라는 듯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일단은 여기까지입니다.”

    “너무 감질나는데요? 안 되는데… <등> 얘기를 더 해야 하는데 지금 다들 신작 생각만 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죠?”

    현민상 시인이 객석에 대고 물었다.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지만 신작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더 큰 이슈가 북콘서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훈이 몸을 숙이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소곤거리며 말했다.

    “저기… 형.”

    “응?”

    “지금 유로문학상 비유럽 부문 시상식 시작하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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