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99화 (99/204)
  • 99화

    유로문학상 중개.

    그건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렸다.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탈락하면?

    뒷감당은 내 몫이겠지.

    준비는 다 되어 있다.

    유튜브 생중계를 틀 노트북.

    그 노트북에 연결된 빔프로젝터와 스크린.

    수상 소감을 대비한 카메라.

    대답은 정해졌다.

    “틀자. 뭘 고민해?”

    “괜찮을까요? 발표는 일단 저만 보고, 수상을 하게 되면 그때 연결을 하는 게….”

    지훈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떨어져도 괜찮아. 그럼 끄고 놀면 그만이야. 놀려고 모인 거니까.”

    “그래요. 한번 질러 보죠. 이상 작가님 떨어지면 내가 더 까불게. 그럼 분위기가 살지 않을까?”

    현민상 시인도 거들었다.

    “…좋아요.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

    지훈이 얼른 화면을 세팅했다.

    그동안 현민상 시인을 사람들에게 안내했다.

    “자자, 다들 다시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잠시 유로문학상 시상식을 볼 텐데요. 저희는 당연히 이상 작가님께서 수상하시리라 믿지만! 만에 하나 떨어지더라도 우리끼리 재밌게 놀면 그만이라 하십니다. 그렇죠?”

    나는 긍정의 의미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박수와 함께 여기저기서 응원이 튀어나왔다.

    현민상 시인의 진행에 맞춰.

    스크린에 유튜브 라이브 영상이 커다랗게 떴다.

    올해는 독일에서 열리는 유로문학상 시상식.

    카메라가 귀빈들을 훑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 백인들.

    문학상 시상식은 만국 공통 비슷하다.

    영화제 시상식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어딘가 보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

    수상을 위해 중년 신사가 단상에 올랐다.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

    하지만 대형 스크린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인종의 작가와 그들의 책.

    그중 한 칸엔 나와 <내외인>도 있었다.

    카페 안을 금방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제야 조금 떨린다.

    신사는 푸른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씩 웃더니, 뭐라고 말했다.

    수상 작품에 대한 설명인 걸까.

    그리고 그 문장의 마지막에.

    ― 이상!

    분명 내 이름을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일어나 환호를 보냈다.

    이 카페에서의 환호와 박수.

    그리고 영상 속 독일에서의 환호와 박수.

    어지럽고 우렁차게 뒤섞였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고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이 기쁨을 함께 나누어 주는 사람들에게.

    “형, 바로 수상소감 들어가셔야 해요. 오늘 와 주신 분들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게 할게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지훈이 단상에 올라왔다.

    그리고 내 뒤로 와서 카메라를 고정했다.

    “형! 카메라 보세요. 빨리빨리.”

    나는 엉겁결에 뒤를 돌았다.

    그리고 바로 지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로문학상에 생중계되는 화면에는.

    나와.

    내 뒤로 가득 앉은 사람들이 함께 나오고 있었다.

    ― 이상 작가님, 수상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회자가 영어로 물었다.

    나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말했다.

    물론 한국어로.

    “지금 저는 한국에서 신간 <등>을 기념하는 북콘서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쁜 소식을 부모님, 친구들, 독자분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뒤의 사람들이 한 번 더 환호를 보냈다.

    놀라운 속도로 번역 자막이 올라왔다.

    그래, 리브레에게도 감사 인사를 해야지.

    “유럽에서 <내외인>을 내보일 수 있던 건 리브레의 힘이 큽니다. 리브레 분들께도 영광 돌립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고 난 후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가장 기쁜 건, 제가 지금도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겠죠.”

    시상식장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나의 신작을 반긴다는 듯.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새로운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떨리는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북콘서트는 계속 이어졌다.

    수다가 끊이지 않았고, 웃음도 그칠 줄 몰랐다.

    밖이 어둑해지고 유리창에 김이 서릴 때까지.

    사람들과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고, 수없이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잔뜩 무르익었을 때였다.

    카페 밖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장하늘이 왔다.

    “작가님!”

    장하늘은 로비를 가로질러 성큼성큼 다가왔다.

    사람들은 어찌나 놀랐는지, 홍해의 기적처럼 길을 비켜 줄 지경이었다.

    “축하드려요! 유로문학상, 지금 소식 들었어요.”

    “바쁜데 와 줘서 고마워요. 여기, 제 매니저예요. 인사 한번 해 줘요.”

    나는 얼어붙어 있는 지훈을 끌고 왔다.

    “어어, 저… 팬이에요….”

    장하늘 장하늘 노래를 부를 땐 언제고.

    얼굴이 시뻘게져선 악수만 겨우 하고 도망쳤다.

    어쨌건 장하늘이 오면서 북콘서트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신라문학은 축하 선물이라며 와인을 돌렸다.

    종이컵에 와인을 나눠 마시고.

    사람들은 금방 분위기에 취했다.

    카페의 나른한 분위기.

    사람들의 미소.

    달콤한 와인.

    그리고 장하늘의 노래, <은은>까지.

    절대 잊을 수 없는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북콘서트가 끝난 후.

    나는 급하게 오피스텔을 하나 빌렸다.

    당분간 작업을 할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한국 언론이고 외국 언론이고 내 유로문학상 수상에 신이 났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들.

    모두 거절했다.

    수상에 대해 내가 덧붙일 말은 없다.

    나는 썼고, 보여 줬다.

    작가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기자들은 동네 시끄럽게 굴 게 뻔했다.

    아쉬운 내가 도망을 가야지.

    그 와중에 지훈은 매니저의 본분을 다해 기사를 전달했다.

    [이상의 유로문학상 수상이 한국 문단에 날린 일침.]

    [대한문학상 권위 실추. 우물 안 개구리의 잔치?]

    [유로문학상에 가려진 대한문학상.]

    하나같이 자극적인 이야기들.

    그나마 볼만했던 건, 서인희 기자의 글이었다.

    서인희 기자는 Y일보에 긴 칼럼을 실었다.

    나의 데뷔부터 유로문학상 수상까지.

    그간의 일들을 정리해놓은 글.

    그녀가 칼럼 마지막에 덧붙인 하나의 문단.

    ― …사람들은 말한다. 이상이야말로 부패한 한국 문단의 민낯을 고발하기 위해 싸웠다고. 그 결과로 올해의 대한문학상이 그리 우스운 꼴을 당하지 않았냐고.

    우습긴 우스웠다. 심사위원 압박 논란부터 시작해서 몇몇 작가의 심사 거부, 속 보이는 상금 올리기와 유로문학상에 한국 작가 이상이 노미네이트 된 상황에서 ‘사대주의’를 언급하는 촌스러움까지.

    하지만 그렇다 하여 이상이 문단과 ‘싸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애초에 그들은 이상의 상대가 아니었다. 수준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이상은 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자신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보여 줄 수 있는 곳에 보였을 뿐이다. 그것이 그가 일 년간 해 온 모든 행보다.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고 휘둘린 건 오히려 문단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해 볼까. 한국 문단은 제 발에 걸려 제가 넘어졌다. 한 작가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가는 동안.

    서인희 기자도 실적을 올려야 하는 기자다.

    분명 더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싶었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덤덤하게 본질을 짚어 주는 기사라니.

    감동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모든 기사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 기자는 내 차기작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 …이상은 스릴러를 쓰겠다고 밝혔다.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도전은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그가 스릴러 시장에 들어섰을 때, 그의 ‘이름값’은 어떻게 작용을 할 것인가. 그의 작품은 ‘이상’이란 이름과 별개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가. 작품의 수준과는 관계없이, 우려가 되는 일이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꽤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을 적확하게 집어 냈기 때문이다.

    스릴러는 ‘장르 소설’이다.

    ‘순문학’과는 필드가 다르다.

    필드를 바꿀 때는, 그 필드만의 출발선에 서야만 한다.

    하지만 ‘이상’이라는 이름을 단 이상… 불가능하겠지.

    내 이름 때문에 과대평가를 받을 수도.

    과소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니.

    또, 장르판의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고.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필명’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스릴러를 쓴다고 말했으니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

    …뭐,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겠지.

    좋은 작품을 쓸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니.

    나는 오피스텔의 커튼부터 쳤다.

    집필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스릴러는 분위기다.

    다른 장르에서 ‘분위기’라는 건 부차적이다.

    멋 부리기의 차원으로 머무를 때도 많고.

    하지만 스릴러는 다르다.

    긴장과 공포라는 분위기가 없는 스릴러?

    그건 이미 스릴러가 아니다.

    스릴러 작가는 작품의 분위기를 압도해야 한다.

    그 분위기는 작가마저도 압도할 만큼 강력해야 한다.

    그래야 긴장과 공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손안의 펜을 빙빙 돌렸다.

    이번 소설은 제목부터 정하고 싶었다.

    강인춘 PD에게 말한 소설의 내용.

    그 내용을 압도할 만한 단어….

    그래, 일단은 ‘집’이란 단어를 넣는 거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집인가.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순간.

    하나의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집.”

    ‘그’라는 지시 대명사.

    그것은 멀찍한 거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집’.

    ‘집’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공간이다.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고.

    가장 안온함을 느끼는 공간.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공간인 ‘집’.

    반대로, 거리감을 드러내는 ‘그’라는 지시 대명사.

    이 두 개를 합친 <그 집>.

    기묘한 어감….

    그 어감은 내 소설과 아주 잘 어울렸다.

    더 망설일 것 없다.

    나는 <그 집>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의 죽음을 채 애도하기도 전에 입양이 된 소녀.

    그 소녀의 복잡한 마음에 집중하자.

    부모를 애도하는 것.

    새로운 부모에게 적응하는 것.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소녀.

    소녀가 접시를 깨트린다.

    양부모는 괜찮다고 말한다.

    다음 날, 소녀가 시키지도 않은 집 청소를 한다.

    양부모는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자, 소녀의 혼란이 시작된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소녀는 깨닫는다.

    ‘이 집’에는 어떤 규율이 있다고.

    그리고 그 규율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녀에게 ‘이 집’은 ‘그 집’이 된다.

    더욱더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어 간다.

    하지만 소녀도 오기가 생긴다.

    소녀는 집안에서 수많은 실험에 착수한다.

    이 가족들이 절대 말해 주지 않는 규율을 알기 위해.

    커튼을 마음대로 바꿔 단다든가.

    전자 기기를 일부러 고장 낸다든가.

    양 오빠의 옷을 숨긴다던가.

    스릴러의 에피소드는 되도록 현실적이어야 한다.

    순문학처럼 상징적이거나 추상적이어선 안 된다.

    그 현실감 속에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스릴러의 목표니까.

    그렇게 하루 종일 <그 집>을 썼을 때였다.

    슬슬 오늘치 분량의 마무리를 해 갈 무렵….

    우웅―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는 쓰던 걸 멈추고 휴대폰을 봤다.

    다름 아닌… 금홍의 톡이었다.

    ― 혜경 샘, 바쁘세요?

    바쁜데.

    하지만….

    ― 그냥 있어요.

    우웅―

    바로 답장이 왔다.

    ― 북콘서트 못 가서 죄송해요.

    ― 세미나 있으셨잖아요. 괜찮아요.

    ― 오늘 2021년 마지막 날인데, 뭐 하세요?

    아, 오늘이 그렇게 되나?

    하도 정신없이 사니 시간이 간 줄도 몰랐다.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

    2021년도 세 시간 남았구나.

    ‘소설 쓰고 있어요’라고 말을 하려다가.

    대신 이렇게 물었다.

    ― 금홍 선생님은요?

    그런데 한동안 답장이 없다.

    나는 좀 초조해졌다.

    뭐, 연락이 왔다고 해서 만나자고 들이댈 순 없다.

    그럴 사이도 아니고.

    또…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가.

    왠지 마음이 좀 아쉽기도 하고.

    그렇게 휴대폰만 만지작거릴 때였다.

    우웅―

    문자가 왔다.

    나는 얼른 내용을 확인했다.

    “…!”

    그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 혹시 지금 잠깐 나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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