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65화 (65/258)

65화

저게 어딜 봐서 검이야.

절로 속에서 욕지꺼리가 삼켜졌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시간조차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순백의 검들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휘익, 휘이익-.

우성의 몸이 숲으로 날아들었다. 일단 피하고 보자, 라는 생각에 박윤성과 거리를 좁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박윤성이 불러낸 순백의 검은 하나만 잘못 맞아도 치명적이었다.

“또 도망이야? 그나저나 진짜 신규 플레이어 아닌 것 같네. 빠르다, 빨라~.”

뒤에서 나사 하나 빠진 박윤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우성은 애써 무시하고는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나무가 가득 우거진 곳으로 몸을 피했는데, 박윤성이 만들어낸 순백의 검은 여전히 우성을 쫒고 있었다.

휘이이익-.

콰드득-.

십 미터가 넘는 거목(居木)이 부러지고 베어져 바닥에 쓰러진다. 간신히 한 차례 공격은 피해냈지만, 박윤성이 쏘아낸 수십 자루의 순백의 검은 마수의 숲 한쪽을 초토화 시켰다.

“미친…….”

“찾았다!”

말도 안 되는 위력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박윤성은 쉬지 않고 다시금 순백의 검을 쏘아냈다. 그나마 숲이라는 지형이 있기에 다행이었지, 만약 저 검들이 일제히 우성을 노렸다면 진작 몸이 수십 등분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콰드드득-.

우성이 향하는 곳마다 검에 베어지고 부러진 거목들이 쓰러졌다. 목표도 없이,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 우성은 <광폭화>를 활성화 시킨 상태 그대로 무작정 달렸다.

‘<대리인>을 써야 하나?’

힐끗 우거진 나무 사이로 비치는 박윤성의 모습이 보였다. 박윤성은 여전히 하늘에 순백의 검을 소환하며 먹잇감 노리듯 우성을 쫒아오고 있었다.

‘……어쩌면 안 될지도.’

수백 자루의 순백의 검을 거느리며 허공에 몸을 띄운 박윤성의 모습은 시작의 마을에서 만났던 칼프가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저런 녀석이 왜 초보 플레이어들이나 오는 마수의 숲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 정도 실력의 플레이어가 몇 명이 모이든 박윤성 한 명을 감당할 수 없다. <대리인>을 사용한다 한들,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였다.

“계속 도망만 갈 거야? 신규 플레이어 형?”

“……지랄!”

우성은 달리는 와중에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다가갔다가는 개죽음이니, 이거라도 던져 보자는 심정이었다.

휘이익-.

우성이 던진 돌멩이는 제법 매서웠다. <광폭화>와 얼마 전에 얻은 라큘의 어금니 덕분에 40포인트에 육박하는 우성의 근력, 그리고 돌멩이에 가득 머금은 마력은 어지간한 사람 머리통 하나쯤은 우습게 깨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빡-.

정확히 박윤성의 머리를 향한 돌멩이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안타깝게도 우성이 날린 돌멩이는 박윤성의 머리를 깨뜨리거나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 못했다. 모기에 물렸나? 싶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맷집 스텟도 꽤 높겠지.’

상위 회 차 플레이어인 만큼 근력이나 민첩, 마력과 같은 스텟 외에도 맷집과 같은 스텟도 상당히 높을 것이다. 아무리 우성이 신규 플레이어 치고 사기적인 스텟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상대는 이미 초보 플레이어라는 틀을 벗어난 플레이어였다.

박윤성은 돌멩이를 얻어맞은 머리를 잠시 긁적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휙 돌려 잠시 멈춰 서 있는 우성을 바라봤다.

내내 웃고 있던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금 나한테 돌 던졌냐?”

하하하하-.

“이거 기분 개 같네, 진짜.”

‘……정말 싸이코인가?’

고작 돌멩이 하나… 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분의 변화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자기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백 자루의 순백의 검을 날려댔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박윤성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쥐새끼처럼 우성을 가지고 놀았다면, 이제는 정말 죽여 버리겠다는 ‘살기(殺氣)’를 띄고 있었다.

“넌 시팔, 곱게 죽을 생각 마라.”

“……그거 감사하네.”

우성은 더 대꾸하는 대신 조심스레 땅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를 몇 개 더 집어 들었다.

‘창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성의 생각이 바뀌었다.

박윤성의 화가 단단히 난 이상,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은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아마 도망가기가 더 힘들 것이다.

도망갈 수 없다면…….

휘익, 탁-.

손안에 굴리던 돌멩이를 던졌다 받으며 우성은 박윤성을 노려봤다.

“……저 새끼는 포인트를 얼마나 주려나?”

**

박윤성이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는 스스로 신규 플레이어라고 소개했다. 물론 움직임이나 한 번 검을 나눠본 결과, 어지간한 4회 차 플레이어보다 나아 보였지만 말이다.

혹시나 싶어 박윤성은 우성의 플레이어 정보를 살피려 했다. 하지만 클래스 판정에서 2등급 이상 차이가 나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 박윤성의 플레이어 클래스는 S였는데도 말이다.

‘최소 A클래스란 말이지.’

아니, 어쩌면 S클래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성이 들고 있는 마검은 몇몇 퀘스트나 던전을 통해 얻어지기도 했지만, 절반은 배치고사를 통해 오더에게서 ‘특전’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배치고사 우승자. 그렇다면 비정상적으로 강한 이유도 이해가 갔다. 배치고사 우승자라면 당연히 S클래스일 것이고, 특전으로 얻은 마검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신규 플레이어 답지 않게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봤자 햇병아리지. 키킥.”

정상인과는 거리가 먼 웃음소리.

박윤성은 엄밀히 말해, 사회에서 통하는 ‘싸이코패스’였다. 아니, 정확히 싸이코패스로 정의하기엔 아직 정상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곳 아포칼립스에서는 싸이코가 맞았다.

그는 오래간만에 만난 신기한 플레이어, 우성에게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날개를 본 것도, 신규 플레이어 주제에 제법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도, 생전 처음 보는 마검도, 하나같이 그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질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들었던 장난감에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빨리 가서 예쁜 누나들이랑 놀아야지.’

아랫도리가 불끈거리는 상상을 할 때쯤, 우성이 있던 방향에서 빠른 속도로 돌멩이가 날아왔다.

휘익, 파스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돌멩이 두 개가 박윤성이 소환한 검에 막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마에 힘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박윤성이 우성을 향해 검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쉬이익-.

쨍-!

빠르게 도약한 우성의 아포피스가 박윤성을 노리고 다가왔다. 박윤성의 눈에는 그렇게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돌멩이를 미끼로 한 탓인지 박윤성은 순간 당황했다.

“이 새끼가 정말…….”

휘이익-.

우성의 검은 쉬지 않았다. 기습이 먹히지 않은 걸 아쉬워할 틈도 없이 우성은 근접한 지금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살릴 생각이었다.

아포피스에 맺힌 마력이 출렁이며 날카로운 예기에 한껏 힘을 더했다.

마력 스텟과 <광폭화>스킬, 거기에 더해 아포피스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마기(魔氣)까지. 우성은 <대리인>을 제외한 가진바 모든 힘을 최대한 끌어내고 있었다.

쨍, 째쟁-!

우성의 검과 박윤성이 불러낸 검들이 부딪히며 눈이 부실 정도의 불똥을 만들었다. 우성의 검은 제법 위력적이었고, 움직임도 신규 플레이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재빨랐다. 솔직히 가까이서 우성을 상대하는 박윤성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박윤성은 2회 차 플레이어.

그리고 유니크(Unique) 직업을 가진, S클래스 플레이어였다.

“신규 플레이어잖아?”

쩡-!

박윤성은 장식처럼 들고 있던 손안의 순백의 검을 휘둘렀다. 마법사처럼 소환한 마법들을 날리는 모습에 당연히 접근전에 약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성은 그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힘이……!’

아니, 힘만이 아니었다. 박윤성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 마력과는 다른 힘은 우성의 아포피스를 떨게 만들 정도였다. 악마 진형이 아닌 천사 진형이니, 아마 ‘신력(神力)’이라고 불릴 것이다.

부르르 팔을 떨던 우성이 버티다 못해 검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 정비한 후 다시 접근할 생각이었는데, 박윤성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휘이이익-.

일점사(一點査).

게임에서 흔히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 여러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공격 방식이었다. 여러 공격을 한 명, 한 점에 집중하여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윤성은 그것이 혼자서 가능했다. 수십 개의 순백의 검이 우성을 노렸고, 이미 피하기는 늦은 상태였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야 한다. 우성은 황급히 아포피스를 들어 다리를 지면에 고정시켰다. 막지 못하면, 결과는 죽음. 라이프의 손실이었다.

꽈과과과광-!

아포피스를 크게 휘둘러 순백의 검을 쳐낸다. 아니, 쳐낸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우성의 실력으로 수십 개의 순백의 검을 쳐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박윤성이 쏘아낸 순백의 검이 아포피스를 노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악. 하악.”

“와, 안 부러지네? 그거 부숴버리려고 했는데.”

박윤성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날린 순백의 창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검쯤은 단순에 부러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 유명한 마검(魔儉)이라지만 이 정도로 힘을 집중시켰으면 부러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흠하나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등신아…….”

<광폭화>의 영향과 박윤성이 쏘아낸 순백의 검을 막아내며 순식간에 체력이 고갈된 우성은 일부러 박윤성을 향해 비웃음을 지었다.

아포피스를 부러뜨리겠다고?

아무리 박윤성이 대단하다 해도, 가소로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아포피스가 가진 권능 중 하나였다. 단순한 아이템 설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아포피스는 부러지지 않는다는 권능을 가진 만큼 그 어떤 물질보다 단단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아포피스를 부러뜨리려면 정체 모를 게임 운영자라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성의 웃는 모습이 기분이 나빴던 걸까?

박윤성의 눈썹이 기역자를 그리며 날카롭게 휘어졌다.

“그거 알아?”

휘익-.

“형 웃는 거 존나 재수 없어.”

지이이잉-.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순백의 검이 다시금 하늘에 떠오른다. 초토화된 주변은 더 이상 숨을 곳도 없었고, 우성의 몸도 처음 같지 않았다. 이미 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슬슬 끝내자며 박윤성은 손가락을 우성에게로 향했다.

‘사용해야 하나?’

<대리인>이라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만약 사용하고도 벗어나지 못하면…….

두 개의 라이프를 잃게 된다. 어차피 하나의 라이프를 잃을 거라면, 도박을 거느니 여기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박윤성과의 만남 이후 계속해서 잠잠하던 아포피스가 강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익숙한 울림에 우성의 시선이 저절로 한쪽으로 돌아갔다.

“시끄러워서 와 봤더니, 여기 있었구나.”

낯선 목소리.

아니, 정확히는 박윤성에게 있어서 낯선 목소리였다. 우성에게는 단 한 번 들었을 뿐이지만 잊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우성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동공이 점차 커져 흰자위를 집어삼켰다. 그의 등장은 우성에게 있어서 그 정도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뒷짐을 진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박윤성을 올려다보는 남자. 아니, 악마.

그가 왜 여기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여긴 그의 앞마당이었다.

“……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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