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우성은 현재 5525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마지막 싸움에서 안현수와 혜미를 죽인 덕분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포인트의 무려 2배에 가까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거기에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얻은 1000포인트까지.
아포칼립스 내에서 포인트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만한 포인트면 결코 값어치가 적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려 300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 중 정점을 차지하고 얻어낸 포인트였다.
“우선, 네 상태를 확인해 봐라.”
우성은 오더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허공에 대고 ‘스텟 창’을 중얼거리자 곧 익숙한 자신의 상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성
직업 : 플레이어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남자
칭호 : 생존자
클레스 : S
[능력치]
- [근력 : 15] [민첩 : 17] [체력 : 25] [맷집 : 19] [반사능력 : 16] [마력 : 12] [정신력 : 27] [PP : 1800]
: (- 100p)
* 플레이어 특성 : 불굴의 의지 Lv.2 <상세정보>
* 업적 : 죽어가는 숲의 생존자
* 포인트 : 5525p
* Lv. 포인트 : 10011
* Life : ******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스텟 창에 우성은 눈을 번쩍 띄웠다. 그저 사람의 능력을 수치화 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 더 ‘게임’에 가까워진 플레이어 정보였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능력치 밑의 부분이었다. <불굴의 의지> 특성 하나만 공개되어 있었던 부분이 그 밑으로 여러 줄이 더 표시되었다. 업적과 포인트, 경험치 포인트와 라이프의 개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경험치 포인트와 일반 포인트를 눈으로 확인한 우성이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덕분에 꽉 막힌 듯했던 가슴이 조금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클레가 상승된 영향 덕분인지 모든 스텟 포인트가 고루 상승되어 있었다. 힘과 민첩, 마력의 경우 각각 2포인트가 상승되었고 체력과 맷집, 반사능력은 4포인트씩, 정신력은 3포인트가 상승되었다.
확실히 변화는 있었다. 가볍게 몸을 움직여본 결과, 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아귀힘 역시 확인해볼 길은 없지만 제법 강해졌다.
그 밖에 반사능력이나 마력, 체력, 맷집, 정신력은 지금 당장에 확인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결코 작은 변화는 아닐 것이다. 당장 근력과 민첩만 해도 고작 2포인트 상승한 것만으로 이 정도 변화를 보이니 말이다.
죽어가는 자의 생존자라는 업적은 배치고사의 마지막 생존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인 모양이었다. 더불어 칭호에는 ‘생존자’ 타이틀이 붙었는데, 예상이긴 했지만 맷집과 체력이 4포인트씩 올라간 이유는 여기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너무 맷집, 체력, 정신력 위주로 능력치가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을 사용하는 만큼 주로 근력과 민첩, 반사능력 등이 높아야 그만큼 강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반사능력 스텟이 처음에 비해 2포인트나 상승했다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반사능력 포인트가 올라간 건 의외군. 이것도 생존자 칭호와 연관이 있는 건가?’
“아니. 생존자 타이틀의 영향은 체력과 맷집, 정신력 스텟에서 영향이 끝이다. 반사능력 스텟 포인트의 상승은 닷새간 네 노력의 결과물이다, 플레이어 우성.”
우성의 속내를 읽은 오더는 그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속마음을 읽는다는 게 내심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으니 그건 고마웠다.
“네 말대로 상태를 확인했다.”
“우선, 플레이어가 가진 포인트의 종류는 총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일반 노멀 포인트(Nomal Point), 그리고 경험치 포인트. 같은 포인트지만 사용할 수 있는 한계와 범위는 노멀 포인트가 훨씬 무궁무진하다.”
“일반 포인트야 소원을 빌거나 능력을 올리거나, 사용 방법은 다양하다지만… 경험치 포인트는 뭐지?”
“플레이어 우성의 특성은 <불굴의 의지>다. 높은 체력과 정신력이 근간이 되어 생성된 고유 특성이지. 상태창을 확인했다면 알 수 있을 거다. 네 플레이어 특성에 레벨(Lv.)이 생겨났다는 것을.”
다시금 꼼꼼히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우성은 <불굴의 의지>옆에 있는 Lv. 표시를 볼 수 있었다.
“경험치 포인트는 바로 플레이어 특성과 같은 특성이나 특전, 상태이상 패시브 등 ‘능력치’ 이외에 다른 능력을 상승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일반 노멀 포인트와 구분된다.”
“한 마디로 스킬 포인트다, 이거네.”
“바로 이해했다.”
확실히 일반 노멀 포인트에 비해 효율의 범위가 좁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의 효과를 체감한 우성으로서는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불굴의 의지>특성이 없었다면 우성은 김정원과의 싸움이 끝난 직후 다른 플레이어들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안현수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에 플레이어 특성의 영향이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막 특성이 생겨난 후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레벨이 올라서 그 효율이 더 극대화된다면? 이게 게임인 걸 감안해 보면 심장을 찔리고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우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어질 무렵, 오더의 설명이 이어졌다.
“스텟 포인트 밑으로 마이너스 수치(-)가 보이나?”
“아, 그래. (-100p)라고 쓰여 있다.”
“그 수치는 네 스텟 포인트를 하나 올리는 데 드는 포인트의 값이다. 즉, 100포인트를 소모해 스텟을 하나 올릴 수 있다는 뜻이지.”
“뭐야, 생각보다 그렇게 안 비싸네?”
우성은 5000을 넘는 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고작 100포인트로 스텟 하나를 올릴 수 있다면, 우성은 무려 50포인트가 넘는 스텟을 올릴 수 있었다.
2포인트의 차이만으로도 이렇게 몸에 변화가 느껴지는데 과연 50포인트가 올라간다면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우성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욕심이다. 네 생각만큼 스텟 포인트를 올리기란 만만치 않다.”
“왜?”
“스텟 포인트 하나를 올리면 해당 플레이어의 성장 정도에 따라 다음 스텟을 올리는데 필요한 포인트의 값이 증가한다. 기본적으로 최소 100포인트가 상승하고, 최대 상한선은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끝없이 상승한다."
“으음.”
어쩐지 너무 쉽다했다. 그런 식으로 다음 스텟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가 올라간다면 함부로 포인트를 투자해 스텟을 올릴 수도 없었다. 몇 번 스텟을 올리다 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를 지불해야 간신히 스텟을 하나 올릴 수 있게 될테니 말이다.
“스텟을 올리는 데에도 신중해야한다, 이건가?”
“그렇다.”
“그렇군. 그런데 내가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는데 말이야…….”
“그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 하려고 했다.”
“그래, 좋아.”
역시. 속내를 읽으니 이런 점은 편했다. 굳이 말로 길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설명을 해 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오더는 가이드로서 최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었다.
“너희가 말하는 소원, 즉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는 플레이어의 가이드인 나 ‘오더’가 결정한다.”
“……네가?”
“그래. 가이드는 플레이어의 길잡이 역할과 동시에 게임 속 운영자의 역할을 겸비한다. 나를 통한 질문이나 현실에서의 영향력 모두 노멀 포인트(Nomal Point)를 기반으로 하며, 여기에 대한 포인트의 값은 내 판단하에 결정된다.”
그저 게임 초반에 필요한 가이드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거창하게 생겼다 싶었는데, 이제 보니 오더야말로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이미 플레이어의 속마음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스쳐 지나가는 가이드치고는 너무 거창한 능력이었다.
“너무 빡빡한 것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질문만 가지고도 포인트를 소모한다니.”
“질문의 종류에 따라 포인트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포인트의 수치에 관계없이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도 있다. 그리고 빡빡하다고? 너희들이 간절히 원하는, 가령 다음 로또복권의 당첨 번호를 알려줄 수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막대한 포인트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도 가능해?”
이 정도면 단순히 질문의 정도를 넘어섰다. 생각해 보면 귀한 정보는 곧 힘이나 마찬가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 데 포인트가 소모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 순간, 우성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선 안 될 것을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딸의 수명을 알고 싶나보군.”
웃음기를 머금은 오더의 말에 우성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겁에 질려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질문을 원하는가, 플레이어 우성?”
“그래. 딸… 서현이의 남은 시간을 알고 싶어.”
약을 투여 받고는 있다지만 서현이의 병은 어디까지나 불치병이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경과를 지켜보는 게 고작인 만큼,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더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성은 이제 이 게임 ‘아포칼립스’를 완전히 믿기로 결정했다.
“몇 포인트가 필요하지?”
“100포인트.”
“생각보다 싼 값인데?”
“현실에 그리 큰 영향이 없으니까.”
그 대답으로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포인트의 차감 수치는 ‘현실에서의 영향력’인 모양이었다. 하긴, 사람의 수명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100포인트 정도라면 우성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생각해 충분히 지불할 만했다. 특히 서현이에 관련된 일인데 100포인트가 아니라 1000포인트라고 아쉬울까. 우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100포인트 지불하지.”
[1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남은 포인트는 5425포인트입니다.]
달갑지 않은 알람이 떴지만 우성은 애써 무시했다. 그보다는 다음에 이어질 오더의 말이 훨씬 중요했다.
“보름.”
“……뭐?”
“보름이다. 그 뒤, 네 딸 서현은 죽는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 누군가 머리를 강하게 내려친 듯한, 아니 그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보름이라니.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 짧은 시간 뒤에 서현이가 죽는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기 싫었다. 거짓말이 분명하다며 오더의 멱살을 움켜잡고 싶었지만, 미약하게 남아있는 한 줄기 이성이 그것을 붙잡았다.
이성적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호흡은 턱 끝까지 차올라 가빠왔다. 그래도 서현이를 위해서. 우성은 이성을 유지했다.
“방법은… 없는 거야?”
“좋은 질문이다. 네가 말한 포인트가 필요하지 않은 질문에 해당한다.”
포인트가 필요하지 않다. 그 말은 즉, 현실에 큰 영향력이 없다는 뜻. 그런 거라면 아직 우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한 줄기 남아있던 이성의 끈마저 끊어졌다. 한 순간도 더 기다리기 힘들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당장 코앞으로 느껴질 만큼 우성은 조급했다.
“그게, 그게 뭔데!”
“한 가지면 된다.”
오더는 검은 갑옷으로 둘러싸인 손가락을 펴 약지로 우성을 가리켰다.
“플레이어 이우성, 네 목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