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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26화 (26/258)

26화

타닥, 타다닥-.

멀리서 들리는 장작 타는 소리와 탄 내, 그리고 하늘 위로 연기처럼 올라가는 검은 안개는 한 눈에 봐도 산불임을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게 공통적으로 떠오른 위험 메시지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조만간 숲에 불이 날 것이니, 안전한 곳으로 모이라는. 아니, 어쩌면 오두막으로 모이지 않으면 산불을 일으켜 죽이겠다는 협박일이지도.

산불의 규모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불이 번진 걸 보면 처음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던 멀리서부터 불이 번졌다고 볼 수 있었다.

‘5일차가 지나면 모두 죽는다는 건… 이런 의미였나?’

궁금하긴 했다. 5일차가 지나기 전, 한 명의 플레이어가 남지 않으면 모든 플레이어가 죽는다니. 대체 어떤 식으로 죽게 된다는 것일까?

이만하면 그에 대한 답이 거의 나왔다고 봐야했다. 불이라는 무기만큼 대량학살에 특화된 무기도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서 자연재해를 이겨낼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이 다 지나면 저 불은 점점 더 번져 오두막까지 태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내에는 살아남은 플레이어 하나 없게 되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결판을 지어야 한다. 플레이어들의 심장박동이 조금씩 빨라지고, 가슴속에 조급함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조급함에 불을 지피는 소리가 곧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아-!

그어어어어어-.

숲속을 가득 메우는 울음소리. 구슬프고, 억울함이 가득한 메아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에게 무척 익숙한 소리였다.

하프 구울. 아니, 알람에 의하면 하프 구울은 사라졌다. 그 대신 완전히 구울로 변한 괴물들이 새로이 생겨났을 것이다.

숲 속을 가득 메울 정도의 울음소리인 만큼 그 수가 어느 정도 될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그 울음소리 속에는 이전과는 달리 숨길 수 없는 흉포함이 섞여 플레이어들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쉴 시간은 없어 보이는군.”

그 침착하던 안현수 역시 급한 마음에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들의 사방은 산불에, 구울 떼거지였다. 도망칠 만한 작은 바늘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한가운데인 만큼 쉴 틈은 없었다.

언제 산불이, 구울 떼거지가 자신을 집어삼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 몸의 신경과 솜털이 쭈뼛 세워지는 느낌이었다. 안현수를 시작으로 하나 둘 무기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그 때, 역시나 이번에도 안현수가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통성명이나 좀 하자고.”

“지금 상황 안 보이나?”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 보다시피 아직 하루는 충분히 남았고, 얼마 걸리지도 않아.”

그의 말처럼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조급할 뿐이지 시스템 상 아직 하루는 꽤 많이 남아있었다. 플레이어들 역시 그것을 상기했는지 각자 무기를 쥔 손에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먼저 난 안현수라고 한다. 다들 아마 이름은 알 거야. 아니, 랭킹을 확인한 만큼 나도 너희들 이름은 다 알고 있지만.”

안현수의 소개에 자리에 우성과 혜미를 제외한 플레이어들이 깜짝 놀랐다. 그 중에는 방금 전 안현수와 얼굴을 붉혔던 플레이어가 가장 볼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안현수. 처음 랭킹 시스템을 확인했을 때부터 줄곧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던 플레이어였다.

웃는 얼굴을 가장 많이 보인 만큼 가장 만만하게 보였던 안현수가 예상외의 강적이라는 생각에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우성은 분위기를 몰아, 다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우성이다. 알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날부터 랭킹 2위를 유지중이다.”

이우성 역시 모르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첫째 날부터 3위를 차지하더니, 금세 2위로 치고 올라온 플레이어. 안현수만큼은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는 우성 역시 위험 인물로 자리잡고 있었다.

랭킹 1위와 2위가 자신을 소개하자, 자연스럽게 3위에 랭크된 플레이어가 자신을 소개했다. 의외로 랭킹 3위의 플레이어는 방금 안현수와 다툼을 벌였던 플레이어 ‘라정환’이었다.

랭킹 4위인 여성 플레이어를 다음으로, 다른 두 명의 플레이어의 소개가 끝났다. 마지막 차례는 혜미였다.

“이름은 박혜미. 어쩌다 보니 랭킹 7위씩이나 됐네. 아무래도 여기서는 꼴찌인 것 같지만.”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는 모두 8명이었다. 랭킹 1위부터 7위까지 소개를 마치자, 모든 플레이어들의 소개가 끝났다. 즉, 자리에 모이지 않은 한 명의 플레이어는 8위였다는 소리였다.

“쯧. 겁쟁이 새끼.”

번들거리는 머리를 뒤로 쓸며 라정환이 혀를 낮게 찼다. 그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한 명의 플레이어를 욕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플레이어는 지금쯤 불에 타 죽거나 구울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모두의 소개가 끝나자 숨이 턱 막힐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이미 싸움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누구 하나가 검을 들고 달려들면, 도미노처럼 다른 누군가 무기를 휘두를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은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역시나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벌써 사람 여럿 죽여 본 플레이어들이었건만, 그들은 어느 누구 하나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죽이는 게 껄끄러워서 그랬다면, 이제는 ‘내가 죽을까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눈에 튀었다가 표적이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서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고…….

“답답해 죽겠네.”

쉬익-.

그 때, 턱 가라앉은 침묵을 가르며 우성이 몸이 안현수를 향해 돌아갔다.

“넌 일단 나 좀 보자, 안현수.”

“환영이지, 친구.”

양 팔을 활짝 벌리며 안현수는 우성을 반겼다. 하나의 대립 구도가 세워지자 다른 플레이어들의 미지근한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성과 안현수처럼 마땅한 상대는 없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싸울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우성에 이어, 처음 그 시작은 바로 라정환이었다.

“시팔! 쪽팔리게. 분위기에 쫄아가지고 말이야. 카악, 퉷.”

목에 끼어 있던 답답한 가래를 뱉어내며 라정환이 근처에 있던 여성 플레이어 ‘장미연’을 가리켰다. 라정환의 무기는 한손으로 들 수 있는 기다란 둔기였다. 무기의 이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더가 그에게 가장 적합한 무기라고 선정해 준 모양이었다.

“거기 썅년아. 아무래도 넌 내 상대를 좀 해줘야겠다.”

“뭐? 썅년?”

장미연은 다짜고짜 쌍욕을 내뱉는 라정환을 향해 쌍심지를 돋웠다. 예쁘장했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표독스럽게 변하며 그녀의 얇은 검이 위로 올라갔다.

장미연의 무기는 얇은 검이었다. 하지만 검신이 얇고, 칼날이 휘어져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올림픽 펜싱 종목에 사용되는 사브르와 흡사한 무기였다.

빠르게 자세를 잡는 장미연을 보며 라정환이 침을 꿀떡 삼켰다. 그는 현실에서 주먹 꽤나 쓴다는 조폭이었다. 맷집과 타고난 덩치에서 비롯된 힘, 그리고 조폭으로 살아오며 기른 깡다구로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려움이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안현수와 우성, 그리고 가장 만만하게 봤던 장미연이라는 여자까지. 이제보니 어느 한 명 가벼이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바싹 마른 입안에서 간신히 침을 짜내 뱉으며 라정환은 자신의 무기를 거칠게 휘둘렀다.

“젠장! 어디 한 번 붙어보자고!”

**

우성과 안현수의 거리는 고작해야 열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안현수의 눈썹 아래로 드리운 맑은 눈동자가 또렷이 보이고, 긴장한 표정이 훤한 게 조금은 긴장한 듯했다.

긴장. 그거라면 우성도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오두막에 도착하고 안현수의 얼굴을 확인한 이래부터 쭉. 휴식을 취한다고 속으로 변명했지만 본심은 안현수와의 싸움을 기다리며 긴장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싸워야 하지?’

안현수와 눈을 마주보고 있던 우성의 시선이 그의 오른쪽 팔로 향한다. 베인 흔적은 아니었지만 그의 팔은 피가 흘러 임시방편인 옷으로 꽁꽁 둘러싸여 있었다. 추측하기로는 아마도 활에 당한 게 아니었을까.

움직이고 있는 게 용하다 싶었지만 그런 잡생각은 일절 지워버렸다. 지금은 오직 안현수를 상대할 방법만을 생각할 뿐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생각의 틈을 파고들며, 안현수가 입을 열었다. 깊어졌던 생각이 깨어지며 우성의 정신이 돌아왔다. 곧 상처부위로 향했던 우성의 시선이 다시 안현수의 눈으로 향했다.

“이걸 보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안현수는 오른쪽 팔을 빙글 돌려 보였다. 마치 자신은 건재하다는 듯, 이 정도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하지만 그게 허세라는 것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었다. 저 정도 상처를 입었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팔을 움직이는 안현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조금 일그러졌다.

“그래도 꿈 깨. 이기는 건…….”

“나야.”

안현수의 말을 자르며 우성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어차피 생각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안현수와의 싸움에 대한 결과는 실력이 말해줄 일이었다. 확률은 반반, 아니… 우성에게 조금 불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혜미와 함께 2:1로 싸우기란 힘들어 보였다. 안현수는 우성과 1:1의 싸움을 원했다. 그리고 상황은 난전,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유일하게 라정환과 그와 함께한 플레이어 고명균은 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두 사람을 제지하기 위해 장미연과 박혜미, 그리고 다른 한 명의 플레이어 김상민이 힙을 합쳤다. 3:2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3명은 급조한 팀이라는 것과 여성 플레이어 둘이 끼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력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성과 안현수.

나름 대립각은 비슷하게 세워졌다. 이젠 어느 쪽이 이기고, 살아남느냐가 달렸을 뿐.

“안 덤벼?”

기세 좋게 한 걸음 내딛은 것과는 달리, 우성이 곧장 덤벼들지 않자 안현수가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내가 갈까?”

망설이는 표정. 아무래도 연기는 잘 못하는 모양이었다. 내심 우성이 덤벼들길 바랐던 걸 보면 말이다.

“그러던지.”

우성이 힐끗 안현수의 팔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역시… 팔이 썩 성치는 않나봐?”

팔을 한 번 움직이는 것조차 아낀다. 안현수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덤벼드는 틈을 이용해 순식간에 승부를 보려는 의도를 꿰뚫어 보자, 우성은 안현수의 부상이 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곡을 찔렸는지 안현수는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킥 웃었다.

“눈먼 칼에 찔려서 말이야. 생각보다 아프네, 이거.”

“칼이라… 아플 만하군. 아니, 그보다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돈데?”

분명 신경에 문제가 있을 텐데, 안현수의 팔은 비교적 잘 움직이고 있었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움직이는 걸 보면 안현수의 정신력 역시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허세는 그만두기로 했는지 안현수가 검을 잡고 있는 손을 왼손으로 바꿔들었다. 그 순간, 안현수의 맑았던 눈에서 번쩍 안광이 빛났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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