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81화 (38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55화

-르네상스-

11. 황금과 노랑(2)

시청자들이 말한 대로 중세에서 노란색은 안 좋은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중세에는 특히 심했어요. 이 그림처럼 이상한 사람의 색으로 표현되기도 했고요.”

“기야르 데 물랭이 쓴 성서의 역사에 들어간 삽화인데 바보와 작은 동물이란 제목이에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 남자가 작은 동물의 꼬리를 물고 악기처럼 연주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그림이죠.”1)

└먹고 있는 거 아님?

└배고팠을 수도 있잖아.

└맞네. 꼬리곰탕을 좋아하는 사람이네.

└나리, 이 녀석 꼬리가 이렇게 맛있습니다요. 어떻게. 사실 텐가?

└미친놈들아 그만햌ㅋㅋㅋㅋㅋ

“어.”

그런 방향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봤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먹는 걸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오랜 세월 미치광이 또는 바보로 이해되었지만 지금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다르게 보는 것도 중요하다.

└왜 고민햌ㅋㅋㅋㅋㅋㅋ

└훈이 고장 났다ㅋㅋㅋㅋ

└진지하게 생각하지 맠ㅋㅋㅋ

“아무튼. 이렇게 멸시당해 오던 노란색이 17세기 무렵 네덜란드 사람들에 의해 재조명받기 시작했어요. 그 시기에 자주 사용된 노란색이 바로 나폴리 노랑이에요. 정말 예뻐요. 그전까지 주로 사용되었던 납주석황색보다 훨씬 활용도가 높았고요.”

이해를 돕고자 시청자들에게 나폴리 노랑과 납주석황색을 함께 보여주었다.

눈썰미가 좋은 시청자들이 처음 보여주었던 <바보와 작은 동물>에서 바보의 옷과 납주석황색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맞아요. 납주석황색은 중세 때 많이 사용되었어요. 그런데 이 물감이 납과 주석이 산화해서 만들어진 거라 건강에 정말 안 좋아요. 그래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대체품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노란색 안료는 특히 몸에 안 좋은 물질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 납을 활용했기 때문인데, 그걸 생각하면 자꾸만 아쉽고 속상하여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화가들이 이 나폴리 노랑을 사용하면서 노란색이 재조명받기 시작했어요.”

└추천 좀 해줘

└네덜란드 황금시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황금시대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나중에 따로 풀어드릴게요.”

그 당시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지금 했다간 오늘 안에 방송을 못 끝낼 것 같다.

└근데 반 고흐도 유명하지 않나?

└ㅇㅇ 노란색이면 솔직히 반 고흐밖에 생각 안 나는데.

└반 고흐도 네덜란드 출신이잖아.

“반 고흐는 그들보다 조금 뒤에 태어났어요.”

내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쑥스럽다.

“반 고흐가 노란색을 많이 사용했던 이유는.”

말을 잇는데 누군가 후원과 함께 ‘물감이 싸서’라는 문구를 보내주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웃고 말았다.

“어. 그런 이유도 있긴 해요. 말씀하신 대로 다른 물감에 비해 저렴했거든요. 그런데 그보다는 노란색이 가진 상징성이 더 큰 이유였어요.”

어떤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1889년에 그린 <추수하는 사람>을 골라서 보여주었다.

“이 그림은 추수하는 사람이란 제목의 그림이에요. 태양과 밀이 같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죠?”

다들 수긍한다.

“반 고흐는 밀이 태양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했어요. 두 물체의 색도 너무나 닮았으니까요.”

은혜로운 햇살로 황금 물결을 이루는 밀밭과 농부를 사랑했다.

“지금도 중요하지만 당시에는 밀이 정말 중요했어요. 빵을 만들 수 있는 곡물이니 농사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밀밭을 가꾸는 농부와 그 밀밭에 생명을 전해주는 해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어요.”

└밥 중요하지 ㅇㅇ

└수확기 밀밭은 진짜 멋지더라

└농부 화난 거 같은데? 누가 낫을 저렇게 힘차게 휘둘렄ㅋㅋㅋ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도 소작농으로 가난하게 사는 농부들이 안타깝기도 했어요. 그들이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다고 말하고 싶었죠.”

농부의 삶은 노란색과 닮았다.

작물을 재배하는 일은 본디 거룩한 일인진대, 소작농은 지주에게 천대받았다.

본래 생명과 행복을 상징했던 노란색이 권력층에 의해 사기꾼, 배신자의 색으로 낙인 찍혀 홀대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또 지금에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데 노란색이 시인성이 좋잖아요? 그래서 멀리 떠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해요.”

미국에서 감옥살이를 한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는 아내가 집 앞 나무에 노란 리본을 건 일화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있었잖아.

└ㅠㅠㅠ

“맞아요.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뜻에서 노란 리본을 걸었다고 들었어요.”

당시에 난 태어나지 않았지만 기사나 추모 행사로 접한 바 있다.

“또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된 이들을 찾을 때도 노란 리본이 사용되었고 필리핀에서는 비슷한 일화가 있어요.”

물을 마셨다.

“예전에 아키노란 사람이 독재체제에 저항하고자 미국에서 필리핀으로 가려고 했어요. 당시 필리핀 독재 정부는 그걸 막으려 했고요.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어렵게, 어렵게 마닐라로 가려고 하는데 필리핀 사람들이 그가 무사히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란 리본을 공항 근처 나무에 걸었어요.”

다만 아키노는 리본을 보기도 전에 필리핀 군인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 일을 바탕으로 노란색은 자유를 뜻하게 되기도 했어요. 말레이시아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말할 때 노란색을 사용했죠.”

한 시청자가 프랑스에서도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하는 걸 봤다고 이야기했다.

“프랑스 시위에서는 시인성 때문에 사용했어요. 2008년에 교통사고시 인명 구조를 원활히 하기 위해 모든 자동차에 노란색 상의를 비치하는 법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노란색이 운전자의 생명을 상징하기도 해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프랑스 등등 노란색은 지금 여러 시위의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노란색은 세계 여러 곳에서 자유와 생명을 지키려는 시위에 사용되고 있어요. 이번 EIE 운동도 마찬가지고요. 황금색에게 빼앗긴 상징성을 되찾은 거죠.”

그렇게 박해받았지만 노란색은 결국 본 모습을 찾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가 더 많이 사랑하고. 누군가가 타인에 의해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방송을 마치고 미술 관련 사이트를 뒤적이며 시간을 때우던 차.

한 포럼에서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란 제목의 그림이 화제가 모으는 것을 발견했다.

글을 클릭해 보니 제목 그대로 여명이 트기 전을 배경으로 한 해바라기 그림이 올라와 있었다.

“어.”

이 특유의 따뜻한 화풍.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의 그림이다.

글을 쓴 사람은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가 어제 런던 EIE 운동 집회를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페이스노트에 접속해서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를 검색하니 그림 작가의 계정이 바로 나왔다.

이클립스.

비다 라바니의 계정이다.

벌써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비다의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를 공유하고 있다.

부우웅- 부우웅-

스마트폰에 비다의 이름이 찍혀 있다.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비다?”

-나, 나! 어, 자랑! 자랑하고 싶은 게 있어!

“알아.”

-어? 알아?

“방금 봤어. 대단하잖아. 이클립스.”

진심이다.

미술가로 활동한다고 이야기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고, 무엇보다 신분을 감추고 시작했다.

뱅크스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일이 어렵다는 건 비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거다.

분명 그럴진대.

벌써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니 놀랍다.

“13,080명이나 공유했던데? 진짜 멋있다.”

-으히힣힛. 진짜 깜짝 놀랐어. 다 네 덕분이야.

“이게 왜 내 덕분이야.”

감동을 주는 그림이 꼭 섬세하고 치밀한 것은 아니다.

비다의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는 무척 단순한 구도를 지녔지만 EIE 운동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밝고 따뜻한 미래를 소망하는 이들의 가슴에 와닿은 것이다.

-실은 네 생각하면서 그렸거든. 혹시 뒷면도 봤어?

“뒷면?”

사진을 한 장 넘기니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 ‘모든 해바라기와 고훈을 위하여’란 말과 ‘괜찮다면 집회 장소에서 들어주세요’란 문장이 함께 적혀 있었다.

“비다…….”

-나 정말 너무 힘들어서 그만 포기할까 싶기도 했거든. 감자 공장에서 계속 일하면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으니까.

학교 다니면서 일도 하고 밤에는 거리의 화가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으리라.

미래가 명확하지 않는 일인 데다 매일 건강을 깎아 먹으니 그 피로와 불안을 어느 누가 쉽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네 해바라기가 미국에서 엄청 화제가 된 거야.

“응.”

-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차별에 반대하자고 말할 줄은 몰랐어. 만나본 사람 대부분은 날 싫어했으니까.

“…….”

-근데 어쩌면 정말. 혹시나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구.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

“너무 큰 힘이잖아.”

런던 EIE 집회 사진을 보았다.

처음 이 소식을 알린 사람의 글대로 정말 많은 사람이 추위 속에서 비다의 <새벽을 앞둔 해바라기>를 들고 있었다.

정말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다.

* * *

1)Bible Historiale. Author Guyart Des Moulins, Illustrated by Petrus Gilberti, early 1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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