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73화 (37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47화

-르네상스-

9. 세상에서 가장 많은 하객이 찾은 결혼식(6)

이 인간이 또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답례는 피자로 되겠냐는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매장을 보내왔다.

“잠시만요.”

앙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지금 어디예요?”

-바렌츠해 부근일걸.1)

“하아. 지금 숌즈 씨 만났어요. 과하잖아요.”

-뭐가 과해.

“결혼 선물 답례로 피자 가게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네 그림 가격 생각하면 저렴하지.

순간 욱했다가 숨을 골랐다.

앙리가 설마 내 마음과 피자 가게를 교환한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그거 가져서 뭐 하게요. 매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왜 네가 운영해? 직원들 두고.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배인 1인 외 총 44명이 근무 중이니까요. 모두 베테랑입니다.”

숌즈가 덧붙여 설명했다.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피자 먹고 싶을 때 가서 먹어.

전화가 끊어졌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자니 방태호가 숌즈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파비용이면 규모가 꽤 크지 않나요?”

피자 가게 이름이 파비용이다.

나도 즐겨 찾았던 곳으로 나폴리식 피자를 다루는 섹션과 미국식 피자를 다루는 섹션이 분리되어 운영되는 곳이다.

제법 넓은 3층 건물을 모두 쓰고도 매일 사람이 붐빌 정도로 인기가 많다.

“네. 작년 평균 월매출이 80만 유로였습니다. 순수익은 16만 유로 정도였고요.”

“예?”

“얼마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한 달에 순수익으로 2억 원 이상이 남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파비용이 사랑받는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 곳인 줄은 몰랐다.

아마도 음식 조리에 자동화가 보편화된 지금, 장인이 직접 피자를 만드는 몇 안 되는 매장이라 그런 듯하다.

“물론 권리금과 영업권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 그대로 증여니까요.”2)

“…….”

“다만 이것저것 처리할 세금이 생길 텐데 부동산 쪽이 크겠네요. 워낙 땅을 많이 갖고 계셔서.”

다른 나라에 있는 걸 제외하면 파리에 집 두 채와 쇼콜라티에 갤러리가 있다.

면적이 넓어서 여기에 파비용마저 얻게 되면 세금이 상당히 많이 나올 듯하다.

“하지만 세금 걱정으로 거절할 일은 아닙니다. 고훈 씨가 감당 못 할 수준도 아니고 파비용은 앞으로도 고소득을 유지할 테니까요.”

그건 숌즈 말이 옳다.

“이미 다 준비가 된 거예요?”

“네. 작가님께서 신혼여행 떠나기 전에 모두 처리하셨습니다.”

세상에.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피자집을 선물로 받으리라곤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이러면 작게 그릴 수 없잖아.’

팔과 허리가 아파서 좀 더 작은 유리를 살까 고민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 * *

그림 그리는 방법 중에 층을 나눠서 작업하는 방식만큼 섬세한 것도 드물다.

사실 물감을 듬뿍 바르고 싶지만 거울 위라서 접착제 비중을 높여도 흘러내리고 말았다.

작은 거울에 여러 번 시도해 본 결과 물감을 최대한 얇게 바르는 대신 층을 나누어 깊이감을 주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하얀 물감으로 가장 밝은 부분을 칠한다.

결혼식장 벽이 하얀색이고 조명도 밝은 탓에 칠할 부분이 상당히 넓다.

단단하고 큰 붓으로 쓱쓱 쓸다 보니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빛이 드는 부분은 부드러운 붓으로 물감을 조금씩 밀어내는데 이 작업만 3일이 꼬박 걸리고 말았다.

피곤해도 물감 마를 때까지 조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첫날 작업한 부분이 벌써 잘 말라 있었다.

이렇게 큰 그림을 작업해 본 적이 없어서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후.”

이런 그림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몸이 힘들기도 하나, 급하게 다가섰다가는 그림 이쪽과 저쪽이 전혀 다른 상태가 되어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마음 편히 하루를 쉬고 두 번째 레이어 작업에 들어갔다.

두 번째 작업은 어둠을 잡는 일.

이 단계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빛과 그림자의 위치를 완벽히 잡고 경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일이다.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에 신중할수록 색을 입혔을 때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중하게 또 3일을 보내고.

물감이 마르기까지 4일을 더 기다린 뒤에 다시 붓을 들었다.

‘재밌는 사람들이지.’

이제 앙리와 미셸을 생각하며 색을 칠할 시간이다.

미셸은 표현하기 쉽다.

다정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그녀의 미소에 생기를 불어넣고 하얀색과 진주색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아름답게 그릴 뿐이다.

문제는 앙리다.

결혼식 때 앙리는 평소와 너무 다르다.

마은찬의 표현을 빌리자면 99%의 츤과 1%의 데레로 이루어졌던 앙리의 비율이 50 대 50이 되었단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아마 평소보다 부드러웠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묘한 표정을 표현하기가 까다로운 거다.

잠시 사다리에서 내려와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쉽지 않다.

똑똑-

역시 사람이 가장 그리기 어렵다.

단 한 장면으로 그 사람의 모든 걸 담아내는 게 쉬울 리 없다.

“훈아, 있니?”

할아버지 목소리다.

“네, 들어오세요.”

할아버지가 주스랑 과자를 들고 들어오셨다.

“간식 가져왔다. 좀 쉬면서 하지 그러냐.”

“마침 기분 전환하고 있었어요.”

컵을 꺼내와 책상에 앉았다.

“앙리 표정 그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끌끌. 그럴 테지. 아주 묘했어.”

할아버지도 인상적으로 보셨나 보다.

하긴 나도 그 인간이 알 듯 말 듯 하게 미소 짓는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래. 시도는 해봤고?”

종이에 대충 스케치한 것을 몇 장 보여드리니 할아버지가 빙그레 미소 지으셨다.

“어때요?”

항상 그러하듯 답을 주진 않으실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볼 단서는 충분히 주시리라 믿고 여쭤보았다.

“어디서 들었는데 얼굴에서 감정을 인식하는 방식이 문화권마다 다르다고 하더구나.”

“어떻게요?”

“동양에서는 이런 식으로 쓰고 서양에서는 이렇게 그리잖니.”

할아버지가 빈 종이에 이모티콘을 그렸다.

^^ :)

ㅠㅜ :(

둘 다 웃는 표정을 문자로 표현한 이모티콘이다.

“동양권을 보면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양권에서는 입으로 표현한다고 하더구나.”3)

“아.”

“근데 이 스케치를 보니 우리 훈이는 입 표현에 더 신경 쓰고 있구나. 뭐, 누구나 다 그러는 건 아니겠지.”

“어…….”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전자적인 이유가 아니라 문화적인 이유라면 내가 눈보다 입과 그 주변 정보에 더 신경 쓰는 것도 설명이 된다.

저번 삶은 물론이고 지금도 한국보단 다른 나라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할아버지 생각에는 눈에도 좀 더 신경을 쓰면 어떨까 싶구나.”

“네.”

“그리고……. 역시 입 모양이라고 하면 모나리자를 빼놓을 수 없지.”

“맞아요.”

나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역작 <모나리자>를 상정해 두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말씀하셨으니 분명 고민해 볼 가치가 있을 거다.

스마트폰을 넓게 펼쳐 루브르 박물관 가상 박물관에 접속했다.

모나리자를 검색하자 곧 원본에 가까운 해상도로 <모나리자>를 볼 수 있었다.4)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프랑스 정부가 40조 원의 가치가 있다고 발표할 만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모나리자>다.5)

“언제 봐도 아주 멋지구나.”

“네.”

<모나리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저 오묘한 미소일 거다.

심지어 그녀가 아프다고, 혹은 화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모나리자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고.

이 표정의 비밀은 미술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스푸마토.”

“그렇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한 기법인데 안개가 낀 듯 자욱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따온 말이다.

반투명한 유약을 겹쳐 바르고, 입술 주변을 여러 번 문질러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면 이렇게 묘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게 해서 시선에 따라 입술 모양이 다르게 보인단다.”

“레이어를 나눈 것도 이유가 될 거예요.”

“음음. 그렇고말고.”

다 빈치는 당시에도 레이어를 잘 사용했다.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는 게 아니라 일부만 그리고 바니시를 발라 층을 나누고, 또 그 위에 그리길 반복했다.

덕분에 <모나리자>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바니시를 벗기자 눈썹이 떨어졌고.

그 덕에 리자 여사는 눈썹 없이 대중 앞에 얼굴을 내보이게 되었다.6)

아무튼.

지금의 내가 16세기 초에 그려진 이 작품과 같은 방식을 활용하려고 하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성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어떠냐. 눈이 웃고 있는 것 같아?”

“……네.”

전에 봤을 때는 크게 생각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의 이모티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눈도 살짝 웃고 있다.

이 그림을 보고 모나리자가 비웃고 있다, 화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눈과 함께 보면 도저히 그런 얼굴로는 보이지 않는다.

입술이 미묘해서 그런가.

“합.”

답을 찾을 때까지 유심히 들여다봐야겠다.

* * *

1)유럽-아시아를 잇는 항로로 북극항로가 더 자주 활용된다는 설정.

북극 해빙이 녹고, 수에즈 운하가 물류량을 감당하기 벅찬 상황에서 스타링크 프로젝트 등으로 지구 어디서든 통신이 원활히 이루어진 설정의 근미래.

2)프랑스법에서는 상인이 이룩한 영업재산을 독립한 재산권으로 파악하여 이에 대한 처분행위를 허용한다.

한편 임대차 갱신거절시에는 임대인을 상대로 하여 영업이익 상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출처: 프랑스법상 권리금의 구성요소와 보호방법, 법조협회, 법조 66권 5호, 2017년 10월

3)문화권 별 감정 인식의 차이, 이모티콘에도 나타나, 부대신문, 김유진 기자, 2015.09.14.

연구 출처: 2009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 레이철 잭 심리학자.

4)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3(추정), 유채 패널화

5)루브르 박물관 연간 방문객을 기준으로 책정한 금액이다.

2018년 기준 한 해 1,000만 명이 다녀갔는데 그중 85%가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를 찾았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6)모나리자의 모나는 결혼한 여성 앞에 붙는 경칭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