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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5화 (235/409)

235화. 유괴는 나빠요 (3)

[저 이제 복원 때려칩니다. 찾지 마세요.]

주헌은 유재하에게 날아온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호를 다시 확인해봐도 틀림없는 유재하의 번호다.

그리고 또 다시 읽어봐도 복원을 때려치겠다는 메시지.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퇴직금은 계좌로 넣어주세요.]

[PS. 안 주면 노동청에 고소함.]

이게 돌았나?

곧 주헌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옆자리에서 걱정을 해왔다.

"저기 주헌 씨, 무슨 일 있으세요?"

아이린이었다.

아이린과는 데이트 중이었다.

뭐, 데이트라고 해봐야 지금은 서로 카페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중이지만.

주헌은 에드워드 영감으로부터 받은 사업 관련 메일.

그리고 아이린은 아마도 판도라 감사와 관련된 서류 같았다.

주헌은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어째 제 오빠처럼 판도라의 중책에 앉은 것 같았다.

'대충 감사팀이랬나?'

유물과 관련된 기업, 부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유물사용자들을 감시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됐다.

'거참 무시무시하군.'

파산왕이 판도라에 들어앉다니.

'판도라 괜찮은 거 맞지?'

주헌은 진지하게 판도라의 미래를 걱정했다.

아니, 똑똑한 아이린은 엄청난 인재이고 본인도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유물 사용자들을 탈탈(?) 털고 있는 모양이지만...

'파, 파산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마라!'

'잘못하면 판도라 전체가 파멸이다!'

'1원이라도 액수가 다르면 파산이다!'

'제, 젠장. 내가 감히 파산왕에게 커피를 엎질렀어!'

'너 돌았냐! 8대가 망할 거다!'

'으아악! 파산왕이 이번엔 우리 부서 감사 온대!'

'뭐라고?! 니네 부서 똥 됐다! 잘 가라!'

뭐, 그런 식으로 판도라는 초긴장 상태였다.

어디 그뿐인가.

'조지도 완전히 유물 맛이 들려서 원.'

아이린의 오빠 조지 홀튼.

유물을 그렇게나 싫어하면서 자신이 가져다주는 유물은 또 좋아했다.

특히 오만의 탑이었나.

월세를 내지 못해 방을 빼게 한(?) 루이14세 유물을 던져주었는데, 조지는 그걸로 판도라에서 독재정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주헌, 넌 최고야. 덕분에 눈엣가시들을 쥐어패고 있다고!'

아니, 그러라고 준 유물이 아닌데.

정작 아파트에서 쫓겨난 루이 14세는 주헌을 볼 때 마다 사정했지만.

[서주헌! 내가, 내가 방값을 안 내려고 한 게 아니라... 아, 할부! 인심 써서 100년 할부 어때! 아님 200년 할부!]

할부고 자시고, 창조주 위에 건물주 있는 법.

'꺼져. 너 말고 들어올 세입자 많아.'

[캬아아악!]

그렇게 주헌은 월세를 낼 생각도 없는 유물들은 신나게 뺑뺑이를 돌려가며 부려먹었다.

아무튼 판도라는 지금 조지와 아이린, 홀튼 남매의 공포정치 덕분에 달달달 떨고 있다나 뭐라나.

그리고 지금.

"이거 재하 씨한테 온 문자죠?"

아이린은 유재하에게서 날아온 문자를 받고 놀랐다.

아니, 그도 그럴 법한 게 갑자기 복원을 때려치운다니.

심지어 그림까지 때려치운다니?

그 유재하가?

"재하 씨한테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에요?"

하지만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이 새끼가 빠져서 그래요."

둘의 데이트는 계속 되었다.

***

그리고 그 무렵.

[나 찾지 마세요. 복원도 그림도 다 때려칠 거임.]

주헌과 똑같은 메시지를 받은 율리안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 애초에 이 사기꾼 새끼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복원도 그림도 안 하겠다고?"

유재하가 한 말치고는 너무 이상했다.

"혹시 관심 받고 싶어서 이러나?"

그리고 역시나 같은 문자를 받은 설아도 의아해했다.

"아뇨. 이런 식으로 관심 받으려는 타입은 아닌데..."

유재하도 아주 가끔은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은 노력이다.

이를테면 기절할 만한 실적을 내서 당당하게 보너스를 달라고 으스댄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그림을 못 그릴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는 놈인데?

그러니 이건 이상현상이다.

하지만 설아는 곧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뭐, 그냥 장난치는 거겠죠. 아무튼 단장님이 7대 무덤 출몰 예정지를 조사하라고 하셨으니..."

그러나 율리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부단장님?"

"설아 넌 조사하다 단장한테 가."

"네?"

문자를 빤히 보던 율리안이 돌아섰다.

"이 새끼 나사가 빠져서 안 되겠어."

"네?! 하지만!"

설아는 급하게 율리안을 쫓아갔다.

왜?

'둘만 남겼다가 도대체 뭔 피바람을 보려고.'

그렇게 그들이 유재하의 작업실에 쳐들어왔을 때였다.

"야! 사기꾼!"

"부단장님!"

"복원사 주제에 어딜 단장을 배신하고 도주하겠다는 소리를 해!"

그는 사기왕 시절처럼 유재하가 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안쪽의 문을 열었을 때였다.

"?!"

방 안에 목을 매달은 시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 유재하랑 체격이 비슷해 그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허. 어이가 없네. 우리가 한 두번 속..."

그럴 때였다.

"이 바보야! 다가오지 마!"

"!"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율리안과 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유재하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구렁이에게 삼켜지고 말았다.

유재하인 줄 알았던 시체가 구렁이로 변한 것이다.

이윽고 나타난 청년.

"좋아. 이걸로 두 마리 더 잡았고."

둘은 순식간에 납치한 건 다름 아닌 일리야였다.

그리고 그때 부하들이 들어왔다.

"잡으셨습니까?"

"잡았어. 잡았어."

일리야의 뒤에는 방에 가득 찰 만큼 큰 구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얼핏 동물원에서 탈출한 구렁이로 보이지만 이건 엄연히 유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B급- 희귀급 / 귀속유믈)]

간단하게 말해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그 보아뱀이다.

무엇이든지 삼켜버리는 무서운 뱀이지만, 사용자 외엔 구렁이가 아니라 모자나 다른 평범한 사물로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부하의 눈에는 구렁이가 아니라 땅에 떨어진 모자로 보였다.

뭐, 일리야의 눈에는 요동치는 구렁이로 보이지만.

[$#*&!!]

[#$*#&*!]

안에서는 삼켜진 율리안과 설아가 난리를 피우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일리야가 자신의 목걸이에 지배력을 실었다.

척 보기에도 꽤나 강력해 보이는 유물.

번쩍!

곧 유물이 발동하자 구렁이 뱃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설아와 율리안의 저항이 멈췄다.

"이제 남은 놈은 의사 여자 하나와 서주헌이다. 이놈들은 맡길 테니까 알아서 기억 조작해놓고."

"예!"

일리야는 밖으로 나가면서 비웃었다.

"왕급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떠들썩한 서주헌 발굴단도 별거 아닌 모양이었다.

***

한편 그 무렵.

"어유! 이 바보들! 니들까지 삼키면 어쩌냐고오오!"

구렁이 뱃속에서 유재하는 절규했다.

"단장님한테 진짜 죽을 거야!"

그렇다.

구렁이 뱃속에는 이미 진작 삼켜진 유재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설아와 율리안까지 들어오자 절망했다.

그는 율리안의 멱살을 잡았다.

"아이고오! 니가 그러고도 왕급이냐!"

"누가 할 소리!"

"아치 애초에 넌 병신이냐? 왜 이딴 함정에 빠지는 건데!"

"그러니까 그게 누가 할 소리..."

"어유, 난 몰라 이제. 너 어디 가서 제갈공명이라고 하지도 마! 창피하니까!"

"허. 야. 난 일부러 삼켜진 거거든?"

"뭐?"

"상황을 보기 위해서 가만히 있던 거야."

"구라치고 있네. 너도 그 성격파탄자한테 당한 거잖아."

"..."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을 납치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아니,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건 기억 속에 딱 한 명이었다.

'일리야 볼고프.'

자신들의 사후처리담당 단원이었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은 시커멓고 교활하기 짝이 없던.

"그래도 설마 이런 식으로 기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지금도 마법서 유물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방금 전에도 놈이 그 유물을 쓴 것 같았다.

'일시적으로 기절할 뻔한 걸 보니.'

단이 주로 장수나 무력과 관련된 유물을 썼다면 일리야는 정반대.

그는 멀린, 메테이아, 알리스터 크리올리, 니콜라스 플라멜 같은 마법서 위주로 사용했다.

그쪽으로 엄청난 적합력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 그가 쓰고 있는 유물은 분명...

"솔로몬의 레메게톤."

"뭐? 레메 뭐시기?"

성서에서 솔로몬 왕이 썼다고 전해지는 마법서 레메게톤.

"대충 72명의 악마를 다루는 마법서라고 보면 돼."

왕급인 자신들이 이렇게 쉽게 잡힌 건 그 유물 탓일 터.

아무래도 마법서 계열 유물은 왕급들조차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우니까.

"아무튼 그 성격 배배 꼬인 놈이라면 이제 우리 기억을 전부 조작할 거야! 단장님도 못 알아볼 거라고!"

"아니 그 성격에 기억만 조작해주면 다행이지."

"온갖 수치플레이를 시키거나 완전 폐인으로 만들 거야."

그들은 과거 동료를 떠올리며 좌절했다.

"젠장, 왜 우리 도굴단에는 정상적인 놈이 하나도 없지?"

"맞아. 그중에 공명이 니가 제일 이상해."

"뭐야?!"

"나참. 둘이 그만 싸워요! 일단 여기서 나가야죠! 단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설아가 유물을 써서 나가자고 하려할 때였다.

쿵!

구렁이의 몸에서 위액이 쏟아졌다.

"꺄아악!"

'으아악!"

***

한편 그 무렵이었다.

띠링.

[서주헌, 너한테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

주헌은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주헌의 옷을 벗기고 진료 중이던 클로에가 물었다.

"단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주헌은 정말 이상했다.

공명이가 자신에게 이딴 메시지를 보낼 리가 없는데?

이정도로 친하지 않으니까.

뭔가 수상하다.

재하의 메시지도 그렇고, 놈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띠링.

주헌은 율리안이 보낸 메시지를 사정없이 삭제했다.

그 모습에 클로에가 옆에서 헛웃음을 흘렸다.

"부단장님한테 온 거 아니에요? 지워도 돼요?"

"기분 나빠. 꺼져."

그럴 때였다.

"아오! 저 새끼 뭐야! 메시지를 씹었어!"

주헌 일행을 거울 유물로 감시하던 일리야의 단원들은 뒷목을 잡았다.

그러더니 구렁이 뱃속에 있는 율리안에게 외치는 것이었다.

"야! 너 부단장이라며! 무슨 사이가 저래!"

그러자 뱀의 뱃속에 있는 율리안은 큭큭 웃었다.

위산 때문에 옷이 녹아 설아를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지만 글쎄.

"곧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군."

서주헌.

그 머리 좋은 놈이 이런 기묘한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분명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서주헌한테 도움을 받는 건 좀 수치스럽긴 하지만...'

"서주헌이 우리를 너무 막 부린단 말야."

"맞아요, 맞아. 내가 단장님한테 얼마나 시달리는 줄 알아? 가끔은 우리가 사라져봐야 그 중요성을 안다니까?"

"저, 저기..."

"왜! 설아 너도 화나잖아! 단장님이 아이린하고만 데이트하고!"

두 왕급들이 뱀의 뱃속에서 눌러앉은 이유는 그것 같았다.

결국 일리야의 동료들은 작전을 변경하기로 했다.

'서주헌만 끌어내면 된다. 서주헌의 약점은 일리야 단장이 꿰고 있어.'

아니나 다를까.

띠링.

이번엔 주헌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

[단원들을 죽게 하기 싫으면 사거리 앞으로 나와라.]

낯선 남자의 목소리.

그 말을 엿들은 건지 주헌을 진료하고 있던 클로에가 미간을 좁혔다.

주헌이 율리안의 메시지를 그냥 무시하긴 했지만 이거 영 심상치 않았다.

아까 전에 날아왔던 유재하의 메시지도 수상하고.

'설마 적들의 함정에 걸린 건가.'

"단장님! 아무래도 가봐야...!"

하지만 주헌이 그녀를 막았다.

그리고.

"거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거기 잡혀 있는 내 부하들한테 전해."

[뭐?]

"니들 전부 해고. 사유는 불성실근무태만. 니들 일은 다 하고 놀고 있는 거냐고."

뚝.

[......?!]

사정없이 끊긴 전화에 적들은 물론, 꾀부리던 왕급들조차도 멘붕에 빠졌다.

아, 아니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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