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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4화 (234/409)

234화. 유괴는 나빠요 (2)

일리야 볼고프.

그는 과거 주헌의 동료이자 사후처리반이었다.

그리고 설아와 클로에가 계속 쫓고 있지만 전혀 행방을 알 수 없는 남자.

덕분에 유물과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가 싶지만 글쎄.

그의 악명은 발굴단들 사이에서는 드높았다.

바로 해체업자로서.

특히 발굴단을 소지한 왕급들에게는 완전히 공포의 대상.

왜?

'발굴단이 공중분해 된다.'

규모고 뭐고 상관없었다.

말 그대로 발굴단을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의 손에 공중분해 된 팀의 수만 해도 공식적으로 수백 건.

그렇다.

일리야는 발굴단의 단장이긴 하나 통상의 발굴일은 하지 않았다.

타겟은 유물이 아닌 인간들.

즉 <사냥꾼>들과 똑같은 포지션을 가진 것이다.

유물 사용자들을 처리해 경쟁자를 없애는 포지션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사냥꾼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사냥꾼들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들을 찢어발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르다.

"하하, 일리야 단장. 이번 사냥감은 그 유명한 서주헌 발굴단 입니까?"

"그렇긴 한데, 발굴단이 아니라 도굴단이라네?"

"허, 뭔 차이래요?"

"음, 발굴권도 없이 몰래 숨어들어서 유물만 빼가는 악질 발굴단?"

"에이 그뿐이 아니죠. 듣자하니 얘네는 무덤 과제도 패스하고 강제로 유물을 빼간다던데?"

"뭐? 진짜? 그게 가능해?"

"쉬쉬.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놈들의 해체 일이 무려 두당 5천만 달러라는 거다."

"와 미쳤네요. 그럼 다 합치면 5명이니까... 2억 5천만 달러?!"

"야, 아직 놀라지 마라. 단장은 무려 1억 달러니까."

"미친!"

"이야, 역시 왕급은 다르네! 아니, 다른 왕급들도 지금까지 그렇게 가격을 쳐주진 않았잖아요!"

"서주헌이니까 그런 건가?"

"어쨌든 이놈들의 기억만 조작하면 되는 거야."

그렇다.

이들이 팀을 박살내는 방법은 무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적을 무작정 죽이는 사냥꾼들을 외려 야만인이라고 비웃어댔다.

그에 비하면 자신들은 인텔리.

기억와 증거, 사건현장을 조작하고, 심지어 필요하다면 가족 관계나 인적까지도 바꾼다.

모든 것을 조작해 발굴단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를 테면...

'야, 너 나 알아? 누군데 이 난리야!'

'너 나 몰라?!'

'으아아앙. 무덤 무서워.'

'니가 내 돈 훔쳐갔잖아!'

'아니 도대체 누구신데 이러냐고!'

실제로 일리야의 발굴단을 거쳐간 곳은 죄다 이 모양이었다.

무력 싸움 없이 자연스럽게 발굴단을 해체시켜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이미 수많은 왕급 경쟁자들을 공중분해 시켜버렸다.

그리고 이번에 돌아온 타겟.

'서주헌이라.'

일리야가 주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주헌이야 유물사용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유명했으니까.

게다가 여러 어르신들의 심기를 건들고 다니는 모양이고.

'그러니 언젠가 이놈의 의뢰가 들어올 것은 알았지만.'

일리야는 주헌의 기록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너도 공중분해 해주마.'

"그러려면 일단 운명왕 건부터 해결해야겠지."

일리야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

"아씨, 진짜 내가 미치겠네."

운명왕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서주헌에게 납치 된 지 벌써 일주일 째.

운명왕은 제 주변에 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면서 쌍욕을 날렸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자신이 지금 갇혀 있는 곳은 여전히 화장실.

그런데 문제는 그 화장실에 가득 쌓인 물건들이었다.

[초강력 수면제 '단번에 잠들어요.']

[수면제 '다시는 눈을 뜰 수가 없어요.']

[수면제 '어디 죽을 때까지 자봅시다.']

여기도 수면제, 저기도 수면제!

"아오 미친!"

심지어 수면제 박스들만 세어 봐도 대충 500박스가 넘어갈 것이다!

결국 운명왕은 천장의 CCTV를 향해 쌍욕을 날렸다.

"야, 씨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수면제를 쳐먹으면 죽는다고!"

그러자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걱정 말아요. 죽을 거 같으면 위 세척은 해줄 테니까.]

클로에였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먹고 자요. 그래야 미래를 보지.]

태연한 의사의 말에 운명왕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이 도굴단은 정상인 놈이 하나도 없어!

그렇다.

지금 이놈들은 사람을 가둬놓고 점이나 보라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생방송 서스트라다무스의 미래일보.]

주헌이 급조한 방송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갑자기 방송 관계자를 부른 주헌은 수상한(?) 방송을 기획했다.

그리고 운명왕에게 가까운 미래의 일을 점치게 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네, 오늘의 점은 스포츠 경기 결과입니다!]

[오늘은 주식 동향을...]

[오늘은 날씨를!]

[오늘은 무려 무덤과 유물의 정보입니다!]

물론 방송에 나가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오오오오! 아이린! 아이리이인! 얼굴 좀 보여줘요!"

"오, 호구왕 진행 좀 잘하네?"

"아이린이랑 같은 프로에 나가다니! 호구왕 저 자식 죽여버릴 테다!"

"하씨, 서주헌 진짜 부러워죽겠네! 아이린이랑 친하다던데!"

나가는 것은 절세미녀 아이린과 MC를 잘할 것 같은 호감영 말빨꾼 유재하.

그리고...

[오늘도 나왔습니다! 서스트라다무스!]

"꺄아아아! 주헌 님! 주헌 님!"

"주헌 님이 나오셨어!"

점을 보는 사나이, 서주헌이었다.

물론 주헌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주헌과는 전화통화를 하는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으니까.

얼굴을 드러내는 건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화장실에 처박혀 열심히 꿈을 꿨다.

그리고 미래를 읽으면 아이린과 유재하가 방송에서 정보를 푸는 식이었다.

덕분에 이 정체불명의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시청률 역대기록을 깨부수며 치솟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거부들과 정계의 거물들도 그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서주헌 저 자식, 예언 관련 유물이라도 얻은 건가?'

'무슨 꿍꿍이지!'

'아무튼 집중해!'

세계가 그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정작 미래를 때려 맞추는 건 자신이었지만, 세계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

왜?

설마 자신이 납치당해서 이렇게 부려 먹히리라곤 전혀 생각 못 할 테니까.

뭐, 타이밍 좋게 자신이 사라졌으니 의심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긴 했지만.

아무튼 어쨌거나...

[벌써 내일 분 방송 분량 넘겨야 한다고요.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안 자?]

클로에의 협박(?)에 조슈아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자야지만 미래를 볼 수 있으니 이 지랄을 하는 것이겠지만...

"야! 사람이 어떻게 24시간 내내 자는 게 가능해! 돌았어?"

[눈 뺐어요? 거기 있는 약들이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아오!

"밥은! 밥은 안 주냐!"

[하루 대사에 필요한 영양을 골고루 담아 약에 넣었으니 닥치고 자요.]

아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네.

저 여자 누굴 약쟁이로 만들 셈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약쟁이가 되어 죽을 거야!

훌쩍이는 운명왕은 그렇게 탈출을 결심했다.

***

"이야, 미쳤어. 오늘도 시청률 대박이야!"

방송국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주헌이 만든 프로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시청자들도 문제였다.

무려 전 세계의 정상들을 비롯한 굴지의 자산가들, 거기에 평범한 시민들까지.

전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같은 시간, 그것도 한 프로에 집중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이정도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프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이해가 안가는 건 있었다.

"서주헌은 도대체 왜 이 방송을 하는 거야?"

"단순한 관종 짓 아니야?"

"아냐. 서주헌이 하는 일인데."

그렇다.

도대체 왜 주헌이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엿들으면서 유재하가 킬킬 웃었다.

'왜 하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독식자들을 휘두르는 것.'

운명왕은 지금까지 각종 놈들의 비선실세를 담당해왔다.

세계의 중요한 인물들이 운명왕의 말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하지만 그걸 주헌이 가로챈다면?

'놈들은 100% 단장님에게 휘둘릴 테지.'

실제로 주헌은 미래예보를 할 때 진짜 미래만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가짜 정보도 흘려 놈들을 헛수고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운명왕의 고객들로서는 아주 속이 터질 것이다.

심지어 그뿐이 아니다.

'곧 있으면 왕의 비보가 나타난다.'

유물의 등장과 함께 점점 늘어나고 있는 뛰어난 유물사용자들.

그 안엔 왕급의 소질을 가진 꾼급들도 많았다.

지금이야 너도 나도 왕급이라고 우겨대고 판도라에 돈을 바치며 줄을 서고 있지만, <비보>가 나타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보를 가진 자가 진짜 왕급.'

유재하는 왕의 비보가 나타나던 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때 자신도 조건을 클리어해서 왕의 비보를 손에 넣었으니까.

'얼마 후 대고분화와 같은 현상이 또 벌어진다.'

그때 그 비보를 차지해야지만 최종 15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왕급이 되면 받을 수 있는 특혜도 그렇고, 이름값은 톡톡히 하게 되지.'

그리고 운명왕은 그 비보가 나오는 장소를 점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그러니 독식자들로서는 운명왕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똥줄이 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야! 너네 단장 어디에 있어!"

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데 유재하는 또 멱살을 붙잡혔다.

"야! 호구왕!"

"아씨! 또 니들이냐! 매일같이 질리지도 않냐고!"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은 많아 보였다.

"질리기는 개뿔이!"

"야! 니네 단장 새끼가 우리 VIP를 유괴해갔잖아! 방송 보면 다 알거든?!"

"너네 단장 당장 안 끌고 나와?!"

"서스트라다무스는 개뿔이!"

"니들 속셈을 우리가 모를 줄 아냐!"

그들은 분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그건 당연했다.

자신들만 알아야 하는 미래 정보를 무분별하게 풀지를 않나.

마음 같아서는 저딴 프로그램 따위, 당장 폐지하라고 압력을 넣고도 남았지만.

'젠장, 폐지했다간 진짜 운명왕과의 연결고리가 끊길지도 모르고!'

그래서 독식자들은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뒷목을 잡았다.

사람들을 시켜 재빨리 운명왕을 찾아내라고 시켰지만 여전히 속수무책.

'아이고, 도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

그들은 아이린도 협박하려 했지만 포기하고 만만한 유재하만 쫓아왔다.

"아 됐으니까 운명왕 어딨냐고! 어디!"

"글쎄, 일단 지구 어딘가에 있으니까 잘 찾아보셔."

"허, 이자식이 진짜 말로는 안 되겠네."

그들은 괜히 사냥꾼이 아닌지 빠른 손놀림으로 유재하를 때려눕혔다.

그러더니 유물을 발동해 곧장 유재하의 목을 노렸다.

"자, 좋은 말로 할 때 운명왕의 위치를...!"

하지만.

"허, 등신들. 잘 논다."

"?!"

목소리는 다른 쪽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유재하가 다른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엥? 왜 쟤가 저기에... 그럼 뭐야 이건!"

뭐긴, 가짜지.

동시에 남자들이 붙잡고 있던 가짜 유재하가 녹아내리면서 놈들을 옭아맸다.

"아아악!"

그리고 그걸 보면서 유재하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키야, 역시 내 실력 죽여준다니까. 나 완전 어디가도 인기인이라니까. 이제 단장님한테 안 밀릴 거라니까."

그렇게 자뻑(?)하는 유재하가 '단장님한테 칭찬 받으러 가야지'하고 전화를 하려고 할 때였다.

"호구왕 주제에 꼴깝 떨기는."

목소리와 함께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이 목소리는?

하지만 유재하는 비명을 지르기도 채 전에 거대한 구렁이에게 꿀꺽 잡아 먹혔다.

"꺄으아악!"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낯선 남자뿐.

"이걸로 우선 한 명."

일리야가 대수롭지 않게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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