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236화 (236/409)

236화. 우리도 귀한 몸인데(1)

"니들 해고. 사유는 불성실근무태만. 니들 일은 다 하고 놀고 있는 거냐고."

뚝.

[......?!]

사정없이 끊긴 전화에 적들은 물론, 꾀부리던 왕급들조차도 멘붕에 빠졌다.

아, 아니 이건 아니지!

일리야의 단원들은 끊겨버린 전화를 보면서 입을 떡 벌렸다.

다시 봐도 전화는 끊겨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실수했나 싶어 다시 전화도 했다.

하지만.

뚜르르.

[해고라고, 끊어.]

뚝.

전화가 또 끊기자 적들은 복장이 터졌다.

"야이씨! 우리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야, 다시 걸어봐!"

뚜르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

"이런 미친 새끼!"

이젠 아예 배터리를 뽑아버린 듯했다.

그리고 정작 끌어냉 할 놈의 연락이 두절되자 유괴범들은 가슴을 퍽퍽 쳤다.

"젠장, 어쩌지?"

"일리야 단장이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니, 그 전에 서주헌 이 자식 미친 거 아냐?"

"내 말이! 자기 단원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야?"

구렁이의 뱃속에 있던 단원들도 난리가 났다.

뱃속에 있다고는 하나, 스피커 상태인지 통화 내용은 분명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유재하와 율리안은 거품을 물었다.

"야, 지금 내가 뭘 들은 거냐?"

"해... 해고라고."

"서주헌 이 자식이!"

아니 저 자식이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긴 걸 인지 못할 리도 없고!

단원들에게 위험이 닥친 것도 눈치 챘을 텐데!

그런데 뭐가 어째!

해고?!

두 왕급은 눈에서 빔을 내뿜을 기세였다.

"저게 저러고도 우리 리더냐!"

"와, 진짜 단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그들은 분개했다.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단원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리를 뻔히 듣고도 끊어버린 단장의 매정함에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니! 죽는 순간까지도 함께한 동료를 어떻게 이렇게!"

"아니! 죽는 순간 함께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둘의 입에서 불이 뿜어질 기세이자 설아가 당황했다.

"저, 저기요. 일단 둘 다 진정해요. 단장님도 생각이 있으셔서... 꺄악!"

설아는 제 눈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뱀의 위산 때문에 옷이 녹아 숨어있던 그들이었다.

설아야 티셔츠 한 장으로 어떻게든 처리했지만, 남정네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 분노한 그들이 일어나자마자 보고 싶지 않은 부위가 보이는 건 당연한 법.

단장님이라면 사실 좀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눈앞에 있는 건 주헌이 아니다.

"제발 둘 다 가려요!"

둘의 사이즈는 알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아차 싶었던 둘은 녹은 옷조각들을 허둥지둥 끌어 모았다.

하지만 주섬주섬 옷을 줍다가도 둘은 열 받았던 모양이었다.

"아니, 근데 어떻게 자기 단원을 이렇게 버려?"

"그러니까 말이야. 단장님이 우리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나 본데!"

"아무래도 우리가 기억을 찾고 나서 너무 순순히 팀원이 된 거 같아."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어디 가서 안 꿀리잖아? 막말로 공명이 너도 발굴단의 단장이셨고!"

"그래. 너도 굳이 이 도굴단이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잖아?"

"키야. 우리 범생이. 아니 아니 우리 부단장님. 뭔가 좀 아시네."

도대체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안 되겠어. 시위다. 나가서 단장님한테 단원들의 소중함을 좀 느끼게 해줘야겠어!"

"희한하네. 생각이 겹치다니!"

둘은 흐뭇한 듯 서로를 격려했지만 설아는 울부짖었다.

"됐으니까 가리라고!"

***

"정말 대처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클로에는 주헌의 태도에 내심 당황했다.

아니 유재하만 붙잡힌 거라면 모를까...

"부단장님까지 붙잡힌 것 같은데요?"

"설아도 있는 거 아니야?"

"걘 있든 말든 상관없고요."

클로에가 입을 삐죽이자 주헌은 하하 웃었다.

하여간 자신의 단원 놈들은 왜 다 이 모양일까.

"아무튼 단장님. 이대로 있어도 되나요? 연극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 연극은 아니겠지."

주헌은 힐끗 주변을 응시했다.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지긴 했다.

[거울 유물이 당신의 모습을 찍고 있습니다.]

[적들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기억 조작 유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물론 판도라조차도 주헌의 위치를 자세히 파악하진 못했다.

다른 놈들이야 판도라의 갑질에 벌벌 떨며 위치추적에 동의했지만, 글쎄.

주헌은 판도라를 개똥 보듯이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걸 보면...

"놈들이 적에게 잡힌 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적은 아마도 사후처리반 같은 놈들?"

그 말에 클로에는 놀랐다.

"그럼 더 큰일이잖아요! 사후처리반이면 기억까지 읽을 텐데! 전생의 정보라도 뽑히면...!"

하지만 주헌은 코웃음을 쳤다.

"뭘 걱정해. 다들 대처법은 알고 있어."

"하지만..."

기억을 뽑아내는 건 지배력을 강제로 떨구는 방법과 똑같았다.

즉 멘탈 흔들기.

쉽게 말해 고문을 하든 수치감을 주든, 협박을 하든 겁을 줘서 멘탈을 뒤흔드는 것인데...

"이미 죽는 경험도 해본 녀석들을 뭘로 겁먹게 해."

"...그건 또 그러네요."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공포는 죽음.

그러나 그것조차도 자신의 단원들에겐 위험이 되지 않는다.

"어지간해서는 다 웃음만 나올 걸?"

그러니까 딱히 걱정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주헌이 거슬리는 건.

"이것들이 고작 사후처리반에 붙잡혔어?"

죽으려고, 왕급이라는 것들이.

어디 그뿐인가.

띠링.

주헌이 전화를 끊어둔 탓인지 클로에에게 연락이 날아왔다.

날아온 것은 음성메시지와 동영상 일체.

내용물은 경악스러웠다.

[꺄으아악!]

[이 바보야! 다가오지 마!

[으아악!]

영상을 본 클로에는 깜짝 놀랐다.

영상에는 유재하, 이설아, 율리안이 뱀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뱀의 내장을 촬영한 듯, 위산에 공격당하는 일부 모습까지 찍혀 있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조작된 광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작 그걸 보낸 일리야의 단원들은 큭큭 웃었다.

'이거라면 서주헌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겠지!'

하지만 박차고 나오기는 개뿔.

"저녁밥은 뭘로 먹을래?"

"?!"

그 태연한 말에 주헌을 감시하던 일리야의 단원들은 기겁했다.

"아니 저놈은 이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해?!"

"저게 미쳤나!"

"젠장, 서주헌. 동료들이 약점인 거 아니었어?"

그들은 안 되겠다는 듯이 외쳤다.

"야! 그거 전 세계에 뿌린다고 해! 방송에 뿌린다고 하라고!"

"그래! 저딴 놈이라도 세간의 반응은 신경 쓰겠지!"

그들은 다른 영상 하나를 주헌에게 보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유물 안내놔?]

[아아악! 제발 목숨만은!]

유재하, 이설아, 율리안이 외려 다른 단원들을 협박하는 영상이었다.

딱 봐도 사기 영상이지만 유재하가 봐도 칭찬할 정도의 고퀄리티.

그들의 협박은 단순했다.

[네 부하들이 루머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으면 사거리로 나와.]

그러나 주헌은 쯧 혀를 찼다.

"아 귀찮아 죽겠네. 쟤들 수신거부해."

"어... 방송에 뿌린다는데요? 시끄러워지지 않을까요?"

"알게 뭐야. 영상에 찍힌 게 나냐?"

주헌은 정말 단원들을 구하러 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일리야의 단원들은 똥줄이 타들어갔다.

"이대로면 작전에 실패하게 됩니다."

"일리야 단장. 어떻게 할까요?"

부하들의 외침에 전화를 받은 일리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함정으로 유인해야하는데.'

일리야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쳐둔 결계를 보았다.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결계지만 악마들이 사거리에 만들어 놓은 결계였다.

'여기로 유인만 하면 되는데.'

고민하던 일리야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분명 서주헌한테 애인 하나 있었지."

[애인... 설마 아이린 홀튼이요?!]

[설마... 그 파산왕?!]

"그래. 그 애인을 유괴..."

[아악! 저 사표 씁니다! 저희들 이제 단장님하고 연관 없는 겁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니 이것들이?!

일리야가 곧바로 욕을 하려는 때였다.

[아악!]

전화가 무자비하게 끊겼다.

이에 당황한 일리야가 외쳤다.

"뭐야, 야! 무슨 일이야! 왜 그래!"

***

무슨 일이긴 무슨 일이야.

"하, 진짜 안 되겠네."

"진짜 듣자듣자 하니까."

전화를 끊게 한 건 이설아, 율리안, 유재하 삼인방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처참한 모습으로 찢겨나간 뱀이 있었다.

내부에서 강제로 뱀을 찢어발기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뜻밖에도 자신들을 가둔 놈들보다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서주헌, 이 자식."

"내가 진짜 사표 쓴다. 이게 무슨 가족 같은 대표야. 가 족같은 대표지!"

"어... 저기."

허리에 대충 코트와 자켓만 두른 꼴이 우스웠지만 그들은 분개했다.

일리야의 부하들에게서 빼앗은 핸드폰 탓이었다.

"봐! 역시 다 씹었어! 단장 성격에 이거 다 씹었다고! 진짜 이러기야?"

결국 참다 못한 유재하가 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아, 건어물? 야! 단장님 왜 전화 안 받아! 뭐? 귀찮다고 꺼놨어? 아니 그 전에 해고라니! 우리 진짜 해고 시킨 거야?"

전화를 받은 클로에가 유재하를 진정시키는 듯했다.

[단장님이 진짜 해고할 리가 없잖아. 그냥 자극을 주려는 말이야.]

"자극은 개뿔이! 우리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단장님 지금 뭐하는데!"

[저녁밥 메뉴.]

쭈그리고 앉아 있던 유재하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뭐야? 단원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저녁?!"

그럴 때 일리야의 단원들이 끙끙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저... 저놈들을 잡아라!"

"기억부터 조작해!"

"서주헌에 대한 정보를 바꿔라!"

그러나.

콰지지직!

"으아아악!"

기억을 조작하기는커녕 도리어 밟혔다.

"이야, 근데 이 자식들 옷 좋아 보인다? 명품 아니냐?"

"옷은 잘 가져가마."

심지어 옷도 털렸다.

물론 졸지에 피해자가 된 적들은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아... 아니, 왜 유물이 안 통해! 왜 기억 조작이 안 되지?"

그 말에 설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니들이 알 거 없고."

설아는 태연하게 놈들의 지갑을 털었다.

"우리 지갑이 다 녹아서요. 이걸로 차비 좀 한다?"

심지어 법인카드까지 뽑아갔다.

결국 속옷 빼고 탈탈 털린 남자들은 저 도둑놈들 보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럴 때 다른 작업실로 들어간 유재하가 작업복에서 뭔가를 꺼냈다.

"설아야. 받아!"

그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사직서!

깜짝 놀란 설아가 유재하를 보았다.

"저, 저기? 이걸 왜 가지고 있어?"

그러나 유재하는 독기를 띤 눈으로 하하하 웃어댔다.

"직장인은 원래 늘 사표를 품고 다니지!"

아무래도 늘 품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둘에게도 여분의 사직서를 내민 것이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친 것이리라.

설아는 당황했다.

"잠깐, 사표라니?! 너 미쳤어?"

"왜 안 돼?! 그쪽에서 먼저 우리를 해고한다며! 해고하기 전에 사표 써준다 이거야!"

"잠깐 야! 아니 부단장님도 좀 말려보시..."

"아주 좋은 생각이야."

"네?!"

설아는 당황했지만, 율리안도 눈에 불을 켜고 사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설아는 입을 떡 벌렸다.

"두, 둘다 진짜 단장님을 떠날 거야?"

"미쳤냐! 겁주는 거지. 하지만 이걸로 단장님이 울고불고 우리를 붙잡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그치 공명아?"

"허, 그래 우리도 귀한 몸이야. 여기저기서 스카웃 들어온다고."

"그래. 솔직히 우리가 너무 쉽게 단장님 밑에 들어갔지."

"아니, 저기요. 둘다 진정..."

"왜! 설아 너도 아이린 문제로 단장님한테 불만 있잖아. 불만 없어?"

"아니 그거랑 이거는..."

설아가 끙 고민하자 유재하가 입꼬리를 올리며 설아의 사표까지 몰래 작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신나게 사표를 전송했다.

"좋아 보냈어! 이걸로 우리의 소중함을 좀 느끼겠지."

"야!"

"하, 단장님. 어디 가서 우리 같은 인재를 못 구한다니까..."

그러나 돌아온 답이 가관이었다.

[OK. 전원 해고처리 했다.]

[PS. 퇴직금은 없다.]

어, 어?

이, 이게 아닌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