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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3화 (233/409)

233화. 유괴는 나빠요 (1)

"야! 씨팔! 도대체 날 이대로 둘 셈이야! 날 어떻게 할 셈이냐고오!"

주헌에게 유괴된 VIP가 성질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무지막지한 소리에 단원들은 한숨을 쉬었다.

호텔의 화장실에 갇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운명왕 조슈아였다.

대충 이틀 정도 저렇게 가둬놨나.

슬슬 지칠 때도 되었건만.

"쟨 아직도 팔팔하네."

"익사라도 시켜야 얌전해지나?"

그 말에 운명왕은 거품을 물었다.

아니 팔팔하니 익사니, 지금 뭐가 어쩌고 저째?

"야! 니네 진짜 이러는 거 아니야! 어떻게 사람을!"

그 말에 쾅, 문이 거칠게 열렸다.

먼저 문을 열어 젖힌 것은 뜻 밖에도 율리안이었다.

운명왕은 율리안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책략왕!'

놈은 불의는 용서하지 못하는 선한 인물!

사람을 청테이프로 꽁꽁 묶어서 이틀 동안 욕조에 처박아 방치한 광경을 그냥 두고 볼 리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운명왕은 급해졌다.

"빨리 이것 좀 풀어줘! 이건 범죄라고! 같이 서주헌 저놈을 깜빵에 처 넣자!"

율리안이라면 한뜻이 되어 주리라 믿었다.

"너도 서주헌을 극도로 싫어했잖아! 범죄자라면서!"

하지만.

"쟤 입은 못 틀어막아? 시끄러워죽겠는데."

뭐가 어쩌고 저째?

운명왕은 한 대 얻어맞은 듯이 율리안을 보았다.

그러나 율리안은 같잖다는 듯이 운명왕을 보았다.

아무래도 선의를 베풀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확실히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상관없겠지."

"뭐?!"

아무래도 운명왕은 세계 간부들의 비선실세.

나라는 물론, 지하경제나 배후 세계라 불리는 곳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범죄자다.

실제로 자신들의 이득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을 다치게 하고 난민을 만들어냈던가.

하물며 전생의 일이 아니다.

"네 손에 죽은 피해자만 지금 최소 2만 명이 넘어가. 알아?"

모든 게 최근 약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전쟁을 만드는 주범 같으니.'

유물과 무덤을 차지하기 위해 고의로 전쟁과 기근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고 몰아냈다.

아직은 테러 제압과 폭동의 명목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일대가 주요 먹잇감. 하지만 그것도 점차 유럽 쪽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거엔 파산왕을 부려 경제공황도 일으키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세계 정상들은 전쟁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렇게 약소국이나 대국 사이에 낀 나라들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지금은 전쟁왕 키이라가 사라졌으니 덜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이 현상이 계속 되면 몇 년 안에는 아시아 쪽도 초토화가 되겠지.

그러니 원래라면 모든 인간에게는 존엄한 인권이 있다고 보는 그였지만...

"한 명의 악당을 없애서 수십 억의 인구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게 아닐까?"

율리안의 환한 미소에 운명왕은 얼어붙었다.

분명했다.

'이 자식, 날 죽일 셈이야.'

운명왕이 억울한 듯 외쳤다.

"나보다 너네 단장이 더 악당인 거 모르냐! 현상 수배자잖아!"

그러자 율리안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며 비웃었다.

"내 눈으론 둘 다 똑같긴 한데, 결과가 좀 다르긴 하지?"

"뭐?"

"강탈왕과 운명왕. 서로가 사라졌을 때 기뻐할 사람들이 다르잖아?"

"...?!"

그건 그렇다.

운명왕이 사라지면 독식자들은 세상이 무너진 듯 슬퍼하겠지.

그리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전쟁과 기근에 괴로워할 테고.

하지만 주헌이 사라진다면?

딱히 사람들이 기뻐하진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독식자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

그냥 그 차이인 것이다.

"그러니까 둘 중 고르라면, 사심 가득 담아 네놈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율리안의 말에 운명왕은 기겁했고 슬쩍 들어온 유재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시단다. 그러니까 입 좀 닥쳐라."

그러더니 콸콸콸 욕조에 물을 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운명왕은 점점 차오르는 물에 기겁했다.

"야!"

진짜 익사시킬 생각이냐!

심지어 찬물!

"아씨, 차가워! 차갑다고!"

"어이쿠 차가워? 옛다."

유재하가 콸콸 뜨거운 물을 틀자 운명왕은 이번엔 삶아지겠다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광경에 율리안이 못 마땅한 듯 쯧 혀를 찼다.

"사기꾼, 너 적당히 해. 이정도면 고문이야. 아무리 그래도 현대 사회에서 용서받지 못할 짓은..."

"허, 야. 저 새끼 가둔 건 너거든?"

"잠깐 격리조치를 취한 것과 고문은 엄연히 다르지."

사실 둘 다 나쁜 행동이라는 걸 잘 알지만, 율리안은 그냥 사기왕이 못 마땅한 것이리라.

자기 죄를 반성한다고 하더라도 율리안에겐 그냥 사기왕이니까.

그걸 잘 알기에 유재하가 코웃음을 쳤다.

"어유, 아 됐고 너 단장님도 아니면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이 호구야!"

"뭐야?"

결국 둘은 으르렁거리며 싸워댔다.

원래부터도 유재하는 가짜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율리안은 가짜를 파헤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사사건건 부딪치지 않았나.

심지어 기억을 찾은 지금은 아주 앙숙 수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건 우리 단장님뿐이거든! 알간?"

"오냐, 이 사기꾼아."

물론 그 와중에 코까지 차오르는 물 때문에 운명왕은 죽으려고 했지만.

"으, 으으읍!"

첨벙 첨벙!

결국 그 물이 코를 지나 머리까지 덮자 운명왕은 발악을 했다.

"야 잠깐! 니들 그만 싸우고, 이것 좀! 이것 조오옴! 커헉! 어푸, 어푸!"

이젠 물이 뜨겁고 차갑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 죽...! 커헉 꼬르륵!"

그럴 때였다.

"야, 걔 아직 죽이면 안 된다."

주헌이 나무라자 유재하가 번개같이 움직였다. 욕조마개를 뽕 뽑아낸 것이다.

그러더니 괜히 율리안을 나무랐다.

"어유! 야! 단장님이 죽이면 안 된다고 하잖아!"

이걸 콱.

아니 율리안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열 받네. 이 자식.'

곧 율리안이 주헌을 보았다.

"서주헌, 얘 어떻게 할 거지? 이 자식 그때 우리 이야기 다 들었을 거 아니야."

아무래도 사기왕 놈이 이놈의 옆에서 주헌에게 용서를 빌었으니.

"이 자식이 알면 좀 곤란한 내용도 있을 텐데?"

안 그래도 전생의 이야기는 단원들 외엔 비밀이 아니었나.

물론 운명왕이 전생에 대해 뭔가 알아차릴 리는 없지만...

'뭔가 기묘함을 눈치채긴 했겠지.'

운명왕은 눈치가 백단이니까.

그래서일까.

"...콜록, 콜록... 이, 이봐?"

평소라면 범생이 새끼니 사기꾼 새끼니, 서로 치고 박는 두 녀석이 의기투합했다.

"이봐, 운명왕. 우리 이야기를 들은 이상 가만히 둘 순 없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책략왕과 호구왕이 눈을 번득였다.

"욕실은 아마 전기가 잘 통할 거야. 그치, 피카츄?"

"허, 이 녀석이 죽으면 가짜는 네가 만들어내라. 이 사기꾼아."

둘이 접근하자 운명왕은 물속에서 다급해졌다.

'아씨, 저 또라이들!'

서주헌을 닮아가는 거냐!

아무리 그래도 물이 있는 곳에서 전기를 쓰겠다고 협박하다니!

"나, 나 아무것도 못 들었거든?! 진짜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그건 사실이었다.

유재하가 주헌에게 무릎을 꿇을 당시 운명왕은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생각했다.

그 내용이 꽤나 흥미로워 숨죽이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지만 글쎄.

동아줄 녀석이 자꾸만 철썩철썩 때려 대서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듣지 마! 듣지 마!

자꾸 들을 거야? 들을 거야?

대충 그렇게.

아니, 아파죽겠는데 뭔 말이 귀에 들어오길 하겠는가!

그러니 운명왕은 결백했고 억울했다.

"진짜! 진짜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그러나 책략왕과 호구왕은 얘가 뭐라고 하는 거냐며 음흉하게 웃었다.

"개소리 하네. 보통 범죄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지."

"그치? 누가 엿들었다고 사실을 고하겠어?"

"자, 잠깐! 넌 인권변호사잖아! 그리고 진짜라니까아!"

유재하는 입꼬리를 올렸고, 율리안은 슬그머니 욕조 안에 손을 넣었다.

그걸 본 운명왕은 비명을 질렀다.

"잠깐, 그만해, 안 돼! 하지 마! 나 방어유물도 안 입었어! 그러지 말라고! 진짜 죽는다고! 진짜 안 들었...!"

"자, 하나 둘...!"

"세엣!"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욕실의 불이 꺼졌다.

불을 끈 것은 클로에.

그리고 조명이 들어오자 욕조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한 운명왕이 보였다.

정말 들은 것도 없는데 단원들에게 호되게 당한 운명왕.

그를 보며 유재하가 혀를 찼다.

"어유, 등신 새끼."

"아무튼, 서주헌...! 이 녀석 어찌..."

주헌은 세계의 증시를 파악하고 있었다.

운명왕이 사라지면서 각국의 동향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으니까.

그만한 거물을 유괴해온 것이다.

곧 단원들의 부름에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쩌긴 뭘 어째. 써먹어야지."

"써먹어요? 살려두기엔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들은 거 아니에요?"

위험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독식자들이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란 건 자신들이 가장 잘 아니까.

곧 그 생각에 미치자 설아가 탄식했다.

"아, 그 사람이 있었으면..."

물론 그녀의 말에 단원들의 표정이 제각각 변했다.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후처리반.'

일명 뒤처리 담당이었던 단원이 한 명 있다.

놈은 사건이 벌어지면 그 피해를 수습하는 일을 했다.

사건 현장의 수복이나 사람들의 기억 조작, 유물로 벌어진 피해 복구, 현장 수복, 증거 수집, 인멸, 조작.

더 나아가 암살까지.

뭐, 쉽게 말해 도굴단의 공작반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아마 지금 놈이 있었으면 운명왕한테도 써먹을 텐데.

'이놈의 기억만 조작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누가 사후처리반 아니랄까 봐 행방이 묘연하죠."

그럴 때 유재하가 입을 삐죽였다.

"아... 그 능구렁이. 나 걔는 싫은데."

그 말에 율리안이 비웃었다.

"난 네가 싫은데."

"뭐야?"

"언노운에 대해서도 숨기고 있고, TKBM의 비밀에 대해서도 결국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게다가 TKBM에 복수를 한 방법도 까먹고, 사실 복수 따윈 안 한 거 아니야? 솔직히 난 아직도 너 못 믿겠거든?"

"아씨, 그러니까 그건 기억이 안 난다니까! 진짜로!"

"흥."

"아오! 단장님! 저 진짜 억울해요!"

실제로 그는 정말 억울했다.

기억나는 부분은 주헌에게만 죄다 털어놨건만.

그럴 때였다.

"괜찮아. 굳이 사후처리반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네?"

"설령 이놈이 뭘 들었다 한들, 이놈이 그걸로 뭘 하려고 하기 전에 끝나."

"네?"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아, 영감 나야. 지금부터 카메라 스태프들 준비시켜서 데려와."

엥? 카메라 스태프?

"그걸로 재밌는 생중계를 할 거라서. 믿을 수 있는 놈들로만 불러."

아니, 생중계는 무슨 생중계!

***

한편 그 무렵이었다.

[특보입니다. 행방불명된 지 벌써 나흘째이던 운명왕이 TV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운명왕의 행방불명.

그리고 이미 그가 죽었네, 비자금 들고 튀었네 등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TV에 나타난 운명왕. 그리고 TV에 나온 생중계 화면에 세계는 경악했다.

그리고 그 충격이 채 가기도 전이었다.

장소는 미국 디즈니랜드.

남들은 평범하게 놀이기구를 타며 놀고 있겠지만 글쎄.

"발굴단 해체업자, 블랙 씨 맞으시죠?"

이곳에서는 수상한 뒷거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 부탁하신 돈입니다. 3천만 달러 선금과 유물입니다. 성공하시면 나머지도 확실히..."

"제발 부탁입니다. 운명왕... 조슈아 씨를 찾아주십시오."

"분명 서주헌의 손에 있을 겁니다."

"서주헌 발굴단을 꼭 해체해 주세요."

그 말에 돈을 받는 남자가 방긋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발굴단 해체는 제 전문이니까요."

숨어있던 사후처리반 놈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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