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54화 (1,038/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54화 >

"난 대체 뭘 한 거야······."

다음 날 아침. 나는 무척이나 뒤늦게 찾아온 현자 타임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전히 정신없이 자고 있는 레이를 힐끔 내려다보자, 건강미 넘치는 검은 허벅지 위에 하얀 액체를 담은 투명하고 길쭉한 물건이 세 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저건 딱히 문제없다. 오히려 야하고 좋았다. 검은 피부와 새하얀 정액이 대비되어서 더욱 그랬다. 이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굳이 콘돔을 끼고 한 의미가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바로 옆. 검은 피부와 대비되어 더 눈에 띄는 예쁜 핑크빛 속살이 드러난 곳.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마찬가지로 새하얀 액체.

그래. 결국 생으로 해버렸단 말이지.

안 그래도 콘돔에 익숙하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얘랑 하게 되면 흥분이 두 배가 되어서 머리는 제대로 안 돌아가고. 그 결과 완전히 이성을 잃어서, 네 번째부터는 그냥 콘돔도 안 끼고 퍽퍽 박아대 버렸다는 얘기다.

레이의 허벅지 위에 놓인 콘돔이 세 개밖에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니. 물론 변명거리는 있었다.

디아나가 건네준 피임 마법이 담긴 스크롤. 그걸 썼다고 하면 아무 문제 없다.

내가 이성을 잃을 때쯤에는 얘도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으니, 스크롤 쓰는 걸 못 봤다고 해도 충분히 얼버무릴 수 있을 거다. 분명 그럴 거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하아······진짜 이 감정 공유. 빨리 익숙해지든 차단을 하든 해버려야지. 설마 베테랑 중의 베테랑. 섹스의 프로페셔널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경험도 없다시피 한 얘 상대로 이성을 잃을 줄이야.

"으응······응? 꺄응······."

그렇게 혼자서 현자 타임을 철저히 맛보고 있자니, 어느새 눈을 뜬 레이가 뭔가 힘 빠지는 비명을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 잠에서 깼을 때 남자가 한 침대에서 알몸으로 같이 있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거겠지만, 그런 거면 보통 평범하게 깜짝 놀라지 않냐? 왜 이렇게 반응이 미지근해?

"아, 아직······하는 거야······?"

아무튼 눈을 뜬 레이는, 이런 상황이 부끄럽다는 듯 수줍게 내 얼굴을 올려다 보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아니. 아직도 하냐니. 설마 섹스 말하는 거야? 우리 지금 딱히 그런 자세도 아니잖아? 난 앉아 있고, 넌 누워 있고. 평범하게 침대에 나란히 있는 것뿐인데 대체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아.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자신의 손이 레이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 어쩐지 생각이 복잡한 것치고는 마음이 평안하다 싶었더니. 그냥 현자 타임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구나.

설마 이 녀석이 아까 별로 놀라지 않은 것도, 그런 내 평안한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 건가?

"아니. 이건 그냥, 내가 가슴을 좋아하는 것뿐이야."

"그, 그래······."

딱히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정직하게 말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레이는 계속해서 자기 가슴을 만지는 내 손을 치우려고 하지도 않고, 힐끔 내 물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해?"

"응?"

뭘? 설마 이런 대화 흐름에서 다시 올라타라고 시켰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닐 테고.

그렇게 생각하고 의문 부호를 붙였지만, 아무래도 레이는 그냥 대답으로 이해해 버린 모양이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레이는 상반신만 움직여서 내 물건 쪽으로 머리를 가져갔다.

뭐, 뭐야 갑자기? 얘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한순간 동요한 나였지만, 이어지는 레이의 행동에 바로 무슨 일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쪽. 으음······할짝할짝. 으으······말라서 잘 안 닦여······."

아······응. 그래. 그랬지.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시켰었지.

완전히 흥분해서는 "그러고 보니 너 전에 입으로 해줬을 때 정액 뱉었지! 그건 예절에 크게 어긋나는 짓이라고! 애인이 싸준 정액은,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서 마시는 게 예의라는 거야! 기분 좋게 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입이 아니라 다른 곳에 쌌을 때? 그때는

당연히 물건에 묻어 있는 정액이라도 빨아먹어서 깨끗하게 해줘야지?! 그 정도 응용력도 없어?!" 라고. 바보 같은 말을 한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실제로 한 번 쌀 때마다 입으로 청소하게 시켰었지.

난 진짜 뭘 한 거야······.

그리고 얘도 얘야. 지금 이거, 마지막에는 자기가 기절해 버려서 입으로 못 해줬으니까, 이제 와서라도 하려는 거잖아?

자기도 완전히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주제에 그건 또 용케 기억하네.

아니. 그보다 내가 생각해낸 바보 같은 예절을 너무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고 있잖아.

"야. 말라 버린 것까지 굳이 해줄 필요는······."

이제 와서 살짝 죄책감이 생긴 나는 레이를 말리려고 했다.

게다가 힐링 섹스를 안 들키려고 다른 애들이랑 할 때처럼 그대로 삽입하고 자지도 않았으니까, 얘 말처럼 물건에 묻어 있던 정액이 완전히 말라붙어 있었거든.

"괜찮아. 침 묻히니까 떨어져."

으윽. 괜히 더 죄악감이. 하지만 타액을 묻히겠다고 혀로 내 물건을 비벼대는 그 감촉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나는 차마 레이를 더 말리지는 못했다.

"하아······됐다아. 으응······."

결국 내 물건을 깨끗하게 청소해낸 레이였지만, 그 직후 어째선지 고개만 돌려서 내 얼굴을 힐끔 엿봤다.

왜, 왜 그래? 이번엔 또 왜?

불안한 마음으로 레이를 쳐다보자, 레이는 그런 내 표정을 또 뭔가의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내 물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쪽. 어, 어젯밤에는······기, 기분 좋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귀두 끝에 쪽하고 키스한 다음, 귀두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레이.

아니! 나 그런 것까지 시켰었냐?! 아닌데?! 그런 것까지 시킨 기억은 없는데?!

"이러는 거 맞지?"

"으, 응······."

하지만 처음에 인사를 시켰던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마지막에도 인사를 시키는 게 자연스럽기는 했다.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는 봤냐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응용력 있지?"

오우······. 그, 그런 거였냐. 어제 한 말, 의외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그래도 역시······여신네 예절이라는 건 잘 모르겠네."

"무슨 말이야? 여신네 예절이라니?"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정말 잘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완벽한 타이밍에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고, 나 자신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역시."

하지만 순간 마음이 철렁한 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감정이 공유되는 레이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계속 말했잖아. 너 날 너무 바보 취급한다고."

그나마 내가 여신님 쪽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는 건 다행이었지만, 아니. 적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엄청 들떴잖아? 왜 이렇게 들뜬 거야?

"아니. 뭘 갑자기 그렇게 확신하는 것처럼 말하냐? 설마 내가 깜짝 놀라서? 그야 깜짝 놀라지. 전쟁신님이 내리신 최고의 축복을 받은 이 용사님한테 갑자기 그 망할 걸레년의 예절을 따르고 있다는 얘기를 하니까. 놀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겠어?"

일이 꼬여도 심하게 꼬였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일단 끝까지 잡아 떼 보려고 했다.

"걸레년······그런 말 해도 돼?"

물론 레이는 자기 생각에 완전히 확신을 가진 건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플리투스에서 왔다고 했으면서 그 호모가 하는 짓은 비스 사람 같고. 그리고 너랑 하는 건······전부 말도 안 될 정도로 기분 좋고. 어제 거기서도 나처럼 기분······기절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이, 이 녀석······설마 어제 그 난교 파티를 유심히 봤던 이유가······!

하지만 그거라면 나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아니. 그건 그냥 내가 잘해서 그런 거고. 게다가 너도 은근히 잘 느끼는 체질이고. 그리고 어제 설명해 줄 때는 뭐 들었냐? 우리는 감정 공유 때문에 흥분이 배가 된다니까? 기절할 만큼 기분 좋아지지는 않는 게 보통이고, 우리가 감정 공유 때문에 이상한 거야."

"그럼 그 호모는?"

하지만 레이가 이렇게 확신을 가지는 건, 그거 하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뭐?"

"그 호모가 비스 사람이나 하는 짓을 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

비스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니? 실비아가 그런 짓을 했다고?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레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길이 없었던 나는, 당연히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는구나? 힌트 줄까?"

"······."

그런 식으로 웃지 말고 말할 거면 빨리 말해라.

"네가 계속 상식이 부족하다고 했던 내가, 호모라는 말은 어떻게 알게 됐을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레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랑 내 관계를 오해했을 때부터 계속 실비아를 호모라고 하고 있었지. 연애라든가 섹스라든가 그런 상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 녀석이.

별생각 없이 듣고 있었지만, 확실히 그런 녀석이 호모라는 단어는 알고 있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그렇다는 말은 즉······.

"그, 그런가! 바프라와 다른 방식으로 여자 취급이 나쁘고 섹스를 금기시하는 비스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사랑하는 감정이나 섹스의 쾌락까지는 버리지 못하고 동성애에 빠져 버린 건가! 하지만 당연히 플리투스나 바프라는 동성애를 혐오해서 비스 놈들을

호모라고 욕하고, 플리투스에서 왔다면서 동성애자인 실비아한테도 위화감을 느꼈다는 건가!"

말하고 나서 깨달은 건데 말이야. 그 비스라는 곳, 완전 지옥이잖아?

앞으로 거기도 여신님한테 감화시켜야 한다고? 그냥 바프라랑 플리투스만 감화시킨 다음에, 둘이 힘을 합쳐서 비스 놈들은 밀어 버리는 게 낫지 않아?

여신님. 이 성자가 한 말씀 드리자면, 여신님의 아름다운 세계에 그런 녀석들은 필요가 없을 것 같지 말입니다.

아니.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제 와서 깨달아도 늦······."

"라고. 내가 그렇게 당황할 줄 알았냐?"

"으, 응?"

이겼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는 레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꾸해주자, 레이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내비쳤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진짜로 플리투스는 동성애가······."

"실비아 걔 여자야."

"······."

내 짧은 한마디에 레이는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오는지 입만 뻐끔뻐끔거렸다.

"너도 성문에서 있었던 사건을 들었겠지만, 실비아의 무력은 용사인 나나 레온에 버금갈 정도로 막강해. 소수로 적 세력에 잠입하는 거니, 그 힘은 꼭 필요했지. 물론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좋지 못한 바프라에 잠입하기 위해, 실비아는 남장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 알겠지? 실비아가 날 좋아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그렇게 말하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줬다.

다행이다. 이 녀석이 어설퍼서 진짜 다행이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나오니까 난 또 빼도 박도 못할 결정적인 단서라도 잡은 줄 알았네.

실비아가 여자라는 걸 밝혀 버리기는 했지만, 내가 여신님의 사자라는 걸 들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너, 너 진짜 날 바보로 아는 거야? 그런 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 나 그 호모 알몸도 봤거든?! 걔도 이거······!"

야. 사람 물건 그렇게 덥석 잡지 마라. 흥분되니까.

"모형이야. 만져 봤으니까 알 거 아니야. 뭔가 사람 피부랑 미묘하게 감촉이 다르지 않았어? 밑에 알도 없었잖아?"

"어? 어어?! 하, 하지만! 하지만 그 호모! 가슴도 없······!"

"그만! 너 자기가 축복받았다고 해서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모든 여자가 너처럼 가슴이 있는 줄 알아?"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너도 내 여자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수준이야.

밑바닥을 깔아주는 디아나나 실비아가 돋보여서 그렇지, 다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가슴의 소유자들이니까. 심지어 그 디아나도 성장하면 너보다 더 커진다고.

최종적으로 네가 제대로 이길 수 있는 건 실비아를 제외하면 사라밖에 없어.

천사님은 물론 마틸다한테도 안 되고, 바넷사는 체격이 너무 다르니까 컵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만지는 감촉 자체는 바넷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넌 레이첼 누님이나 펠리시아랑 좋은 승부가 되는 수준이야.

아니. 뭐, 그래도 충분히 크긴 큰 거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거유 위에 폭유가 있다는 얘기지.

내 앞에서 뻔뻔하게 가슴 자랑을 하고 싶으면 최종 보스인 천사님을 이기고 얘기해라.

"그러니까 실비아한테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걔도 요즘 은근히 신경 쓰는 것 같으니까."

"그, 그 말투······! 그럼 역시 그 호······그 여자만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도······!"

"그래. 실비아도 내 여자야. 앞으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실비아! 기뻐해! 드디어 네 오해가 전부 풀렸어!

나도 숨기느라 은근히 스트레스 받았었나 봐.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네.

이걸로 실비아와 레이의 대립도 조금 줄어든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너, 너, 너 대체 여자가 몇이나 있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홀가분해진 나와 달리, 레이는 아까의 그 기분 좋은 미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는 역정을 토해냈다.

"응? 너까지 포함해서? 그러니까 사라에, 디아나에, 레이아에······."

"손가락으로 세야 할 정도로 많은 거야?! 세상에 어떤 남자가 그렇게 여자를 많이 데리고 다녀?! 너 진짜 여신 쪽 사람 아니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5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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