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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31화 (6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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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이런 역시 들켰나.

    아니. 그야 레이아다. 당연히 들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레이아의 반응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뭔가 그럴듯한 변명을…아니. 레이아도 상황은 다 알고 있는 거다.

    지금 어설프게 변명을 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만 되는 거 아닌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내 머릿속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레이아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혀까지 내밀어서, 적극적으로 나와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런 레이아의 행위에, 나는 머릿속이 더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어째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이아잖아. 당연히 냄새를 맡았을 텐데?

    방금 전에 움찔거린 걸 보면, 나와의 키스에 정신이 팔려서 미쳐 바넷사의 냄새를 눈치 채지 못했다든가 하는 얘기는 아닐 거다.

    그럼 대체 레이아는 왜….

    아, 그런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거니까 굳이 지적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과연 천사님! 난 믿고 있었다고!

    좋아! 그렇다면 나도 레이아의 그런 마음에 응해서, 레이아에게 완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지금 내게 적극적으로 키스를 하고 있는 천사님께 죄송한 행위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드디어 내 쪽에서도 입술과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레이아만 움직이게 한 것에 대한 보답을 하듯이, 그리고 바넷사의 냄새를 묻히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담아서 열심히.

    하지만 내가 겨우 발동이 걸리려고 한 순간, 레이아쪽에서 입술을 떼고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

    그러면서 레이아는 그 수인족 특유의 얇고 긴 혀로 내 입술을 낼름 핥았다.

    평소라면 그 요염한 행동에 엄청나게 흥분됐겠지만, 지금은 뭔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맛봤다.

    이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내 입술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바넷사의 마지막 잔향까지, 레이아가 혀로 닦아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천사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레이아의 얼굴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갔고, 그 표정 전체가 겨우 시야에 들어오게 된 순간 나는 자신이 행복 회로를 너무 과하게 돌리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위험해. 우리 천사님이 살짝 삐지신 것 같아.

    물론 천사이신 레이아님은 대놓고 토라진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는 나는데, 자신이 다녀온 거라고 했으니 화를 낼 수 없는 것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화를 내도 좋을지 어떨지 망설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레이아."

    나는 고민하는 레이아에게 해답을 제시하기로 했다.

    "…네."

    "화내고 싶으면 화내도 돼."

    "화라니, 그런…."

    물론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서, 쉽사리 화를 낼 레이아가 아니지만 말이다.

    역시 천사는 레이아야.

    "괜찮으니까."

    "정말로 화가 난 건 아니에요. 전 그저…."

    "응."

    그래도 계속해서 내가 다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촉하자, 레이아는 등을 떠밀리는 느낌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역시나 레이아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응. 그럼그럼. 너무 참고 사는 건 좋지 않다고. 내가 다 받아줄 테니까 시원하게 속마음을 털어놔봐.

    "그냥 사과만 하러 가신 거였잖아요? 키스까지 하고 오신 건 너무하셨어요. 오랜만에 제 차례였는데…."

    전혀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은, 오히려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자신이 미안하다는 듯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레이아를 보며,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해지는 기분을 맛봤다.

    "미안. 내가 잘못…."

    "미워요."

    "크허어어억!"

    지금 건! 지금 건 아릿한 정도가 아니었어!

    퍼억! 이라고 할까, 콰앙! 이라고 할까, 타앙! 이라고 할까! 가슴에 총알구멍을 뚫어놓은 기분이었다고!

    "죄송합니다. 살아있어서 죄송합니다. 천사님께 실망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대로 땅에 주저앉으며, 쉴 새 없이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천사님한테 미움 받으면 난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

    "아, 저, 저기, 그럴 필요까지는…으, 음!"

    그런 날 보고 상당히 당황한 건지, 처음에는 레이아도 반사적으로 날 다독이려 했다.

    주저 앉아있어서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그 발만 보더라도 레이아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아는 날 끝까지 다독여주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 한없이 넓은 마음만큼이나 넓은…아니. 거대한 가슴으로 날 안아줬을 텐데.

    그렇게 하는 대신, 레이아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시, 싫어요. 용서 안 해줄 거예요."

    "……응?"

    고개를 올려서 레이아를 바라보니, 레이아는 꽤나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표정이 익숙지 않은 건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그 표정은 왠지 웃음을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 천사님이 날 용서 안 해주신대.

    위험해. 나 진짜로 울 것 같아.

    좋아. 죽자. 죽음으로 사죄하자. 천사님께 용서만 받을 수 있다면, 이 한 목숨 결코 아깝지 않아!

    "제가 용서해줄지 말지는, 구원씨가 하는 걸 보고 결정하겠어요."

    "알았어. 죽으면 되는 거지?"

    "아, 아, 안 돼요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내가 결심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레이아가 황급히 내 쪽으로 몸을 던지며 날 뜯어말렸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그 커다란 가슴이 내 가슴에 짓눌리게 되어서…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치유되기 시작했다. 하아. 역시 천사님 품이 최고야.

    "이상한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냥, 구원씨가 오늘 하루 종일 제가 말하는 대로 가만히 말을 잘 들으시면 용서해드릴 테니까요."

    천사님의 ‘미워요.’와 ‘용서 못해요.’의 콤보를 맞고 정신을 못 차렸던 나였지만, 천사님의 가슴과 그 따뜻한 목소리에 힘입어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천사님이 날 용서해주지 않으실 리가 없지.

    물론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이정도 조건쯤이야.

    만약 다른 애들이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면 상당히 긴장했겠지만, 상대는 레이아다.

    레이아가 내게 명령을 한다고 해봤자, 뭐 얼마나 심한 짓을 시키겠어?

    "휴우. 뭐야. 그런…."

    …응? 잠깐만. 오늘은 레이아의 차례.

    다시 말해서 지금부터 우리는 섹스를 하려는 거고, 그런 타이밍에 굳이 레이아가 자기가 하는 말을 잘 들으라는 부탁을 했다는 건….

    "레이아."

    "네?"

    "그 말을 잘 들으란 건. 즉, 그런 의미야?"

    "네, 네에…. 그, 그런…의미에요…."

    그 사실을 깨달은 내가 물어보자, 레이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나한테 그런 취향의 성벽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들켰지만, 그래도 역시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사랑해."

    나는 그런 레이아를 바라보면서, 또 다시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천사님은 천사님이야. 치유된다.

    "저, 정말! 그렇게 웃으시고! 정말로 제 말을 제대로 안 들으시면 용서 안 해드릴 거니까요!"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내게 레이아는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내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걱정 마.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말만 해."

    "약속하신 거예요. 으으음…."

    계속해서 내가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레이아는 진심으로 뭔가 심한 명령을 하려는 듯, 턱에 손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에 빠진 모습마저 가련하시다.

    그리고 턱을 괴고 있는 팔에 눌린 가슴이 섹시하시다.

    그냥 완벽하시다.

    "아!"

    그렇게 내가 레이아를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레이아는 드디어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으며 기쁨에 찬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아름다우시다.

    저 표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절망한 표정을 지을 준비를 했다.

    우리 천사님이 어떤 아이디어를 짜냈든, 결국에는 천사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그렇게 심한 명령을 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웃으면 또 천사님이 분하실 테니, 일부러 절망한 표정을 지으려는 거다.

    나란 녀석은 왜 이렇게 신사적인 걸까.

    "그럼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사정하시면 안 돼요."

    어, 어라? 어째 생각보다 살짝 강도 높은 명령이…아니. 그래도 내겐 절정 속박이 있으니까.

    물론 구미호 특유의 뛰어난 기교를 버텨내기는 힘들겠지만, 나라면 충분히 가능한 명령이야.

    그렇게 애써 자신을 안심시킨 나였지만, 불행히도 아직 레이아의 주문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제 몸에 손대시면 안 돼요."

    그 말에, 나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레이아에게 매달렸다.

    "잠깐만요. 레이아님. 천사님. 잠깐 기다려주세요."

    "네?"

    "손대면 안 된다는 건…설마, 설마 가슴도요?"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겠지?

    나는 최대한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레이아를 올려다보며 레이아에게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정했다.

    "후훗. 네."

    크흐흐윽! 이럴 수가! 저 완벽한 가슴을 눈앞에 두고 손을 못 댄다니! 이건 고문이야! 고문이라고! 대체 천사님은 나한테 얼마나 화나셨기에!

    하지만 올려다 본 레이아는, 입에 손을 가져다대고 쿡쿡 웃고 있었다.

    그냥 순수하게 내 반응이 재미있어서 웃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니, 딱히 화가 많이 나서 이런 명령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천사님. 제가 지금 이렇게 코믹하게 반응해서 그렇지, 의외로 진짜 심각하거든요.

    그 가슴을 눈앞에 두고 만질 수 없다는 건 진짜 고문이에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후훗. 자, 자. 그럼 일어서세요."

    하지만 내 반응을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받아들이신 천사님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어난 날 올려다보며, 천사님은 생긋 웃고는 다시 한 번 내게 키스를 했다.

    하아. 역시 천사야. 뭐, 이번에 하신 주문은 살짝 힘든 주문이었지만, 애초에 내가 잘못한 거니까!

    천사님의 키스에 기운을 되찾은 나는, 계속 절망하고 있기 보다는 이 황홀한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 조금 못 만지면 어때. 그냥 천사님의 봉사를 만끽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움직이려 하자, 이번에도 역시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천사님 쪽에서 입술을 떼며 내게서 멀어졌다.

    어, 어라? 또?

    "구원씨. 안 돼요. 제 조건, 제대로 들어주시지 않으면."

    의아해하는 내게, 레이아가 또 다시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으, 응?"

    물론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그런 내 반응에, 레이아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더욱더 엄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귀여우시다.

    "얼버무리시려고 해도 안 되니까요. 지금 혀로 제 혀를 건드시려고 하셨죠?"

    물론 내 살짝 뒤틀린 감상과는 달리, 하는 말은 정말로 엄격했지만.

    "뭐?! 잠깐. 그것도 안 된다고?!"

    "그럼요. 일단은 벌이니까요."

    "저,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네. 정말로요."

    내가 턱을 덜덜 떨면서 말하자, 레이아는 내 뺨을 상냥히 어루만져주며 그렇게 대답하고는 내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댔다가 뗐다.

    상냥하시다. 하지만 엄격하시다.

    그런 레이아를 보며, 나는 오늘 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도, 아직 내가 사태를 만만히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잠시 후에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후훗. 네. 그렇게요. 제가 허락할 때까지 계속 가만히 계셔야 해요?"

    방금 전 키스에서는 내가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레이아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목욕가운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허벅지가 눈부시다. 하지만 만질 수 없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 레이아는 날 올려다보며 한차례 빙긋 웃어줬다.

    가련하시다. 키스하고 싶다.

    만약 내게 걸린 제약이 없었다면, 난 오히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레이아의 봉사를 만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제약이 걸리고 나니, 뭔가 하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우리 천사님은 대체 왜 이렇게 예쁜 거야.

    젠장. 천사님을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니. 이건 고문이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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