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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30화 (6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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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하지만 바넷사가 그런 이유로 화난 게 아니라면, 아니. 애초에 화난 게 아니라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뿐이다.

    즉, 바넷사가 그때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순수하게 부끄러웠기 때문에 그랬다는 거다.

    정말로 웬만해서는 표정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 포커페이스 집사가 설마 그런 식으로 격렬하게 부끄러워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난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틸다나 다른 애들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바넷사가 화난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 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바넷사가 누구 밑에서, 누구를 보고 자랐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디아나다. 그 키스라는 행위에 엄청나게 의미를 두고 있는 디아나.

    안 그래도 디아나를 엄청나게 따르고 존경하며 본받으려 하는 바넷사니, 비록 자신은 엘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디아나의 그런 인식까지도 은연중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것치고는 고백 당시에 키스를 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한 것 같지 않았지만, 그건 뭐 기습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바넷사도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한 상태였으니 침착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애초에 그땐 나에 대한 고백으로 머릿속이 가득차서,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떠올릴 여지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는 눈앞에서 무표정으로 경계하고 있는 바넷사가 더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뭡니까."

    이런. 속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난 건가.

    아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바넷사가 사랑스러운 건 사실이고. 딱히 숨길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군. 아직 바넷사가 그저 부끄러워했을 뿐이라고 완전히 결론이 난 건 아니다.

    어디 한 번 확인과정을 거쳐볼까.

    "아니. 그냥. 그런 이유로 그런 반응을 보인 거라면 말이야."

    나는 일부러 뜸을 들이듯 느릿느릿한 말투로 거기까지만 말한 후, 기습적으로 바넷사에게 다가가서 키스를…!

    "큭!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하려 했지만 바넷사가 재빨리 몸을 피해버렸다.

    젠장. 문을 열어줄 때부터 경계하고 있더라니. 얘 진짜 쓸데없이 반응은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너 집사잖아? 몸 쓰는 직업 아니잖아?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는 건 내 프라이드가 용납지 못했다.

    "왜 피하는 거야? 지금은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중인 것도 아니잖아?"

    "그건…!"

    나는 살짝 슬픈 표정으로 바넷사에게 그렇게 말했고, 바넷사는 표정자체는 그다지 변함이 없었지만 일단은 그런 날 보며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재빨리 바넷사에게 다가가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도록 그 허리부터 끌어안았다.

    "큿! 응읍…!"

    몸 전체가 내 몸에 완전히 밀착될 정도로 강하게 그 허리를 끌어안자, 바넷사의 몸이 움찔하고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바넷사에게 개의치 않고, 이번에야말로 그 입술에 입술을 맞출 수 있었다.

    좋아 드디어 성공이다!

    …어라? 왠지 처음 의도했던 거랑 다르지 않아?

    난 분명 기습 키스를 통해 바넷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려고 이랬던 건데, 이래선 기습 키스라고 할 수는…뭐, 상관없나. 바넷사의 입술이 기분 좋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그거면 된 거지. 응.

    딱딱한 태도와는 달리 말랑말랑 부드럽기 그지없는 바넷사의 입술 감촉을, 나는 충분히 만끽하기로 했다.

    허리에 내 팔이 둘러진 상태라도 바넷사가 저항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되자 결국 바넷사도 포기한 건지 얌전히 내 입술을 받아줬다.

    자기 스스로 입술을 움직이려 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주위에 메이드들도 없고, 일하는 중인 것도 아니라면 얼마든지 키스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하앗…하앗…."

    그렇게 바넷사의 입술을 충분히 탐닉한 후에 말을 건네자, 바넷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숨을 몰아쉬며 강한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얼핏 보면 노려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얘 지금 부끄러워서 이러는 거야.

    "응? 그런 거 맞지? 대답해줘."

    "읏…."

    얼마든지 키스한다는 내 표현이 아마 상당히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바넷사는 내게서 눈을 피하고 쉽사리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뭐,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지만. 넌 내 여자니까. 키스해도 되는 게 당연하지."

    "……."

    "아냐? 싫어?"

    "…맞습니다. 싫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내 추궁에, 결국 바넷사는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결국은 얘도 싫은 건 아닐 테니까 말이야.

    "그럼 네 입으로 제대로 한 번 말해주겠어? 이래선 마치 내가 싫은 사람한테 억지로 강요하는 것 같잖아."

    만약 여기서 ‘바넷사가 싫은 사람한테 억지로 강요하는 거 맞아.’ 같은 표정을 지었다면 나도 제법 타격이 있었겠지만, 다행이도 바넷사는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휴우. 다행이다. 아니. 믿고 있었다고? 애초에 고백도 얘가 먼저 했고 말이지! 얘가 내 키스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

    "…저는, 구원님이 키스를 해주시면…기쁩니다."

    그냥 ‘키스를 해도 된다.’ 정도만 말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바넷사는 굳이 그런 표현을 썼다.

    내가 살짝, 아주 살짝 불안해했던 걸 얘도 눈치 챘던 모양이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키스를 해댈지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살짝 망설이면서도 저렇게 말을 해주니, 이 무표정의 철벽녀가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외견만 보면, 미인이기는 해도 귀염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바넷사인데도 말이다.

    "흐읍…읏! 또…응…."

    그래서 나는 그런 바넷사에게 또 다시 키스를 했다.

    방금 전 키스와는 달리 이번 키스는 바넷사도 예상을 못했었던 건지, 지근거리에서 마주보는 눈동자가 살짝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기습 키스를 해도 이정도 반응이 끝이라니.

    하여간 얘 포커페이스도 못 말린다니까.

    그러고 보니 귀가하고 나서 키스를 했을 때도, 실비아가 바넷사의 표정은 알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했었지.

    그렇게 당황하고 있었을 때도 일단 표정 관리는 하고 있었다는 건가.

    이쯤 되면 스스로 표정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 근육이 무표정으로 굳어져버린 거 아니야?

    뭐, 그건 아닌가. 정말 가끔이지만 이 무표정이 무너질 때도 있고.

    예를 들어 섹스하면서 지나치게 흥분했을 때라든가.

    아무튼 입술만을 맞부딪혔던 방금 전 키스와는 달리, 이번 키스는 혀까지 사용하는 농후한 키스였다.

    바넷사는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끈질기게 혀로 그 앞니를 노크하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그 입을 벌려줬다.

    일단 바넷사의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되자,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입 안을 자극하는 내 현란한 혀 놀림에, 바넷사도 결국 반사적으로 혀를 움직이며 나와의 키스를 충분히 즐겼다.

    "응…에아아…하앗…하앗…."

    내가 그 입술에서 입을 뗐을 때, 사뭇 아쉽다는 듯 그 혀가 입 밖으로까지 날 따라왔을 정도로 말이다.

    떨어져서 보니, 이제는 얼굴 표정도 살짝 풀려 있었다.

    평소에 철통같던 애가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건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는 걸까.

    무심코 다시 그 입술에 달라붙고 싶어질 만큼 섹시한 모습의 바넷사였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욕망을 꾹 눌러서 참았다.

    오늘 밤의 주인공은 바넷사가 아니니까 말이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큿!"

    대신 바넷사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바넷사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혀를 입 안으로 집어넣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리고는 안광을 빛내며 이쪽을 엄청나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다만 나는 그런 바넷사의 표정을 보고 조금도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다.

    당황하고 있어. 얘 지금 엄청 당황하고 있어.

    나는 그런 바넷사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바넷사의 눈동자가 또 다시 떨리는 것이 보였다.

    걱정 마라. 이번엔 키스하려는 거 아니니까.

    뭐, 걱정이 아니라 기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너 말이야."

    "…뭡니까."

    그 귓가에 입을 가져간 내가 그렇게 속삭이자, 바넷사는 애써 목소리를 낮게 깔며 위협하듯 대답했다.

    "아까 전에 다른 메이드들이 보고 있어서 그렇게 반응했다는 거, 실은 거짓말이지?"

    "…그게 무…큿!"

    내 속삭임에, 바넷사는 평소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며 반박하려 했다.

    그런 반응부터가 이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게다가 내가 귓불을 핥자 그 반박마저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는 바넷사였다.

    "귀엽기는."

    "……!"

    이제는 침음성조차 흘리지도 못하는 바넷사의 귀에 그렇게 속삭이고는, 나는 다시 한 번 바넷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이번엔 굿나잇 키스로 가볍게.

    "그럼 잘 자."

    그렇게 내가 굿나잇 키스를 한 후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와 문을 닫을 때까지, 바넷사는 마치 돌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진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해야 된다는 강박감과,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마음이 뒤섞여서 오류라도 일어난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무사히 바넷사에게 사과를 마칠 수 있었다.

    아니. 이건 사과를 해다기 보다는…오해를 풀었다? 아니면 화해를 했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가.

    중요한 건 바넷사와의 관계를 원상회복 했다는 거지.

    이걸로 할 일은 모두 끝…아. 내일 던전에 가는 거 얘기 안 했다.

    이왕 바넷사랑 얼굴 본 거니까 말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러 다시 바넷사의 방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바넷사도 아마 지금쯤 석화 상태가 해제돼서 번민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신사로서 그런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레이디의 모습까지 엿볼 수는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계획대로 내일은 스스로 준비물을 챙겨서 가도록 할까.

    마음이 홀가분해진 나는 내 방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키스를 하는 등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바넷사와의 대화 자체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 레이아는 욕실에서 몸을 씻는 중이겠지.

    이틈에 재빨리 돌아가서, 바넷사와의 키스로 묻은 냄새만 지우면 완벽하다.

    딱히 레이아에게 숨길 건 아니고, 아마 레이아도 내가 키스정도까진 하고 올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날 바넷사에게 보낸 거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게 기본적인 매너라는 거다.

    아무리 자기가 보낸 거라도, 자기랑 같이 밤을 보내는 남자가 다른 여자 냄새를 풍기고 있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어?

    그런고로, 방에 도착한 나는 제일 먼저 입술을 씻기 위해 세면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가 채 몸을 씻기도 전에, 등 뒤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원씨. 저 왔어요."

    굳이 확인할 것도 없이, 당연히 우리 천사님이었다.

    "으, 응?! 와, 왔어? 빨리 왔네?"

    설마 레이아가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완벽히 준비하고 오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오히려 평소보다 씻는 게 더 빠르지 않아?

    "후훗. 네. 구원씨가 빨리 오라고 말씀해주셨는걸요. 저 힘냈어요!"

    그렇게 말하며 두 주먹을 가슴께에서 불끈 쥐는 천사님의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게다가 저러니까 두 팔 사이에 가슴이 모아져서…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응. 잘했어."

    아직 몸에서 바넷사의 냄새를 지우지 못한 나는, 어색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는 바넷사 냄새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바넷사 걔는 향수 같은 것도 안 쓰니까 말이야.

    하지만 레이아라면 분명 눈치 채겠지.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레이아는 점차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후훗. 네. 구원씨도 빨리 와주셔서 고마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핫. 그럴 리가. 오늘 밤의 주인공은 레이아인데. 방해되는 문제는 금방 해결하고 왔지."

    "구원씨. 아무리 그래도 그런 문제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잖아요."

    내가 살짝 허세를 부리며 말하자, 레이아가 마치 꾸중을 하듯 살짝 엄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아닌지,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내 코앞까지 다가온 레이아는, 자연스럽게 내게 안기면서 그대로 발뒤꿈치를 들며 키스를 해왔다.

    으악! 이렇게 바로!

    엄청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아와의 키스를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레이아의 키스를 받아줬다.

    그리고 내 입술과 레이아의 입술이 닿는 순간, 레이아의 몸이 살짝 움찔하고 떨리는 게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밤에 배탈이 나서 제대로 잠을 못 자는 바람에 퇴근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쓰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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