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27화 (2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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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궁무고

    명태조(주원장)가 원을 몰아내고 대명제국을 세울 때 일등공신이 바로 백련교(白蓮敎)였다. 하지만 명태조 말년에 이르러서 이들을 역모죄로 몰아 죽였고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이들은 악착같이 도망가면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다. 명태조의 손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명교(明敎)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쳤고 자신들을 도륙했던 명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마교(魔敎)라 칭하면서 폄하하였다.

    정난의 변(靖難之變)으로 연왕(燕王)이 건문제(建文帝)를 폐위하고 영락제(永樂帝)가 되었을 때 쫓겨난 건문제의 잔당과 마교(魔敎)가 손잡은 것이었다.

    지금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자들이 흠칫 거리면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내용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마…… 마교!"

    급히 뒤를 수습하려고 했던 위수창과 훈육 환관들이었지만 이미 그 내용을 알아버린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왜 모두들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냐! 무슨 말이라도 들었단 말이더냐?"

    갑작스런 정태감의 날선 목소리에 가장 먼저 송상호라고 불리던 아이가 길게 읍을 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아무……것도 듣지 못 했습니다. 저희는 그저 금의위의 백호(百戶)에게서 고문(拷問)을 배웠을 뿐입니다."

    눈치 빠른 송상호의 행동에 아삼과 몇몇 아이들도 똑같이 그의 행동을 따라했고 잠시 후,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어리둥절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는 아이들도 몇 존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태감과 훈육 환관의 치도곤에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머리를 숙인 아이들을 보면서 날카로운 빛을 내던 정태감은 금의위인 위수창과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오늘 너희들이 봤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아듣겠느냐?"

    "예."

    "만에 하나 이 말이 새어나간다고 한다면은 내 손수 그놈을 잡아들여 고문을 직접 시연해 줄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거라."

    "……."

    정태감의 으름장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건문제와 엮인 마교라는 자백을 조금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그만큼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것은 그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마교라는 단어를 전생에 그냥 얼핏 들어봤던 아삼은 그 연관관계를 잘 몰랐지만 분위기상 묻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마교라…… 그것에 관련된 내용들도 찾아봐야 하는 건가? 명나라 역사를 조금만 알았었더라면…… 하긴 그 당시에 우리나라 역사도 제대로 몰랐는데 다른 나라 역사야 알 턱이 없겠지. 그나저나 송상호 저놈의 눈치도 범상치 않은데? 처세술이 남다른 건가?'

    가장 처음 고개를 조아리던 송상호를 떠올린 아삼은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고소를 지어보였다.

    중국의 최대 명절은 바로 춘절(春節)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서당에서의 교육도 없고 황궁무고로 갈 일도 없었다. 한둘 씩 찾아오는 가족들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삼의 머릿속에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굶고 있지는 않겠지?'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묘했다. 아삼이란 아이의 몸으로 들어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자신을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상념을 떨쳐내려는 듯이 아삼의 머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지금은 이렇게 한가하게 가족을 생각하며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이 흉흉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시도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힘을 길러서 이 황궁에서 벗어나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해야만 했다. 마음을 다잡은 아삼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곁을 벗어나서 조용한 곳으로 향하였다.

    "너는 수련을 하기는 하는 것이냐? 어찌 이리 늘지 않는 것이냐?"

    훈육 환관이 한심스런 표정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송구스럽다는 듯 아삼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런 자신을 비웃는 이인학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는 아삼이었지만 속으로 침음을 삼킨 그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살수무공의 공능인가?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려고 기를 숨기기에 전념을 했더니 동자공의 기운이 드러나지 않는 건가? 저 재수 없는 자식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지는 모습을 봐야 할 텐데.'

    비웃는 이인학의 모습에 괜히 울컥한 아삼이었지만 기운을 마음껏 드러낼 수는 없었다. 37세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끔씩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어린아이의 그것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 불안한 아삼이었다.

    스스로 관조하고 바라봤지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봤을 때도 그렇게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비급에 나와있는 내용을 수련하면서 기감도 늘어나고 기운도 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기운을 느낄 수도 있는 아삼이었다.

    단연 돋보이는 아이들은 이인학과 송상호, 방태호를 위시한 이름 모를 아이들 몇 이었다. 이인학의 경우는 팽가의 지원이 있었고 다른 아이들의 뒷배도 상당할 거라고 생각한 아삼은 쓴웃음을 지었다.

    괜한 반발심에 기운을 마음껏 드러낼 수도 없었다. 지금 자신을 감춰야 사마택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을 떨치려고 노력하는 아삼이었다.

    '이대로 열심히 수련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겠지.'

    동자공과 추적술, 고문과 첩보 이외에도 다른 수련들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무기술이었다. 검, 창, 활 등 각가지 무기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검을 익히는 것은 어렵다고들 한다. 검법의 기초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자는 절대 능숙하게 검을 쓸 수 없다. 이는 비단 검뿐만이 아니다. 검을 위시한 모든 병장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다잡아야 한다. 허니 검을 잡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야한다는 걸 잊지 말거라."

    "……."

    "검(劍)은 양쪽의 날로 베고, 선 검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찌르고 베고. 밀어치는 공격과 방어를 한다."

    설명과 함께 동작을 시연해 보이는 훈육 환관의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눈을 빛내는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의 눈빛에 더욱 흥이난 훈육 환관이 말을 이어갔다.

    "약진, 회전, 전진, 후퇴 등 상대와 상황에 따라 기술을 행해야 하며, 그 동작들이 화려 하면서도 긴장감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다루기가 힘들다."

    "도(刀)는 한쪽에만 날이 선 것을 도라고 한다. 상대를 베고 밀치는 동작을 더해서 찌르기도 하지만 그 주는 바로 베는 것이다."

    "잘 보거라. 이것이 창(槍)이라고 한다."

    계속되는 설명과 숙련된 창법의 실현에 아이들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창대의 뿌리 쪽을 길게 잡아서 길게 찌르는데 어찌나 재빠른지 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팔모(八母)의 기법인 창법의 여덟가지 기본 동작을 배우도록 하겠다. 잘 보고 따라 하거라."

    창을 손에 쥔 훈육 교관이 전방을 향해 힘껏 창을 찔렀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차창(箚鎗)이라 한다. 방금 본 것처럼 전방을 향해 찌르는 창을 말한다. 다들 한번 해 보거라."

    훈육 교관의 명에 따라 아이들이 창을 쥐고 전방을 향해 찌르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의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해주면서 창술 수련이 계속되었다.

    "활은 바른 자세와 바른 마음으로 쏴야만이 궁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활을 배울 때에는 어디까지나 바른 자세를 익히는데 주력해야 한다. 알겠느냐?"

    훈육 교관의 명에 아이들이 길게 읍을 했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훈육 교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좌우궁을 막론하고 두발을 팔자(八字)로 벌려서 과녁 좌우의 아래 끝을 정면으로 향해서 서야 한다. 이 때 얼굴과 이마 또한 과녁과 정면으로 향해서 선다. 알겠느냐? 자, 모두들 자세를 잡아 보거라."

    몇 날 며칠을 챗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상을 맞이하는 아삼이었다. 계속되는 병기술의 수련과 황궁무고에서의 필사.

    격일로 해야 하는 일인지라 당연히 병기술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부분이 이미 팽가에서 배웠던 것들이라서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팽가에서 이런 것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상황이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무기술을 배우고 나서는 함부로 비릿한 웃음을 내보이지 않는 이인학이었다. 스스로도 그런 부분에서는 아삼에게 뒤쳐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인지라 더욱 기를 쓰면서 달려드는 이인학이었고 그 점이 다른 환관들의 이목을 끌었다.

    계속된 수련에 몸이 고달프기는 했지만 자신의 실력이 점점 향상되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아삼이었다. 내서당에서의 수련뿐만 아니라 황궁무고에서 몰래 암기한 비급까지 익히기 시작하는 그였다. 비록 제대로 된 검법이나 도법은 만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금 익히고 있는 것들도 충분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커져가는 양기와 함께 감춰진 내력은 그를 다른 아이들보다 못 미치는 모습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쓸데없는 견제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줬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차곡차곡 수련을 쌓아가다보니 어느새 전보다 더 단단해진 몸을 느끼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단단해져 있음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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