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151)

그가 그녀의 손목을 붙들고는 전신 거울 앞으로 끌고 갔다. 정면으로 거울과 마주 보도록 세운 뒤, 저는 그녀의 등 뒤에 섰다. 거울을 통해 그가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지독하게 화려한 목걸이였다. 가느다란 체인을 따라서 손톱만 한 다이아몬드와 물방울 모양 사파이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카스트로는 직접 목걸이의 고리를 풀고,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걸어주었다.

차가운 체인이 목에 닿는 감각이 선득했다. 과거,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수갑과 족쇄의 감촉이 곧장 연상될 정도로.

“…….”

엘레나는 제 목에 걸린 묵직한 다이아몬드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시선을 사선 방향으로 들어 올리자, 거울에 비친 카스트로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얼굴 움직임 하나까지 집요하게 쫓는, 그 집착적인 시선이란.

“마음에 들어?”

카스트로의 음성엔 묘한 기대감이 스며 있었다. 인정에 목마른 남편이 아내의 칭찬을 갈구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돌이킬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

서쪽 탑에서 마지막 순간은 늘 카스트로의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명분도 다양했다. 눈빛이 죽어 있다고, 저를 원하지 않는다고,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었지 않느냐고, 때때로는 카스타야 후작의 반역죄를 그녀에게 덧씌우며….

우스운 일이었다. 그가 제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리기만 해도 움츠러들던 기억은 이렇게나 생생한데, 정작 그는 그 시절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듯 구는 것은.

그녀는 덩달아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활짝 웃었다.

“이걸 전부 저를 위해 준비하셨어요?”

“…그래.”

잠깐 숨이 막힌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던 카스트로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녀는 정말 즐거운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 감사해요. 지금 전하께서 저를 보러 와 주신 것도요.”

“…….”

“오늘은 바쁘시다고 들어서, 점심때나 집무실에서나 뵙겠다고 생각했는데.”

“…바쁜 것들은 다 미뤄 두었어. 그러니 중앙 오찬실에서 성대한 만찬을 열지.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준비하라고 이를 테니.”

“안 돼요.”

그녀는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엔리케가 아멜리아에게 접촉해 오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야 했다. 최소한 3황자 이안과 관련된 것만이라도….

‘오늘 당장 불가능하더라도, 집무실에 자주 드나들 수 있으면 저번처럼 기회가 올 테니까.’

카스트로의 미간이 좁혀지자, 엘레나는 다른 뜻은 조금도 없는 사람처럼 양손을 펼쳐 보였다.

“황제 폐하께서 쓰러지셨다는 소문이 돌고 있잖아요. 지금은 때가 좋지 못해요.”

“귀족원의 노친네들이 꽉 막히게 구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식사도 눈치 봐서 해야 할까.”

“집무실에서 간소히 드신다면 보다 더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겠죠. 훗날, 그들이 모두 전하께 도움이 되는 판단을 내릴 테고요.”

순식간에 인내가 말라붙은 듯, 그가 성가셔하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보았다.

“우습군. 그들의 의견이 중요한가?”

“당연히, 귀족원은….”

“어차피 황좌에 오르는 건 내가 될 텐데.”

그녀는 거울로부터 몸을 돌려 카스트로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이제는 구태여 숨기지도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숨겨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황제의 예후가 좋지 못한 걸까? 대체 황제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지?’

황제의 건강 상태는 이사벨라가 믿을 만한 측근들에게만 공유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카스트로가 안다는 건, 내부 사정을 누군가 유출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긴장으로 죄어든 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엘레나는 카스트로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2황자나 바섬 백작 부인이 아직은 잠잠하지만, 본격적으로 후계 구도를 욕심내면 귀족원들의 표가 갈리기 시작할 거예요. 그 전에 검소하고 근면한 인상을 남기면 전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결국 황제가 되려면 귀족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해야 하잖아요. 형식적인 절차이기는 하지만요.”

“황제가 죽기 전에 내가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가 된다면?”

그가 그녀의 턱을 우악스레 잡아 올리고 다시금 시선을 제게 붙박도록 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세게 문질렀다. 가늘어진 눈매 사이로 숨길 수 없는 잔인한 성정이 반들거렸다.

황제를 그저 황제라고 말하는 것이나, 승하나 서거 대신 죽는다는 표현이나. 하나같이 불경하고 무도한 표현에 엘레나의 얼굴이 조금 희게 질렸다.

“그게 무슨….”

“네가 전해 준 서류에 대해선 참모들이 분석 중이야.”

“아, 벌써.”

“황후 폐하의 사람들이지만 제법 유능한 작자들이지. 그들 말로는 네가 가져다준 서류가 진짜인 것 같다더군. 우리가 이미 파악한 정보들과 몇 가지가 일치해.”

그녀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가, 자연스럽게 표정을 감췄다. 일치하는 정보가 있다고 해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 터였다. 거짓을 감추기 위한 진실의 용도로….

“몇 가지 검증을 더 거쳐야겠지만, 그 정보대로라면 놈의 군대는 제시간에 수도에 도착하지도 못해. 황제는 그전에 죽을 테니까.”

“어떻게….”

그녀는 충격받은 얼굴을 미처 감추지도 못했다.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만 움직이도록 하지. 네게 보여 줄 게 있거든.”

***

그는 엘레나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녀는 간신히 보폭을 맞췄다. 그건 맞췄다기보다는, 목줄 매인 가축이 질질 끌려가는 것에 가까웠다.

엘레나는 냉소적으로 생각하다가, 그들이 점점 황궁의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여기는….”

“아.”

그는 잔뜩 긴장한 엘레나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고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서쪽 탑은 오랜만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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