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프롤로그 (1/20)
  • 프롤로그

    휘장이 드리워진 거대한 침대가 느리게 삐걱댄다. 휘장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뒤엉킨 두 형체는 서늘한 방에 습한 열기를 채워 내고 있다.

    여인은 사내의 몸 아래 깔려 그가 주는 전희를 가만히 받는다.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와 빠르게 깜박이는 눈만이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또 흥분했는지 보여 준다. 그녀의 이름은 류드밀라, 황궁의 껍데기이다.

    은발이 베개 위에 찬란하게 흐트러져 있는 가운데 밝아 오는 새벽하늘을 담은 보랏빛 눈은 감긴 채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눈을 감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사내는 제국을 무너뜨린다는 마법사 루슬란이다. 서 있다면 발치에 끌릴 검은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려 류드밀라를 간질인다. 그녀의 것과는 다르게 똑바로 뜬 은빛 눈이 순간 느긋하게 휘어진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아래를 조심스레 파고든다.

    류드밀라는 작게 숨을 헐떡이며 루슬란에게 매달린다. 목에 팔을 두르고 고개를 살짝 들어 이마를 그의 가슴팍에 묻는다. 자신의 야한 표정을 그에게 들키기 싫다.

    “내게 얼굴을 보이셔야죠. 그래야 내가 그대가 아파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아프지는 않아요….”

    그녀가 여전히 고개를 묻고 조그맣게 대꾸하자 그가 픽 웃음을 흘린다.

    “지금은 넣지 않고 있으니 아프지 않으신 겁니다.”

    넣는다는 말에 류드밀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말만 해도 이리 부끄러워하시니 어쩌면 좋을까요.”

    새빨개진 귓바퀴에 입술을 대고 루슬란이 조곤조곤 속삭인다.

    “그동안 정사는 어떻게 나누셨던 겁니까, 대체. 우리가 이런 지도 꽤 되지 않았나요?”

    “그동안은… 흣……!”

    그의 손가락이 안을 꾹 누르자 그녀는 파들파들 떨며 억누른 신음을 뱉어 낸다. 그러곤 제가 낸 소리에 놀라 입을 손으로 덮는다.

    그는 혀를 쯧 차며 그녀의 여린 손을 부드럽게 입가에서 치운다.

    “소리를 들려주셔요.”

    “하지만, 읏, 듣기 싫으실까 봐….”

    “그대의 소리는 내게 더없이 달콤하게 들린답니다. 그러니 입을 막지 마시어요.”

    류드밀라는 그의 말에 금방이라도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걸릴 것 같아 눈을 꼭 감는다.

    “이런, 이런. 입을 열게 했더니 눈을 감으시는군요.”

    루슬란이 재미있어하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남긴다.

    “감고 있으셔요. 그래도 아프면 꼭 말하세요.”

    그리고 그는 그녀의 안으로 들어온다.

    “아흑!”

    놀라서 눈을 뜰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이런 지도 꽤 되었지만, 그의 것은 너무 커서 들어올 때마다 놀라고 만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뜬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흐윽,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해 주세요….”

    지금도 그는 어마어마한 절제력을 발휘해서 참고 있건만 그녀는 조금만 천천히 해 달라고 부탁해 온다. 허탈한 마음도 잠시, 애원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고왔는지 되새긴 루슬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럼요, 나의 껍데기 님. 그대의 몸을 천천히 길들여 드릴게요. 당신의 모든 것이 제 것이 될 수 있도록.”

    “전 이미 당신의 것이에요.”

    류드밀라는 이렇게 말해 놓고 그의 반응을 보기가 무서워 눈을 다시 감아 버린다. 그래서 그가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만연하게 띠는 것을 보지 못한다.

    대신 뺨을 다정히 쓸어 주는 손길은 느낀다. 달의 키스를 받은 그녀의 은발을 만지작거리는 손길도.

    용기를 얻은 그녀는 눈을 뜨고 그 환한 미소와 마주하자 당황하여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만다.

    한편 루슬란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쩜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달달한 말을 속삭여 놓고 겁에 질리는 모습하며, 손길을 받고 얌전히 눈치를 보는 것까지.

    그가 그녀의 턱을 쥐고 다시 고개를 돌리게 하여 눈을 맞춘다.

    “그리 말을 하시고 나서 모른 척하시면 안 되어요. 책임을 지셔야죠.”

    후후 웃은 그는 안을 느리게 쳐올리는 데에 집중한다. 류드밀라도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악문 잇새로 교성을 흘린다.

    “하읏, 으윽, 흐으….”

    여전히 그의 손은 그녀의 턱을 쥐고 있어 그녀는 루슬란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물고기의 비늘도, 달의 창백함도, 검의 서슬 퍼런 광채도 모두 담은 은빛 눈동자. 베일 듯한 광대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새까만 속눈썹. 날카로운 콧날과 창백한 입술.

    그 모든 것을 다 기억에 아로새길 듯 류드밀라는 그를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그도 턱을 놓고 그녀의 보라색 눈을 들여다본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어슴푸레 밝아 오는 새벽빛이 담긴 그 눈동자를.

    마치 홀린 듯이 루슬란의 허리 짓이 빨라진다. 그의 아래에서 그녀의 가녀린 몸이 속절없이 흔들린다.

    “아응! 흑! 하앙!”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음껏 흐느낌 섞인 신음을 뱉어 낸다. 분명 그의 것은 안에만 있는데 쾌락은 온몸을 삼킬 듯이 덮쳐 온다.

    곧 절정에 다다른 그녀는 꾹 눌러 참았던 울음을 토해 낸다. 새하얀 뺨 위에 눈물이 줄줄 흐르는 모습을 보고 그는 정신을 차린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거칠었죠.”

    그의 것을 빼내며 루슬란이 자책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사과한다.

    “흐, 아니어요, 루슬란 님.”

    그러면서도 류드밀라는 쉬이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결국 그녀를 달래면서 그는 나머지 밤을 보낸다.

    긴 밤은 그렇게 끝나 간다. 앞으로도 수없이 함께 보낼 긴 밤이 기다려지는 루슬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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