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19화 (19/116)
  • 19화. 레몬 맛의 멘톨 사탕

    [ ※ 추천곡 : 유라 (youra) - 수영해 (Virus Edit) ]

    요원이 제 눈꺼풀을 느릿하게 밀어 올려 무경을 올려다보았다.

    반쯤 풀려있는 여자의 매혹적인 눈빛과 그 눈빛과는 달리 타액으로 젖은 제 번지르르한 입술을 손등으로 미련 없이 닦아내는 여자의 단호하고도 상반된 태도 때문에, 무경은 와, 짜증이 깃든 감탄사와 함께 제 뒷머리를 느릿하게 문질러 헝클어트렸다.

    아주 나 혼자서만 안달이 났어요.

    잠시 어두운 허공을 관망하며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린 무경이, 새로운 멘톨 사탕 한 알을 꺼내 제 입에 털어 넣으며 요원을 향해 물었다.

    “처음이에요?”

    “처음, 뭐가요? 키스요?”

    “네. 키스요.”

    “아니요? 아닌데요.”

    “아닌데 왜 그래요? 나랑 하기 싫어요?”

    “네?”

    “채 순경 혀가 굳어서 움직이질 않잖아. 이게 어떻게 키스야. 나 혼자 벽에다 존나 문지르는 거지.”

    무경의 거칠 것 없는 직설화법에 요원은 갑자기 더위를 느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태연한 얼굴로 할 수가 있는지.

    “채 순경님, 나는요.”

    멘톨 사탕이 든 틴케이스를 대청마루 위에 챙 하고 내던진 무경이 말을 이어나갔다.

    “스킨십도 결국 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합이요?”

    “네. 합이요. 상대와 내 합이 얼마나 잘 맞냐. 키스도, 섹스도. 속궁합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어요.”

    “속궁합…….”

    “즐거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럼 즐겁게 해요. 이제 와 답답하게 빼지 말고.”

    “즐겁게…….”

    그의 말을 계속해서 따라 하던 요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고, 얼굴은 술을 몇 잔 걸친 사람처럼 점차 더 벌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와 스킨십 관련해서 이렇게 적나라한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꽤 오래 사귀던 사람과도 음담패설을 나눠본 기억은 없다.

    물론, 이 대화가 음담패설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원은 순간적으로 음담패설을 하는 무경을 상상해보았다. 그가 작정하고 한다면 얼마나 더티하게 할까, 하는 아주 우스운 상상을.

    “채 순경님.”

    “네?”

    “나랑 키스하고 싶은 건 맞아요?”

    다시 상체를 낮춘 그가 한쪽 팔로 요원의 머리 위를 감싸듯 가두며 물었다.

    “…….”

    요원은, 제 위를 커다란 그림자처럼 덮친 남자를 잘게 떨리는 시선으로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무경의 얼굴에도 상냥한 미소가 번진다.

    “나도, 무척이나. 그러니 할 거면 제대로 합시다. 나와 함께 즐겁게 합을 맞추면서.”

    그렇게 말한 무경이 요원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다가와 요원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따뜻하게 포갰다.

    한쪽 팔은 여전히 요원의 정수리 위를 꽉 고정하고, 다른 손으론 요원의 턱을 잡아 올리면서, 굳게 다물린 요원의 입술을 혀로 툭툭 노크한 그가 벌어진 여자의 입안에 멘톨 사탕을 깔끔하게 밀어 넣었다.

    그 후엔 요원의 다음 행동을 관찰하듯 지켜봤다.

    요원은 여전히 두 눈을 꽉 감은 채로 제 입안으로 들어온 그 사탕을 입안에 얌전히 머금고만 있었다.

    어찌할지를 모르는 그 모습에, 무경이 요원의 혀를 부드럽게 옭아매면서 다시 그 사탕을 제 입안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다시 그 사탕을 요원의 입안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

    어느 정도 그 행동을 반복하고 나니, 요원도 금세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탕을 무경의 입안으로 전달하는 것을 보니.

    자칫 방심했다간 사탕이 누군가의 목구멍으로 넘어갈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이니, 두 사람은 서로의 움직임에, 서로의 박자에, 더욱 집중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키스의 합도 점점 잘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혓바닥이 점차 사납게 비벼지며, 멘톨 사탕이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저 입에서 이 입으로 달그락거리며 바삐 오갔다.

    호흡은 가빠지고 두 사람의 혀는 엉망으로 엉켜 들었다.

    섞여드는 타액에선 달콤한 레몬 맛이 나서 계속해서 빨아먹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무경이 키스하며 갑자기 자세를 바꿨다.

    요원의 다리를 넓게 옆으로 벌리면서 그 사이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남자로 인해 M자로 벌어진 다리 사이가 긴장감에 파르르 떨렸고, 제 위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무게를 느끼면서 요원은 두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요원은 그가 리드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가 혀를 넣으면 그것을 빨았고, 그가 제 다리 한쪽을 들어 제 허리에 두르게 하면 그것 또한 그대로 따랐다.

    무경의 몸 어디도 붙잡지 않고, 애꿎은 대청마루 위만 초조한 듯 손톱으로 긁던 요원이 소심하게 손을 올려 그의 셔츠 자락을 붙잡으니.

    여자의 그 작은 행동이 도화선이라도 된 듯, 무경의 움직임은 점차 조급해졌다.

    요원이 입고 있는 순경복 안으로 큼직한 손을 불쑥 집어넣은 무경이 그녀의 가슴을 한 손에 꽉 움켜쥐던 순간, 요원이 그 손을 냉큼 밀어냈다.

    밀린 그의 손이 포기를 모르고 이젠 바지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요원이 소스라치듯 놀라며 무경을 팟! 강하게 제게서 밀어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왜. 만지면 안 돼요?”

    제 아랫입술을 엄지로 슥 문질러 닦는 남자의 얼굴이 꼭, 여자의 몸에 호기심을 품은 소년과도 같다 생각했다.

    요원은 남자의 당당함에 잠시 말문이 막힌 얼굴을 했다가 곧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했다.

    “당연히 안 되죠. 키스하기로 했으면 키스만 하세요.”

    “키스만?”

    “네. 키스만요.”

    “키스만.”

    요원의 말을 따라 하던 무경이 무언가를 인내하는 듯한 한숨과 함께 다시금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 어려운데.”

    오늘따라 머리를 자주 쓸어올리는 그 행동 때문에, 이미 왁스는 다 풀려 그의 반듯한 이마 위에서 머리칼이 제멋대로 춤을 췄다.

    “키스만 하라는 거 아니야.”

    잠시 생각에 잠겼던 무경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두 손바닥으로 대청마루 위를 턱, 짚고서 긴 다리를 뻗어 요원에게 제 위에 앉으라 가볍게 턱짓했다.

    “그럼 이리로 와요.”

    그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 요원이 눈썹을 치떴다.

    “채 순경이 내 위로 올라타시라고. 내가 지금 채 순경 위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왜요?”

    잇따른 요원의 답답한 질문에 무경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짜증스러운 한숨을 터트렸다.

    “그거 일부러 그러지?”

    “뭘 일부러 그래요?”

    “다 알면서 묻는 거잖아요. 너 어디 한번 미쳐보라고.”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요원의 딱딱한 말투에 똑같이 딱딱하게 맞받아친 무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채 순경님은 직설화법을 좋아하시는 분 같으니 그럼 잘 들으세요.”

    그가 손목시계를 잘그락 풀어 대청마루 위에 던졌다.

    “내가 한번 눈이 돌면 뵈는 게 없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가져야 해요.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진 적이 없기에 기다림을 모릅니다. 참을성 또한 없습니다. 인내심도 없겠죠? 이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

    남자가 매력적으로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까딱하다간 내가 이성 줄 놓고 채 순경 바지부터 벗길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면 안 되잖아. 그러니 채 순경이 내 위로 올라오시라고. 나는 내 두 손을 이 자리에 얌전히 딱 박아둘 테니.”

    요원이 얼이 빠진 얼굴을 해선 마른침을 삼켰다.

    연애가 처음은 아니다. 스킨십이 처음도 아니다.

    시골에 거주해도 남자를 만날 기회는 간간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소개해주겠단 손길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벌도, 직업도, 다 괜찮은 남자들이었지만 요원은 장거리 연애도 괜찮다는 그들의 애프터 신청을 죄다 거절했다.

    딱히 이성적으로 끌리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끝만 스쳐도 단전이 저릿저릿한, 그런 아찔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남자 말이다.

    친구들은 그런 요원이 답답하다며 요원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런 감정이야 신기루처럼 곧 사라질 것들이고, 결혼은 결국 현실이니 남자의 성격과 능력만 보면 된다고.

    그래도 요원은 그 설레는 감정을 포기할 수가 없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줄 남자를 여태껏 기다리다 보니 세월은 째깍째깍 잘만 흘러갔다.

    그랬는데. 저 남자가…….

    그러니까 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기대하지도 않던 제 눈앞에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난 거다.

    친구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조건’만 놓고 본다면 소개받았던 그 남자들보다 학력도, 직업도, 성격도, 다 부족한 건 맞는 것 같은데.

    무자비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저 남자만 보면 자꾸만, 어딘가가 저릿한 기분을 받아서.

    전 애인들에게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 아찔한 감정에 점차 잠식되어 가는 요원은, 자꾸 저 남자와는 본능적으로 얽히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성적인 머리로가 아니라, 이 뜨거운 가슴으로.

    “…….”

    고민을 마친 요원이 두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듯이 그에게로 다가가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허벅지 위에 몸을 앉혔다.

    그의 하반신과 최대한 닿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며칠 전의 요원이 아니었다.

    조금 전, 정신없이 맞물렸던 입술처럼 두 사람의 하반신도 그렇게 얽히듯 틈 없이 맞물렸으니.

    제 위에 망설임 없이 앉은 요원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얼굴 위에 웃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무표정하다 못해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검은 시선을 쳐다보면서, 요원은 제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조심스레 포개었다.

    무경이 입술을 살짝 벌려주자 머뭇대던 요원이 그 안에 제 혀를 집어넣었다.

    무경의 키스와는 달리, 요원의 것은 매우 부드럽고도 섬세했다.

    제 입술 안을 샅샅이 핥아 올리는 다정한 키스에 무경은 제 몸이 양초처럼 녹아 내리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키스가 원래 이렇게 좋은 거였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채요원 순경.”

    잠시 입술을 떨어트린 무경이 상냥한 빛으로 웃으며 상냥하지 않은 목소리를 뽐냈다.

    “혹시 알까 모르겠는데.”

    “하…… 뭘요?”

    “이것도 직설화법으로 들려드릴까?”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태연하게 웃는 남자의 얼굴이 그런 요원에게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당신, 키스 존나 잘해.”

    금세 태세를 바꾸어 곧 사납게 입술을 부딪쳐 왔다.

    “읍!”

    놀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남자의 혀가 난폭하게 침범했다.

    요원의 입술이 빨렸다. 혀도 빨렸다. 두 사람의 혀가 멋대로 엉망으로 비벼졌다.

    숨이 턱턱 막혔다. 산소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레몬 맛을 품은 숨은 달기만 했다.

    요원의 긴장된 손이 무경의 셔츠 자락을 아까보다 더 꽉 강하게 틀어쥐었다.

    구김 하나 보이지 않던 무경의 셔츠 자락은 요원에 의하여, 멋대로, 잔뜩, 아주 엉망으로 구겨져 갔다.

    하무경 인생에 다시는 없을, 대청마루 위에서의 첫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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