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6화 (6/116)
  • 6화. 포터를 타는 남자

    찍찍찍찍. 쥐다.

    미야아아아앙. 고양이다.

    쿠당탕탕탕탕. 톰과 제리가 지붕 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타타타타타타탁. 저놈의 선풍기 소리는 여전한 소음공해고.

    위이이이이잉. 고물 냉장고는 곧 맛이 갈지도 모르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리에서 뒤척거리던 무경은 선풍기를 몇 번이고 발로 짜증스레 퍽퍽 걷어찼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선풍기가 결국 옆으로 쿠당 쓰러졌다.

    투투투투투투툭. 쓰러져서까지 저 지랄이다. 사람 환장하게.

    “하아…….”

    눈가를 가리고 있던 팔을 느릿하게 치워낸 무경이 손을 더듬거려 끌러둔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겨우 새벽 3시 47분.

    하루 만에 녹초가 된 몸을 천천히 세운 무경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바닥에서 자본 적이 없기에 여기저기 안 쑤신 곳이 없다.

    투투투투투투툭. 넘어진 선풍기는 계속해서 소음을 만들어냈고.

    위이이이이이잉. 고물 냉장고도 여전히 저 지랄이고.

    “아…….”

    마치,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제 머리를 쥐어뜯을 듯이 부여잡았던 무경이 그 손으로 다시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거칠게 위아래로 사납게 문질렀다.

    씨발. 씨발. 씨발. 존나 씨발.

    새벽 순찰이 있을 때를 제하고 요원의 하루의 시작은 늘, 새벽 4시 30분이다.

    요원의 할머니인 김갑순이 늘 그 시각에 요원을 깨우기 때문이다.

    “아야.”

    요원의 방에 들어온 갑순이 곤히 잠들어있는 요원의 엉덩이를 톡톡 다정하게 두드렸다.

    “밥 먹어야.”

    “으응…….”

    하얗고 고운 얼굴을 찡그린 요원이 갑순을 등지고 누웠다.

    갑순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계속해서 요원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새로 이사 왔다던 총각은 만나 봤능가?”

    “으응…….”

    “으짜디?”

    “으응…….”

    “응은 머시 응이여?”

    “몰라…….”

    “어디서 왔대?”

    “서울이었나…….”

    “그래야. 고향은?”

    “몰라…….”

    “여긴 머 더러 왔대?”

    “몰라요…….”

    “나이는?”

    “몰라…… 근데 젊어.”

    “멋하다 왔대?”

    “몰라…….”

    “아따 너는 마을 순경이 데가꼬 어째 그리 다 모른다고만 하냐잉.”

    “몰라요, 몰라.”

    요원이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홱 뒤집어쓰며 이불 안에서 작게 웅얼거렸다.

    “나도 어제 잠깐 봤어…….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면…….”

    그 남자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남자의 얼굴이 자연스레 뇌리를 스쳤다.

    찡그린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신기하게도 남자의 얼굴은 더욱 선명해진다.

    제 밥 위에 전복이며 랍스터를 올려주며 싱그럽게 웃던 남자의 매혹적이던 얼굴이.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 남자.

    서울에서 숱한 여자들을 울리다 온 선수인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유감이에요, 채요원 순경.’

    고저 없는 특유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갑자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메마른 목이 갑자기 쩍 갈라져 갈증을 호소한다.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

    그 생각을 하는 요원의 두 뺨은 이유 없이 홧홧해졌던 것 같기도.

    ***

    중천에 떠오른 햇살에 물든 아름다운 백야마을.

    아침부터 드라이기도 없어서 내리쬐는 햇살과 자연 바람에 머리를 말린 무경이 습관처럼 왁스통을 꺼내 머리를 세팅했다.

    [상무님. 백야마을 입구 있잖습니까.]

    폼 안 나는 양은 밥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업무를 좀 보고 있는데, 11시 즈음 차태호 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차가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인조 바위 있는 쪽이요. 그쪽으로 가시면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어제 입었던 옷을 또 입었다.

    단 하루도 같은 옷을 입지 않는 그 하무경이 말이다.

    드레스룸에 진열된 넥타이만 365개다. 이렇게 설명하면 남자에 대한 이해가 더 쉬우리라 생각한다.

    평소에도 스타일을 중시하는 무경은 명품관에서도 한정판만 구매해 입기로 유명했는데, 그가 떴다 하면 해당 브랜드는 잠시 셔터를 내리고 모든 쇼퍼들이 그의 곁에 달라붙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경은, 그를 위해 마련된 소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무심한 얼굴로 카탈로그를 넘겨보며 쇼퍼들이 가져오는 슈트와 구두 넥타이 등을 빠르게 한번 눈으로 훑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검지 단 하나.

    그 손가락 하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그거. 그리고 저거. 그래. 그것도 좋고.

    그 손가락 하나로 쇼퍼들을 분주하게 만들 수도 있고.

    글쎄, 그건 나는 별로.

    그 손가락 하나로 전부 다 물릴 수도 있고.

    참으로 편리한 인생이 아닌가.

    씻을 것도 다 씻었고 아직 깨끗한 옷인데도, 무경은 온몸에 벌레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끔찍한 기분을 받았다.

    차를 받자마자 어디든 가서 옷과 드라이기부터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구 쪽으로 향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슬리퍼를 직직 끌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상무님.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걱정이 한가득 묻어있는 태호의 음성이 귓전을 울린다.

    잘 잤겠어요? 저딴 폐가에서? 되받아치려다가 말았다. 태호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네, 뭐. 그럭저럭 잘 잤습니다.”

    [다행입니다.]

    트레이닝복 바지에 한 손을 찔러넣은 무경이 무던한 얼굴로 물었다.

    “차 실장님. 오늘이 목요일이던가요?”

    [수요일입니다.]

    “어제가 화요일이었나요.”

    [그렇습니다.]

    헛웃음이 터졌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곳이 틀림없다.

    [상무님. 어디까지 가셨습니까? 제가 기사에게 연락해두겠습니다.]

    “입구에 거의 다 왔습니다. 차 받고 다시 전화할게요.”

    [예, 상무님.]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무경이 백야마을 입구를 두리번거렸다.

    입구에 새하얀 포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저거일 리 없다.

    아니. 본능이 저거구나, 말해오고 있었으나 무경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무경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린 기사가 저를 향해 다가온다.

    아니야. 오지 마.

    무경은 그대로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무의식중에 한 발 뒤로 물러난 것 같기도.

    “하무경 씨죠?”

    바람과는 달리 기사는 결국 제 앞으로 오고야 말았으며 제 앞에 차 키를 내밀었다.

    “차,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 키를 어정쩡하니 받아들자 제게 꾸벅 인사한 기사가 다시 무경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

    무경이 그 포터를 황망한 시선으로 잠시 바라봤다.

    아니 씨발, 저 뒤에 배추라도 싣고 다니라는 거야 뭐야?

    집에서 노는 차만 다섯 대인데, 포터?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다시 꺼내든 무경이 태호에게 전화를 걸며 잘 세팅된 머리를 사납게 한번 쓸어올렸다.

    [예, 상무님. 차는 잘 받으셨습니까?]

    “왜? 아주 경운기를 보내시지.”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으나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까진 감춰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회장님께서 그러라고 하셨는데 저희가 간신히 뜯어말렸습니다.]

    하하. 무경이 소리 내 호탕하게 웃었다. 실없는 웃음이 연달아 비집고 흘렀다.

    “차 실장님. 나 놀라지 않을 테니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예, 상무님.]

    옅은 웃음기 밴 음성이 자꾸만 실실 흘러나온다.

    “나 좌천된 거 맞습니까.”

    [예?]

    “아니면. 회장님께서 실은 폐암이 아니라 알츠하이머 뭐 그런 건가?”

    [상무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둘 중 하나여야 해.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이 상황이 말이 안 되잖아!”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내지른 성난 고함 소리가 조용한 백야마을에 금세 울려 퍼졌다.

    어제부터 잘근잘근 짓눌렀던 감정이 결국은 활화산처럼 펑 터지고 만 것이다.

    “포터? 내가 한평생 트럭을 끌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나한테 포터를 보낸 겁니까? 나 그러면 저거 끌고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로 올라가면 되는 건가?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저 차 로비 앞에 주차해두고 이 차림으로 출근하면 되는 거예요?”

    [상무님. 많이 흥분하셨습니다. 우선 흥분을 좀 가라앉히십시오.]

    “가라앉히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차 실장은 빨리 대답이나 해. 내가 좌천된 겁니까, 아니면 회장님께서 알츠하이머입니까. 둘 중 하나는 맞다고 해.”

    [아닙니다, 상무님. 좌천도 아니고 알츠하이머도 아닙니다. 동녘의 차기 수장이 되실 분께서 어찌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십니까.]

    “그런데. 아닌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태호는 그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못했다.

    화살의 방향이 잘못된 쪽을 향했으니 당연했다.

    하긴. 차 실장, 당신이 무슨 잘못이야. 중간에서 불쌍하기만 하지.

    핸드폰을 쥐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찌르르한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무경이 한숨과도 같은 말을 나직이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차 실장님. 아침부터 내가 본의 아니게 흥분을 좀 했는데. 실은 내가 잠을 한숨도 못 자서 말이에요.”

    [아닙니다, 상무님. 제겐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잠자리 바뀌면 호텔에서도 잘 못 주무시는 분이 그 낯선 곳에선 오죽하시겠습니까.]

    “회장님께 전해주세요.”

    찡그린 눈을 감은 무경이 억지로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말했다.

    “포터는 잘, 받아보았다고.”

    뚝. 통화를 먼저 종료한 그가 다시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신경질적으로 욱여넣었다.

    가만있어 봐. 포터면 수동 기어 아니야? 내가 운전면허를 딴 이후론 한 번도 수동 기어를 잡아본 적이 없는데.

    무경이 심란한 표정을 애써 숨기지 않으며 새하얀 포터를 불만족스럽게 훑던 때였다.

    “그짝이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총각인가?”

    쪽 머리에 화려한 꽃무늬 패턴의 몸뻬 바지를 입은, 등이 굽은 노인이 제 앞에 뒷짐을 지고 섰다.

    무경은 대답 없이 그 노인을 비스듬하게 깔아봤다.

    노인을 바라보는 그 검은 시선엔, 어르신에 대한 공경 따윈 일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동녘 그룹에서 가장 나이 많은 임원은 60세.

    그 사람은 무경만 보면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인사를 하곤 했는데. 이처럼, 무경에게 상대의 나이는 그저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다.

    무경은 언제나 인사를 받는 위치이고 상대는 언제나 제게 고개 숙이는 위치니까.

    34년을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온 남자가, 아무리 이곳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연기를 해야 한들, 그 예의 바른 태도가 어찌 하루아침에 다 갖춰지겠나.

    “니 인사할 줄 모르냐잉.”

    “누구신지를 알아야 제가 인사라는 걸 하지 않겠습니까.”

    노인을 여전히 비스듬하게 깔아본 채 무경은, 비딱한 입매로 말을 덧붙였다.

    “쉽게 머리 숙이지 말라 배워서.”

    노인은 그런 무경을 한동안 말없이 관망했다.

    그의 얼굴 하나하나를 뜯어보듯 찬찬히 살피던 노인의 주름진 눈가가 곧 인자하게 휘더니만 푸근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와서 국수나 먹구 가잉.”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깔끔하게 돌아섰다.

    그 노인은, 채요원 순경의 할머니인 갑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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